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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15일 14시 44분 등록
'죽음은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잡스는 이야기했다. 본래 나는 잡스를 좋아하는 데, 세간에서 너무 잡스, 잡스 하니까, 잡스가 지겨워진다. 그렇다면, 가까운 이야기부터 해보자.

5년전, 웹에이전씨가 전성기였다. 키워드 광고가 마켓팅에 효과를 발휘하자, 너도 나도 웹사이트 제작을 했다. 큰 기업에서는 자사의 홈페이지뿐만 아니라, 이벤트나 상품을 런칭할때도 작은 사이트를 또 런칭했다. 당시에는 마이크로 사이트'라고 했다. 웹에이전씨는 '디자인과 매체'라는 최첨단 도구를 이용해서 감성적으로 정보를 전달한다. 나는 그들을 동경했다. 특히, 이들의 작업모습을 보면 더 도전적인 마음이 생겼다. 매일 날밤을 까는데, 아침에 잠깐 사우나에 가서 눈부친뒤 다시 회사로 돌아와서 작업한다.

이런 모습은 인간의 생리적인 조건에도, 정부에서 정한 근무조건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웬지, 8시 30분에 출근해서 6시30분에 퇴근하는 내 생활에 비하면, 역동적으로 보였다. 마치 날밤을 세워서 작업하는 것이, 최전선에서 싸운는 것처럼 치열해보이고, 후방에 있는 나보다 그들은 선이 굵어 보였고, 어떤 어려움이 다가와도 이겨내리라는 내공이 쌓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당시 웹에이전씨의 친구를 만나다. 그는 인터넷 1세대다. 웹과는 전혀 상관없는 과를 전공했다. 그가 웹에이전씨를 들어간 것은, 단지 html이 재미있어서 홈페이를 만들어보았는데, 그것이 계기였다고 한다. 내가 만났을때, 이미 웹 계에서는 잔뼈가 굵은 기획자가 되어있었다. 프로젝트를 받아오고, 팀을 꾸리고, 결과물이 나오게끔 산파 역할을 한다.

내가 그쪽에 관심이 있다고 이야기하자, 그는 말렸다. 사실 매일 밤샘하는 모습이 인생을 진하게 사는 것 같아 멋있어 보인다. 치열해 보인다. 존경스럽다'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우습게 볼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말하지 못했다. 그는 나를 말리면서, 여러 이야기를 해주었다. '경쟁이 치열하다' '단가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 그리고, '매일 밤을 세운다' ......

'밤을 세운다'라는 말이 떨어지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던졌다. 그만큼 치열하게 사는 거 아니냐. 라고 하자, 그는 웃으면서, '날밤의 진실'을 말한다. 

'아침부터 바짝 일하면, 퇴근시간이면 일이 끝나'

그럼 왜, 매일 날밤을 세우며, 치열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냐?고 물었다.

'오후부터 일을 시작하기 때문이지' 

그럼, 왜 오후부터 일을 시작하는데? 라고 묻자, 

'전날 못잤으니까'

.......

한 여행자가 핀란드에 가서, '이렇게 조용한 나라가 어떻게 국민소득이 4만 6천불이나 될까?' 라고 느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일을 한다고 하면, 요란하다. 남자들은 대다수 군대를 다녀와서 인지, 기합 들어간 모습을 상사에게 보여주어야 그가 좋아하리라 예상하고, 실제로 그렇다. 공부도 요란하게 한다. 4당5락, 눈썹 밀고, 환골탈태할 것 같은 각오로 책을 태운다. 일의 성과가 아니라, 일하는 모습이 좋아보일려고, 혹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 들려고 일한다. 보는 사람이, 상사이건, 클라이언트이건, 자기 자신이건.

외국의 경우(특히 유럽쪽)는, 잔업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고 나는 들었다. 6시 넘으면, 전기, 수도 끊어버린다고...참 좋은 문화라고 생각하는데, 주어진 시간에 일을 맞쳐야 한다고 생각하면, 작업의 밀도가 높아진다. 직원 마다 달성해야할 성과가 있는데, 회사에서 일할 시간은 제한적이다. 당연 밥 먹는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 직원간 수다 떠는 시간, 옥상 올라가서 담배 피우는 시간, 그냥 멍하니 있는 시간, 땡땡이 치고 사우나 가는 시간을 아껴서 일을 할 것이다. 물론, 한국 사람들이 지금까지 이렇게 일을 해 왔고 조직 문화가 나라마다 다를 것이다. 적어도, '주어진 자원과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필요하다.

제한, 끝, 한정, 죽음....이런 단어들은 슬프고, 답답하다. 반대로, 무제한, 끝없는, 무한정, 영생'이라는 단어를 보면 마음이 설레인다. 하지만, 인생엔 끝이 있고, 우리가 사용할 시간과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다. 시간과 에너지가 무한정하다고 하면, 무엇이 중요하고, 의미가 있는지 사람은 깨닫지 못한다. 실제로 그럴리 없겠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보지 않으려 한다.

'죽음'까지 라고 생각하면, 감이 안잡힌다. 난 잡스처럼 그릇이 큰 사람이 아니다. 오늘 하루만 보자. 오늘 잠자는 시간까지가 데드라인이다. 디자인은 제한된 조건에서 이루어진다. 모자른 시간, 모자른 자금. 디자인에 제약이 없으면, 디자인이 안된다. 제약 자체가 목표가 될때도 있고, 제한사항이 있어야 창조성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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