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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17일 05시 51분 등록

근래에 책을 볼 때 자꾸 책을 멀리 하는 나를 발견하고 이제 나도 노안이 오기 시작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알러지 때문에 안과를 찾아갔다가 시력 검사를 한 뒤에 확인하게 된 것은 노안에 초기 단계에 들었다는 사실이다. 안과에서 검사해 준 결과를 가지고 안경점에 찾아갔더니 아직 초기 단계이니 병원에서 처방해 준 다 초점 안경보다는 안경을 두 개를 가지고 다니는 것은 어떤가 한 번 생각해 보라고 하였다. 그 자리에서 결정하지 못하고 차일 피일 미루다가 지 지난주에 안경점에 들러서 새 안경을 맞추었다. 안경점에 갈 때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그들이 제시하는 어떤 것이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지를 알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의 말을 믿고 적당한 수준에서 선택할 수 밖에 없다. 계산을 하고 도서관에 가려고 운전을 하고 가는 도중에 전화가 왔다. 안경점에서 온 전화였다. 오늘 내가 주문한 렌즈가 내 눈이 난시가 심해서 주문제작을 해야 하므로 시간도 더 걸리고 비용이 약속한 것 보다 두 배가 든단다. 이미 맞추기로 한 것 그러마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왠지 속이 쓰리다.

예전에도 안경을 맞출 때면 나 정도의 난시렌즈는 찾는 사람이 별로 없어 늘 다른 사람보다 비싼 가격을 치루고 안경을 맞추고는 했는데도 이번에는 유난히 마음에 남는 것이 있다. 그래서 내가 가진 난시가 어떤 것을 말해 주는지를 생각해 보니 참 재미있는 것을 많이 알게 되었다.

먼저 난시가 심하다는 것은 세상을 비딱하게 보고 있다는 것이다. 한 번씩 안경을 벗어서 멀리 있는 건물이나 특히 사각형 모양을 보게 되는데 난시 안경을 통해서 사물을 보면 모든 사물이 비딱하고 일그러져 보인다. 난시안경이라는 것은 내가 세상을 비딱하게 보는 것을 교정하여 바로 볼 수 있게 해주는 물건이라는 것이다. 요즘 나이를 조금씩 먹으면서 덜 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세상에 대하여 화를 내고 세상을 비딱하게 보는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런 나에게 난시안경과 같은 역할을 해 준 사람이 누구인가를 잠시 생각해 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나와 함께 생활을 하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이다. 그들이 있기에 이 비딱하게 보이는 세상에서 그나마 희망을 가지고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다음에 떠오르는 여러분들이 있다. 내가 살아오면서 도움이 필요할 때면 언제나 그 도움을 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으니 그 한 분 한 분들이 내가 세상을 비딱하게 보면서도 그래도 이 세상을 살아낼 힘을 주신 것이 아닌가 한다.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다음으로 생각해 본 것은 내가 본다는 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뇌)으로 본다는 점이다. 난시라는 것은 감각의 입력장치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만 우리가 물건을 보고 있다는 자체가 마음(뇌)의 해석을 전제로 한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내가 안경을 통해 보고 있는 것들이 실제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와 유사하게 보이도록 만들어진 안경이라는 기구를 통하여 실제처럼 느끼도록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보고 있는 것들 것 실제와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과거에 내가 보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국민학교 3학년 때 쯤이었을까? 알코올 의존증이 의심되는 아버지를 정신 병원에 입원시키기 위해서 갔던 안동의 어느 병원에서 당신을 입원시키고 나오던 때에 창살 안에서 부르던 아버지의 모습은 사실이었을까 아니면 나의 상상에서만 존재하는 기억일까 이제는 그렇게 확신할 수가 없다. 중요한 것은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걸을까 봐 걱정했던 수 많은 시간들이 이제는 과거일 뿐이라는 것이다. 알코올 중독자의 아들은 알코올 중독자가 될 가능성이 많아요.라는 말이 제일 듣기 싫은 말이었으나 이제는 나는 달라 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몇 년 전이었을까? 출근길에 우연히 맞이하게 된 벚꽃이 지고 연한 녹색의 잎들이 피어나고 꽃들이 바람에 날리는 그 아름다운 광경과 그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 그 순간은 실제의 순간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그 상황을 아름답게 받아들인 나의 마음의 기억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알 수 없다. 수년을 그 길을 지나다녔지만 보지 못하던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내가 세상을 비딱하게만 보아 왔었으나 이제 세상의 아름다운 부분도 조금 볼 수 있게 되었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인문학자 김경집 교수는 나이듦의 즐거움이라는 책에서 노안을 두고 돋보기를 써야 하는 처지에 대한 유치한 자기합리화 일수 있다며 잃은 것은 시력이지만 얻은 것은 심력이 아닌가하고 말한 것을 기억한다. 나 또한 수 십 년을 안경을 써 왔지만 이제서야 내가 난시 안경을 쓴 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보는 마음의 눈을 조금 가지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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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1.06.21 14:20:37 *.108.80.74
김경집의 책은 나도 인상깊게 본 책인데 반갑네요.
난시에서 인생철학으로까지 번져 가는 글,  잘 읽었어요.
이처럼 잔잔하고 속깊은 생활철학... 님의 주제로 어울릴듯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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