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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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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5일 10시 13분 등록
 

오한숙희는 자신의 문체를 ‘수다체’로 명명한다. 마치 수다 떨듯이 편안한 입말체로 쓰는 글이라는 뜻일 것이다. 언변이 뛰어나 방송인으로도 활동하는 것을 보면, 그녀는 ‘말과 글’을 행복하게 일치시켰나 보다.


그녀의 글쓰기에 있어 일등공신은 ‘사례의 활용’이다. 사례는 읽는 사람에게 긴장감을 주지 않으면서도 쉽게 글 속에 들어오게 하는 출입문이다. 그래서 관심과 공감을 끌 수 있는 사례를 찾아내면 글줄이 쉽게 풀린다. 사례를 모아놓기 위해서는 물론 메모가 중요하다. 평소에 대화를 나누거나, 한 일 중에서 반짝 하는 내용은 반드시 메모를 해 놓는다.
구어체 글쓰기의 매력은 말맛에 있기에, 그 순간의 표현을 포착하여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억해 두었다 활용해야지 하는 것은 소용없다. 그녀는 ‘또렷한 기억보다 희미한 연필 자국이 낫다’고 강조한다.


사례를 활용하여 글을 쓰는 순서는 두 가지이다. ‘뭔가 있다’ 싶은 사례에 접하면 깊이 음미하여 어떻게 뼈대 있는 내용과 연결시킬까 파고 들어간다. 아니면 주제가 먼저 주어진 경우, 여기에 맞는 사례를 찾기 위해 고심하는 것. 쓸 것이 주어지면 그녀는 머릿속에서 글감을 수없이 굴려 본다고 한다. 그러다가 오프닝 멘트와 클로징 멘트가 떠올랐을 때 글을 쓰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는 일사천리이다. 한 두 시간에 10매, 서너 시간에 2,30매의 글을 쓴다고 하는데 그녀의 글을 읽어보면 이해가 간다. 이론적이거나 현학적인 글이 아니라 사례를 활용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아무튼 그녀는 사례의 여왕이다. 그녀의 글을 읽어보면 한 꼭지 전체가 사례로 이루어진 것도 있고, 심지어 책의 서문도 사례로 시작한다.  사례를 애용하는 구어체는 그녀의 문체가 되었고, 그녀를 저자로서 자리매김하게 해 주었다.


그녀가 좋은 본보기가 된 것처럼 글의 도입부로 사례를 활용하면 참 좋다. 어떤 글을 쓸 때 글쓰는 사람이야 오랫동안 생각해 온 주제일지 몰라도, 읽는 사람으로서는 처음 접하는 주제인 경우가 많다. 그럴 때 읽는 사람을 편안하게 글 속으로 끌어올 수 있다. 독자를 가르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서도 설득력이 있다. 글쓴 사람이 직접 겪은 사례인 경우 인간적인 체온이 전해져 아주 훈훈한 글이 된다. 그래서 나도 내심 사례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언제고 써 먹을 수 있겠다 싶은 사례를 만나면 눈이 번쩍 떠진다.


사례를 활용한 글쓰기를 할 때 좋은 공식이 있다. ‘사례+인용+핵심정리’를 하는 것이다. 먼저 다짜고짜 사례로 시작한다. 읽는 사람의 궁금증을 유발할 수 있으면 성공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거지?’ 혹은 ‘아하!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거구나.’ 싶을 때, 적절한 인용을 하나 보태준다. 내가 겪은 일, 혹은 들은 일을 확장해서 각인시킬 수 있는 인용이면 된다. 이 때 인용의 적합성에 따라 글의 품격이 달라진다.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사례를 통해 인간과 삶을 읽을 수 있는 통찰력을 줄 수 있느냐의 문제이고,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인용은 앞의 사례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하고, 스스로 발굴한 참신한 것이어야 한다. 너무 많은 사람이 인용한 문구는 식상하다.


그리고는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다시 한 번 정리해줌으로써 글을 마무리한다. 이렇게 하면 무난하게 혹은 성공적으로 글을 한 편 쓸 수 있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기본적인 패턴이다. 패턴을 응용하는 것은 글 쓰는 사람의 몫이다. 전에 이런 방식으로 쓴 글을 하나 첨부한다.
친절하기도 하지.^^



@ 빨간 글씨를 비롯하여 오한숙희의 수다체에 대한 내용은 '글쓰기의 힘'을  참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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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육점 남자 혹은 시선


동네 시장에 단골 정육점이 있다. 처음에는 그 중 큰 곳이라 무심히 들어섰는데 볼수록 예사롭지가 않았다. 우선 일하는 사람들이 전부 남자이다. 칼질하는 사람이 두 사람, 계란을 파는 젊은이가 한 사람, 그리고 어쩌다 보이는 나이 지긋한 사람이 그들이다. 이들의 모습은 정육점에 대한 내 이미지를 깨트리는 것이었다. 보통 정육점이라는 곳이 편안한 체격과 붙임성 좋은 중년부인네가 점령하고 있는 곳이 아니었든가. 그런데 하나같이 우람한 체격을 가진 남자 넷이 일하고 있는 모습은 어딘가 낯설었다.


바로 이런 것들이다.  청장년 서 너 명이 입을 모아 "어서 오세요!" 소리치는 것은 인사라기 보다는 구령에 가까웠다.  달랑 인사를 던지고는 보통 소매점에서 있을 법한 담소로 이어나가지 않고 침묵 속에 고기를 써는 두 남자의 모습이 경건하기 짝이 없다. 고기를 다루는 직업이 이렇게 전문직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의 동작은 자신감있고 거침이 없다. 게다가 두 남자의 팔 근육이 장난이 아니다.  조명도 붉고 진열장 속의 고기도 붉은 장면 속에서 힘줄이 툭툭 불거진 두 팔이 고기를 써는 모습은 충분히 그로테스크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섹시했다.^^ 머리에 무스를 발라 치켜세운 젊은 쪽보다, 40대 중반의 살짝 우울해 보이는 사람에게 마음이 갔다.


근처의 수퍼마켓보다 값이 싼데도 육질이 좋은 편이라 나는 당연히 그 정육점의 단골이 되었다.  드나든지 1년이 되어오지만 “전지 한 근 주세요!” 하는 식의 말 밖에 나눈 적이 없다. 그런데 며칠 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전지 한 근 주세요!” 했겠다, 언제나 정성스레 무스를 바르는 남자가 물어 왔다.

“어떻게 드실 건데요?”

“고추장 양념이요.”

대답하는 순간, 등을 돌리고 일하고 있던 다른 한 사람이 몸을 돌려 나를 쳐다 보았다. 2초 쯤 우리의 시선이 부딪쳤다. 찌리릿 온 몸에 전율이 일었다.

이런! 그도 나를, 내 목소리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뿐, 전지 한 근을 사들고 돌아섰지만 기분이 묘했다. 누군가 나를 ‘개별적으로’ 바라봐 준 것이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어떤 사람에게 온전하게 집중하기란 쉽지 않다. 한 번 곰곰이 떠올려보라. 그 중 소중한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조차 그들에게 백프로 집중하고 있는지를. 나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할 때, 머리 속으로 이런저런 삶의 현안에 대해 궁리하곤 했다. 친정어머니의 치아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갈수록 내가 엄마의 말에 집중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서글퍼지곤 했다. 그런데 단 2초에 불과했지만, 정육점 남자의 ‘시선’은 나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었다. 누군가 나를 기억해 주었다는 것이 짜릿하도록 기분이 좋았다.


그러고 보니 김찬호의 ‘생애의 발견’에서 본 한 장면이 떠오른다. 박재동화백의 제자가 TV에 나와서 한 말이라고 한다. 고교시절, 그는 소문난 문제아였다. 그 날도 친구 한 명과 같이 교무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벌을 받고 있었단다. 오가는 선생님들이 머리를 쥐어박으며 ‘이 놈들, 또 왔느냐’며 핀잔을 줄 때, 박재동화백이 그들을 미술실로 데리고 갔다. ‘어이쿠! 선생님께서 제대로 혼내시려나 보다’ 하고 바짝 긴장하고 있을 때, 박화백은 그들을 앉혀 놓고 초상화를 한 장씩 그려주었다고 한다. 아무 말도 없이 긴 시간 자신들을 응시해 준 그 시선이 백 마디의 훈계보다 더 마음에 남았다고, 그는 말했다.


누군가를 온전히 바라본다는 것! 나는 정육점의 작은 사건에서 이것을 배웠다. 그가 누구이든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사람에게 온 마음을 기울여 집중하기! 그것만이 내가 온전하게 살아있는 방법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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