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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11일 12시 49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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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으로 나를 초월한 존재와 접속합니다. 자기를 잃어버리는 경험을 하고 나면, 역설적으로 자존감이 커집니다. 나를 잃어버리는 것이 나를 찾는 셈입니다. 

몰입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몰입문까지 가야합니다. 문에 다다르기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피터드러커는 10분 15분 짜투리 시간은 의미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몰입문에 들어서면 이야기는 새끼에 새끼를 까고, 보이지 않던 틈 사이로 새로운 줄기가 싹을 튀웁니다. 누구나 알고는 있었지만, 아무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콘텐츠들입니다. 하나(the one)에 다채로움이 있습니다.
 
쿠사마 야요이草間彌生는 땡땡이 작가로 유명합니다. 벽면을 땡땡이로 수놓은  작품을 보면 질려버립니다. 쿠사마 작가는 벽뿐만 아니라, 공간, 사람 몸, 카메라등 어떻게 하면 땡땡이로 채울까만 고민합니다. 땡땡이로 가득찬 세상이 그녀의 꿈입니다.그녀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고, 70이 넘은 지금도 병원 옆 작업실에서 일합니다. 만약 땡땡이 작업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벌써 자살했을거라고 고백합니다. 작업을 통해서 무아지경에 빠집니다. 도구와 방법은 단순하지만(동그란 점: 도구, 찍는다: 방법), 결과물은 비범합니다. 작가는 치유받고, 관객은 감동합니다. 

많은 도구와 소스를 가지고 있으면 좋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콘텐츠는 도구나 소스 보다, 시간과 집중으로 만듭니다. 도구와 소프트웨어를 판매하기 위한 마켓팅도 범람합니다. 마치 노트북, 핸드폰, 디카만 가지고 있으면 전지전능해질 것처럼 포장합니다. 이런 도구는 범인을 준프로로 만들지만 깊이가 없습니다. 깊이가 없기에 성과를 내지 못합니다.  자원을 흩뿌리고, 어설픈 지식만 남습니다.   
 
문자 가독성을 연구하는 학문이 '타이포 그래피'인데, 책본문부터 영화 포스터, 브로셔등 인쇄물은 타이포 그래피에 기초합니다. 타이포그래피가 단단하면, 결과물 또한 아름답고, 메세지 전달력도 뛰어납니다. 독일의 바우하우스는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동경하는 곳입니다. 수업에 필요한 것은 A4 용지와 연필, 30cm 자가 전부입니다. 컴퓨터나 인쇄기는 필요없습니다. 물론 포토샵도 쓰지 않습니다. 원시적인 도구를 사용하는 작업에 기발한 아이디어와 천재적 영감은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다듬는 반복 작업뿐입니다. 아이디어는 영감이 아니라, 생각의 축적입니다. 이 학교 디자이너들은 자기 안으로 파고 또 파서 나온 결과물에 자신감을 갖습니다. 자기 내면 깊은 곳에 들어가서 퍼온 콘텐츠는 개성과 함께 보편성을 가집니다. 나에게 절실한 것이 타인에게도 절실합니다. 
 
도구가 많을수록 몰입경험은 낮아집니다. 도구를 통해서 결과물을 만들기 보다, 도구를 익히는 것에 시간을 소비하기 때문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도구 자체가 엔터테인먼트가 되었습니다. 도구로 무언가를 만들기 보다, 도구를 즐깁니다. 재미있을지는 몰라도 남는 것은 없습니다. 이 시대는 '주의'(attention)를 분산시키는 것들이 많습니다. 어디에 눈을 돌려도 마주치는 광고, 인터넷, 그리고 불필요한 것을 필요한 것처럼 유도하는 마켓팅. 쇼, 오락, 영화.... 바야흐로 주의를 분산시키는 적과의 싸움입니다. 중심 없는 존재는 부유합니다. 

쿠사마 비디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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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9.11 14:09:44 *.36.210.123
청년시절 꽃꽃이를 가르치던 선생님 말씀이 생각나네요. 아무개씨, 오늘 마음이 떠 있군요 하시던. 작품만 보고도 단박에 찾아내시더라구요.

안 그래도 어디에 중심을 두고 있고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중이었는데 지금 내게 필요한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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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08.09.30 08:26:44 *.251.185.30
맑은 님,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재료로 실험하고 있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글 잘 읽고 있구요,
위에서 소개해 준 쿠사마 야요이를 내 포스트에서 인용했길래 트랙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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