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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4일 03시 32분 등록
텔레비젼에 만화가가 나왔다. 그는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변치 않은 만화만 그린다. 그의 형이 이제라도 취직하고, 장가 가라고 말한다. 그러자, 만화가는 자신은 되돌아가고 싶어도,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만화에 투자했기 때문에 돌아갈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쯤되면 그는 어쩔수없이 만화가가 될 것이다. 1만 시간은, 반만 채우고나면 나머지 반은 알아서 채워진다. 

'책공방'은 책을 만드는 곳이다. 몇년전 이곳에서 8주짜리 워크샵을 듣다. 종이를 접고, 바늘로 꿰매서 책을 만든다. 우유의 펄프용지를 이용해서 종이도 만들었다. 가죽을 자르고, 책표지를 만들고 금박도 새겨넣는다. 책공방의 김진섭 소장은 본래, 출판계에서 일해왔다. 평생 재미있게 할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라는 생각에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공방에는 고가의 인쇄장비들이 즐비하다. 종이를 만들어서, 인쇄를 해본 사람만이 그 맛을 안다. 컴퓨터 워드로 작성해서, 프린트로 출력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된다. 문자와 종이는 이미 당연한 것이 되었지만, 종이에 인쇄된 글을 보면 몇백년전 인쇄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의 감격을 조금은 느낄 수 있다. 

인쇄장비는 커피 로스팅 기계만큼이나 크다. 몇번 장비를 운영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나오는 그런 분위기 였다. 이런 장비는 해외에서 몇달에 걸쳐 가지고 오기도 하고, 김진섭 소장 자신이 국내를 돌아다니며 구하기도 한다. 인쇄기계지만, 전혀 다른 용도로 몇십년간이나 주인과 함께 지낸 장비도 있다. 이럴때면, 그 주인을 설득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한다. 고철에 돈을 쳐주는 것은 좋지만, 그래도 몇십년 동거동락했던 애물단지를 보내는 것이 섭섭한 것이다. 그래도 끈질긴 설득끝에 결국 장비를 구입한다. 문제는 그걸로 끌나지 않는다. 장비를 운반하기 위해서 보통 이삿짐센터에 맡길수가 없다. 다치지 않게 운반하기 위해서는 전문업체에게 맡겨야한다. 역시 이사짐센터 보다 몇배의 비용이 된다. 

김진섭 소장은 왜 이렇게 투자를 하는 것일까? 사실 '책을 만든다'는 것은 대중적이지 않다. 요즘에서야 북아트 같은 공방이 많이 생기고, 어린이 교육에도 책만들기 실습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상업적으로는 대중적이지 못하다. 언젠가, 그가 초등학교에 영업을 하러 갔다고 한다. '책을 만드는 프로그램'을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어느 선생님께, 책을 만든다고 했더니, 그 선생님 왈, '책을 왜 만들어요?'라고 했다고. 

이런 마이너적인 인식인데도 불구하고, 몇년째 꾸준히 이 일을 해오고 있고, 자금이 생기는 족족 장비를 구입한다. 

선택을 해서 결단을 내리고, 그 길로 나아간다. 잘 나가면 좋지만, 여러 걸림돌에 걸린다. 생각만큼 영업이 안될 수도 있고, 직원이 말을 안들을 수도 있으며, 불경기를 만나고, 심각하면 사기를 당할수도 있다. 그럴때면 보통 사람은 지난 과거를 그리워하면서, 자신의 결단을 성급했다고 판단하며, 뒤를 돌아본다. 돌아보고, 추억에 잠기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직자 대다수가 이직 후 후회한다고 한다. 그래서, 본래 회사에 다시 들어가도 되냐며 문의가 온다고 한다. 받아주면, 서로가 좋지않다. 이미 깨진 독인 것이다. 좋았던 때의 마음으로, 당사자도 회사도 함께 일할 수 없다. 우리는 결단을 내리고, 발을 내디뎠으면 그 길로 가야하는 것이다. 

이런 마음을 잡기 위해서는, 초기에 전폭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투자를 해야, 딴생각을 하지 않는다. 사람은 간사한 면이 있다. 잃을 것이 없으면, 마음을 다 주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설사 본인의 미래를 위함이라 해도 말이다. 잃을 것이 없으면, 집중하지 않는다. 흔들리지 않고, 한길로 가기 위해서는 금전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작가가 될려면, 1만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 못해도 2,3백권 정도는 미리 사놓고 보자. 그 책 아까워서라도 읽는다. 내 생각에 작가가 되는 방법은, 열심히 쓰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책을 사는 것이다. 무섭게 자신을 다그쳐서 못살게 굴지말고, 원고료가 생기는 족족 책을 구입한다. 작가의 길이란, 콘텐츠 구입과 소비의 길이다. 사실 결심의 증표가 될만한 것은 과감한 금전적 투자다. 마음은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 

화장품 매장을 잘운영하는 방법은 상품을 공격적으로 매입하는 것이다. 창고가 터져나갈 정도로 상품을 쌓아놓면, 어떻게든 내보낼려고 애를 쓴다. '우리 가게는 이 정도 매출이니까, 물건도 이정도만 들여놓는다.'라고 하면 매출은 그만큼 떨어진다. 난 경영인, 마켓터, 디자이너, 작가가 되고 싶다. 결국 한통속인데, 많이 알아야 장사도 잘할 수 있다. 

 배고픔의 고통은 있을지언정, 창작의 고통은 없다. 많이 먹으면, 자연스럽게 넘친다. 내가 글을 못쓰는 이유, 그림을 못그리는 이유는 소질이 없어서가 아니다. 인풋이 모잘라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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