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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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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24일 10시 03분 등록

어려서부터 글쓰기를 좋아하던 사람이 있었다. 그녀의 글쓰기는 여고시절에 중단되었다. 교지 편집장을 했는데 지도교사가 선임 편집장에게는 자상하게 지도해주는 반면 그녀에게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 상처가 되었던 것이다. 수업시간에 글쓰기에 대한 경험을 나누는 자리에서 그 말을 듣고 내가 말해 주었다. 그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선임 편집장은 미주알고주알 알려줘야 하는 타입이지만 그녀는 혼자서도 얼마든지 잘 하고 있어서 말을 보탤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내 말을 듣고 그녀는 아주 고마워했다. 중년이 되어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무르익던 차에 내 말이 힘이 되었던 것이다.


그 때 그녀는 미스토리 위주로 쓴 글모음을 갖고 있었다. 글재주가 없지않았으나 글이 너무 짧고 자신의 경험에 한정되어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두 가지만 요구하였다. 글이 반드시 길 필요는 없지만 길게 끌고가는 힘이 필요하니 두 배 길이로 쓰자, 좋은 책을 많이 읽어 내 경험을 뒷받침하는 인용구를 적절하게 활용하여 글에 무게와 범용성을 더하자, 워낙 성실하고 반듯한 성정을 가진 그녀는 이 두 가지를 염두에 두면서 1년에 100여 편의 글을 썼다.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성장하였다. 전에 썼던 글을 스스로 고칠 수 있게 되고 카페 멤버들의 환호에 접하며, 내 강좌가 아닌 다른 곳에서도 승승장구 인정을 받으면서 마치 날개를 단 것 같았다.  그녀는 나의 첫 책을 읽고 내 블로그에 와서 댓글을 달아준 1호 독자였는데 나는 그녀가 내 수강생 중에 1호 저자가 되기를 기대하게끔 되었다. 성취의 기쁨이 기름을 부어 마른 들판에 불길 번지듯 커나갈 그녀가 보이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대한 책을 읽다보면 더러 상반된 주장이 눈에 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무조건 쓰라’는 것과 ‘무얼 좀 알고 쓰라’는 입장일 것이다. 대부분의 글쓰기책 저자들이 ‘무조건 쓰라’를 강조하고 있는 데 비해, 이만교는 ‘글쓰기공작소’에서 ‘무얼 좀 알고 쓰라’고 조언한다. 그는 글쓰기교실에 온 일반인은 물론 국문과나 문창과를 졸업한 학생들 중 대부분이 기초적인 문장력이나 언어감각을 갖추지 못한 언치라고 한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언어적 감수성이 있어야 한다. 언어적 감수성이 둔한 사람이 구사한 문장은, 음치가 내는 휘파람 소리와 같고 두터운 장갑을 끼고 세공을 하는 경우와 같으며 비염 환자가 냄새 맡는 꼴과 같다’는 그의 질타는 짐짓 매섭다.


나는 이 주장에 접하고 난 뒤 어느 쪽이 더 옳은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역시  ‘무조건 쓰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론은 역시 ‘무조건 쓰라’였다. 그의 주장을 반박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부분을 읽고 글은 아무나 쓰나 주눅들 사람들에게 격려의 손을 내밀고 싶을 뿐이다. 일단 문학동네와 내 책쓰기를 지향하는 보통 사람들의 경우는 다르다. 문학은 언어를 재료로 인간의 사유와 행위의 극한을 탐구하는 순수예술이다. 요즘은 좀 달라졌는지 몰라도 문학에 투신한다는 것은 악마와 거래라도 하듯 엄숙하고 비장한 결단을 뜻했다. 문학 외의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을 들어 제단 위에 바치듯 헌신해야 겨우 비밀 한 자락 엿볼 수 있는, 선택된 자만이 갈 수 있는 험난한 길이라는 함의로 가득했다. 이런 문학에서는 고도로 정련된 언어감각이 필수적이고, 이만교가 말하는 엄정한 수준을 갖추지 못하고서는 아예 기회 자체를 얻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겨냥하는 대중서는 다르다. 자신만의 특별한 경험을 언어로 전달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 물론 문장력이 출중하면 더 좋겠지만 컨텐츠가 문장력보다 더 중요하다고 한다. 이데올로기나 거대담론보다는 장삼이사의 시시콜콜한 일상이 부각되고, 글쓰기가 전문가의 전매특허이기 보다는 누구나 1인1책쓰기에 도전하는 지식폭발의 시대인 것이다. 심지어 컨텐츠가 인정받으면 문장은 편집부에서 고쳐줄 수도 있다고 한다. 그것이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글쓰기엘리트주의보다는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엄격한 기준으로 글쓰기와 책쓰기에 도전하려는 사람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것보다 초심자의 열정을 유지하는 방안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창조의 영역이다. 정확하고 빼어난 글을 쓸 수 있기 전에는 숨소리도 내지 못한다는 강박관념보다는 내 안에 들은 것을 모두 파헤쳐 보려는 용기와 절실함이 있을 때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글을 쓰는 일은 때로 외롭고 두려운 일이어서, 나도 글을 쓸 수 있다는 확신이 없이는 오래 갈 수 없다.  거짓 희망을 유포하자는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의 글쓰기는 훈련에 의해 얼마든지 나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 쓰는 행위를 통해 점진적인 학습이 이루어진다. 글쓰기의 원칙으로 알려진 것들은 모두 섬세하기 이를 데 없어서 저마다 글을 쓰는 가운데 자기 방식으로 체득할 수 있는 것이지 선행학습으로 얻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어느 정도 써 본 이력이 축적되지 않고는 아무리 좋은 조언도 스며들 토양이 형성되질 않는 것이다.

 

글쓰기강좌를 하다 보면 여러 유형을 만난다. 책쓰기라는 목표를 두고 보이는 태도도 다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쓰고 싶다는 목표를 설정하기를 힘들어했다. 언어지능이 뛰어나거나 속으로는 내 책 한 권 갖고 싶어할 것 같은 사람들도 무슨 비밀이라도 되듯 발설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런 사람들은 저자가 된다는 것에 대해 엄격한 관문을 상정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책쓰기라는 목표를 갖고 있되  글은 쓰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가장 바람직한 경우는 앞서 말한 수강생처럼 목표를 가지고 매일 쓰는 것이다.


그녀는 내가 필독서로 추천한 ‘글쓰기공작소’를 읽고 자신감을 잃어 한참 힘들었다고 한다. 그런 의구심과 반신반의 속에서도 그녀는 계속 썼다. 그녀의 사례는 매서운 원칙주의와 따뜻한 독려 중에서 어느 것이 힘이 센지 드러내준다. 글을 쓰며 감지하는 미세한 변화가 오래 가게 하는 힘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글을 쓴다는 것은 관찰과 사고 훈련은 물론 부수적인 공부도 게을리할 수 없게 만든다. 모든 것이 글을 계속 써 나가는 열정과 습관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글을 쓰지 않는 상태에서 공부만 계속하는 것은 자기검열을 강화하여 글쓰기에서 멀어지게 할 위험까지 있다. 글쓰기는 오직 쓰는 가운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대, 무조건 쓰라.



글쓰기를 통한 삶의 혁명 카페 http://cafe.naver.com/writingsutra
5월 20일부터 6주 강의가 시작됩니다.

IP *.108.8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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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니
2011.04.29 06:05:43 *.192.80.88
변경연에 들락거리며 눈팅만 한지 1년이 넘었네요. 한명석님 글은 항상 관심있게 잘 챙겨읽고 있습니다. 너무 눈팅뿐인지라 갑자기 죄송한 마음이 들어 한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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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11.04.29 07:36:09 *.108.80.74
하하, 그럼 다음 댓글은 1년 뒤에 달아주실 건가요?^^
농담이구요,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고, 연구소 컨텐츠를 풍성하게 하고,
더구나 제 강좌를 알리기까지 하는 일이라 의연하게 하고 있지만
진솔한 댓글이 있으면 더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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