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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1일 12시 46분 등록
'살다보면'에 실려 있는 글 하나를 올려 둡니다.

종종 내게도 햇빛 한모금이 밥보다 더 필요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그 햇빛 한 모금 때문에 다시 살아나곤 합니다.
인생은 다시 시작하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쓸데 없이 긴 이유가 무엇이겠어요 ?
여러번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는 것이지요.

밥과 한 줄기 햇빛 사이에서 그네를 타듯 즐기다 보면
언젠가 바람이되어
자유로워지리라.

시를 써야 시가 되느니
햇빛 같은 시가 되느니.


***************************************************************


한가지씩만 할 수 없을 때가 대부분이다.
얼마나 많은가 동시다발로 진행되는 일들을 우선순위를 가려내어
이를 달성하기 위해 고분분투 격무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부러워 하며 사는
부끄러운 직장인이고 주부다.

그런데
나는 욕심을 너무 부린다.
계획이 거창하다.
그러나 그 거창한 계획과 이상들을
오늘이라는 시간속에서 알맞게 재배열시킬 능력도 체력도 가늠하지 못한다.
아마 나는 그걸 무시하고 살고 있는지도.
그렇지만, 내 목마름은 그 거창함을 갈구한다.
이상하다. 참
왜 불을 안고 사는지 불을 끄고 잠들면 될 것을.
그런데 그럴 수 없다.
그 불씨는 꺼진 듯하다가 풀씨하나가 어느 여름날에 이미 제 사계절을
다 보내고 어느 비탈 한면를 점령하는 대단한 기세를 세운다. 그 여름날에
싹도 틔우고 줄기도 세우고 잎도 내고
무서운 속도로 성장해 조잡한 꽃 같은 것을 매달고 있다가
보잘것없는 풀씨들을 어찌나도 많이 달았던지 축늘어지더니 시들어 죽는 것과 같다.

지키지 못 할려면 계획을 왜 세우나 싶어 아예 계획조차 세우지 않는다.
궁금하다 다른 주부들은 어떻게 집안일과 가족들 사이에서 리듬을 만들어 나가는지.
자기 자신의 힘을 알맞게 배분하면서.

그러나 성과는 포기해도
내가 놓지 않는 것은 그 과정의 진실이라는 것인데
모르겠다. 내가 직장생활을 오래 이어가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이다.
부끄럽게도. 정말 어이없게도. 열심히한다. 최선을 다한다. 성실하게 한다. 그런 모든것들이
후공정 계획성과주의 앞에서는 그래서 뭘 기여했냐? 라는 물음에 직면해서 수치를 입는다.

성과없는 지난 15년은 반복에 지나지 않고
내가 기대했던 현재 하고 있는 일들도 그저 안해도 될만한 행정처리에 지나지 않는 것을
업무가 바뀐 뒤 곧 알았다. 그러나 능력 없는 나로서는
또 시간적으로라도 기여할 수 없는 엄마라는 역할속에서
소모적인 일들 속에 둘러싸여져 살고 있다.

함께 일한 모대리가 너의 성과를 남이 가져가게 그냥 둔다고
자신을 알리지 않는 나를 뭐라고 하면서 자기일처럼 화낸 적이 있다.

왜 나는 그러지 않았을까.
그 일에는 내가 빠져 있다. 내 존재가 내 영혼이
물론 열심히 하지만 그건 누가해도 꼭 그와 같은 결과를 낼 수 있는 범주의
일인것이다.
그런 일을 내가 한 일이라고 어필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그리고 정작 그 일을 기획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고
그 일을 그렇게 기획할 수 있는 필요를 읽을 줄 알고 해결방법을 생각해낸 게 능력이지
그가 풀어낸 수수께끼를 볼 수 있는 자료로 만들었다고 해서 그것이
내가 한 일은 아니다. 물론 볼 수 있는 자료로 만드는 데는 참으로
허무한 반복적인 일들이 포개지고 덧씌워진다.

나의 직속상사들의 직장생활을 보면.. 그 일을 받을 때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 꿈을 포기한 죄로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내 또 다른 꿈을 위해서.
현실에서 꿈을 꾸었다. 비현실적인 꿈들을.
과대망상증이라고 할까봐 섣불리 그 누구에게 말하지 못하고
그저 신부화장을 해 준 언니한테만 살짝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 언니가 그럼 그림을 그리고 옥상위에 벽화를 그리고 버려진 유리위에 오브제를 만들고 때론 한줄의 편지를 쓰는 자신도 과대망상증이란다.
우힛. 나를 이해하려고 지지해 줄려고
너는 할 수 있다고 까지도 힘주어 말한다.

그러나, 현실의 나는..
어느 아침 회의, 쓴 커피와 쿠키를 넣으며 아귀아귀 일을 성사시킬 상사들을 위해
-그들은 내가 왜 쓸데없는데 성과도 없는데 그런짓을 하는지 알 수가 없고
알 필요도 못느끼고 그렇지만, 나는 어쨌든 회사에 은혜를 입었다.
그건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의 움직이셨다고밖에 달리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고급수제쿠키와 유기농바나나와 유기농 커피를 내어 놓는다.
외국손님이 블랙티 곧 없는 홍차를 찾으면.. 사다라도 준다.
마이 플레졀을 외치면서.

그러면 안되는가 시키는 일이라고 기분 나쁘게 하면 내가 너무
하챦아지는 것 같아서.
그런 업무에 바뀌어서 배전시설을 배우는 기쁨도 잠시 더 깊이 들어가 공부할 뭉텅이 시간이 (학원이라도 다닐.. 전문서적들을 혼자 봤지만 너무 어렵게 생각해서 인가 이해는 되지만 실무와 연결을 못시킨다.) 그대신 그 말단 전기배분시설에서 나는 인생을 읽기도 한다.

모르겠다. 그러곤 실무와도 아무런 상관없는 공부를 한답시고 기초물리학책
공고생들이 보는 고래고적 전기와 자기 강의록을
어둑한 성북동 공부방에서 보았던 처녀시절이 지나간다.
고래기름에 불켜던 아득한 시절의 이야기들에서 전기 자기의 힘이 땅거죽 깊은
곳에서 이미 우주에 형성되어 있는 힘을 발견해 그것이 빛의 속성과 연결시킨
창조적 개인들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흥분한다.
그러나 이미 세상은 공기와 물같이 전기를 소비한다.
내가 그것에 대해 몰라도 되지만 없으면 안된다. 그러나 그것은 갖추어진
자동으로 켜지게 셋팅된, 아무런 감흥이 없는 많이 쓰면 돈이 더드는
그러나 함부로 쓰면 위험하기에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되기도 하는
흉한 전기설비들 전봇 대위의 오선지처럼 나란한 전깃줄들이
달과 해 구름과 별…
어떤 짐승의 등줄기 같은 산들의 어깨동무
참새나 까치 노래를 그려내는 것을 본
나 같은 사람의 상상력 속에서나
관심이 가지 그 회색시설은 그 누구에게도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사명인 것마냥 혐오스러워지지 않으려 하지만 결국 시선을 어지럽힌다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듣는다. 보기 싫게 땅속에 묻으면 안되나.. 하는 말을.

분명 나는 오늘도 엘리베이터에 오르면서 내 맘속의 신발 두 짝을 벗었다.
또 나의 열심을 바칠 마침내 만나질 그 꿈방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출근길 아침달을 꼿은 메타세콰이어나무를 보았던 내 눈이 금새 싸늘히 식는다
붉었던 동쪽하늘 프라이팬도 식었는지 그 식은 달걀프라이가 하얗게 되더니
회색속으로 사라진다. 소금별 두개랑 같이.

점심을 바쁘게 털어넣는 구내식당을 피해 빌딩밖으로 나간다.
내겐 햇빛 한모금이 밥보다 더 필요하게 느껴진다.
IP *.128.229.215

프로필 이미지
써니
2008.02.11 23:22:21 *.70.72.121
아무리 읽어도 여자라고는 상상이 안돼죠. 얼마나 폭이 넓은지...
그녀의 전기 배선엔 인생이 얼기설기 널려져 있고 그 속에서 아이는 무럭무럭 잘도 자란다.
프로필 이미지
eun
2008.02.27 21:05:11 *.155.7.112
왜 불을 안고 사는지 불을 끄고 잠들면 될 것을.
이상하다 참.

밥과 한 줄기 햇빛 사이에서 그네를 타듯 즐기다 보면
언젠가 바람이되어 자유로워지리라...
자유로워지리라..
언젠가...

햇빛 한모금이 밥보다 더 필요하게 느껴지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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