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커뮤니티

나의

일상에서

  • 나선
  • 조회 수 2148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1년 10월 22일 09시 04분 등록

10, 더 이상 청명할 수 없는 햇살은 먼 곳을 보는 눈을 가만 두지 않는다.

여기 저기를 둘러봐도 난반사되는 가을 햇살이 주인인 날이다.

부산의 가덕도는 가까이 있지만 섬이라는 이유로 데면데면하였는데 어느 순간 콘크리트 블록을
바다 위아래 할 것 없이 쏟아 부어 거제로 가는 8.2km의 큰 길이 순식간에 뚫렸다.
이 다리로 거제의 섬사람과 그리고 가덕의 섬사람의 교류는 물론이거니와 부산, 울산의
광역시, 동부 경남 사람들의 편의와 교류는 더욱 활기를 띠었다.
반면, 도서지역의 독특한 지역색이 점차 사라지고 도농 분리를 촉진하며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농촌 고령화, 공동화는 더욱 심화되어 갈 것이다. 어느 쪽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후대를 살아갈 세대들에 득이 되는 것인지는 햇살에 흐지부지 되어 있는 지평선처럼
나에게는 흐릿하다.

 

천성동 선착장, 해발의 지점에서 시작된 산행은 459.4m 연대봉을 향한다.
가덕도의 자리앉음새는 북쪽으로 무게중심을 두고 북남으로 길게 뻗은 꽤 큰 섬인데 부산의
양대 섬, 영도와 면적은 비슷하다. 155m 갈마봉에서 시작하는 주능선의 줄기는 눌차동에서
솟아오르는 국수봉(138.9m) 줄기와 만나 매봉에서 합류한다. 두 줄기의 능선이 만나 주맥을
힘껏 들어 올려 연대봉을 만들고 이후 남으로 급히 내려 앉아 해안에 이르는데 마루금의 뻗음이
사자가 뒷다리를 들고 포효하는 듯 힘차다.
뿐만 아니라 섬의 볼륨을 책임지는 북쪽과, 높이를 앞세운 남쪽이 사이 좋게 득실을 나누어
가지며 섬사람과 조화하는 매력적인 섬이다.

 

연대봉으로 오르는 길은 사납지 않다. 사납다 싶으면 기어코 바다를 보여주며 오르는 산꾼을
품어주는 너그러운 산이다. 오르는 길에 간간히 보여주는 바다와 남해의 절경은 정상 풍광을
예고하는 티저. 그래서 연대봉 정상 파노라마의 본방은 섬 산 특유의 웅장한 바다 풍광에
西부산 도심 조망을 더해, 반도에서는 보기 드문 biviewer 채널을 고정시킨다.

 

10월 중순의 따뜻한 햇살로, 오르는 동안 몸은, 데워지다 못해 후끈한데 정상 바로 직전까지
불지 않던 바람은 정상 비석이 보이는 곳에 이르자 기다린 듯이 바람대포를 쏘며 정상을 사수한다.
아서라 언제나 그랬듯 정상은 밟을 생각이 없으니 안심하고 그 대포 거두라.

 

정상부 많은 사람들의 소음 속에 온 몸을 간지럽히는 바람을 느끼며 나는 눈을 감았다.
미세한 소리들이 여기 저기서 신기하리만치 또렷이 들려왔는데 누군가 같이 오지
못한 가족에게 자기 앞에 보여지는 풍광을 전화로 묘사했다. 또 누군가는 멀리 명지 신도시
를 보는 듯 마른 침을 튀기며 아파트 얘기에 정신 없었고 누군가는 입 안 한 가득 먹을 것을
넣고 분명하지 않은 발음으로 말했으나 주위는 웃어댔다. 다시 눈을 뜨니 보이는 건 시리도
록 푸른 하늘이요 그 하늘 닮은 바다다. 상쾌하다.

 

눈을 감아 들리던 사람 소리는 이 모든 것이 티끌 없는 푸른 하늘과 햇살 부서지는 넓은 바다
앞에서 무참하게 느껴졌다. 생명이 태어나 살고 죽는 속에 덧없는 생명은 끊임없이 사랑을
말하고 현실을 얘기한다. 이 눈물겨운 미물들이 지금을 말하는 것은 난데 없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 인가. 부처가 생명의 기원을 말하지 않은 것은 이와 같다.
말하여 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멋진 풍광 앞에 내가 지금 무어라 얘기하고 있는가. 상쾌함 앞에 갑자기 든 뜬금없는 중언부언의 생각들을 서둘러 날려버린다.

 

연대봉을 뒤로 하고 북서쪽으로 내려선다. 이제는 가덕의 해벽을 찾아 바다로 바다로 내려서
는 중이다. 처음 대하는 가덕의 해벽은 누런 벽 햇살을 받아 더욱 샛노란 벽이었다.
전체적인 암벽 등반 코스의 grade가 짜다는 말을 들었으나 예의 정말 짠, 바닷가 바위 아니랄까 매우 짠, 바위다.
쉽지 않은 바위에 붙어 나는 잃어 버린 안경을 찾듯 홀드 찾기 근접 수색에 여념 없다.
지켜보는 사람에게는 참 볼 만한 장면이겠으나 막상 붙어 있는 나는 내 손이 지네의 발만큼
많았으면 했다. 영어를 십 수 년간 배워도 막상 외국인 앞에서는 주눅 드는 것과 같이 등반
또한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트레이닝 없이는 바위에 압도 당하기 일쑤고 항상 바위만 더듬는
수준을 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함께한 형님들은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바위와 함께 느긋하게 탱고를 추듯
크럭스를 능구렁이처럼 넘어간다. 그 춤사위는 여간 아름답지가 않다. 이를 지켜보는 나는
전북 무안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새로운 목표를 충남 부여 받고 그 목표를 이루어 나가는
생활은 항상 경북 구미 당기는 일이다. 이쯤 해서 이 글도 유치한 장난으로 호흡을 가다듬지
않으면 가덕의 해벽을 끝까지 오르기가 힘들다. 썰렁함 용서하시라.

 

하루 종일 눈부셨던 산행이 저문다. 천성동 선창 바닷가에 회를 잔뜩 시키고 화려한 마무리
를 했지만 손아섭의 병살타는 뼈아프다.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승리하였더라면 오늘, 가덕
의 산행은 2011년 올 한해 MVP 산행이 아니었나 싶었다.

IP *.51.145.193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