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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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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20일 12시 28분 등록

글쓰기는 생각이다. 내 생각을 펼쳐놓는 것이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단호하게 믿는 것이 있다면 글쓰기가 어렵지 않다. 조금이라도 글을 써 본 사람들은 한번쯤 전혀 힘들이지 않고도 글이 써진 경험을 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 혹은 아이의 교육문제 무엇이 되었든 우연히 마음에 떠오른 것을 그대로 받아 적기만 하면 되었던 때, 바로 그것이다. 그러니 글이 자꾸 막히면 내가 지금 쓰려고 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확신하고 있는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그런 질문을 해 볼 틈도 없이 하고 싶은 말이 술술 쏟아져 나와 내리닫이로 써내려간 글은 편안하다. 글은 쓰는 이의 믿음 안에서 태어나  숨쉬기 때문이다.


우리는 글을 읽을 때 쓴 사람의 기운을 느낀다. 건조한 자료 뒤에 숨어 당위만을 되풀이하고 있는지, 동참할 여지도 주지 않은 채 목청높여 선언하기에 바쁜지, 마음을 다해 자기가 발견한 것을 나눠주고 싶어하는지 다 느낄 수 있다. 그 기운에 먼저 접속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내용도 와 닿지 않는다. 감정이 없으면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글을 쓸 때는 쓰는 사람이 먼저 그 주제에 푹 빠지는 것이 필요하다. 자기 이야기를 하든 이론으로 풀어내든 마찬가지이다.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 자기를 표현하고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 본연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험의 가치를 경시하거나 누가 내 이야기에 귀기울여줄까 자신을 갖지 못하여 번듯한 자료를 찾아다니곤 한다. 물론 내 경험을 뒷받침하는 이론도 필요하다. 수많은 사례를 취합하여 모두에게 참고가 될만한 패턴을 찾아낸 것이 이론이므로, 이론은 내 경험을 정당화시켜 준다. 하지만 이론이 경험보다 중요하거나 앞설 수는 없다. 경험에는 무엇보다 소중하고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그 사람만의 숨결이 묻어있기 때문이다. 경험은 이론에 앞선다. 나는 이것을 꿈을 통해 알았다. 두 번 째 책의 원고가 안 풀려 몸부림치던 어느날 꿈을 꾸었다. 누군가 와서 돈을 주고 가길래 갖고 들어왔는데 방 안에 들어오자마자 순식간에 돈이 옛날 일기로 변하는 것이었다. 성궤를 찾는 비밀문서처럼 오래 되어서 끝이 말려들어간 일기장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나는 이 꿈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곳곳에 경험이 녹아들어간 글은 쉽고 정겹고 편안하다. 글의 서두 만이라도 경험으로 풀면 좋다. 서두는 무조건 쉬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강룡은 ‘경험, 대화, 미디어, 독서, 상상’의 순서대로 글감을 찾자고 한다. 경험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글로 쓰라고 한다. 이쯤 되면 드디어 글쓰기와 삶의 위상이 같아지는 것이니 나도 아주 땅긴다. 조금 심각한 경험이나 깊은 상처를 드러내면 쓰는 사람은 치유되고 읽는 사람은 공감하게 된다.  있는 것을 그대로 드러내면 얼마나 쓰기 편할까. 내 경험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만한 가치가 있는가는 별도의 문제이지만, 표현하고 난 후의 여파를 감당할 자신이 있다면 있는대로 나를 발산해보는 것도 괜찮으리라. 보통 사람이 표현하지 못하는 깊숙한 내면을 파헤친 그 곳에서 우리가 같은 인간이라는 동질성을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고백문학의 입지일 텐데, 그만한 고백은 아닐지 몰라도 우리도 수시로 자기노출의 수위를 놓고 고민한다. 글쓰기에 대한 문제의 80%는 자기검열이라는 말처럼, 글쓰기는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과 저항과의 싸움인지도 모른다.


경험의 중요성을 십분 인정한다해도 포괄적인 이야기를 할 때는 이론의 비중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이럴 때에도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확신은 금방 드러난다. 몇 권의 책을 통해 겨우 감만 잡고 쓰는 글과 인접 학문까지 사통오달한 사람이 쓰는 글이 같겠는가. 요즘 철학과 문학에 대한 김용규의 책을 두 어 권 읽었다. 그득한 지식곳간을 풀어내는 순정한 글솜씨에 눈앞이 훤해질 지경이었다. 그는 철학과 신학을 전공했으니 인간의 삶과 사유가 도달할 수 있는 깊이와 너비를 파악했을 것이다. 그처럼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다면 어떤 책과 영화가 위치한 지점을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고 그 의미를 짚어주는 목소리에 힘이 실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식은 확신을 갖게 해 주고, 확신에 찬 목소리는 강력하고 단순해진다. 어떤 것의 구조를 속속들이 알고 있으면 아무리 어려운 이야기도 쉽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깊어지지 않으면 쉬워질 수 없다’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처럼 깊은 학문을 연마하기 전에는 아무 글도 쓸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소소한 일상의 문제를 다룰 때에도 내 느낌에 얼마나 솔직했는지 돌아볼 일이다. 그럴듯한 글감이 아니라 내면에서 용솟음치는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것이 먼저다. 글줄이 막히면 이 글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음을 알아채자. 글이 안 써지는 것은 문장력의 문제라기 보다 심리적인 요인이 크다. 자료수집이 부족해서 확신이 부족하든지, 심경 정리가 안 되어서 망설이고 있는 것이니 그 원인을 해결하고 다시 시도하자. 무엇보다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그 말을 하자. 내 질문에 해답을 찾아가는 뜨거운 열정을 놓지 말자. 쓰는 사람이 자기주제에 몰입한 기운이 읽는 사람을 잡아 당긴다. 선수도 집중하지 않는 경기에 환호를 보낼 관객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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