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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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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4일 10시 57분 등록

30초 안에 소설을 잘 쓰는 법을 가르쳐드리죠. 봄에 대해서 쓰고 싶다면, 이번 봄에 무엇을 느꼈는지 쓰지 말고, 어떤 것을 보고 듣고 맛보고 느꼈는지를 쓰세요.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쓰지 마시고, 사랑했을 때 연인과 함께 걸었던 길, 먹었던 음식, 봤던 영화에 대해서 아주 세세하게 쓰세요. 다시 한 번 더 걷고 먹고 보는 것처럼. 우리의 감정은 언어로는 직접 전달되지 않는다는 걸 기억하세요. 우리가 언어로 전달할 수 있는 건 오직 형식적인 것들 뿐이에요. 이 사실이 이해된다면 앞으로 봄이 되면 무조건 시간을 내어 좋아하는 사람과 특정한 꽃을 보러 다니시고, 잊지 못할 음식을 드시고, 그 날의 기분과 눈에 띈 일들을 일기장에 적어 놓으세요. 우리 인생은 그런 것들로 형성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소설도 마찬가지예요. 이상 강의끝.

- 김연수, ‘우리가 보낸 순간’에서 -


 

글쓰기에 대한 책을 수십 권 읽었는데, 그 중 가장 많이 나오는 글쓰기원칙은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라”였다. 안정효는 이 원칙을 글쓰기 책상 앞에 써 붙여놓아도 좋을 만큼 중요하고 필수적인 가르침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설명’과 ‘보여주기’의 차이를 아는 사람은 이미 작가라고 말했다. 그런가하면 최수묵은 ‘기막힌 이야기 기막힌 글쓰기’에서 이것이 내러티브 기사쓰기의 첫 번째  원칙이라고 한다.  아무리 찾아봐도 두 번째 원칙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첫 번째이자 유일한 원칙인지도 모르겠다.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라”, 강의를 하면서 이 말을 하면 어떤 수강생들은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는다. 그러면 나는 개그맨 홍록기 이야기로 말문을 트곤 했다. 언젠가 TV를 보니 홍록기가 자기는 여자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럴듯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고도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겠구나 싶었다. 바로 이것,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사랑을 전달하는 것이 바로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분노’, ‘두려움’, ‘좌절’, ‘환희’ 같은 감정들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 자체를 느끼게 할 수 있다면 성공인 것이다. “그녀가 울었다”고 말하지 말고 그녀를 무대에 올려 직접 울게 하라!


소설가 김연수의 30초 소설특강은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라”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처럼 간결하고 명료하게 이 기법을 표현할 수 있다니! 나는 김연수가 단박에 좋아졌다. 우리가 언어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은 형식뿐이란다. 그러니까 너를 사랑한다고 오백 번 말해도 그 사랑을 느끼게 해 주지 못한다면 공허하단 얘기다. 지금 이 부분에서 사랑한다는 말 대신 이런저런 몸짓이 사랑을 느끼게 해 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빈약하다 못해 황량할 지경인 나의 이력서라니...


아!  억지로 하나 생각났다. 어느날 갑자기 대학시절 동아리 선배 하나가 떠올랐다. 십 년이 다 되어가는 이야기이다. 그 때도 실로 빈약했던 청춘을 회상하다가 어쩐지 그 선배의 몸짓이 예사롭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뭐라고 말하진 않았어도 엠티에서 굳이 내 옆을 비집고 앉던 모습이나 유독 따듯했던 눈매에 혹시 무슨 의미가 있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나서 얼마 후  그 선배를 만나게 되었다. 25년 만이었고 서클 동기 한 명과 함께였다.  참치회를 사줘서 먹고, 호프집에 가서 맥주를 한 잔 하는 동안 얼마나 내 말을 잘 들어주었던지 마음 한 켠이 훈훈하게 덥혀졌다. 그 때도 별다른 말은 없었다. 젊은 날 팍팍했던 환경 이야기를 했고, 막 대학에 입학한 딸에 대한 애틋함 같이 상식적인 화제를 나누다가 헤어질 때 그가 문득 어디 한 번 안아보자며 슬쩍 껴안더니 내 이마에 입술을 댔다. 그 날  집에 돌아와서 나는 시 한 편을 썼다. 


이십 오년


단조롭고 밋밋한 내 청춘의 갈피에

그래도 남달랐지 싶은

선배의 몸짓 하나가 있다.

경동교회나 과천 영보수녀원에서

아무 말 하지 않았어도

가끔 꺼내보는

어깨짓 하나가 있다.

이십 오년만에 마주한 그는

그래도 쟤 예쁘게 컸다는 소리를 하여

예쁘지 않게 늙는 중인 나를 웃기더니,

이런저런 얘기 끝에

그 때는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었노라고

방 하나에 식구들이 바글바글했노라고

그 얘기만 한다.

회를 살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야

한 번 안아보자며 슬쩍 당기더니

이마에 입술을 댄다.

사람 많은 종각 지하철역에서였다.

이래저래 그의 속내는

또다시 이십 오년 후에나

들을 수 있을 터였다.


지금 내가 이 장면을 떠올린 것은 순전히 김연수 덕분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나는 여전히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라”는 원칙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을 뻔했다. 확인할 수 없는 옛날 선배의 마음 하나를 떠올린 것만으로도 온 몸이 찌릿해진다.  당최 신나는 일이라곤 없어 좀비처럼 기계적으로 움직이던 몸에 비로소 피가 도는 느낌이다.  드디어 글쓰기 원칙 중의 원칙을 이해했다는 감격에 온 몸의 털이 오소소 선다.  그러니 언어를 가지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글쓰기를 통한 삶의 혁명 카페 --> http://cafe.naver.com/writingsutra

5월 20일부터 6주간의 강의가 시작됩니다.

IP *.108.8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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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11.05.04 11:34:25 *.169.188.35
이 봄에..
이제 막 자라나는
참나무의 싹을 보았어요.

이 봄에
이제 막 커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았어요.

이 봄에
별과 같이 생긴
개 별꽃을 보았어요.

이 봄에 ..
비록 얼굴은 햇볕에 그을러 검어졌지만
활짝 피어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고 있어요.

그래서
이 봄은 최악의
황사에도 불구하고
나의 소중한 봄이 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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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11.05.04 20:14:21 *.88.56.230
디지털 분야에도 상당한 식견을 갖고 있는 것 같던데
이렇게 예쁘고 순수한 감성을 가지고 시를 쓰니
참으로 놀랍고 보기좋습니다.
그러고보니 햇빛처럼님의 닉네임도 예사롭지 않네요.
햇빛처럼님의 아이들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뜬금없이 들어요.
내일, 별꽃같고 참나무같은 시간 만드시기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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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기원
2011.05.10 09:49:09 *.120.143.121
햇빛의 눈으로 보신것 맞나요?
저는 어제 눈을가지고 보는 것보다
눈을 감고 볼 수있는 것이 많고 더 잘 볼 수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꿈, 희망, 사랑, 충만함....
이러한 정신적인 것을 채워주는 것은 눈감고 보는 것이 훨씬 잘 보이더라구요?
올봄에 저는 햇빛님의 사랑을 보았어요.
올봄에 저는 햇님의 친절을 보았어요.
이봄에 햇빛님의 마음에 감사합을 전합니다.
햇빛처럼 따사로운 나날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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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기원
2011.05.10 09:44:43 *.120.143.121
명석님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시각적인것에 많이 길들여져있지요?
이것을 다른 감각으로 치유하는 방법을 찾아야만 된다고 생각해요.
큰평수의 아파트를 갖기위해 들이는 노력보다는
따뜻하고 함께촉감적으로 느끼는 사랑이 함께하는 집을 갖기는 쉬울것같아요.
이런집은 작으면 작을 수록 부태끼고 더 따뜻하고 깨끗하게 살수있는 소유를위해 지불할 것이 적을 뿐아니라 유지비용또한 적지만 우린 더 많은 사랑과 더질높은 충만한 삶을 살 수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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