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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27일 08시 53분 등록

정선이 연구원의 글 하나를 올려 둡니다. 그녀의 글은 손가락에서 나오는 듯 합니다. 써야 글이 되는 글입니다. 아마 쓰기 전에는 머리 속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쓰기 시작하자 돌연 이야기의 실타레는 끊이지 않고 거미줄 처럼 풀려 나옵니다. 그러므로 쓸수 밖에 없는 사람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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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두통약으로「뇌신」이라는 것이 있다. 옆집 아주머니는 허구한 날 뇌신이라는 이 약을 잡수셨고 이 약이 없으면 못 살 것 같아보였다. 나는 아주 오래 동안 아주머니께서 이 약을 드시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당시에도 이 약의 장기복용에 대한 우려와 소문이 파다했다. 아마 뉴스에도 여러 번 나왔지 싶다. (그러나 이 글을 쓰면서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아직도 제조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큰 문제는 없었는가 보다.) 아주머니께서도 이 약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약을 줄여볼 요량으로 허연 광목으로 머리띠를 둘러 꽉 조여 매고 있기는 하였다. 마치 사극이나 연속극에서 머리를 싸매고 드러누운 모습이나, 시위할 때 주로 자주 사용되는 그 모습을 잘도 하고 계셨다. 우리 집에서는 그때껏 한 번도 보지 못한 광경이었기에 나는 그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여, 왜 그렇게 하고 무엇이 좋은 점이 있는 것인지 대여섯 살 어린 계집아이의 눈으로 보기에는 약간 무섭기도 하고 겁도 나는 아주머니의 모습을 슬금슬금 곁눈질로 쳐다봐가며 늘 궁금하게 생각했다.

아마 아주머니의 병명은 신경성 두통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모르긴 해도 감기나 열병처럼 급작스레 아프거나 다른 지병이 있으셔서 그 약을 복용하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울화가 치밀고 현실과 일상의 흐름이 갑갑하여 발작 같은 성정을 못 이겨서 그런 것으로 어린 내 눈에도 보여 지곤 했으니까. 아주머니의 얼굴은 늘 편하지 않았고 무섭고 단호할 만큼 엄격한 모습이곤 했으며 무척 자존심이 강하고 대가 센 분으로 짐작이 가고는 했다. 걸음을 걸을 때면 쌩하고 바람소리가 나는 듯한 걸음걸이를 쿵쾅쿵쾅 걷고는 하였으며, 마치 가슴 속에서 천불이 나는 사람처럼 훌쩍 어디론가 며칠씩 다녀오시며 들락날락하곤 하였다. 그러면 주위의 다른 아주머니들께서 저 집 또 절에 갔나보다 하고 짐작하곤 하는 것이다. 주위에 말도 하지 않고 훌쩍 갔다가 돌아오곤 하였던 것이어서, 나는 아주머니가 언젠가는 집을 아주 떠나서 머리를 깎고 중이 되거나 보살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래도 그렇게 자주 들락날락하기는 하였어도 아무도 아주머니에게 바람이 났다거나 하는 식의 의심은 전혀 가져보지 않는 듯했다. 이때에 우리나라에도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에서처럼 사교춤이라는 것이 전파되기 시작하며 뭇 여성들이 영화배우 김지미씨나 남정임, 문희씨 등과 같이 올림머리에 가발 따위를 달고 머리카락을 고대기로 말아 한껏 치장을 하고는 양장을 쪽 빼고 다니며 거리의 유행을 쫓아 모양을 내곤 하였던 시기이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좋지 않은 소문이 나돌 수 있었던 시절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그렇게 자주 사흘이 멀다 하고 고자가 처갓집 드나들듯 뛰쳐나갔다가 들어오곤 하니 동네에서 여인네들의 입방아에 오르며 본인으로서는 예상치 않은 그런 누명을 받을 소지가 다분히 있기는 하였다. 그때만 해도 보통의 일반 가정의 여성들의 움직임에는 어느 집의 어느 누구나 할 것 없이 엄격함이 보편적으로 드리워져 있었고, 그래서 이웃의 일이라도 마치 자기들의 집안일이기라도 하듯이 염려와 걱정과 또 간혹은 필요이상의 쓸데없는 말들이 친절처럼 오고가던 시절이었다.

지금이야 아파트에 살면서 앞집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조차 모르고 또 안다고 해도 상관 안하는 것이 예의 이지만, 당시만 해도 대문도 없이 서로 앞뒤 집에 살면서 터놓고 지내며 오가는 정리란 다 그러한 가운데서 꽃처럼 피고 지며 이웃사촌이라는 말을 정겹게 나누던 시절이였으까 말이다. 그렇지만 아주머니는 이치와 사리에 밝아 그 일처리와 경우도 경우거니와 그 성정이 대단한 품성이었기 때문에 주변의 동네 아주머니들 누구라도 감히 그 분의 비윗장을 잘못 거슬렀다가는 아마 도로 잡혀서는 돌이킬 수 없는 드잡이가 나거나 머리끄덩이가 잡혀 동네 한복판에 패대기쳐질 각오를 하지 않고는 감히 근거 없는 말을 발설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라님도 듣지 않는 대서는 얼마든지 흉을 본다는 말이 공공연함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감히 아주머니를 아무렇게나 함부로 얕잡아 보지 못했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시원찮게 살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은 듯했다.

나는 아주머니 얼굴이 하도 무섭게 느껴져서 어떤 남자라도 아주머니에게 호감을 사지 않을 것으로 속으로 짐작하고는 하였다. 아주머니는 체격도 남달리 크고 어깨도 딱 바라져서 어지간한 남정네가 공연히 쓸데없는 짓거리로 농을 가벼이 걸기만 하여도 싸대기를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겁도 없어 보였고 무엇보다 당당한 여장부 같은 체격과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목소리도 크고 우렁차며 이목구비도 시원시원하고 큼직큼직하게 뻥뻥 뚫려 언뜻 호탕하게 생기셔서 나는 다소곳한 여자로는 전혀 느껴지지가 않았으나, 어려서부터 나를 마치 엄격한 친 이모처럼 예뻐해 주셨기 때문에 잘 따르기는 하였다.

어린 마음에도 나는 아주머니가 왜 사흘이 멀다 하고 집을 뛰쳐나가서 바람을 쏘이고는 돌아오거나 하며, 왜 그래야만 하는지 한편으로 걱정이 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에 그럴 만한 무슨 사정이 있으셨겠지만 그것이 그 아주머니의 속내를 무척이나 상하게 하는 그런 일이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존심이 강한 아주머니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끙끙 알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되어진다. 그러나 당시에는 아주머니의 그러한 무서운 모습 때문에 상대적으로 어린 눈으로 보기에는 언제나 잘 웃으시며 말씀이 별로 없으신 아저씨가 너무나 착하고 측은하게까지 느껴지는 것이었다. 왜 그렇게 느끼곤 하였느냐면 나는 놀이 등을 하다가 우연찮게 그 집안 풍경들을 훔쳐보곤 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집 창고와 나란히 붙은 쪼만한 방의 별채 옥상에 올려놓은 장독들과 더불어 따스한 햇살을 등에 지고 소꿉놀이 등을 자주하며 놀았는데, 그럴 때면 그 집이 아주 훤히 내려다 보였기 때문에 나는 나의 소꿉놀이보다 삶의 일상이 그대로 영화나 TV연속극처럼 펼쳐지는 그 집안의 풍경이 그렇게 재미나고 흥미롭게 들여다보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린 나에게 비춰지는 그 집안의 사소한 일상들은 동공을 크게 확장시켜 내 렌즈에 고스란히 담겨지며 그 집안의 분위기를 모두 파악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여름이면 큰 방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발을 반만 쳐놓았기 때문에 사람이 들락거리거나 움직이면 종아리부분의 털까지 송골송골 느껴질 만큼 가까이 혹은 보일 듯 말듯 들여다보는 맛이 자못 짜릿했던 것이다. 그 모습은 마치 만화영화의 한 장면을 클로즈업시켰거나 강시들처럼 다리몽댕이들만 콩콩 거리며 왔다 갔다 하는 것 같기도 하면서 재미난 풍경들을 자아내기에 그지없던 것이다. 어떤 날에는 낮잠을 즐기는 그 방안의 진풍경들이 낮게 쳐놓은 발조차 무색하게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길고 납작하게 제멋대로 널브러져 자는 그 집안 식구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며 마치 그 좁은 틈새로도 그 방안의 비밀스런 장면들을 모두 다 목격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도록 훔쳐보는 맛의 떨림을 더한층 가하기도 하였다. 위에서 비스듬히 맞은 편 집의 방안까지를 햇빛의 투시처럼 밀고 따라 들어가 슬쩍 집안의 풍경들을 들여다 봐가면서 벌이는 그 시절 내 소꿉놀이는 현실과 가상의 세계가 한데 어울려 서로 잘 버물리며 즐겁게 놀 수 있는 최대의 놀이였을지 모르겠다.

어느 날엔가는 비가 많이 내린 장마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럴 때면 18호인 우리 집과 19호인 그 댁 사이를 경계라도 짓고 있는 듯한 하수도의 구멍이 막혀서 그 집과 우리 집 사이의 앞마당에 물이 꽤나 고여 첨벙 빠질 만큼 되곤 하였다. 그럴 때면 나는 발에 물을 적시지 않고 놀기 위해 우리 집 뒤편으로 돌아가 그 장독대 위로 올라가곤 하였던 것이다. 그러면 신고 있는 하얀 양말에 물을 적시지 않고 재미난 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 이 날엔 비가 많이 오다가 잠시 환하게 해가 비치는 날로서 반짝 해가 뜬 상태에서 부슬부슬 비가 내리며 완전히 그치지는 않고 오락가락 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여니 때처럼 내가 옥상에서 내려다보니 그 댁의 아저씨께서 기다란 누런 고무장화를 신고 외출하였다가 들어오시면서 커다란 다발의 열무를 당시에는 공동시설장과도 같이 쓰이던 수도가로 가져와서 곁에 있는 **에 펌프질을 하면서 알이 제법 실한 열무를 벌건 고무다라이에 담아 놓고 박박 씻어대는 것이 었다. 앞마당의 진흙탕 물과도 같은 붉은 황토물이 고무다라이의 벌건 색깔 위로 넘쳐흐르고 그것들을 하나씩 건져낼 때마다 제법 실한 전구다마만한 알타리 무가 뽀얗게 씻기는 모습은 마치 아기를 말갛게 씻겨 타월에 싸서 보듬을 때의 뽀얀 모습처럼 여간 예쁘고 탐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남자가 여자나 하는 그런 일에 손을 적신다는 것 자체를 몹시도 의아하게 생각하며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우리 집에서는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거니와 남자도 김칫거리를 다듬고 씻어서 김치를 담을 수 있다는 것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신기한 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주 어린 아이의 의식 속에도 따로 보고 듣고 배우지 않아도 이런 생각이 드는지 혹시 내 이야기를 읽고 있는 독자 중에 누가 고개를 갸우뚱 거릴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나중에 내가 조카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목격한 바로는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하겠다.

나의 큰 오라비는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에 결혼을 하여 3년 후에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우리 가족은 큰 오빠 내외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조카아이는 어머니의 손에서 자란 것이나 다름없었고, 온 집안의 재롱둥이로 가족들 틈에 에워싸여 키워졌다. 그런데 이 아이가 첫돌 정도의 겨우 엄마 아빠나 간신히 따라할 정도의 나이에도 아주 남다르게 확실한 기질을 보인 적이 있는데 유난히도 결벽증이 심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러한 성격들은 성년이 된 지금에 와서도 별로 바뀌지 않았는데 천박하게 화려하거나 사치스러운 것을 유달리 좋아 하지 않았고 식구들 모두가 보기에도 마치 유별나게 경멸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의사표현을 적극적으로 하던 모습이 내 기억의 저편에 또렷이 남아 있으니까 말이다.

나도 어려서부터 이런 보이지 않는 기질이나 환경에 부합하는 어떤 성향이 있어서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내 보기에는 아저씨가 열무를 씻는 것이 이상하게 보였고, 확실히 그런 아저씨의 모습은 한편으로는 신기하고 또 한편으로는 불쌍하게 안됐어 보이는 장면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아저씨는 왜 늘 아주머니와 싸워도 한마디 소리가 없고 아주머니 목소리만 터져 나오며, 지금도 왜 저 방안의 언니들을 깨우지 않고 아무 말도 없이 의례 당신이 해야 하는 일 마냥 서둘러 열무다발을 다듬고 씻는지 담장을 넘겨다보듯 얕으막한 옥상의 장독들과 어우러져 숨바꼭질하며 내려다보는 나의 어린 마음은 의아한 생각이 들고는 하였다.

당시 아저씨는 한국전력에 다니셨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어떻게 남자가 퇴근해 들어오면서 배추 따위를 사가지고 그것을 들고서 집으로 들어올 수 있는지 여간 신기한 모습과 일이 아니었고 또 그것을 옷도 채 갈아입기도 전에 들고 나와서 단숨에 다듬고 씻어내는 모습이 재미있고도 신기하였던 것이다. 나는 혹시나 아저씨가 나를 보시고 창피해 하실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저씨가 열무를 다듬고 박박 씻어대는 그 모습을 똑바로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하고 다른 일을 하며 노는 양 괜히 이리 저리 움직이고 왔다 갔다 하거나 혼자서 중얼거리면서 마치 소꿉놀이에 빠져있는 듯이 나도 모르게 가장하여 연출을 하며 흘깃흘깃 넘겨다보듯 내려다보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아저씨가 무척 착하다고 내 기억의 어느 한켠에 단정하여 자물쇠로 채우듯 단단히 증거하며 보관하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운명의 아이러니와도 같이 나중에 이분께서 나의 시아버지가 되었을 때에도 나는 이 장면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내가 결혼이란 것을 앞두고 처음 정식으로 인사를 갔을 때 이 자상하고 정감 넘치며 씩씩한 어르신은 아파트의 작은 방에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누워 눈만 꿈벅꿈벅 입만 겨우 달싹이고 계셨다. 아마 당시에 오랜 중풍으로 누워계신 관계로 정신이 오락가락 하다는 가족들의 사전 언질을 듣고 그분께 정중히 인사를 올리러 방에 들어갔을 때에도, 그 초라하고 조그맣게 오그라져 붙은 몸뚱이에서조차 나는 젊어 씩씩하고 친절하던 아저씨의 모습을 떠올리며 아무 기약도 없던 그 옛날의 기억의 한 장면을 더듬어 떠올리고 있었다.

아까 갑자기 왜 뇌신이라고 하는 이 약이 떠올랐는가 하면 최근의 나의 버릇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약간의 두통을 느껴온 나는 머리를 수건으로 단단히 묶고서 책을 보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곤 한다. 어린 시절 어느 집 아무개는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여 판검사가 되었다더라 라는 식의 이야기를 어른들께로부터 종종 듣곤 하였는데, 나도 그렇게 해봐야지 왜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는가가 의문이 들어 따라해 본 적이 있다. 머리에 띠를 두르고 공부를 하면 저절로 공부가 잘 되나 의문을 품으면서 말이다. 한편 어른들의 그런 말씀을 들을 때면 내 머릿속에서는 늘 머리를 싸매고 두통약을 한움큼 혹은 수시로 삼키던 아주머니 모습이 더 먼저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머리를 싸매는 모습을 보면 그 두 장면은 늘 내 기억에서 동시다발로 떠오르곤 한다.

그런데 살다보니 어느 날부턴가 나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도 하고 머리통이 터져나갈 듯한 두통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간간히 아주머니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분은 그 후 20여년이 훨씬 넘어선 어느 날 나의 시어머니가 되시기도 하였으니, 세상일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우연과 필연의 반복적 어울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 댁의 외아들과 혼삿말이 오가게 되면서 예기치 않은 여러 우여곡절을 겪게 되었는데, 마침 함 들어오는 날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불상사가 발생하여 그 후로부터는 운명의 두통을 껴안고 살아가게 되었다. 물론 나는 아직 약을 지속적으로 복용하며 생활하지는 않는다. 처음 얼마간은 병원의 처방과 지시대로 치료를 받았고 이내 나을 줄 알았던 것이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는 외상성증후군으로 자리를 잡고 나타나, 어느 시점 어느 강도만 되면 나도 모르는 사이 두통을 일으키곤 하는 것이다. 즉 타박상이 가해진 그 부분이 마치 볼록이 올라온 듯해지며 콕콕 쑤셔대거나 잊은 줄 알았다가는 무심결에 그 통증이 튀어나오곤 하는 것이다. 그럴 때면 나는 잠시 취침에 들어가 옆으로 누워 한쪽 머리 측면을 베게 위에 꼭 누르듯 압박하여 실컷 한숨 푹 자고 일어나거나, 수건의 대각선 방향을 길게 늘어뜨려 일단 목에 걸고 세수할 때처럼 이마 위 머리털이 나기 시작한 부분에 바싹 조여 매듭을 지으면 시원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나 직장 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할 때면 그리할 수 없으니 약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나의 컨디션이 타격을 받거나 세상일에 우울하게 부딪히지 않으면 발생하지 않는 일이니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나의 머리 수건은 공부를 할 때는 일단 주위의 머리카락이 얼굴에 들러붙지 않게 하며 작심하고 일에 몰입하기에 이 띠를 두르는 것은 유용하게 쓰이곤 한다. 머릿속을 단단히 부여매고 집중력을 높이기에 그만이어서 나는 이 모습을 하고 책읽기나 글쓰기를 하고는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간단해 지고 압을 넣어 당겨서 양끝을 묶으면 지압을 할 때처럼 시원하고 정신을 집중하는 느낌이 들어 나는 집에 있을 때면 세면 후부터 계속 이 모양으로 있을 때가 많다. 하지만 이 머리 모양새는 남들 보기에 그다지 좋은 것은 아니고 게다가 갑자기 외출을 할 일이 생기거나 하면 난감하기 짝이 없게 된다. 온통 머리카락이 말아 올린 수건에 짓눌려 있기 때문이다. 내 경우에는 가는 띠를 두르는 것보다 볼륨감 있는 수건을 한 5센티미터 가량으로 접어서 묶으면 안정감 있고 훨씬 시원하고 편하다.

머리통 전체를 받쳐주는 느낌이 드는데다가 여기저기 골고루 혈 자리를 압박하여 누르며 그것이 오히려 순환을 돕는 역할을 해주는 것 같다. 여하튼 나는 특히나 변.경.연 연구원 1년 동안을 편안한 시간대에서는 거의 이 모습을 하고 지내며 과제를 수행하여왔다. 물론 느닷없이 약속이 잡힐 때면 망가진 머리카락의 볼륨으로 인해 반드시 머리는 다시 감고 외출을 하거나 모자를 뒤집어쓰고 나가야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책을 읽고서 기다란 인용문 따위를 옮겨 적을 때면 나는 작심하고 머리를 수건으로 질끈 동여매는 것이다. 그럴 때 머리카락만 고무줄로 처매는 것보다 머리통 전체를 감싸고 조여 바싹 묶으면 오래도록 편안한 마음으로 책읽기와 글쓰기에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집중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는 듯해서 이제는 아주 습관이 되어버렸다.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가 문득 전화 등의 연락을 받거나 외출을 하여야 하게 되면 솔직히 나가기가 귀찮아질 때가 더러 있다. 더군다나 하던 일을 멈추고 밥벌이 등의 걱정을 하며 의무적으로 어디를 가봐야 할 때는 정말이지 움직이기 싫어지는 것이다. 그냥 이 모양 이대로 지칠 때까지 혹은 질력이 받칠 때까지 곧장 쉼 없이 내닫고 싶은 심정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자전적 소설인지 소설적 자전인지 온통 분간이 안가도록 자연스럽고 맛갈나게 자서전을 집필하여 20세기 남미의 위대한 작가로 정평이 남과 동시에 노벨문학상 수상자이기도한 작가 가브리엘 마르케스는 그의 작품에 대한 열정을 표현하면서 자기는 한 작품을 끝내고 다른 작품을 쓸 때 쉬지 않고 바로 다른 글을 집필해 나간다고 한다. 왜냐하면 ‘손의 열기가 식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라고 설파하면서.
이 작가의 이 말은 나에게 심금을 울리기에 그지없다. 나의 경우는 작가적 기질일까 게으름의 다름 아닌 표출일까를 생각해 보게 하면서 마치 내가 그 작가의 표현을 이해하기라도 한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솔직히 후자의 경우에나 해당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 능력과 재능은 차치하고라도 글쓰기와 함께 휴일 한나절 옛 추억과 마주하여 이런 저런 생각들을 더듬어 들추어 보니 작가의 심정에 빠져드는 듯 즐거워 하면서 말이다.

오늘 나의 머리를 고정시키는 수건과 그와 함께 떠오르는 아주머니의 두통에 얽힌 사연은 유년의 내 기억의 저편을 서성이는 똑같은 모습의 다른 얼굴들인지 모른다. 점점 아스라해져 가는 기억 한편에 둘로 나누인 인생의 장면들은 인생의 지난한 어느 길모퉁이에서 마주선 똑같은 모습의 다른 입장과 다만 세월의 간격인지도 모르겠다. 한때 가냘픈 끈처럼 허술하게 맺어졌다 속절없이 끊어져버린 덧없는 인연도 이제는 타인의 모습으로나 비껴가며 스치듯 엇갈리면서 인생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리고 마는가. 기억의 저편을 홀연히 걸어가고 있는 중년 여인네를 비추는 빛바랜 추억은 인생의 한복판에서 맞닥뜨려지는 아주머니의 젊은 시절임과 동시에 바로 내 얼굴이던가. 마침내 운명의 사슬을 한 가닥 한 가닥 풀어 정리해 보고자하는 중년 후반에 들어선 여인의 상념은 기억의 한 모퉁이와 짧지 않은 현상들에 파묻힌 세월을 돌아 머리를 편하게 하기 위해 틀어 죄는 수건에 돌돌 말려지며, 여인의 두통을 지압하듯 하나하나 차츰차츰 다스려져 낫게 하려는 것이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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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2.27 16:55:37 *.70.72.121
아이고... 글이 궁둥살에서 나왔다고 설명하시네요. 저, 이 글 아직 쓰고 있는 중이었는데요.(극적...) 고칠 부분이 많아요. 아시죠? 쓰면서 교정해 가는 저의 글쓰기.^^ 늘어지고 반복되고 중간 중간 생각나는 일화들에 미끄러지고 빠지는... 아직 매끄럽지 못한 글입니다. 부끄럽습니다. 써니는 지금 글쓰기를 향한 전투를 위해 몸을 풀고 있답니다. 받들어 총! 하면서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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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2.28 09:47:49 *.70.72.121
여기에는 교정을 해볼 수 없지만 저희들의 연구원 컬럼에서는 지속적으로 읽어가며 손을 보고 있습니다. 매끄럽지 못한 문장을 다듬어 가고 있으니 연구원 칼럼란을 보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내용은 그게 그건 데 왜 이토록 부끄러운지요.^^ 좀 더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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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장
2008.03.13 23:04:46 *.180.230.128
미니 시리즈 드라마 한 편을 본 듯합니다.
글쓴이 표현처럼 약간 중복되는 듯한 느낌도 있지만,
스승님의 말씀처럼 글을 쓸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나신 것으로 보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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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라
2008.03.19 09:50:41 *.131.195.66
시각적 묘사가 뛰어나시네요. 매우 정적인 영화 한 편을 보는 듯 써니님의 글에는 집중케 하는 힘이 있어요. 참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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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26 10:53:04 *.36.210.80
아니, 언제 함장님께서 여기까지 출타를... 조만간 뵐 수 있겠죠?

강소라님, 고맙습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한 것을 알아요. 자주 들리시며 직언을 남겨 주시면 미약한 글쓰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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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축★ 정경빈 연구원 첫 책 : 서른, 내 꽃으로 피어라 file [42] 박승오 2009.06.03 15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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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시야, 너는 참 아름답구나!> 시집 출판 기념회 안내 [1] 신재동 2009.05.26 10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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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5 기 연구원 2차 합격자 발표 [33] 부지깽이 2009.03.11 11278
60 회사에 있는 동안 꼭 해봐야 할 멋진 일 [56] 부지깽이 2009.02.12 155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