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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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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2월 17일 18시 22분 등록

1990년 대 초반 래리 보시디(Larry Bossidy)가 얼라이드시그널(Allied Signal)의 최고경영자(CEO)로 부임했을 때 얼라이드시그널은 대대적인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당시 얼라이드시그널은 항공우주 산업, 자동차 산업, 기술용품 분야 등에서 백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리는 거대 기업이었다. 하지만 래리 보시디가 부임했을 당시 직원들의 모습은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그가 보기에 얼라이드시그널의 직원들은 형편없는 건 아니었지만 성공할 만한 요인을 갖추지는 못한 것처럼 보였다. 당시 회사의 주가는 하향세를 그리고 있었고, 몇 년 전에 이뤄진 벤딕스앤시그널(Bendix & Signal)과의 합병 작업은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래리 보시디는 자신이 맡은 새로운 회사에 어떤 종류의 변화가 필요한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판단하기에, 직원들은 제대로 변화를 실천해본 경험이 없었고, 팀워크도 물속의 밥알들 마냥 단단하지 못했다. 교육과 훈련은 실질적인 비즈니스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발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한 보시디였지만, 당시의 상황에서 급격한 변화를 도모해서는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그는 회사를 본궤도에 올릴 수 있는 현실적인 변화 방법을 찾아냈다. 그것은 ‘맛보기(starter) 프로그램’을 변화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었다. 목표 달성이 수월한 맛보기 프로그램을 통해 직원들에게 변화에 대한 자신감을 키워주고 성공의 기분을 미리 맛보게 해주자는 의도였다. 점차 성공 경험을 쌓으면서 보다 높은 수준의 혁신에 도전하고, 점진적으로 변화의 속도를 가속화하는 방식이었다.


우선, 그는 유명한 전사적품질경영(Total Quality Management)을 본 따서, 사실상 제조의 가공 단계를 없애는 TQL(Total Quality Leadership)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은 다른 프로그램들에 비해 실천 과정이 간단하고 성공 가능성이 높은 프로그램이었다. 또한 래리 보시디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세 가지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다. 첫 번째 목적은 팀워크를 기르는 것이고 둘째는 실험설계론 같은 문제 해결 도구를 가르치는 것이다. 셋째는 작업 현장에서 생긴 문제를 교육과 토론의 장으로 가져오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1년 정도 TQL이 진행되자 다음 단계로 도약할 준비가 갖춰졌다. 다음으로 보시디는 TQL의 원칙을 TQS(Total Quality Speed) 프로그램으로 확대 적용했다. TQS 프로그램에서 팀들은 공급사슬과 고객 서비스 활동 같은 다양한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분석하고 개선책을 규명했다. 예를 들어 제조팀은 제조 프로세스의 각 단계를 가속화했다. 그리고 법률팀은 복잡한 얼라이드시그널의 특허 출원 절차를 간소화하여, 시간을 절반으로 줄였다.

TQS를 시행한 지 18개월이 지나자 대부분의 직원들이 팀워크와 교육활동, 새로운 방법론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래리 보시디는 조직 전체의 협력을 필요로 하는 구체적면서도 규모가 큰 ‘통합 프로그램’을 추진할 때가 왔다고 판단했다. 통합 프로그램은 그가 부임 초에 생각한 근본적인 변화의 본격적인 출발점이 될 것이었다. 보시디는 식스 시그마(Six Sigma)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식스시그마는 변수를 없애고 모든 종류의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한마디로 ‘종합 도구 상자’와 같았다. 보시디는 자신부터 식스 시그마의 핵심을 이해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하고, 관련 전문가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보시디는 식스 시그마 전문가인 블랙 벨트(Black Belt)까지는 되지 못했지만, 방법론과 도구를 익히고 직원들 앞에서 자신 있게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수준은 되었다. 그는 식스 시그마에 대해 철저히 조사한 끝에 식스시그마가 얼라이드시그널의 결점과 변수를 줄이기 위해 꼭 필요한 프로젝트임을 확신했다.

그러나 보시디의 생각과 달리 얼라이드시그널은 아직도 준비가 미흡한 상태였다. 고위 경영진 중에는 식스 시그마를 잘 알지 못해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많았고, 진행 과정에 있어 기술적인 부분을 다룰 만한 역량도 충분하지 않았다. 고위 경영자들의 이해를 구하고 그 밑의 최고 인재들로부터 지지를 얻은 후에 필요한 자원을 교육에 투자하는 일이 우선 절실했다. 아울러 가장 효과적인 프로젝트를 선택하고 올바른 성과 측정 기준도 마련해야 했다. 하지만 일부 리더들은 가만히 고개만 숙이고 있으면 흐지부지 끝날 것이라는 안일주의에 빠져 있었다.(보시디는 그들 중 일부를 프로그램에서 배제시켰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식스 식그마를 시작한지 6개월 후부터 품질이 눈에 띄게 향상되기 시작했고 1년이 지나면서 품질 수준은 더욱 높아졌다. 매출이 급성장했고 비용과 재고회전율이 크게 개선되었다. 자신감을 얻은 보시디는 고객과 공급업자에게까지 이 프로그램을 확대 적용하였다.

식스 식그마 프로그램에 이어, 보시디는 전사적 자원관리와 디지털화를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전사적 자원관리(Enterprise Resource Planning)는 유연성이 부족한 모델이므로 성공하려면 강도 높은 훈련이 요구되었지만, 식스 시그마의 성공적인 추진 경험 덕분에 준비는 되어 있었다. 이 프로그램의 목표는 IT기술을 활용하여 서류 작업을 없애고 3년간 5억 달러의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었다. 래리 보시디의 뒤를 이은 데이브 코트(David Cote)가 이 프로그램을 계속 추진했고 애초의 계획을 1년 이상 앞당겨 2년 만에 비용 절감 목표를 달성하였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다. 만약 래리 보시디가 얼라이드 시그널에 오자마자 급격한 변화를 수반하는 식스 시그마와 같은 대규모 프로그램을 실시했다면 과연 성공할 수 있었을까? 당시 얼라이드시그널의 여러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여기에서 래리 보시디의 깊은 ‘비즈니스 안목’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얼라이드시그널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알았지만, 조직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변화는 위험하다는 점도 간파하고 있었다. 실패는 거기에 쏟은 시간과 돈을 헛되게 만들고 조직 전체의 사기를 망가뜨린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도했는데 실패로 돌아가면 사람들은 에너지와 열정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 후에는 다시 에너지를 충전하기가 쉽지 않다. 래리 보시디는 이점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처음에는 작은 표적에서 시작하여 점점 중요하고 큰 표적을 차례로 겨냥했다. 다시 말해, 작지만 의미 있는 성과를 직원들이 성취하게 되면, 직원들은 자신감을 갖게 되고, 자신감은 실행 속도를 높이게 된다. 이것이 천천히 반복되면서 일종의 선순환이 발생하게 된다. 즉, 높은 자신감과 속도는 다시 좀 더 큰 성과를 이뤄내고 그 성과가 자신감을 높이는 식이다.

한 마디로, 래리 보시드는 ‘성공한 프로그램은 미래의 훌륭한 유산이 된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 참고 자료:
* 현실을 직시하라(Confronting Reality, 2004), 래리 보시디(Larry Bossidy), 램 차란(Ram Charan), 21세기북스, 2004년, 223 - 2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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