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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1일 23시 38분 등록
당신은 흙바닥 위에 서있다. 가진 것이라고는, 바늘 하나가 전부다. 이제 그 바늘로 우물을 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맞딱드린 땅은 옥토였다. 모든 것이 준비가 되어있었다. 명함 하나 내밀면, 어디서나 환영을 받았다. 당신은 회사를 등에 업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회사에서는 전동 드릴을 당신에게 주었고, 버튼을 한번 누르면 순식간에 깊이 있게 파내려갔다. 물론, 드릴 사용법은 생소한 것이라 익숙해지기 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런 와중에 함께 입사한 동기들은 적응을 못하고 나가는 친구들도 있었다. 한번 드릴사용법에 감이 오자, 별다른 어려움 없이 땅을 파내려가기 시작했다. 지표면에서는 아무런 저항도 없었고, 버튼만 누르면 밑도끝도 없이 깊이 있게 내려갔으며, 금방 우물물이 터져나왔다. 동료들은 모두 축하해주었고, 당신은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당신이 조금은 잘나서 우물이 터진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잘한다고 칭찬 받고, 승진을 하자 보다 큰 규모의 굴착기를 회사는 당신에게 주었다. 전에 가지고 있던 전동드릴은 게임이 안되는 장비였다. 당신은 직접 작업하지 않고, 지면의 경도와 굴착기의 컨디션과의 상관관계를 연구했다. 당신이 짚어내는 곳에 굴착기가 가서 파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당신의 계산은 정확했고, 우물이 터지는 생산성은 증가했다. 회사는 당신을 더욱 칭찬해주었으며, 보다 더 많은 굴착기를 주었다. 이제는 맘만 먹으면 하루에도 수십개의 우물을 터트릴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이쯤 되자 당신은 진심으로 당신이 실력있으며, 잘났다고 믿기 시작했다. 마침 옆의 회사에서 더 성능 좋은 굴착기를 주는 대가로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다. 고민하던 차에, 예의 상사가 당신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었다. '요즘 조금 큰 것 같아'라는 지나가면서, 우스개 소리로 하는 이야기였는데, 당신은 흘려듣지 못한 것이다. 도끼눈을 뜨고, 상사를 노려보았고, 오히려 당신의 상사가 무안해하며 사과를 했다. 그래도 당신은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내친김에 스카웃 제의를 받아들였다. 

'어디 한번 나없이 잘되나 보자'라고 으름장을 놓고 나왔는데, 당신 없이도 회사는 평온하게 잘 돌아갔다. '아닐거야, 아닐거야'자신을 스스로 다독였지만, 당신이 받은 첫번째 충격이었다. 입사후 우물 파기에 한번도 막힘 없었지만, 처음으로 만만치 않은 돌덩어리에 부딪혔다. 스카웃 제의를 받은 회사에 출근했다. 회사라면 으례 다 똑같을 줄 알았는데, 막상 업무를 시작해보니 외국에 온것처럼 이질감이 느껴졌다. 비로소 두번째 큰 돌덩어리에 부딪혔다. 그것은 회사 문화라고 하는데, 매순간 당신에게 거슬렸으며, 때에 따라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회사도 당신도, 막상 까보니까 서로 실망을 했다. 은근슬쩍 당신 자리 옆에 또 다른 사람이 앉아있었고, 정작 당신이 해야할 일을 그 사람이 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일을 찾고자 했으나, 웬지 주변을 겉도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나가라'는 의미인 것을 한참후에야 깨닫다. 

'까짓것' 하며 나왔다. 회사를 하나 차리기로 마음 먹다. 퇴직금으로 받은 돈이 꽤 된다. 그 돈으로 제법 규모가 있는 굴착기를 구입했다. 직원도 뽑고, 땅을 파내려갈라고 하는 찰나였다. 어디선가 검은 양복의 사람이 나타나서 당신에게 이렇게 물었다. 

'뭐냐'

우물을 팔려고 한다고 했더니, 검은 양복은 '누구 맘대로'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뒤에 보니 그 사람 말고도 검은 양복은 수명이 줄지어서 당신을 쏘아본다. 그때서야 당신은 자기가 파내려갔던 옥토가, 실은 많은 사람들이 상을 차려준 결과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느 배우 말대로, 차려놓은 밥상에 수저들고 먹은 것 뿐이다. 

고가로 구입한 장비와 직원들이 일없이 놀기만 했다. 말일이 되니까, 인건비에 임대료에 공과금이 한꺼번에 밀려들어왔다 땅만 팔때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황당한 상황이었다. 경황없이 멍하니 몇달을 보내자, 직원들이 하나 둘 떠났고, 굴착기를 헐값에 팔았으며 사무실도 뺐다.

당신은 흙바닥 위에 서있다. 당신의 영혼에는 구멍이 푹푹 뚫렸는데, 그 결과 바늘 하나만 다룰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쪼그려서 바늘을 들고, 땅을 파기 시작하다. 굴착기로 파내려갈때의 그 시원시원함에 비교한다면, 바늘 삼켜서 꽥 죽어버리고 싶다. 시간당 1센치의 속도로 파내려가다. 3시간 걸려서 3센치를 파내려갔을 때, 당신은 탈진해서 쓰러졌고, 눈을 떠보니 누군가가 안스러운 눈으로 당신을 쳐다보는 것을 알았다.

그는 나이는 당신 보다 많아 보였고, 며칠이고 면도를 하지 않은 것 같았다. 분위기로 보아, 명예퇴직을 하고 인생 제2모작을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소주를 한잔 걸치며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또한 대기업에서 우물을 팠던 엘리트였다. 회사 다닐때부터 조직의 거대함에 부대끼고, 자신이 일개 부속품으로 느껴져서 퇴사했다는 뻔한 내용이었다. 그래도 그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잘하는 모습이었다. 

다음날 우물을 팠던 자리에 가보니, 전날 작업한 현장이 그대로 있었다. 내가 고작 이 정도인가?라는 생각에 몸둘 바를 모를 정도다. 마침, 어제 2모작 엘리트도 옆에서 작업중이다. 그의 작업물을 보며 흠칫 놀라다. 그의 손에도 바늘 하나가 들려있었는데, 파 놓은 규모가 꽤된다. 놀라는 당신의 표정을 느꼈는지, 겸연쩍어하며 '시작한지 얼마안되었지만, 천천히 쉬지 않고 했더니 모양새가 만들어지더라'라고 이야기한다.당신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약간 희망을 느끼면서 다시 본래의 작업으로 돌아왔다. 현장을 보자, 다시 한번 바늘을 삼키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럴수도 없고, 결국 당신에게 남은 것은 그 바늘로 우물을 파는 것 뿐이었다. 어느정도 지났을까?

생각없이 파다보니, 하루가 지나가버렸고, 자고 일어나서 또 생각없이 파기 시작해나갔다. 생각없이 또 생각없이, 계속 파고 어느새 눈을 들어보니까, 당신 주변에 우물을 파고 있던 사람중 상당수가 사라져버렸다. 2모작 엘리트도 작업을 오래전 그만두고 없었다. 외로웠지만, 오히려 당신은 이 사실에 자신감을 얻는다. 

또 얼마나 지났을까?  고개를 들어보니, 이번에는 당신의 우물을 경이로워하며 구경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늘었다. 그들과 함께 우물밖에서 당신이 작업한 우물을 보았다. 어느새 꽤 깊이가 되어 보인다. 그 노하우를 가르쳐 달라는 사람도 있었고, 자신의 우물 작업을 맡길테니 견적을 보내달라는 사람도 있었고, 아니 그럴것도 없이 당장 우리 현장에 가자는 사람도 있었다. 마침 예의 그 상사가 당신을 아는척 한다. '아니 이걸 바늘로 팠단 말이야. 그럴줄 알았어' 

오랜만에 듣는 칭찬에 다시 한번 마음이 붕 떴지만, 그래도 광야에서 보낸 시간이 있는데, 그렇게 보여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무심한척 했다. 그리고, 다시 우물로 들어가 작업을 했다. 한시간 정도 파내려가자 한움큼의 흙을 파낼 수 있었고, 양동이에 담아 밖으로 날랐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는 판다.'

'........'


'바늘로 우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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