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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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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6월 13일 15시 15분 등록
4. 나만의 고전 목록-2 나의 놀이터


한 10년 정도 후에 내가 꼭 갖고 싶은 것 중 하나가 '서재'이다. '서재'라고 하면 괜히 무겁게 느껴지는데, 그냥 '놀이터'라고 말하는 것이 좋겠다. 10년 후 쯤에 그대는 어떤 것을 꼭 갖고 싶은가? 시간을 내어 '장기적으로 꼭 갖고 싶은 것 목록'(꼭 하고 싶은 것도 좋다)을 한번 적어보라.

나는 무엇보다 좋은 놀이터를 갖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놀이터에는 아주 커다랗고 튼튼한 책상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남들이 '책감옥'이라 불러줄 수 있을 정도의 책과 책장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놀이터의 한쪽 구석에는 작지만 고풍스러운 탁자 하나와 의자 서너 개를 놔둬야겠다. 사랑하는 아내와 무더운 여름밤에는 맥주도 한 잔씩하고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차도 함께 하고. 아이들에게 재밌는 책도 읽어줘야지. 아이들이 책을 싫어한다면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다. 그리고 그곳은 그윽한 종이 향이 나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요즘 책에서는 바랄 수 없겠지만 상쾌한 향보다는 전통적인 향이 넘쳤으면 한다. 너무 꿈 속에 빠져있는 것 같지만 이런 것이 좋다. 놀이터는 기억과 상상만으로도 유쾌함을 전해주는 그런 곳인가 보다.

이정도 되려면 공간도 커야할 것이고 돈도 꽤 많이 들 것이다. 어쩌면 책의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바닥에는 특수 공사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10년 후에라도 가능할지는 의문이지만 지금부터 열심히 준비할 것이다. 그대도 놀이터를 갖고 있는가? 그대도 좋아하는 장소가 있을 것이다. 나와는 많이 다르겠지만, 알맹이는 비슷할 것이다. 그대의 놀이터도 편안하고 유쾌하고 그곳에 그대가 있으면 참 잘 어울리는 그런 공간일 것이다. 언제 나도 한번 구경시켜주길 바란다.

지금 내게는 조금 좁지만 나름대로 좋은 놀이터가 있다. 바로 내방이다. 시원스러운 창문과 함께 컴퓨터도 있고 침대도 있고 책상도 있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책장도 하나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책장이 비좁아 더 이상의 책은 보관하기가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래도 내게는 유쾌한 놀이터이자 지적 생활을 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이다. 그대도 그대만의 라이브러리(library)를 꾸며보라. 책이 몇 권뿐이면 어떻고 공간이 좁으면 어떤가. 일본 최고의 저널리스트로 추앙받는 다치바나 다카시도 처음에는 사과 상자 몇 개로 시작했다고 하지 않던가. 이런 공간을 꾸미는 것은 작은 즐거움이다. 꼭 책이 아니어도 좋다. 그대만의 꿈의 방을 만들어보는 것이다. 만화가가 꿈이면 만화책을 모아두고 자신이 그린 습작들도 걸어두고, 좋아하는 만화주인공의 멋진 브로마이드도 몇 개 걸어둔다. 모형 제작을 좋아하면 자신의 프로모델 몇 개로 근사하게 꾸밀 수도 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면 1평정도의 작은 미술관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이 아닌 그대를 위한 공간이니 그대 맘대로 한들 어떤가! 그곳을 그대의 꿈이 자라는 곳으로 그리고 그대의 미래가 만들어지는 공간으로 삼아라.

놀이터 이야기를 하다보니 월터 스콧의 웅장한 개인 라이브러리와 다치바나 다카시의 고양이 빌딩이 떠오른다.

월터 스콧은 '아이반호'로 유명한 영국의 시인이자 작가이다. 동시대 사람으로 괴테도 스콧의 애독자였다고 하니 그의 작품성이 뛰어났음은 두말할 것이 없다. 스콧은 자신의 훌륭한 개인 라이브러리로도 유명하다. 그의 작업실은 너무나도 넓어 마치 학교 강당 같았고 주위는 2층 높이의 천장까지 사방으로 책이 쌓여 있다고 한다. 라이브러리 안으로 좀더 들어가면 앞의 작업실보다 배나 넓은 방에 천장까지 책으로 쌓여있다고 하니, 그 규모가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규모 만큼이나 놀라운 것은 라이브러리 곳곳에 진열된 무구(武具)들이다. 스콧의 시대에 사용된 여러 가지 투구와 갑옷 그리고 무기 등이 아주 멋스럽게 진열되어있다. 스콧은 책만큼이나 자신의 라이브러리를 아꼈을 것이다. 월터 스콧과 그의 라이브러리에 대한 소개는 일본의 역사 · 문명 평론가인 와타나베 쇼이치의 '지적생활의 방법'에 잘 나와 있다.

다시바나 다카시는 2001년 자신의 저서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가 국내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친숙해진 인물이다. 그는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부터 우주, 뇌를 포함한 과학 분야까지 커버하는 일본 최고의 저널리스트로 평가받고 있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를 읽어보면 그의 대단한 지적 호기심과 엄청난 독서량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는 '체험적인 독학 방법', '실전 독서술' 같이 흥미로운 주제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자신 있게 밝히고 있다. 그대가 관심이 있다면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그의 책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무엇보다 독특한 모양의 '고양이 빌딩'이라 불리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요새'였다. 그는 좋은 서재의 조건으로 바깥 세계와 동떨어져 있고, 좁으며, 기능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공간을 뽑고 있다. 이런 조건에 딱 맞는 공간이 바로 '고양이 빌딩'이다. 그의 무지막지한(?) 독서로 인해 책을 계속해서 쌓여갔고, 너무 많은 책으로 인해 작업 공간을 세 곳으로 나눠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가 빌딩을 신축하여 자신의 요새를 건설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고양이 빌딩은 10평 정도의 토지에 철근 4층 건물이다. 지하 1층은 서고, 지상 1층과 3층은 작업실, 2층은 사무실로 꾸며졌다고 한다. 보통의 4층 건물보다는 작겠지만 가용면적을 최대화하고 거의 전부를 책으로만 채웠다고 하니, 밀도감에 있어서는 스콧의 도서관을 능가할 것이다. 전체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책의 수가 35,000권에 달한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1998년에 이미 35,000권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고양이 빌딩이 아니라 호랑이 빌딩이 필요하지 않을까.

스콧이나 다카시의 놀이터의 규모는 놀랍다. 하지만 그대와 내가 기죽을 필요는 없다. 그들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두 가지는 기억하자. 첫째, 스콧과 다카시 모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아니었다면 저 정도의 요새건 도서관이건 놀이터건 간에 어떤 것도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 둘째, 꿈을 꿀 수 있도록 해주고 미래를 현실에서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대만의 '꿈의 공장'과 '놀이터'가 필요하다는 점.

"그는 노는 것과 일하는 것의 경계가 없는 사람이다. 놀다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즐기다'라고 실려 있지 않은가. 다치바나 씨의 저서 '거악 VS 언론'(巨惡 vs 言論)이라든가 '우주로부터의 귀환', '뇌사'(腦死) 등은 모두 그가 '재미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손을 댄 저서들이다. 단 한 번도 그는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을 것을 일로 선택한 적이 없다."
- 무대 미술가 세노 갓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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