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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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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17일 10시 35분 등록

연주가 아무 데로도 향하지 않는군요. 당신은 늘 누군가에게 들려주듯 연주해야 합니다. 강물에게, 신에게, 이미 죽은 어떤 사람에게, 혹은 방안에 있는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거지요. 어쨌든 연주는 누군가를 향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브렌다 유랜드, ‘참을 수 없는 글쓰기의 유혹’ -


말과 글은 같을까? 다를까? 사람들에게 이렇게 물어보면 대부분이 다르다고 대답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로다. 말은 직접적이고 사적이라 주로 소수를 상대로 행해지며, 다분히 즉흥적이고 짧은 시간에 휘발된다. 반면에 글은 동시에 수많은 사람을 상대로 할 수 있으며 영구보존이 가능하므로 심사숙고해서 남겨야 한다. 말을 나누는 사람은 같은 상황을 공유하고 있으므로 간결하게 핵심만 전달해도 되지만, 글에서는 오직 글만 가지고 소통해야 하므로 자세히 풀어주거나 좀 더 명확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런 요소를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말과 글에는 그런 기본적인 성질보다 훨씬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말과 글 둘 다 대상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말을 할 때  이 점을 놓치지 않는다. 말은 당연히 ‘누군가’에게 건네는 것이기에 범위가 한정되어 있고 의미가 명확하다. 글도 누군가 읽을 것을 전제로 하고 쓰는 행위지만 우리는 종종 이것을 잊어 버린다.  내 글을 읽을 사람도 말을 나누며 살아가는 바로 그 사람이다. 학술적인 목적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나 속생각이 궁금해서, 혹은 재미나 위로, 공감을 얻기 위해 글을 읽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분명히 하고 쓰면 도움이 된다. 우리가 글을 쓸 때 자주 부딪치는 문제가  너무 개인적이거나 상식적인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 같아 켕기는 것인데 바로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글이 너무 밋밋한 것 같아 내가 아는 것을 다 풀어놓아야 할 것 같은 조바심에 자꾸만 다른 범주를 덧붙이는 것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그래서 글을 쓸 때 이 말을 꼭 들려주고 싶은 사람을 한 명 정해놓고 쓰면, 상대방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과 애정에서 힘차고 간결한 문장이 나온다. 누가 내 글에 공감해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쓰는 글과 댈 것이 아니다.  이번에는 어디까지 다루어야 하겠다는 범위를 잡는데도  유효하다.


둘째, 말과 글 둘 다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나 할 말 있어” 라는 뜻은 누군가에게 전달해야 할 ‘생각’이 있다는 뜻이다. 요즘 귀가가 늦는 딸이라면 “잔소리하는 꼰대가 되고 싶지는 않다만, 그렇게 늦게 다니면 안전에 대한 대비는 어떻게 하고 있는거니?” 라든가, 미팅 중에 버럭 화를 낸 상사라면 “윗사람이라고 해서 그렇게 사람 기분을 망쳐놓아도 되는 겁니까?” 처럼 말에는 용건이 담겨 있다. 글에도 생각이 들어간다. 아니 글은 아예 생각 그 자체이다. 우리는 이것도 자주 잊어버린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를 하다가 다른 길로 빠지기도 하고, 예쁜 표현이나 뛰어난 비유에 집착할 때도 있다. 지금 빠져있는 정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맴맴 맴을 돈 것도 형태만 보면 글이다. 하지만 읽는 이에게 선명한 인상을 남겨주기는 어렵다. 혼자 두고 보는 일기라면 몰라도 사회적인 글로 자리매김할 수 없어 더 큰 기회로 연결되지도 못한다.  부분적인 비유나 미사여구가 뛰어나지만 생각이 명확하지 않은 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어쩌라구? 소리가 절로 나온다. 글이란 ‘무엇 topic'을 가지고 ‘무엇 subject'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가 가장 중요하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계속 ‘말’과 ‘글’이 섞여서 애를 먹고 있는데 이 사실만 보아도 ‘말’과 ‘글’이 유사한 점이 많은 것이 아닌지?


셋째, 글에도 말과 마찬가지로 리듬이 있다. 글을 퇴고할 때 입 밖에 내어 읽으면서 고치라는 것이 이 때문이다. 입에서 자연스럽고 내 귀로 들었을 때 매끄러운 것이 좋은 글이다. 소리내어 읽었을 때 흐름이 처진다 싶으면 문장이 너무 긴 것이니, 짧게 잘라주거나 중언부언한 곳이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눈이 놓친 것을 입술이 잡아채는 것은 글이 리듬을 갖고 있어서이다. 말할 때는 상대방의 반응을 살펴가며 당연히 리듬을 살리게 되지만 글쓸 때도 리듬에 주목하면 좋다. 간결한 문장이 계속되거나 어미가  똑같이 반복되어 단조로울 때 변화를 주는 방식을 연구하면서 문장력이 향상될 것이다.


결국 글을 쓸 때 편지처럼 쓰면 딱 좋다.  읽어줄 대상과 하고 싶은 말을 분명히 하고 마음을 다 해 간곡하게 전달할 것!  편지는 말과 글이 절묘하게 합쳐지는 지점이다. 그래서 편지에 글의 양식이 다 들어있다고 하는지도 모른다. 한정된 형태지만 출판도 하지 않는가.


월북작가 이태준의 ‘문장강화’는 1946년도에 출간되었다. 그는 글은 곧 말이니 글쓰기를 할 때는 글이 아니라 말을 짓는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라고 한다. 누구에게 할 말인지를 고려할 때 하고싶은 말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 글을 죽이더라도 먼저 말을 살려 감정을 살려놓는데 주력하라, 글쓰기의 형식보다도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윌리엄 진서의 ‘글쓰기 생각쓰기’는 1976년에 출간되었다. 그역시 저자가 드러나는 글이 좋은 글이라며 애써 꾸미지말고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심지어 대화로 편히 나눌만한 이야기가 아니면 글로 쓰지 말라고까지 단언한다.


시대와 공간을 달리한 두 저자의 말이 너무 흡사해서 깜짝 놀랐다. 그들의 결론에 대한 신뢰가 두 배로 증폭된다.  글은 반드시 대단한 내용을 폼나게 풀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느낌을 편안하게 건네는 말이다. 글이 죽어라 안 써지면 말로 접근해 보자. 상대를 정해놓고  하고 싶은 말을 주절주절 혀 끝에 올려 보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접근해야 설득력이 강화될지, 무엇을 보완해야 알맹이가 실해질지가 명확해진다. 무엇보다 어깨 힘을 뺄 수 있어서 좋다. 오숙희, 조영남, 공지영을 비롯해서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글을 쓰는 사람들은  글과 말이 다르지 않다는 비밀을 일찌감치 체득한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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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기원
2011.04.17 11:26:16 *.198.133.105
저는 글 써는 것을 잘 못하지만
깨달음을 구할때 사용하는 방법입니다만
내가 나를 가르쳐 봅니다.(내자신과 대화를 많이 하지요)
그리고 그가르침에 따른 행동이 좋으면
그와 같은 내용의 책을 가지고 대화와 타협을 시도합니다.
그래서 타협점이 생기면
그가르침을 다른사람에게 시도합니다.(도와준다는 미명하에....그럼 용기도 좀나구요)
그러한 과정중에 또다른 많은 지혜가 나와 하나가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글쓰는 것이나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나
깨우침을 구하는 것이나
방법은 비슷한 것같다는 생각을 해보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명석님 좋은 글 훌륭한 글 만나는 좋은 봄날 되시길 기원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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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1.04.17 21:29:58 *.108.80.74
그럼요,
걷기나 춤, 바느질 그 무엇이라도
충분히 몰입하여 나 자신과의 대화를 촉진하고,
기량과 사고가 하나가 되어 계속 나아갈 수 있다면 명상-  구도의 수단이 되고말고지요.

지순하고 지혜로운 기원님이 돌아오셔서 참 기쁩니다.^^
기원님도 평화와 활기를 양 손에 잡은 봄날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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