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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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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1일 13시 07분 등록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내셨어요?” 

이렇게 묻는다면 저마다 나오는 대답이 있을 것이다. 내 이야기를 해 보자면, 내가 태어나면서 살림이 나아졌다고 아버지는 나를 예뻐하셨다고 한다. 오남매 중에서 조금 똘똘한 편이어서 그랬을까 아버지의 사랑은 성인이 되도록 계속되었고, 그로써 나는 내가 존귀한 사람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지금도 서부역 앞 아버지 사무실로 올라가는 나무계단이 기억난다.  용돈이 궁해 아버지 사무실로 찾아가면 아버지는 천원을 달라는 내게 이천원을 주시곤 했다. 그 외에도 내가 좋아하는 어린시절 이야기는 이런 것들이다. 나는 10개월에 걷기 시작해서 돐날에는  이웃집에 직접 떡을 돌릴 정도로 여유만만했다고 하며, 다섯 살 무렵에는 혼자 한글을 깨우쳐 언니의 교과서를 줄줄 읽었다고 한다. 어지간히 컸을 때 어쩌다 엄마가 늦는 날이면 언니는 밥을 해놓는데 나는 세상몰라라 책만 보고 있었다는 얘기도 피식 웃음이 나오게 만든다.

쌩뚱맞게 시효지난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기억도 ‘이야기’의 형태로 보존되고 전달된다는 말을 하고 있는 중이다. 나처럼 에너지의 원천이 되는 시절이 아니라  도저히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널리 알려진 대로 오프라 윈프리는 끔찍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그녀는 할머니와, 엄마, 아버지 사이를 오가며 컸으며 가난에 시달렸다. 겨우 9살부터 여러 명의 친척들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자포자기하여 방종한 사춘기를 지내다 급기야 14세에 조산아를 분만하기도 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말하기 위해서는 어떤 경험을 거쳤는지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살아온 날을 정리하고 정체성을 쌓아간다. 이야기로 정리되지 않은 기억은 별똥별처럼 망각의 심연 속으로 사라진다.  이야기는 마치 공기처럼 우리 삶과 너무나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는 것이다. “10년 후에 어떤 삶을 살고 싶으세요?” 이번에는 이렇게 물어보겠다.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도 이야기로 꿈꾸어지며 비롯된다. 평소에 생각을 많이 하고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는 사람은 ‘10년 후의 나’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그때쯤에는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하고 싶던 공부를 시작한다든지, 귀농하여 자연과 벗하며 살고 싶다든지 어떤 계획도 이야기로 드러난다. 반면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한 사람은 앞날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지난 경험을 통합하여 앞날을 만들어내는 자원으로 사용할 수 없다면 혼란스럽다. 불행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삶의 각본을 이어나갈 수 없는 극심한 절망에 빠진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이야기에 기대어 자신을 이해하고, 삶을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 모두 자기 인생의 작가가 된다.  우리는 내 삶을 재료로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가는 저자들이다. 그렇다면 그 많은 경험 중에서 무엇을 택할 것인가 이것이 중요해진다. 앞서 나는 내 어린 시절의 소중한 기억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라고 왜 언짢은 기억이 없겠는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전학을 했는데 담임선생님이 어찌나 쌀쌀맞은지 적응을 못하고 무단결석을 한 적이 있다. 막 입학한 남동생까지 데리고 스케치북이며 회충약값 같은 적절한 잡부금을 타내서 군것질을 하며 놀이터를 전전했다. 무심도 하지. 근 한 달이 지난 후에야 학교에서 연락이 와서 내 땡땡이 행각이 들통이 났다. 만화가게에 가기위해 엄마의 잔돈을 슬쩍 한 일도 여러 번 있었다.  어려서부터 덩치가 커서 여기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도 몇 개 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먼저 기억하지 않는다. 나는 긍정적인 플롯을 지닌 인생작가이기 때문이다.

긍정성으로 따지면 오프라 윈프리는 세계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심란했던 어린 시절에 비해 그녀는 방송계에서 일찍 자리를 잡았다. 그녀가 승승장구하던 시절 이복동생이 그녀가 14세에 미숙아를 낳았으며, 그 아기가 며칠 만에 죽었다는 사실을 언론에 터뜨렸다. 언론은 죽 끓듯 들끓었고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던 오프라는 결국 동생을 용서한다. 그녀 자신이 용서를 하지 못한다면 방송에서 누군가를 용서하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미디어의 여왕으로 세계적인 백만장자로, 아프리카의 여성교육에 앞장서는 선구자로 우뚝 섰다. 나는 그녀에게서 이야기의 전형을 본다. 비밀이 알려졌을 당시에는 죽고 싶도록 괴로웠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그것은 득이 되었다. 더 이상 그녀는 세상을 속이지 않아도 되었고, 끔찍했던 유년시절이 극적인 성공과 대비되어  그녀의 신화를 완성해 준다.  ‘모든 사람이 실수를 한다, 실수란 당신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신의 배려’라는 그녀의 절대긍정이 큰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이야기적인 세계관을 가지면 어지간한 실수나 고통은 극복할 수 있다. 세상에 갈등이 없는 이야기가 어디 있단 말인가? 내가 내 삶의 대본을 쓰는 저자라는 인식을 분명히 하면 밋밋한 일상에 드라마의 긴장이 드리우고, 삶에 대한 주도성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대의 플롯은 비극인가? 희극인가? 아니면 영웅신화인가?  그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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