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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22일 01시 20분 등록

(서브타이틀, korean으로 설정하세요) 엘리자베쓰 길버트, TED 강의

위대한 예술 앞에서 경이로운 감정을 느끼는 것은, 그것이 독창적이고 기발한 아이디어이기 때문이 아니다. 투입된 노동력의 어마어마함에 기가 죽는다. 예술은 1%의 영감과 99%의 노가다다. 피라미드와 만리장성이 정교한 기획에 따라서 만들어졌을까? 

전문 작가들은 이 사실을 안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없어도, 습관대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영감은 만날수도,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 그들은 영감이 아니라 습관에 의지한다. 때문에 어떻게든 양을 채운다. 하루에 원고지 10장씩 30일이면 300장이다. 이 계획대로 하면, 작가고 못하면 훈련이 덜 된 것이다. 

보통 사람은 무심하게 작업하지 못한다. 재능과 감각이 본인에게 없음을 알고, 예술하는 것이 효율적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마치 손님이 없으면, 자신에게 소질이 없다고 생각해서 스스로 사업을 접는 것과 같다.너는 감각이 없네, 너는 일관성이 없네, 이런 말에 주눅들고 고심한다면 장담컨대 한줄도 못쓸 것이다. 

며칠전 그림 작가 한분을 만났다. 가장 궁금한 것 하나를 물었다. '어떻게 하면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을까요?' 그는 희망찬 대답을 해주었다. 예상대로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냥 그리세요' 

남이 보든 말든 연습장에 마구 그리고 보라는 이야기였다. 숨통이 트였다. 예술은 마치 그렇게 하면 안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술은 최고급의 도구를 가지고 경건한 시간에 목욕재계하고 하는 것이라는 무의식이 있다. 혹은, 약간 신들린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보통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며, 보통 사람이 할려면 비정상적인 통과의례가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림 그리고 나서, 처음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다. 커피숖에서 끄적거리던 그림을 의외로 선생님은 감탄해주셨다. '이제야 인건씨의 스타일을 찾았어요'라며 나보다 기뻐해준다. 스타일을 찾기까지 암중모색의 시간이었다. 캠벨도 이야기했듯이, 천복을 찾을려면 아무것도 안하고, 흐느적 거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벌까? 이거 가지고 어떻게 마켓팅에 이용할까?라는 강박으로 시작하면 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179673644.jpg(박찬욱과 김동호 위원장의 대화, 공책에 수채화 아크릴)

흐느적거림속에서도 팽팽한 긴장감이 있고, 자유로우면서도 정확히 맥을 집어낸다. 유유히 하늘을 나는 매와 같다. 매가 먹이만 찾겠다는 일념으로 하늘을 난다면 그 비행이 얼마나 팍팍할까? 기본적으로 하늘을 나는 것은 매의 일상이자, 일이다. 그것은 습관이다. 유유히 날다가 먹이를 발견하면, 그 순간만큼은 긴장한다. 먹고 살아야겠지만, 매의 인생을 채우는 것은 비행이지, 먹이가 아니다. 

글쓰기도 매의 비행같지 않을까? 습관처럼 제 시간에 제 공간에서 타자를 치다가 영감을 만나면 줄기차게 써내려간다. '좋은 글, 끝내주는 글'을 쓰겠다는 생각으로 달려들면 오래가지 못한다. 제풀에 지쳐버린다. 

글쓰기, 그림 그리기에 필요한 것은 재능이 아니다. '시간'이다. 작가란, 글과 그림에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이지,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아예 나에게 재능이란 없다고 생각하자. (사실이기도 하다.) 난 창조하는 사람이 아니라, 원고지와 도화지를 채우는 기능인이다. 


*엘리자베쓰 길버트
최근 개봉한 영화, 쥴리아로버츠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고'의 저자.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엣세이다. 국제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서술방식을 보면 왜 그렇게 되었는지, 감이 온다. 
 
DSC01291.JPG도화지에 아크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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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2010.10.24 10:51:08 *.155.7.121
올리시는 좋은 글들 잘 보고 있는 독자입니다.
가끔 소개하시는 TED 동영상도 너무 좋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문득 궁금하여 한가지 여쭤봅니다.
저도 그림을 좋아하여 조금씩 배우고 있는데요,
보통 위의 그림 같은 스타일로 한장 그릴때 얼마정도 시간이 소요되시나요?
제가 미술선생님께 배울때 그 선생님은 빠른 스케치가 가능하고 어느정도 표현가능하기 까지는 정확한 묘사와
많은 시간을 들이라고 하시는데...한장 그리기까지 3-4시간이 걸리고 그 과정이 좀 고될때가 있어서요.
제가 입시미술을 할것도 아니고,
표현하고 싶은것 표현하기, 수첩에 그림일기 만들기, 여행가서 스케치, 좋아하는 물건을 그리기 정도의 목표인데,
좀 헷갈려서요.
그래서 문득 질문드려요.
그리시는 방식, 소요시간,,,궁금해요.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참 좋은거 같아요.
모든 사람이 그림의 즐거움을 알았으면 좋겠을만큼..요.

감사한 마음과, 질문하나를 남겨두고 갑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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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장
2010.10.24 18:29:04 *.129.207.200
천차만별이지요. 위의 박찬욱 그림은 30분 걸렸습니다. 밑의 쥴리아로버츠 그림은 4,5시간 걸린 듯하네요. 크기와 긴장도 재료에 따라서 소요 시간은 달라져요.

선생님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빠르게 그리고 싶다고 빨리 그릴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그리다 보면 속도가 자연스레 붙지요. 자기 스타일 찾는 시간도 필요하고요. 저는 수채화 아크릴이 좋더군요. 투명하면서도, 선명한 느낌.  

학원에서는 정밀묘사나 시간이 걸리는 그림을 그립니다. 긴장하고 그려야 표현력도 생기지요. 아무런 긴장없이 그리면, 실력이 늘지 않아요. 그냥 그 자리에 머무는 느낌. 

학원을 일주일에 2,3번 다니시면, 실력이 는다는 느낌이 없어요. 처음 두 달간은 5일 나가세요. 학원에서 3시간 공부했으면, 근처 커피숖에서 저혼자 1시간 정도 또 그립니다. 이때는 긴장을 풀고, 자연스럽게 그리지요. 

그림이 재미있기는 하지만, 꼬박 1년은 그려야 남도 자기도 그러저럭 만족할 수준은 된다고 봅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겠지만, 지겹고, 고단한 과정은 반드시 필요해요. 또, 욕심이 생기면 오히려 그런 과정이 더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생각이 바뀌실 겁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편화 위주의 일러스트 훈련 책들은 별 도움이 안되요. 간단한 그림 그릴려고 해도, 실력이 필요하고요. 님이 생각하신 수준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도, 지금의 과정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기초 중의 기초지요. 이건희가 그랬지요. '기초를 더 단단하게 하라' 

 지겹더라도 소묘만 죽어라 하시는 것도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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