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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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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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20일 11시 04분 등록


1) 내가 알고 있는 세계사중 가장 인상 깊은 장면 하나를 묘사할 것
( 1페이지- '묘사'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알지 ? , 이순신 1인칭 시점으로 묘사)

1597년 7월 16일 조선 수군은 칠천량에서 대패했다. 전함 100여척 중 12척을 제외하고는 모두 침몰됐고, 병사들은 모두 죽거나 도망가 버렸다. 우리 수군은 완전히 궤멸 상태에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백의종군하던 나를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한다는 임금의 유지를 받았다. “아! 참 답답한 노릇이다.” 하지만 유지를 받았다는 장계를 쓰면서 난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신의 몸이 아직 살아 있는 한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진 수군과 남아있는 12척의 배로 총공세를 펼치며 달려드는 왜놈 수군을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 적의 총공격이 있기 전날 밤 나는 장수를 모아 놓고 말했다. “병법에 이르기를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고 하였다.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는 모두 오늘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너희 장수들이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기면 군율대로 엄정히 시행하여 작은 일이라도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고 엄하게 당부하였다.

9월 16일 망보던 자가 혼란스럽게 뛰어들어와 보고한다. “수도 없이 많은 적선이 우리 진 쪽으로 달려오고 있습니다.” 바다로 나가니 130여쳑의 적선이 우리 쪽을 향해 오고 있다. 우리 함대 규모의 10배다. 여러 장수들은 양쪽의 전력을 비교하면서 두려워하는 빛이 역력하다. 이렇게 모두 두려워 할 때는 내가 앞장서서 나가야 할 때다. 나는 노를 빨리 저어 앞으로 나가면서 지자, 현자 등 총통을 마구 쏘아댔다. 그러자 적의 무리가 감히 대들지 못하고 주저주저하고 있었다. 다시 뒤를 돌아서 부하들의 모습을 보니 얼굴이 하얗게 질린 상태다. 이놈들은 지금 상황을 도저히 게임이 안 되는 승부로 미리 단정하고 있는 게다. 이미 마음속으로 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들을 보고 힘껏 외쳤다.“적선이 비록 많다 해도 우리 배를 바로 침범하지 못할 것이다. 조금도 마음 흔들리지 말고 힘을 다해 적을 쏘아 맞혀라!” 하지만 내 말이 먹혀들어가지를 않는다. 군사들뿐 아니라 장수들도 완전히 겁에 질린 상태다. 우수사 김억추가 탄 배는 멀리 떨어져 가물가물했다. 배를 돌려 중군 김응함의 배로 가서 먼저 목을 베어 내걸고 싶었지만 내 배가 머리를 돌리면 여러 배가 점점 더 물러나게 되고, 적들이 더 덤벼들 것 같아서 나가지도 돌아서지도 못할 형편이었다.

호각을 불어 중군에게 기를 세워 군령을 내리도록 하고 또 초요기를 세웠다. 그러자 중군장인 미조항 첨사 김응함의 배가 차츰 가까이 왔다. 거제 현령 안위의 배도 가까이 왔다. 나는 배 위에서 소리쳤다.“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간다고 어디 가서 살 것 같으냐?” 그러자 안위가 황급히 적선 속으로 뛰어들었다. 또 김응함에게 “너는 중군으로서 대장을 구원하지 않고 멀리 피하니 죄를 어찌 면할 것이냐? 당장 처형하고 싶지만 전세가 급하니 우선 공을 세우게 하겠다.”하고 소리쳤다.

그리하여 두 배가 적진을 향해 돌격하는데, 적의 배 세척이 안위의 배에 달려들면서 왜놈들이 개미떼 처럼 들어붙었다. 안위의 군사들은 죽을 힘을 다해 싸웠다. 배에 오르려는 왜놈들을 몽둥이나 돌맹이로 내려치고, 긴 창으로 찔러댔다. 부하들이 기운이 빠지는 것 같아 내가 바로 쫓아 들어가 빗발치듯 총통 과 화살을 마구 쏘아댔더니 적선 세 척이 거의 뒤집혀 갈 듯 했다. 이때 녹도만호 와 평산포 대장의 배가 가세하여 세척의 적선을 박살냈다. 적은 한 놈도 살아남지 못했다. 그런데 왜인 준사가 “저기 물에 빠져 죽은 놈이 적장 마다시입니다.” 라고 하지 않는가. 그를 갈쿠리로 낚아 올려 토막토막 잘라서 뱃머리에 걸었더니, 이를 보고 적들의 기세가 많이 꺾였다. 우리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일제히 북을 두드리고 함성을 지르면서 일자진을 갖춰 적에게 달려들었다. 여러 줄로 도열했던 적의 배들이 당황하여 한꺼번에 움직이지 못하고 우리가 빗발치듯이 쏘아 대는 대포와 화살 세례를 받고 박살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31척을 깨뜨리자 나머지 적선들은 도망하기 시작했다. 완벽한 승리였다.


2) 내 개인의 역사 속에서 가장 중요한 도약이 이루어 졌던 장면에 대한 묘사(1page)

대학을 졸업하고 국민연금공단에 창립 멤버로 입사 했다. 나는 대학에서 수학과를 중퇴하고 전산학으로 전공을 바꿔 졸업했고 대학 전공에 따라 전산직으로 입사했다. 신입직원 교육기간 중 재정추계(財政推計,Financial Projection)란 업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재정추계란 미래에 발생 할 국민연금기금재정의 수입과 지출을 계산하는 업무를 말한다...‘2060년이 되면 기금이 고갈이 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보험료를 좀 더 많이 내고, 연금급여를 줄이는 국민연금 개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았을 게다. 보험료로 얼마를 내고, 나중에 얼마의 급여를 받아야 할 지 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다양한 방안들이 검토된다. 재정추계는 이런 방안들을 검토해서 국민연금제도를 장기적으로 또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수리적(數理的) 기초를 제공하는 업무라고 이해하면 된다.

난 대학 다닐 때 컴퓨터시뮬레이션 과목을 재미있어 했다. 현실세계의 어떤 부분을 컴퓨터 모델로 만들어 놓고, 발생 가능한 여러 가지 상황을 가정해서 모의실험(Simulation) 하여 각각의 가정에 따른 결과를 예측해 보는 건 재미난 일이다. 게다가 다양한 결과 중 하나(최적의 결과)를 선택하여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게 되니 현실적으로 의미 있는 작업이기도 하다. 난 내가 배운 수학과 전산 관련 지식을 활용하여 재정추계 업무를 하면 재미날 거라고 생각했다. 또한 이 업무가 국민연금 제도 운영에 아주 중요한 업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교육을 마치고 업무분장을 위한 개인 면담이 있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재정추계업무를 하고 싶습니다.”고 했고, 다행스럽게도 그렇게 됐다.

이렇게 재정추계업무를 담당하게 된 후, 추계모델을 만드는 작업이 시작됐다. 모델을 만드는 건 정말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그때까지 우리나라에서 재정추계모델을 만들어 본 경험은 '88년 국민연금제도를 시행하기 위해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만들어 본 것이 전부였다. KDI 추계모델, 국제노동기구(ILO), 미국 상무성에서 제작한 재정추계 프로그램을 구해서 소스를 분석하고, 일본의 재정추계모델을 연구하는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자료를 구하고 연구했다. 궁금한 점이 수시로 나타났지만, 누구에게 물어 볼 사람도 마땅치 않았다. 모르는 건 시간으로 때우고 몸으로 부딪히며 깨우쳐갔다.

3개월이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로 밤낮도 주말도 없이 일했다. 그리고는 향후 10년을 추계하는 중기(中期)재정추계 결과가 나왔다. 처음에는 어디가 이상한지 정상적인 결과치가 나오지 않아 2주정도 여러 부분을 수정하고 보완했다. 그리고 최초로 의미 있는 결과를 받았을 때의 기쁨이란! 그리고 그 Know-How를 바탕으로 2개월의 추가 작업을 통해 향후 60년을 추계하는 장기(長期)재정추계모델도 만들어 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실무에 적용되는 재정추계모델을 내 손으로 직접 만들었다. 그리고 이 모델에서 나온 결과를 바탕으로 국민연금공단의 예산 및 사업계획이 수립된다는 것은 큰 보람이었다.

3) 도약이 이루어 진 다음 그것은 지속되었나 ? 아니면 중단 되었나 ?
도약이 이루어 진 다음에 새로운 차원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장악해야
할 요소는 무엇일까 ? (1/2 페이지 이상 무제한)

작업을 끝내고 몇 개월 지났을 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업무지원 요청이 왔다.‘국민연금장기재정전망’이란 용역사업을 하면서 제작하고 있는 추계모델이 작동을 하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프로그램을 담당했던 연구원과 수차례 협의를 하고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해 주었지만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얼마 후 프로젝트 팀장이던 정경배박사님이 뵙자고 해서 찾아가니 ‘아무래도 안 되겠다’ 면서 연구팀에 합류해서 직접 프로그램을 작성해 달라는 부탁을 하셨다. 이렇게 해서 또 다른 프로젝트팀의 일원으로 작업이 시작되었다.

3개월여의 고생 끝에 보건사회연구원의 재정추계모델(MK-90)을 완성했다. 이 모델의 신뢰도가 우리 공단에서 작성한 모델보다 우수하여 그 이후 공식적인 국민연금 재정추계모델로 활용하게 되었고, 연구원의 보고서 책자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도 보람이었다. 인구추계 등 다양한 수리모델을 만들어 보았다는 경험 많은 연구원이 포기할 수밖에 없던 상황에서 구원투수로 나서 일을 해결 할 수 있었던 것은 초기 TFT에서 겪었던 다양한 시행착오와 고민들의 결과였다. 힘은 들었지만 추계 담당자로서의 자부심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재정추계업무를 하면서 재미와 보람을 느끼며 전문성을 키워가고 있던 당시, 우리 직장에서 획기적인 계획이 하나 만들어졌다. 국민연금 제도운영 전문가를 육성한다는 목적으로 직원 중 한명을 선발해서 2년간 해외연수를 보낸다는 계획이었다. 모집 대상 업무는 ‘기금운영 및 재정추계’로 되어 있었다. 입사 후 계속 재정추계 업무를 해 왔던 덕에, 운 좋게 연수 대상자로 선발되었다.

‘93년 여름부터 시작한 연수생활은 내게 또다른 흥미와 보람을 안겨주었다. 5년간 일하면서 쌓여왔던 여러 가지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우리가 만들었던 추계 모델이 별 문제가 없고 어떤 면에서는 아주 우수한 모델이라는 확신을 갖게 하는 과정이었다. 미국 인디애나주의 한 주립대학원에서 보험수학(Actuarial Science)을 공부했고, 미국 사회보장청 재정추계실(Office of Actuary)에서 실무연수를 하면서 미국의 추계 전문가들에게서도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는 말처럼 입사 후 면담에서‘재정추계업무를 하고 싶습니다’라는 말 한마디가 내 인생에 두 가지 커다란 보람과 재미를 안겨주었다. 하나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실무에 적용되는 재정추계모델을 만들고 운영하여 이 업무의 기초를 닦았다는 점이고, 둘째 그것이 이유가 되어 2년간 해외연수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추계 담당자로서 일했던 10여 년 간은 남들이 가보지 않았던 길을 외롭게 걸었던 어찌 보면 답답하고 힘든 기간이었다. 하지만 내 손으로 만들어진 추계결과로 제도운영의 기본 틀이 만들어진다는 자부심은 내게 큰 보람을 주었다.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도약이라고 생각할 만한 경험이 몇 번 있었다. 대부분 힘들고 어려운 업무를 맡은 경우,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난 후에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곤 했다. 난 이런 느낌을 도약이라고 생각한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업무는 일정 주기를 갖고 반복해서 찾아왔다.

도약을 이루기 위해서, 또 도약이 이루어진 후 새로운 차원을 유지하기 위해서 장악해야 할 요소로 난 열정, 끈기, 업무지식과 지혜 그리고 사랑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 요소들은 나이가 들면서, 직위가 올라가면서 조금씩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입사 초기에는 일에 대한 열정과 끈기, 업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면 충분했다. 실무 담당자로 일 할 때는 내가 이 분야에서, 적어도 직장 내에서는 최고 전문가란 생각으로 일했다. 자신감에 차 있었고, 몸을 사리지 않고 일했고, 내 업무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많이 알았다. 그래서 누구 앞에서도 떳떳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직위가 올라가다보니 그것으론 부족했다.
부장 진급을 하니 팀원이 16명으로 늘어났다. 이전처럼 내가 모든 업무를 꾀차고 있을 수 없었다. 모든 업무를 알 수 없었다. 업무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내가 관심 갖고 추진해야 할 업무 위주로 시간을 할당했다. 그렇다고 후순위의 업무들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 업무들은 안정화(Routine)화 되어 있지만 언제든지 문제가 발생 할 수 있는 개연성이 있고 주기적으로 문제점을 발굴해서 개선해야 할 업무이기도 하다. 세세하게 신경을 쓸 수 없지만 그런 업무도 무리없이 잘 해나가기 위해서는 팀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적극적인 자세로 일하게끔 만드는 리더로서의 역량이 더 필요하게 되어 갔다. 결국 경영관리, 리더십 등이 중요한 요소로 부각된다.
그런데 조직을 관리하고, 훌륭한 리더가 되는 건 지식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여기엔 지혜가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경영관리 기법을 도입해도 그것을 조직 내에 뿌리 내리게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혜만 가지고도 부족하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부장(팀장) 진급 후 몇 년이 지나서 매너리즘에 빠진 적이 있었다. 왜 그런가? 를 찾다가 난 그 원인을 “사랑하는 마음의 부재”에서 찾았다. 도약을 하는 것이 나만을 위한 도약이면 그 도약은 힘을 잃게 된다. 도약이 단지 내가 몸담고 있는 우리 조직만의 도약이라면 그 도약은 지속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진정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내가 하는 업무와 소속된 회사를 사랑하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을 사랑하고, 우리 사회,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 그리고 이런 사랑을 지속적으로 키워갈 수 있을 때 나는 식지 않는 열정을 갖을 수 있고, 새로운 도약을 이루어 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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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2 19:46:22 *.36.210.11
1. <호각을 불어 중군에게 기를 세워 군령을 내리도록 하고 또 초요기를 세웠다. 그러자 중군장인 미조항 첨사 김응함의 배가 차츰 가까이 왔다. 거제 현령 안위의 배도 가까이 왔다. 나는 배 위에서 소리쳤다.“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간다고 어디 가서 살 것 같으냐?” 그러자 안위가 황급히 적선 속으로 뛰어들었다. 또 김응함에게 “너는 중군으로서 대장을 구원하지 않고 멀리 피하니 죄를 어찌 면할 것이냐? 당장 처형하고 싶지만 전세가 급하니 우선 공을 세우게 하겠다.”하고 소리쳤다.>

3. <도약을 이루기 위해서, 또 도약이 이루어진 후 새로운 차원을 유지하기 위해서 장악해야 할 요소로 난 열정, 끈기, 업무지식과 지혜 그리고 사랑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 요소들은 나이가 들면서, 직위가 올라가면서 조금씩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부장(팀장) 진급 후 몇 년이 지나서 매너리즘에 빠진 적이 있었다. 왜 그런가? 를 찾다가 난 그 원인을 “사랑하는 마음의 부재”에서 찾았다. 도약을 하는 것이 나만을 위한 도약이면 그 도약은 힘을 잃게 된다. 도약이 단지 내가 몸담고 있는 우리 조직만의 도약이라면 그 도약은 지속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진정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내가 하는 업무와 소속된 회사를 사랑하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을 사랑하고, 우리 사회,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 그리고 이런 사랑을 지속적으로 키워갈 수 있을 때 나는 식지 않는 열정을 갖을 수 있고, 새로운 도약을 이루어 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이다.>


그렇군요. 형아의 마음 깊이 보다 확고하고 넓고 사려 깊은 사랑이 가득 차 있군요.
그리고 이순신의 마음처럼 매사에 사랑이 기반이된 적절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장면이 제일로 인상 깊으셨군요. 과연 대빵 형아 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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