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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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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31일 17시 08분 등록
준비하지 않은 대가는 너무나 컸다. 조·일 전쟁이 끝난 후 서울의 인구는 고작 3만 8,000명이었다. 이는 170년 전인 1428년(세종 10년) 11만 명과 비교해도 3분의 1정도 밖에 안 되는 수치였다. 또한 조·일 전쟁 전에 170만 결이던 경지면적은 54만 결로 크게 감소하였다. 전쟁을 준비하지 못한 것은 조정이었지만, 전쟁을 온몸으로 감내해야 했던 것은 백성들이었다. 1593년 4월 조명연합군이 서울을 수복했을 당시의 상황만 봐도 백성들의 피해는 차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다음은 ‘징비록’에서 옮긴 것이다.

“나도 명나라 군사를 따라 도성으로 들어왔는데 성 안에 남아 있는 백성들을 보니 백 명에 한 명만 살아남았을 정도였다. 그 살아 있는 사람도 다 굶주리고 야위고 병들고 피곤하여 얼굴빛이 귀신과 같았다. 이때는 날씨가 몹시 무더웠는데 죽은 사람과 죽은 말이 곳곳에 드러나 있어서 썩는 냄새가 성 안에 가득 차서 길에 다니는 사람들은 코를 막고서야 지나갈 형편이었다.”


선조(宣祖)는 즉위 첫 해(1568년)에 치러진 과거시험에서 응시생들에게 ‘정벌(征伐)과 화친(和親)’에 대한 책문(策問)을 내렸다. 책문은 과거 시험의 마지막 관문으로 왕 앞에서 치르는 최종 시험이었다. 선조는 책문에서, 적을 대하는 방법으로 정벌과 화친을 제시하면서 그 원리를 묻고 어떻게 해야 외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이에 대해 죽천(竹川) 박광전(朴光前)은 ‘정벌의 원칙은 힘에 있고 화친의 원칙은 형세에 달려 있다’고 전제하고 ‘힘을 헤아려 대처하면 이길 수 있고 형세를 살펴서 대처하면 상대방의 침략의도를 사전에 분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병사를 운용하는 것은 장수이기 때문에 적절한 인재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박광전의 글 중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정벌함으로써 나라를 어지럽히는 난리를 그치게 하고, 화친함으로써 덕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 곧 정벌할 대상은 정벌하고 화친할 대상은 화친하는 데 외적을 막는 도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벌의 원칙은 힘을 따져 보는 데 있고, 화친의 요령은 형세를 살피는 데 있습니다. ...
반드시 정벌할 힘이 있어야 정벌하고, 화친할 만한 형세가 되어야 화친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정벌해도 목적을 이룰 수 있고, 화친해도 효과를 얻을 수 있게 되어, 영원히 쇠퇴하거나 어지러워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재앙을 일으킨 것을 후회하는 마음이 있고, 이쪽이 화친을 해야 할 형세라야 화친할 수 있습니다. ....
상대방이 재앙을 일으킨 것을 후회하는 마음이 없고, 이쪽이 신뢰를 펼칠 만한 세력이 없으면, 화친해서는 안 됩니다.”

“나라의 일 가운데 아주 큰일은 전쟁과 관련된 일이고, 병사를 운용해야 할 큰 임무는 장수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병무는 언제나 장수를 얻는 일이 가장 우선입니다.”


조·일 전쟁 전후 사정을 놓고 보면 박광전의 주장은 전적으로 옳았다. 그러나 선조나 대신들은 그의 주장을 전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선은 전쟁 준비를 하지 않았고 힘을 비축하지 않았다. 전쟁이 터졌을 때 조선은 일본을 정벌하기는커녕 방어할 힘도 없었다. 일본과 화친할 형세도 아니었다. 이틀 만에 요충지인 부산성과 동래성을 잃었고 임금이 있는 서울은 전쟁이 시작된지 21일 만에 함락되었다. 당시의 도로 상황과 운송 수단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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