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연구원

연구원

  • 최지환
  • 조회 수 2606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08년 6월 16일 10시 16분 등록
1) 내가 알고 있는 세계사중 가장 인상 깊은 장면 하나를 묘사할 것
( 1페이지- '묘사'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알지 ? )

르완다 내전

* 책 '내이름은 임마꿀레'의 한 장면

살인자들이 내 이름을 부루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회반죽과 나무로 만든 얇은 벽 건너편에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차갑고 딱딱했으며 단호했다.
"여기 있는 게 틀림없어, 이 근처에 있을 거야. 찾아! 어서 임마꿀레를 찾아내!"
들리는 소리로 보아 한두 명이 아니었다. 마음속에 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언제나 애정과 친절도 대하던 친구이자 이웃이었던 그들의 지금은 창과 칼을 들고 내 이름을 부르고 있어싿.
"지금까지 바퀴벌레 같은 것들을 399마리나 죽였어"
살인자들 중 하나가 말했다.
"임마꿀레만 죽이면 400마리야. 머리수는 채워야지."
문을 가린 조그만 욕실 구석에 잔뜩 움츠린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같이 숨어 있던 다른 일곱 명의 여자들처럼 나 역시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그들의 내뱉는 거친 말이 사나운 발톱처럼 내 살을 파고들었다. 마치 불 속에 강제로 눕혀져 화형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내 몸은 고통의 불길에 휩싸였고, 보이지 않는 수천 개의 바늘이 수천 개의 끊임없이 나를 찔러대는 것 같았다. 공포심만으로 이렇게 끔찍한 육체적 고통을 느낄 줄은 미처 몰랐다.
마른 침을 삼키려고 했지만 꽉 닫힌 목구멍 때문에 넘길 수가 없었다. 입 안은 사막보다 더 바짝 말라 있었다. 눈을 질끈 감고 차라리 내 몸이 사라져 버렸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려오기만 했다. 그들은 나를 그냥 놓아주지 않을 게 분명했다. 마음속에서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 계속 메이리쳤다.
'잡히면 죽어. 잡히면 죽어. 잡히면 죽어...'
살인자들이 바로 문 밖에 있었다. 언제 발각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칼날이 몸속으로 깊이 들어오면 얼마나 아플까 상상해 보았다. 문든 형제들과 그리운 부모님이 떠올랐다. '살아있을까? 아니면 우리들은 곧 하늘나라에서 만나게 될까?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나는 두 손을 모아 아버지가 준 묵주를 꼭 쥐고 소리 없이 기도하기 시작했다. '제발, 하느님. 절 도외주세요. 이렇게, 정말 이렇게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살인자들이 저를 찾지 못하게 해주세요.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죠. 하느님, 간구하오니 저 살인자들을 그냥 물러가게 해주세요. 이 욕실 안에서 죽지 않게 해주세요. 제잘...하느님,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인자들이 집을 나갔다. 우리는 겨우 다시 숨을 쉴 수 있었다.
그 뒤 석 달 동안 그들은 몇 번이고 다시 돌아와 집을 뒤졌다.
나는 하느님이 나에게 삶을 내어주셨음을 믿는다. 그런데 옷장 크기만한 욕실에서 다른 일곱 명과 함께 공포에 떨던 91일 동안, 나는 신이 나에게 삶ㅇ르 주신 것이 그저 목숨을 얻은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가르침은 나를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 대학살의 한복판에서 만난 하느님은 나를 죽이려 들었던 사람들을 사랑하고, 내 가족을 처참하게 죽인 사람들을 용서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
내 이름은 임마꿀레 일리바기자이다.
그리고 이 글은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대학살 기간 동안 내가 만난 신에 대한 이야기다.

* 배경

1. 르완다 내전의 뿌리는 1919년 벨기에 군대가 수도 키갈리를 점령하고 위임통치령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르완다는 14세기경 북방에서 이주해온 투치족이 후투족을 병합하여 왕국을 세우며 시작되었으나 벨기에의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독립을 잃게 된다. 벨기에는 효과적인 식민통치를 위해 르완다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후투족(85%)을 고립시키고, 소수 부족인 투치족(14%)을 우대하여 그들을 교육시켜 식민 통치의 말단 관료 집단으로 삼는다. 1959년 투치족의 왕이 죽자 투치족의 한 부족이 정권을 잡으면서 후투족 지도자들을 집단적으로 살해한다. 이에 반발한 후투족은 폭동을 일으켰고 지배세력이던 투치족 중심의 므와미 체제가 붕괴된다. 1962년 7월 벨기에로부터 르완다는 독립을 이룩하고 ‘카이반다'가 초대 대통령에 당선 되면서 르완다는 평화의 길목으로 가는 듯 했었다.
2. 독립 후 르완다 평화는 1963년부터 강제 추방된 투치족이 르완다를 기습 공격하기 시작하면서 깨지고 만다. 후투족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1963년 12월 약 2만 명의 투치족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이를 계기로 양대 부족 간 갈등의 골은 점점 더 커지고 만다. 그 후 후투족 군부출신 하비야리마나 소장이 ‘카이반다’ 정권을 무너뜨리고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일당독재 정부를 구축하고 소수 투치족을 억압했다. 이후 주변국에 추방되어 난민 화 된 투치족이 RPF(르완다 애국전선)을 조직하고, 주변국인 우간다, 탄자니아를 거점으로 정부군에 대한 공격을 개시하게 된다. 따라서 소수파의 지배계층이었던 투치족과 다수파의 피지배계층인 후투족간의 정권 쟁탈을 둘러싼 갈등으로 르완다 내전은 본격적으로 격화되기 시작하였다.
3. 르완다 사태를 악화시킨 결정적인 계기는 1994년 4월6일 후투족 출신의 하비아리마나 대통령이 테러 공격에 의한 의문의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사건이었다. 르완다 정부 방송은 대통령의 암살 배후로 투치족 게릴라들을 지목했던 것이다. 이에 대통령 경호원들이 중심이 된 극우 후투군 조직들이 4월7일 투치족 출신의 총리와 3명의 각료 및 벨기에 평화유지군 11명을 살해하고 후투족 정권은 다음날부터 소수 종족인 투치족에 대한 조직적이고도 무차별한 학살을 시작했다. 투치족이 무차별 학살하자 투치족 반군인 RPF(르완다 애국전선)는 후투족 중심의 정부를 공격했고 그로인해 부족간 항쟁은 일거에 불타올랐다. 정부군(후투족)과 반군(투치족)의 갈등은 민간인에 대한 보복 행위로까지 이어져 대량학살 및 탈출사태가 발생하였다. 1994년 4월 9일부터 11일까지 단 3일간의 교전으로 약 2만 명이 살해되는 끔찍한 만행이 자행되었다.
4. 북부에 주둔하고 있던 2만명의 투치족 무장반군(RPF)이 4월12일 수도 키갈리에 진입하자 정부군(후투족)은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남동부의 주요도시 및 국경지역에 거주하던 20만명의 투치족 주민들을 무차별 학살한다. 두 부족간의 내전이 치열해지자 UN은 평화유지활동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 270명의 평화유지군만 제외한 전 병력을 철수하였다. 투치족 난민 들은 정부군의 학살을 피해 필사적 탈출을 시도했다. 양 부족간의 보복살인이 지속되면서 사망자는 50만명이 넘어섰고, 난민은 250여 만명에 달했다. 그러자 UN은 사태의 악화에 따라 6월22일 2,500명을 파견하기로 한 프랑스의 독자 파병만을 한시적으로 허용하였다.
5. 투치족 반군이 수도 키갈리를 장악하고, 프랑스군이 서남부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을 장악하는 등 승리함에 따라 투치족 난민은 르완다로 귀환을 개시하였다. 1994년 7월23일 정권을 잡은 투치족 반군은 르완다 신정부를 출범시키는 한편 부족융화정책의 일환으로 후투족 온건파인 ‘비지뭉구’와 ‘트와기라뭉구’를 각각 대통령 및 총리에 임명한다. 투치족 신정부는 카가메 중장이 부통령과 국방장관으로서 실권을 쥐고 정치적 안정의 유지를 꾀하는 한편, 이웃 인접국 등과 난민문제 협상, 후투족 구 정부군의 무장해제 및 난민귀환 등을 협의하였다.
7. 참고 : 영화 '호텔 르완다', 책 '내 이름은 임마꿀레'


2) 내 개인의 역사 속에서 가장 중요한 도약이 이루어 졌던 장면에 대하여 묘사할 것
( 1페이지 - 변경연에 들어와 연구원으로 살게 된 것, 이런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말 것. ... 내가 점점 유치해 지기 시작하는구나)

작년이었다. 작년 한 해는 단연코 내 인생의 최고의 전환점이자, 나의 역사 속에서 가장 중요한 도약이 이루어진 때이다. 작년 초 내 앞에는 두 가지의 큰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는 결혼이었다. 작년 양가부모님의 상견례를 마치고,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다. 또 다른 하나는 나의 직업이었다. 올 해 초까지 다니던 직장은 2005년에 입사해서 2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다니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신이 다니고 싶은 직장이라 불렀다. 그런데 그곳이 다니기가 싫었다. 평생직장이랍시고 들어간 곳이 다니기 싫어지니 다시 앞날이 어두워졌다. 나의 역마살 같은 고질병이 또 고개를 들었다. 하고 싶은 걸 참고는 살아도,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면서는 못사는 성격이다. 그곳을 나와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뭘 해야 할진 모르겠고, 계속 다니다가는 정말 스트레스 때입문에 중병에 걸려 죽을 것 같았다. 결혼을 앞둔 총각의 마음이 한 없이 설레고 희망에 부풀기도 했지만, 단지 결혼에 얽매여서 앞으로 계속 그렇게 살아야 된다는 쪽을 마음을 굳힐 수 없었다. 다행이 이런 내 맘을 아내는 이해해 주었다.
사람이 마음이 불안하고, 일에서 만족을 못 얻으면 다른 곳에서 즐거움을 찾듯이, 이것저것 기웃거렸다. 유일한 취미였던 영화를 미친 듯이 봐대고, 남들 다하는 재테크를 해 볼 양으로 펀드 관련된 책들을 디립다 보기도 하고, 왠지 영어공부도 해야할 것 같아 평생 멀리하던 영어학원이란 데도 다녀봤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저 일시적인 망각으로 인한 치료일 뿐이었다.
어쨌든 그런 나의 상황과 직장생활을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접고싶다는 나의 뜻을 확실히 각인시키고 결혼식을 올렸다. 신혼의 단꿈에 젖어있어야 할 나에게 그 단꿈과 함께 나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가슴을 짓눌렀다. 우연히 '1인 기업'과 관련된 기사를 읽었다. 알아보니, 정말 멋지게 사는 사람들이었다. 부러웠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정말 거지같은 책들도 있었지만, 읽다보니 뭔가 보이는 것 같았다.
결혼하면서 아내와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을 합쳤다. 그리고 결혼하면서 한 가지 결심한 것이 있었다. 집에 TV를 놓지 않는 것. 거실엔 TV대신 책장을 놓았고 책을 가득 채워 넣었다. 소파에 앉아있으면 TV가 아닌 책꽂이에 꽂힌 책을 구경하게 된다. 며칠 지나고 보니 아내가 가져온 책 중에 유명한 책 한권이 보였다. 스티븐코비 박사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제목부터가 내가 딱 싫어하는 책이다. 자기계발서는 무조건 혐오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책 읽는다고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그런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성공'과 '~하는 법'이라는 말이 들어간 제목의 책은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 책은 그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리더십이라는 것에 대해 한참 관심이 가던 터라 정말 큰맘 먹고 책장을 펼쳤다. 첫 번째 습관 '주도적이 되라'. 난 한방 먹었다. 첫 번째 습관 속에 내가 왜 지금껏 이렇게 방황에 방황을 걸쳐, 가는 직장마다 불만 속에 쌓여 살고 있는지 스티븐 코비 박사는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다른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것으로 내가 갖고 있던 수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었다. '내면으로부터 시작하라'는 그의 말대로 내 의식의 방향을 철저하게 나의 내면으로 돌리니 모든 것이 해결되는 듯 했다. 그저 그렇게 사는 것이 싫은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살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았고,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도 알았다. 그때부터 나의 변신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후 읽은 사부님의 책들은 불붙은 나의 변신에 기름을 부어주었다.

* 날 도약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던 책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 스티븐 코비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 - 하이럼 스미스
마음 - 이영돈
당신이 1인 기업이다 - 버크해지스
프리에이전트의 시대 - 다니엘 핑코
사람의 성격을 읽는 법 - 폴 D. 티저
나는 이상한 회사에 다닌다 - 한국리더십센터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 구본형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 구본형
칼 - 이외수


3) 도약이 이루어 진 다음 그것은 지속되었나 ? 아니면 중단 되었나 ?
도약이 이루어 진 다음에 새로운 차원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장악해야 할 요소는 무엇일까 ?
(1/2 페이지 이상 무제한)

작년에 이루어진 나의 도약은 지속되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리고 또 머지않아 큰 도약이 한번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스스로가 '나는 이전의 나와 다른 사람이 되었다'라고 느낀 이후, 그것을 나 스스로 확인하고 인정해야 했다.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정확히 아는 것은 변화의 전제 조건이다. 생각의 변화가 이루어졌으니, 그것들을 나의 삶 속에 녹여들게 해야 했다. 변화된 내가 예전의 나로 다시 돌아가지 않도록, 굳히기 단계로 들어갔다.

새로운 차원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장악해야 할 요소는 내 안에도 있고, 내 밖에도 있다. 내 밖으로는 주변 사람들이다. 어떠한 모습으로든 사람의 내면에 도약이라 할 정도의 큰 변화가 생기면,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자 할 것이다. 내적인 변화는 어떠한 식으로든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주변의 모든 환경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자신의 상황을 다른 의미로 해석하기도 하며, 그러한 것이 실생활에서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 등으로 나타난다. 나의 경우 결국 직업을 바꾸는 것과 같이 큰 변화를 겪기로 했다.

외적인 것 중에 변화의 가장 큰 장애요소는 다른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시선, 그동안 익숙했던 나의 모습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 실제 나는 아직 이것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다. 내가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을 알리지 않은 이들이 많다. 내가 말했을 경우, 격려보다는 비난과 비웃음을 던질 사람들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이것에 대한 해결방안은 아직도 모르겠다. 하지만, 굳이 그런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다. 나중에 자연스럽게 알도록 놓아두고 싶다.

대부분의 경우 가장 중요한 장애요소는 바로 나다. 일시적이라 하면 사실 도약이라고 할 수도 없겠지만, 막상 도약이라 부를 정도의 내적 변화를 외적인 변화로 이끌어내어 자신의 존재 그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작 자신에게도 그것은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들의 시선과 한마디에 좌절하고 자꾸만 이전으로 돌아가려고 할 것이다. 과거에도 내가 도약이라고 생각했던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어가지 못한 채 결국 굴복한 적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자신 안에서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라고 자꾸 떠들어대며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내부의 소리를 장악해야 한다.

나를 나약하게 하는 소리가 내 안에서 들려올 때가 있다. 오래전엔 그러한 것들이 무척이나 두려웠다. 하지만, 작년 이후로 나의 노력에 의한 결과인지 그런 것들이 두렵지 않다. 그러한 소리가 들려오면, 잠시 동안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이 넘어간다. 많이 단련이 된 것인가. 그저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런 생각이 들기 마련이지' 하며 넘어간다. 그리고 그러한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이제는 순간적이다. 나의 도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책이었다. 책 읽기는 절대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이전에 한 달에 두 세권 씩 읽던 책을, 이젠 1주일에 두 세권씩 읽는다. 내적, 외적 성장은 끊임없는 학습과 성찰로부터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소리가 들려올 때, 책은 내 안에 훌륭한 버팀목들을 만들어 준다. 그리고 그것들은 언제나 내 곁에서, 내가 필요할 때 나를 도울 준비가 되어있다.

이런 내적인 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내가 한 것들.

1주일 2권 이상 책읽기
내가 싫어했던 사람들을 다른 식으로 바라보기
내가 원하는 삶 정의
내가 계획한 모든 것은 글로 남김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가족들 설득하고 지지자로 만들기
평생 직업 찾기
나의 의식수준 성장을 위한 훈련 (글쓰기, 명상, 의식관련 서적 정독)
다른 방식으로 일해보기 (먼저 저지르고 준비)


IP *.34.17.144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