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회의 , 빠른 결정, LG 전자 , 2005년 6월

회의가 길어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내 경험으로는 크게 두 가지 때문이다. 그 하나는 시시한 이유들이 모여 꽤 커다란 낭비를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정시에 사람이 다 모이지 못해 먼저 온 사람들을 기다리게 하는 주체 측의 실수 때문이거나, 늦게 온 사람을 위해 진행 상황을 다시 설명해 주는 어리석은 친절 때문이거나, 회의 도중 휴대 전화를 받는 무례한 사람들 때문이거나, 초점이 없이 말 많은 수다들 때문이다.

또 하나는 길어져야할 당연한 이유가 있는 진지함 때문이다. 이때는 마라톤 회의여도 좋다. 충분한 논의를 거쳐 공감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한 자리거나, 가능한 많은 아이디어를 모아야할 자리라면, 충분히 논의하고, 깊이 생각하고, 가능한 모든 이야기를 들어야할 것이다. 회의 자체가 부가 가치를 만들어 내는 활동인 경우는 얼마든지 길어도 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그러나 효과적인 회의를 위한 요령이 있다.

1) 가능하면 회의 자체를 하지 마라. 간단한 일대 일 조율을 통해, 관련 담당자의 입장과 아이디어를 듣는 것이 좋다. 전화나 간단한 면담이면 족하다.

2) 회의가 꼭 필요한 경우 참가자들을 다섯 명 이내로 국한 시켜라. 이 사람 저 사람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으면 다 모아 한 번에 일을 처리하고 싶은 것이 주체측의 심산이다. 그러나 참아라. 꼭 필요한 key role player 만 초대하라. 별 관계없는 회의에 끌려가 앉아 있게 되면 화나고 집중도가 떨어져 회의의 질 자체를 떨어뜨리게 되어 있다.

3) 어떤 경우도 룰을 잘 지킨 플레이어에게 부담을 주어서는 안된다. 축구 경기처럼 정시에 시작하여 정해진 시간 안에 휘슬이 울려야 한다. 정시에 온 사람을 기다리게 해서는 안되며, 늦게 온 사람을 위해 부연 설명을 해 주어서도 안되고, 회의 중에 딴 일을 하거나, 지나치게 혼자 떠드는 것을 방치해서도 안된다. 회의시 시간관리자(time keeper)를 한 사람 정해서 3분 이내에 발언이 끝나도록 하는 것도 해 볼만 하다. 어떤 경우든 다른 사람의 권리를 무단 점유하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된다.

4) 사전에 agenda 를 만들어 회의의 주제를 명확하게 하여, 회의 전에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 다음 참석하게 하고, 끝나면 회의록 ( meeting minutes) 를 배포해 결정된 사항을 분명하게 공유해야한다.

5) 전사적으로 회의 문화에 대한 원칙을 정해 공표하고, 사장이 주재하는 board meeting부터 모범을 보이는 것이 좋다.

‘짧은 회의 빠른 결정’을 위한 이런 원칙들은 어떨까 ?

원칙 1) 모든 발표는 5장 이내의 슬라이드를 사용하여 발표한다. 많은 슬라이드는 발표자가 핵심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표시다.

2 ) 오전에는 회의 없다. 부득이한 경우 일 년에 부서별로 3번 까지는 오전 회의 소집권을 인정한다. 그 이상을 남용할 때는 매번 참가자에게 밥도 사고 술도 사야한다.

원칙 3) 우리는 축구팀처럼 회의한다. 휘슬과 함께 시작해서 휘슬과 함께 끝난다. 그 동안 참가자 모두 쉬지 않고 뛴다.

원칙 4 ) 한 회의에서 한 사람이 3분 이상 3회 발언하면 더 이상 발언권은 없다. 이 사람은 회의실에 비치된 ‘수다 box’ 에 명함을 넣어야한다. 일 년이 지나 모든 회의실 ‘수다box’를 털어 가장 많은 명함이 나온 사람 10명에게 ‘최우수 수다상’을 수여한다.

부상으로 다음해 1년간 모든 회의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박탈한다. (반드시 겉으로는 좋아하는 척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데서도 불러 주지 않으면 수다쟁이가 어찌 섭섭지 않겠는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