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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1일 23시 14분 등록
광주 가다. 광주에 아무런 연고가 없다. 1년에 한번씩은 간다. 광주는 1995년 부터, 격년 마다 비엔날레를 개최했다. 올해는 디자인 비엔날레가 있는 해다. '광주 비엔날레'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슴이 설렌다. 비엔날레는 영감을 준다. 20년 가깝게 비엔날레를 보아오면서, 신기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니, 어쩌면 필연적인 변화일지도 모른다.

'세상이 점점 비엔날레化 되어가다.'

오래전부터 동대문의 패션메카인, 밀레오레와 두산타워 상권에서 음식장사를 했다. 최근에는 이곳에서 화장품을 판다. 이곳에 정착한 것은 1999년이다. 1999년은 한국에 상징적인 시기다. IMF가 있었는데, 단순히 IMF라는 단어만으로는 단순하지 않다. ''부富'를 분배하는 관리 체계가 무너졌다'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하겠다. 당시 명퇴를 당한, 아니 도산 당한 은행의 한 행원은 목매 자살했다. 한편, IT버블이 일어나서 홈페이지 하나 딸랑 만들고, 새파란놈들이 외제차 끌고 다니기도 했다. 생소한 광경이었는데, 젊은 사람이 외제차를 끌고 다녀서가 아니라, 개인이 몇십억이나 하는 돈을 벌어들이는 모습은 3D영화가 처음 나왔을때처럼 얼떨떨했다. 지금은 M&A가 일반적이지만, 회사를 물건인냥, 사고 팔기 시작했던 이때부터다. 

밀레오레의 성공은 눈부셨다. 난 음식점을 운영하며, 10시간 넘게 밥도 못먹고 써빙을 보았다. 손님이 끊임없이 들어오다. 바쁜 것이 좋았지만, 10시간 이상 쉬지않고 일하면, 짜증 난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손님을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손님을 밀려들어왔다. 밀레오레의 상인들은, 앞서 자살한 은행원과는 달리, 갈고리로 돈을 쓸어모았다. 매장에 가면, 사장님들이 큰 박스 위에 앉아서 장사를 했고, 수금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박스안의 돈을 잡히는 대로 주었다. 

1999년은 인상적인 시기다. 현대사에 '죽음과 삶', '좌절과 희망' '낙담과 기회'가 이렇게 극명하게 대비되었던 적이 없었다. 대국민적으로 자포자기의 공황을 겪을때, 밀레오레의 상인들만은 자본가가 되었다. 뭐, 돈이 생기면 사람도 변해서, 같이 고생해서 번 돈때문에 이혼도 하고, 안좋은 사건도 많았다. 대다수 상인들은 현재, 자본을 굴리며 경제 생태계의 제법 상위에서 사업을 한다. 밀레오레의 성공으로 apm, 굿모닝씨티, 케레스타등 엇비슷한 쇼핑몰이 우후죽순 생겼다. 문제는 그때부터다.

10년이 지난 지금 동대문의 영화는 이미 끝난 것처럼 보인다. 한결같은 매장, 무수한 카피, 짜증나는 호객행위, 바가지에 손님들이 질렸다. 외부적으로는 온라인 쇼핑몰이 손님을 빼앗아갔고, 저렴한 다국적 기업이 시장의 파이를 더 쪼갰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인력난이다. 요즘은 근로자를 모시고, 사업을 해야하는데 그 누구도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12시간 넘게 일을 하지 않는다. 때문에,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었던 동대문의 강점, 스피드 경영도 이제는 할 수 없다. 

한국의 스피드 경영은 어디서나 힘을 발휘한다. 유럽에서는 텔레비젼 AS를 맡기면 적어도 몇주가 걸린다. 한국 제품은 AS를 당일날 해준다. 한국인에게는 당연하지만, 유럽인에게는 혁명적인 서비스다. 소녀시대등 문화 한류가 유럽에서 맹위를 떨치기 전에, 한국 산업이 이미 길을 닦아놓은 셈이다. 

동대문의 스피드 강점은 아직까지도 유효하다. 동대문 출신 디자이너들이 세계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는 것도, 그들만의 감각과 실력뿐만 아니라, 초스피드 경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아침 9시에 디자이너가 머리로 디자인을 하고, 하청업체에 팩스로 디자인을 넘긴다. 오후 1시에 샘플을 받아볼 수 있으며, 저녁 5시면 100여벌 정도의 옷을 눈앞에서 보고 만질 수 있다. 이런 주옥같은 경영이 인력난으로 무너지고, 동대문의 경쟁력도 없어졌다. 

장사의 기본은 물건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다. 이것은 장사의 원칙이기도 하지만, 한계이기도 하다. 장사꾼은 물건을 팔줄만 알지, 브랜드 경영이나 마켓팅 개념을 모른다. 자신을 특화시켜 나가야 하고, 자신의 브랜들를 손님의 머리에 안착시키는 것에 대한 필요성을 모른다. 그저, 싸게 판다는 것만으로 할일 다했다 생각한다. 동대문이 예전같지 않은 이유는

'모두 똑같다'는 것이다.

'모두 똑같다'는 것은 동대문만의 문제가 아니다. 산업 전반에 걸쳐서, '똑같아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스마트폰이 인간의 능력을 확장했지만, 그렇다고 스마트폰 사용하는 한 개인이 특별해졌는가? 모두가 특별한데, 굳이 나만 특별하다고 말할 수 없다.

언젠가부터 기업은 디자인 경영, 마켓팅, 브랜드 등을 운운한다. 광주에 열심히 가는 이유도 이때문이다. 우리가 우리를 특화시키는 방법론은 디자인에서 찾아야 한다.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는 그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한다. 

디자인은 예쁘게 꾸미는 것이 아니다. 디자인의 개념은 디자이너의 수만큼이나 다양하다. 그 중에서 오직 성과를 올리는 디자이너의 철학만이 영향력을 갖는다. 그들은, 자신의 철학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날밤을 깠다. 이제 보통 소시민인 우리로 시선을 돌리자. 이미 소시민적인 삶은 없다. 부자 아니면, 가난이며, 앞으로 20년 안에 사회의 핵심 화두는 '노인빈곤'이 될 것이다. 소시민인 우리는 믿을 것이 결국 나밖에 없는데, 그 '나'가 시원찮으면 노인빈곤이라는 끔찍한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지하철에서 폐지를 수집하는 어르신들을 잘못건드렸다간, 그날 기분을 영 망치는데, 이런 노인들이 가득찬 세상에 나 또한 한명이라는 생각을 하면, 잠이 안온다. 그래서, 믿을 것은 나뿐인데, 그 나를 특별하게 해야하고, 그 방법은 디자인에서 찾아야 하고, 소시민이건, 경영자건, 회사원이건, 장사꾼이건 누구나 할 것없이 디자인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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