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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25일 23시 51분 등록

종종 삶이 시시하게 느껴지면 나는 시를 읽는다. 시는 그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운다. 내가 힘껏 피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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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서른, 시에서 길을 만나다"
로저 하우스덴 지음 / 정경옥 옮김 /21세기 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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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세 살 먹은 한 남자가 살던 집과 책을 처분하고 12년 간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하고 25년 간 써 온 일기를 단숨에 불태워 버리고 런던을 떠나 캘리포니아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그에게 혁명을 의미한다. 만일 한 편의 시가 이 남자의 선택을 칭송하고 격려해 주었다면 그 시는 위대한 시가 아닐까?

에밀리 디킨슨은 훌륭한 시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책을 읽다가 온몸이 싸늘해져 어떤 불덩이로도 녹일 수 없게 될 때, 그것이 바로 시다. 머리 끝이 곤두서면 그것이 바로 시다. 나는 오직 그런 방법으로 시를 본다. 다른 방법이 있다면 한 번 말해 보라.”

나는 그녀의 말에 십분 동감한다. 우리를 경악하게 하고 심장을 찌르고 내 영혼을 쥐고 흔들어 그 시를 보기 전의 나로 두 번 다시 되돌려 놓지 않는 그런 시가 위대한 시다.

언젠가 나는 시와 자기 경영을 연결하는 좋은 책을 한 권 쓰고 싶었다. 이 책과는 다른 구성이겠지만 시를 통해 자신과 대면하게 하고, 자기 옷이 아닌 겉옷을 벗어 던지게 하고, 정말 살고 싶은 인생을 살 수 있도록 꼬드기고 유혹하고 심장을 찔러 대는 위대한 시를 통해 사람들이 인생 전환의 꿈을 이루어 낼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내 스타일에 잘 맞는 책이다.

저자는 자신의 인생을 바꾸게 한 열 편의 시에 대하여 차근차근 이야기한다.

그의 시 해설은 시인의 시 해석과 다르다.

시와 자신을 연결하여 그 시가 자신의 무엇을 어떻게 바꾸게 했는지, 그리고 자신이 살고 싶은 인생을 어떻게 외쳐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시와 자기계발이 만난 독특한 형식의 서술을 통해 저자는 시가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생생히 보여준다. 일례로 안토니오 마차도의 ‘어젯밤 잠자며’에는 과거의 실패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저자가 골라 놓은 인생을 바꾸게 한 열 편의 시 중에서 에밀리 디킨슨의 정의처럼 ‘나를 얼어붙게 하고 내 머리털을 곤두세운’시 하나를 독자를 위해 골라 두었다.

여자가 부르고
남자가 돌아보네.
여자는 다리를 벌려
숨막히는 아름다움을 보여주네.
……
남자는 영액이 아닌
피로 부풀어 오르고
여자는 한껏 부푼 남자를 받아들여 빨아들이네.
남자는 무릎을 꿇고
하늘과 지하를 연결하는 비밀스러운 문을 열어
부드러운 여자의 살결을 정성껏 핥고,
연인은 바위 위에서 하나가 되네.
어디선가 개구리가 신음으로 울어대고
까마귀가 비명을 질러대는데
연인들의 몸에 돋은 털들이 놀라 일어서고
그들은 마지막 신들의 음성으로 외치네.
되돌아가지 않고 죽음을 선택한 마지막 신들은
기쁨으로 산산이 부서지네.
-마지막 신들(Last Gods), 골웨이 킨넬(Galway Kinnell)

나는 이 시 속에서 싱싱하기 그지없는 한 쌍의 남녀를 본다.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니는 스팸 메일의 반 이상은 돈과 섹스에 대한 것이다.

돈을 싸게 당장 아무 조건 없이 빌려준다는 메일이 가난한 사람들과 사정이 급한 사람들을 마약처럼 낚아채고, 포르노가 성을 대표하는 가상의 현실 속에서 이렇게 싱싱한 섹스는 없다.

이것은 생명이다. 그리고 사랑이다. 그들은 포효하는 생명을 다시 출산할 것이고, 그 젊은이들이 다시 세상을 이끌 것이다.

만일 어떤 여자가 단지 집 한 채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한 남자를 선택하여 남편으로 삼을 생각을 했다면 그것은 시시한 인생이다.

만일 한 남자가 한 여자 아버지의 재산 때문에 그녀와 결혼을 할 생각을 했다면 그 자의 인생은 서푼짜리에 불과하다.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하라.

그대의 순수한 땀으로 인생을 건설하고, 사랑을 위해 사랑하고, 열정으로 뜨거운 애를 만들어라. 이 시는 상업화에 물든 영혼을 치료하고 서로에게 몰입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세상을 보게 해준다. 이보다 훌륭한 자기 혁명의 상징은 없다.

그리고 열정에 땀 흘리고 지치면 고요한 일상의 평화를 즐겨라.

이것이 균형이다.

이 책 속에서 두 번째로 나를 즐겁게 하고 춤추게 한 시를 들라면 - 물론 내 주관적 평가지만 - 당연히 파블로 네루다의 ‘내 양말에게 바치는 송시(Ode to My Socks)’를 추천한다. 그녀가 직접 짜준 토끼같이 예쁜 양말, 그 양말이 너무 예뻐 처음으로 늙어빠진 소방수 같은 자신의 발을 미워하고, 새처럼 예쁜 양말을 황금 새장에 넣고 매일 모이를 주고 붉은 수박을 먹이고 싶어 하는 사내. 그녀가 짜준 겨울의 양털 양말 두 짝을 보고, 아름다운 것은 두 배로 아름답고, 좋은 것은 두 배로 좋다고 중얼거리는 한 사내. 그에게 세상은 돈이 아니며, 일상은 거래가 아니며,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축재해야 안심하는 고달픈 개미의 삶이 아니다.

시는 답답한 인생의 뺨을 느닷없이 후려갈기고, 정신 차리게 한다. 시를 읽자. 시가 우리를 전율하게 하자. 그리고 새로운 인생으로 뛰어들자. 삶을 두려워하지 말자.

참고로 이 책의 제목은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뽑혔다. ‘서른’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는 책이다. 서른 살이기 때문에 이 책을 보지 마라. 다만 인생이 약삭빠르고 뻑뻑하고 지루하고 심드렁할 때 보면 대길(大吉) 하리.
IP *.128.22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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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4.26 01:32:51 *.70.72.121
초아선생님께도 보내드릴까요? ㅋㅋ

마흔 하고도 반이나.... 아! 사랑이여, 아! 옛날이여.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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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2007.04.26 05:10:58 *.254.127.22
소장님
글에서나 강연에서나, 일상의 삶의 모습에서도
평상심이 함께하는 것을 보고 배웠습니다.
소장님 삶자체가 시처럼 보여요.
늘 가르침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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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4.26 08:26:31 *.72.153.12
양말 보며 중얼거리는 사내를 보면서, 눈물이 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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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빈
2007.04.26 09:30:41 *.183.177.20
결혼하고 나서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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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미
2007.04.26 12:02:47 *.128.30.57
가슴을 요동치게 합니다.
시름 앓던 내가 범람하고 소용돌이 칩니다.
오늘은 선생님 덕분에 끓어오르는 하루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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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자식
2007.04.26 12:45:28 *.252.33.160
이번에 시창작 수업이란 과목을 듣고 있어요.
시라는 게 제 인생과 별 상관없는 걸로 밀어두고 있었는데
늘 그림움 같은게 있었나봐요.

시도 아닌, 글도 아닌 수준의 글을 끄적거리긴 하지만,
시를 알면서 참 좋아졌습니다.

꽃잎이 떨어져도
시를 생각하게 되고,
한 번 웃음에도
시를 생각하게 되고.

누군가 시는 배우는 게 아니라 터져나오는 거라고 하더라구요.
저는 그 시가 누구의 가슴에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를 읊조리는 시인이 아니라
시처럼 산다는 것.
참 멋져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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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픔
2007.04.26 19:30:00 *.49.3.158
종종 삶이 시시하게 느껴지면 나는 시를 읽는다.
시는 그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운다.
내가 힘껏 피게한다.

제겐 소장님이 그렇던데요..후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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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곤
2007.04.26 20:51:03 *.202.137.121
개구리와 까마귀 엑스트라가 출연하는 게 좀 생뚱맞기는 하지만 생동감있는 서사시처럼 묘사된 야외 정사신이 저를 오르가즘으로 이끕니다. 의식이 무한 팽창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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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2007.04.27 13:42:35 *.133.120.2
그래서 구선생님 글에서는 따뜻함이 묻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곧 회사를 떠나고 다른 회사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합니다. 그 동안 정들었던 동료들에게 시집을 선물할 예정입니다. 오늘 선생님의 글을 읽으니 시집을 선정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저도 시처럼 살고 싶은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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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
2007.04.27 15:12:16 *.244.218.8
아우. 이쁜 책일 것 같아요. 사봐야지 사봐야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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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2007.05.09 10:52:24 *.104.206.73
시와 자기경영 ,
시와 자기계발
시와 자기혁신
시와 자기변화
시와 자신을 연결하여 무슨 관련이 있는지?
그 시를 통해서 자신의 무었을 변화 시킬것인가?
정말 멋지고 머리를 후려 갈기는 글입니다.
시 한즐을 읽으면서도 자신과 관련지어 변화를 시도하다니...
좋은글 잘 읽었읍니다.
기쁨, 보람, 행복한 하루를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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