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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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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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24일 22시 29분 등록
12기 5월 오프수업 기록

수업일시 : 2018년 5월 19일 토요일 오후 5시 ~ 20일 일요일 오전 1시 30분
수업장소: 충북 괴산 여우숲
참석자: 자연스러운 삶 연구소 - 김용규(강의 및 멘토링), 주시언, 이호철, 이기훈, 이강전(이상 2기 연구원), 김근영(1기 연구원)
            변화경영연구소 - 6기 박미옥(교육 진행 및 멘토링), 3기 한정화(참관 및 멘토링), 11기 정승훈, 12기 박혜홍, 이경종

본 수업기록은 <나의 신화창조> 5월 오프 수업 내용을 기록한 것이며,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오후에 있었던 김용규 선생의 강의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자연스러운 삶 연구원들의 발표 전문 및 발표 관련 질문과 답변은 기록하지 않았으나, 멘토링 코멘트와 관련된 질문/답변은 기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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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종

발표 전문
1 . 변신이야기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신화 – “불굴의 아라크네, 넌 최고였어!” 

올림포스의 신들에게 도전하는 인간의 최후는 언제나 파멸이다.
하지만 태생과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외부로부터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려는 영웅들의 역사는 끊임없이 되풀이 된다. 비록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할지라도 말이다. 신에 대한 도전이 실패와 저주로 귀결되고 마는 신화의 스토리는 운명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에게 강렬한 도전 의지를 불러 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아라크네는 리디아 지방의 여인으로 신기에 가까운 베 짜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실력이 직물의 수호신인 아테네 여신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하고 있었고, 그녀의 명성은 멀리 올림푸스까지 이르게 된다. 한낱 인간과의 비교에 자존심이 상한 아테네 여신은 노파로 변신 후 아라크네에게 접근하여 신에게 도전하는 무모함을 뉘우칠 기회를 준다. 하지만 이라크네의 자부심은 이를 단호히 거부했고 마침내 아테네 여신과 아라크네는 베짜기의 최고수를 가리기 위한 빅매치에 돌입한다. 인간으로서 가질 수 없는 경이적인 실력과 함께 신에 대한 불경스러운 도전은 결국 아테네 여신을 분노하게 만든다. 최종 승패는 가려지지 않은 채 아테네의 분노를 뒤집어 쓰게 된 아라크네는 평생 뒤꽁무니에서 실을 뽑아야 하는 운명을 가진 거미로 변하게 된다. 

이 이야기가 단순히 인간의 오만에 대한 신의 처벌이라는 일차원적 교훈으로만 끝날수 없는 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이다. 

첫째, 그녀는 다른 무엇도 아닌 그녀 자신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자부심이 있었다. 이것은 과거의 성공이나,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물질적인 것들에 기반한 허영과는 격이 다르다. 이 오만함은 진정한 의미의 휴브리스(Hubris)이다. 이 휴브리스는 토인비가 정의한 과거의 성공에 대한 우상화가 아닌, 인간을 뛰어넘어 신에게 도전하고자 하는 예술혼을 상징한다. 아테네 여신의 방문에 모두가 경외심으로 몸둘바를 몰라 하던 그때, 아라크네만이 홀로 찬연히 빛나고 있었다. 오비디우스가 이라크네의 결연함을 묘사한 부분은 휴브리스의 절정 그 자체이다. 

"모두가 겁에 질려 몸둘 곳을 몰랐다. 아라크네만 제외하고. 
아라크네는 벌떡 일어났다. 아라크네의 빰은 잠깐 붉게 상기되었다가는 곧 핏기를 잃었다. 새벽의 손길에 붉게 물들었다가 해가 돋으면서 창백해지는 하늘빛 같았다. 아라크네는 제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오직 이길 수 있다는 일념으로 제 운명과 맞서려 할 뿐이었다."
 
궁지에 몰리게 되면 신의 가호를 찾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모든 능력의 원천과 성공의 이유를 신에게 돌리던 그 시대에, 이라크네는 오직 자신만을 믿었다. 이것은 신에게의 맹목적 종속을 거부하는 인간의 결연한 독립의지의 표상이다.
 
둘째, 아라크네는 신에게 도전해서 패배하지 않은 유일무이한 여성이다. 본연의 실력으로 신에게 맞장뜬 유일한 여성이기도 하다. 신화 속 모든 여성들이 남성영웅의 들러리로서 수동적인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을 때, 아라크네만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 나갔다. 메데이아는 독보적인 마법을 가졌지만, 이아손의 사랑만에 기대어 파멸해가는 조연에 지나지 않았고, 아드리아네는 테세우스를 위해 실타래를 건냈지만, 철저히 이용만 당하고 외딴섬에 버려지는 운명을 맞았다. 여성이 인간으로 취급받지 않던 시대, 주어진 업을 최고의 경지로 끌어올려, 마침내 신의 권능에 도전한 유일한 여성이 바로 아라크네이다.
 
셋쩨, 아테네 여신은 아라크네를 거미로 만들었고, 우리는 그것을 저주라고 생각하지만 과연 그럴까? 아라크네는 결코 아테네에게 패배한 것이 아니다. 아무도 아테네가 베짜기 시합의 승리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테네여신이 아라크네가 베폭에 수놓은 신들에 대한 조롱에 분노하여 벌을 내린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아테네는 아라크네의 실력이 자신과 대등한 것에 화가 치밀었다, 아테네는 분노하여, 아라크네를 볼품없는 미물로 변하게 하여 그 화풀이를 하려 했다. 결국 거미로 변한 것은 인간의 관점에서는 한낱 미물로 변한 것이니 저주를 받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신의 관점에서는 인간이나 거미나 개미나 다를게 없는 것들이다. 아테네는 아라크네를 돌이나 다른 미물로 변하게 할 수도 있었다. 아라크네가 거미로 변한 것은 아테네가 아라크네의 실력을 인정했기 때문은 아닐까. 신의 분노를 보여줘야 하는 상황에서 아테네의 선택은 아름다운 거미줄로 베 짜기를 이어나갈수 있는 거미 외에는 없었을 것이다.
  
2 . 나의 신화 - 2019년 어느 날, 쉼플레가데스를 향해 가는 격랑의 바다 위에서
 
시퍼런 파도가 용트림하듯 밀려와 천둥처럼 바위를 때리고 산산이 부서진다. 파도가 잠시 사라진 지금, 저 멀리 쉼플레가데스가 선명하게 내 눈앞에 들어온다. 언제나 모험가들을 그들의 배와 함께 무참하게 집어삼켰던 두 바위는 지금 나의 입성을 기다리고 있다. "들어올테면 들어와 봐, 니까짓게" 오만한 바위덩어리의 음성이 귀에 들려온다. 황금양털을 손에 쥔 이아손이 통과한 이후 멈췄다던 저 쉼플레가데스는 사실 한번도 멈춘 적이 없었다. 준비되지 않은 무모한 도전들을 집어삼키며 언제나 그 자리에 버티고 서 있었던 것이다. 

이제 쉼플레가데스까지는 채 몇 백미터도 남지 않았다. 조타를 돌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는 지금뿐이다. 사느냐 죽느냐의 싸움으로 정말 나를 밀어넣을 것인가?
크게 심호흡하고 돌린 시선이 배 안에 있는 가족들의 눈과 마주친다. 그들을 버려두고 지금이라도 작은 배로 갈아탄다면 분명 저 쉼플레가데스를 통과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허나 그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이 아니였다면 내가 여기까지 오지도 못 했을 것이다. 가족은 언제나 가장 위대한 조력자였으며, 내가 저 오만한 바위 쪼가리를 빠져 나온 후 그 기쁨을 최초로 나누고 싶은 나의 영웅들이다. 

지금 내겐 빛나는 황금장갑도, 날개 달린 신발도, 메데이아의 마법도 없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이 보낸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뒤늦은 후회가 아닌 살아보고자 하는 삶의 의지로 다시 태어났다. 천길 낭떠러지에 이르러서야 변화의 필요성을 깨닫는 것은 결코 지혜라고 할 수 없으나, 지금 서 있는 이 곳이 낭떠러지로 가는 길인지 아닌지를 분간하는 것은 지혜의 범주에 속하는 일이다.  
내가 여기까지 이르게 된 지난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마흔을 향해가는 나의 삶은 언제나 소리 없는 전쟁터였다. 과거에 슬퍼하고, 가망 없는 미래에 무릎 꿇은 채, 하루하루에 지쳐갔다. 나의 생각이 없이 살다 보니,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었고 불면과 비관은 일상이 되었다. 그렇게 삶에 떠밀리어, 총탄이 빗발치는 최전선까지 이르렀다. 내게 더이상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없었다. 이대로 그냥 죽어가든가, 아니면 어떤 위험이 있더라도 한번 살아볼 것인가하는 두 가지 선택 외엔 말이다. 영웅의 모험을 떠날 것인지, 그냥 그 자리에 머무르며 한가닥 요행을 바랄 것인지 난 선택해야만 했다. 

지난 1년 변경연 연구원 과정에서 난 많은 것들을 배웠고, 그 배움들은 오롯이 삶에 대한 의지로 변환되었다. 지난한 연습의 과정은 나의 배를 바다에 띄우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었다. 모든 순간순간이 도전의 역사였다. 어제의 내가 아닌 진정한 나 자신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였다. 직장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서야 했다. 그냥 주는대로 밥을 얻어 먹으며, 외부로부터의 변화에 전전긍긍하는 대신, 스스로 변화의 주체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직무를 바꾸었고, 직장을 바꾸었다.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허용되지 않던 것들이 이제 가능성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조타를 잡은 두 손에 바짝 힘을 넣고 전방을 응시한다. 거센 파도에도 불구하고 순풍을 받은 배는 쉼플레가데스의 입구에 이르렀다. 전속력을 다해 돌진하라. 내 인생에서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해야 하는 순간이다. 나 자신과 내가 아닌 모든 것들과의 사투가 시작된다. 벌어져 있던 거대한 두 바위가 맹렬한 속도로 닫히기 시작한다. 절대절명의 순간이다. 내 안에 영원이 스며드는 순간이기도 하다. 찰나가 영원이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空의 차원이 펼쳐진다. 하늘에서 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너를 믿어라. 포스를 믿어라. 운명을 겁내는 자는 운명에 먹히고, 운명에 부딪치는 사람은 운명이 길을 비킨다. 대담하게 자신의 운명에 부딪쳐라! 그러면 물새 등 위에 물이 흘러버리듯 인생의 물결은 가볍게 뒤로 사라진다"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의 명대사를 스타워즈의 오비완 캐노비가 들려주는 듯 한 신의 음성이 무아의 경지를 더욱 고취시킨다. 이 순간만큼은 내가 스타워즈의 루크 스카이워커이며, 그리스 신화의 영웅 이아손이다. 

쉼플레가데스를 빠져 나온 후 바라본 바다는 평화롭고 고요하다. 폭풍우가 지나간 후 바다는 언제 그랬냐는듯 모든 생명을 넉넉히 감싸 안고 어루만진다. 저 멀리 수평선 너머로 이글거리는 태양이 솟아오르고 있다. 내가 건너온 백여미터에 불과한 쉼플레가데스와의 거리는 변경연 1년과정 이후 주어진 또 다른 1년의 하루하루였다. 나는 매일매일 쉼플레가데스를 건너기 위한 모험에 주저하지 않았다. 아직 나와 쉼플레가데스와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바다 저 편 또다른 쉼플레가데스가 있다. 첫 책이라는 황금사과 한알로 인생이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나를 증명함으로써 더 이상 쉼플레가데스가 두려움의 대상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결코 평온한 날들이 계속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질 것이다. 쉼플레가데스는 점점 느려져서 결국 나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 할 것이다. 그리하여 언젠가 그것이 완전히 멈추었다고 선포할 수 있는 그 날 기쁨의 축배는 더없이 달콤할 것이다. 

멘트 / 질문
한정화 ; 당신의 비둘기는 무엇인가요? 이아손이 쉼플레바위가 닫히기 전에 날린 비둘기 말이에요. 
이경종 ; 제 신화는 2019년 미래의 시점에서 쓰여진 거에요. 비둘기는 쉼플레가데스를 지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죠, 현재 찾고 있는 중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 시점에서 말씀드리면 비둘기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은 습관의 정복일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다른 것도 찾아야 할 것 같구요.

정승훈 ; 보통 남자분들은 남자 신을 선택하는데 여자를 선택해서 신선했어요.
이경종 ; 아라크네가 여자라는 점은 제가 아라크네를 선택하는 것에 있어 중요한 것이 아니였구요, 신에게 도전하는 것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로망이죠. 아라크네가 여자라는 점은 이야기를 선택하고 나서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 3가지를 뽑는데 추후 고려가 된 부분이죠.

이강전 ; 삶이 치열한 것 같아요.
이경종 ; 제 생각에는 여기 있는 많은 분들도 정도의 차이일뿐 같은 경험을 하시지 않았을까 생각되요. 

박혜홍 ; 글을 잘 써요. 그래서 빠른 시간 안에 뭔가 이뤄낼 거라 생각해요.

주시온 ; 아까 질문에 비둘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답변으로 가족이야기가 나올줄 알았어요. 그리고 모험을 끝내고 귀환할 때 얻을 수 있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이경종 ; 가족이 괴물로 느껴질때가 있어요. 비둘기를 가족으로 하고 통과시키고 가면 될거라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큰 것은 가족은 괴물이기 이전에 조력자이자 난관을 돌파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성과를 얻었을 때 처음으로 그것을 같이 나눌 수 있는 것이 가족이거든요. 귀환할 때 얻을 수 있는 첫번째 황금사과는 내년에 내려는 책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계속 쉼풀레가데스를 건너 가다보면 그것은 더이상 공포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자연삶 ; 지금 당면한 쉼풀러가데스는 무엇인지?
이경종 ; 지금 과정이죠.  매일매일이 쉼플레가데스와의 싸움입니다.

김용규 ; 첫 책의 주제는 뭐예요?
이경종 ; 소프트웨어 개발을 15년을 하고 있는데요. 공돌이의 인문학 같은 책도 많이 나오고 있는데, 개발자들의 직장생활 및 연구개발활동을 위한 인문학이 담긴 책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미옥 ; 저는 아라크네 이야기와 쉼풀레가데스가 완벽한 연결된다고 이해했거든요. 인간의 길을 희생했기에 지복인 베짜기를 24시간 하는 삶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쉼풀레가데스를 통과하는 사람은 지금 가지고 있는 소중한 가치를 치루고라도 가고자하는 열망이 있는 거예요. 그런 가치를 치루고더라도 가려고 하는 갈증의 본질이 무엇인지?
경종 ; 아라크네 연결은 쉼풀레가데스를 빠져나오고 되는 것이고, 소중한 것을 버려야 하는 것에 대해 제 생각은 우선 당면한 쉼플레가데스를 건너는 일은 소중하지 않은 것을 버리기만 해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제 삶을 이루고 있는 것들중에 버려야 할 것들, 군더더기와 같은 것들, 허영으로 붙잡고 있는 것들 같은 것 말입니다. 나중에는 소중한 것 중의 하나를 댓가를 치뤄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겠죠. 더 소중한 것을 위해 덜 소중한 것을 버릴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지금은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김용규 ; 책 안쓰면 안 돼요?
이경종 ; 현재 제가 할 수 있는 제 안에 있는 것들을 밖으로 뿜어내는 일이 글쓰기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외에는 지금으로선 창조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책쓰기이라는 것은 지금의 과정을 위한 훌륭한 틀이자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이호철 ; 황금사과라고 할 수 있는 소명이 무엇일까요?
이경종 ; 사실 황금사과라는 것은 단순한 결과물일텐데요. 일종의 마일스톤 같은 것이죠. 그걸 가지고 미래를 이어나갈 것이죠. 디딤돌 삼아서 더 크게 소망하는 것을 이룰수 있는 것.

김용규 ; 입에 물고 있는 여의주 두 개중 하나는 가족일텐데... 꼭 같이 살아야 할 필요는 없어요. 일년동안 가족을 설득하는 시간이 될 거예요. 차별성을 제거하라. 그들만의 성을 전달하는 것이 숲에 있으므로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고 나를 제약하고 있는 것의 모순성을 끌어안는 것이 소중해요. 잘 하실 것 같아요.
박미옥 ; 요즘 사는 것이 재밌어요?
이경종 ; 네. 전보다 재미집니다.


박혜홍 

발표젼문
지지고 볶는 다양한 인간사를 유려한 필치로 그려낸 변신이야기는 감탄하며 재미있게 읽었다.
그래서 그 중 딱 하나를 골라내는 것은 무척 어렵다. 하나하나 다 새겨볼 만하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이나 인간이 동식물로 변신하고 몸을 감추어도 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으며 시기, 질투, 사랑, 분노 등의 애오욕은 인간이라면 변하지 않는 감정임을 생각해본다.
사람들은 이 책에 대해 기독교에 물들기 전의 고대 서양의 인식체계라고 거창하게 말하지만
이미 ‘기독교에 물든’ 나로서는 인간의 온갖 죄악상의 나열이라는 생각이 든다.
변신 이야기의 대부분은 사람이 동식물로 변해버리거나 실패와 파탄, 비탄으로 끝났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 중 암소에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된 이오의 이야기가 무척 반갑다.


암소가 된 이오, 백안의 거인 아르고스, 갈대가 된 요정 쉬링크스의 줄거리는 이렇다.


이나코스 강은 딸 이오의 행방을 몰라 슬피 흘리는 눈물로 강물을 더욱 불리고 있었다.
그 딸 이오는 그녀와 잠자리를 원하는 유피테르에 의해 어둠속에서 강제 사랑이 이루어졌다.
유피테르는 자신의 바람둥이 행위를 처인 유노에게 감추기 위해 이오를 암소로 변신시켰다.
분노한 유노는 유피테르를 궁지로 몰아 기어이 이오를 자기 손에 넣고는 눈이 백 개나 달린 괴물 아르고스에게
맡기면서 단단히 지키라고 명했다. 이오가 강가에서 풀을 뜯을 때 요정을 비롯 아버지, 언니도 이오를 몰라보았다.
이오는 발굽으로 이름을 써서 암소인 자신이 이오임을 알렸다.
이오는 물론, 神인 아버지와 언니들이 너무나도 비통해하자 유피테르는 메르쿠리우스에게 아르고스를 처치할 것을
당부했다.
 메르쿠리우스는 갈대 피리를 불며 이야기를 해서 아르고스를 잠재운 후 목 베어 버렸다.
유피테르는 처에게 간청하고 그녀도 분을 풀어 이오가 다시 사람으로 돌아왔다.


이 이야기가 좋은 이유는 이오가 인간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영문도 모른 채 이 세상에 태어나 갖은 고생을 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 말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아름다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고생 끝에 낙이 왔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은 저절로 흘러간 시간이었다.
엄마와 고3 담임선생님 합의하에 성적에 맞춘 사범대를 가게 되었다.
교육심리학과를 졸업했지만 딱히 꿈이나 목표가 없었다. 아무 생각이 없이 살았다.
졸업 후 도덕교사 자격증이 나오는 줄도 몰랐을 정도였다. 임시교사를 하던 나를 속인 교장에 분노하여
순위고사에 합격한 나는 교사생활을 시작했지만 또 역시 아무 생각 없이 살았다.
좀 힘들어질만 하면 방학이 되었고, 하루가 지루할만하면 개학이 되었다.
중간에 애들 키우느라 그만두고 싶어졌을 때 남편 따라 일본으로 가게 되었다.
거기서도 중,고생들을 가르쳤다. 여전히 아무 생각이 없이 살았다.


귀국했을 때는 40대 후반이 되어 있었다. 다시 시작한 서울에서의 교사생활에도 아무 생각이 없이 살았다.
그저 내게 주어진 교사라는 직분에 충실하게 살았다. 교사들이 흔히 갖는 승진에 대한 목표도 없었다.
할 줄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도 무재주 상팔자를 외치며 하루하루 즐겁게 살았다. 그런데 사회가 변하기 시작했다.
교사들을 촌지나 받아먹는 사람으로 언론에서 연일 때리고 그 덕에 도덕수업도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돈, 권력, 명예가 따르지 않는 진, 선, 미는 지나간 유물로 치부해버리는 분위기가 팽배해져 갔다.
도덕책에서의 경계해야 할 황금만능주의는 도리어 학생들이 이루어야할 목표가 되어갔다.
학생들은 교사를 우습게 보기 시작했다. 거기에 체벌금지가 더욱 불을 질렀다.


나는 지긋한 나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학생들에게 ‘이런 삶을 살아야 된다’ 라고 말한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인지
늦었지만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사회 속에서의 나의 위치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수십 년 전에 가르친 학생들은 청장년이 되어 가끔 연락이 왔다. 때로는 오가는 길에서도 그들을 만났다.
 나는 그들에게 무엇이었는가, 그들에게 가르친 내용처럼 나도 그렇게 살아왔는가 돌이켜보니 내 말은 진실이고 진심이었지만 내 말을 내게 적용해 살았던 적은 거의 없었다. 내 얘기는 없고 남의 예화만 들었다.
 심지어 신앙생활에서도 아무 생각 없이 살았다. 그야말로 주님의 은혜 가운데 적당한 삶을 살았다.
추락하는 교권 속에서 그나마 자존심을 굳게 세우고 살았지만 내 스스로에게는 뭐 하나 도전해 보고, 실천해 보고,
성공도, 실패도 해 본 적이 없는 밋밋한 삶이었다.
진득하지 못한 내 성격에 35년을 교사생활을 해 왔고, 또 천직이라 느끼면서 마지막 몇 년간을 그야말로 내 자신을
불태우며 살았다는 것 외엔 그저 그런 삶이었다.


변경연을 알게 되면서 나는 모험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생각 없이 살던 삶에서 생각하며 사는 삶으로 들어가기를
결심했다.
이 길에 들어선 것만도 이미 내 신화는 반을 이루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까지 암소가 된 이오처럼 살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암소가 되어서 이나코스 강인 부모님을 슬프게 했다. 그러나 이제는 내 옆에서 나를 100개의 눈으로 감시하던
아르고스를 처단할 메르쿠리우스를 스스로 만나러 가는 길이다.


내가 그동안 학생들에게 해 왔던 말에 책임지는 삶을 살리라
내 몸은 늙어가지만 내 정신은 이오처럼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라리라.
아르고스를 잠재우는 쉬링크스의 피리소리를 더욱 귀 기울여 들으리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생명 동안, 이제는 말로만이 아닌 실천하는 삶으로 들어가 그동안 내가 만난 사람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살리라
오늘 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그 소리를 잊지 않고 따라 가보리라
그 말씀에 맞는 삶을 살리라

코멘트 및 질문/답변

박혜홍: 변경연 연구원을 시작한 것은 이미 내 신화의 반을 이룬 것이다.. 교사 시절 정인국이라는 학생에게 미안해서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적도 있다
김용규: 책이름 나왔습니다. "인국아 미안해". (...)  우리 모두의 조력자는 결국 하느님입니다. 부정을 긍정하는 힘이 필요하다.

이경종 : 생각없이 살아왔다고 하시지만 60년 넘게 사시면서 이미 신념은 가지시고 계시다. 거기에다가 신앙의 힘까지 결합되어 있다. 비신앙자들과 언어가 다르기에 소통이 어려우실수 있다. 그러기에 다른 언어는 위협으로 다가올수 있다. 지금의 신념과 신앙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지혜를 더 갖추시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다른 언어를 포용할 수 있는 보편성을 얻을 수 있으시면 좋겠다. 신앙을 더 들여다보시고 더 발전하시기를 기원한다.
박혜홍: 그저 나는 평탄한 삶을 살아왔다. 세상사람들이 원하는 성공을 이루지 못해서 내가 하느님을 말씀을 잘 전하지 못 하는 것 같다. 이제 내 능력을 다 해서 뭔가를 이루어내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소명을 다하고 싶다.

이호철: 책이라는 것을 만들어야 하는 배설과정에 변경연 과정이나 연구원들의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 책에 갇혀있는 것 같은데?
김용규: 책을 쓰는 것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것과 같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삶 연구원들에게 책을 일찍 내라고 하지 않는다. 스스로 차고 흘러넘치는 순간이 오면 그 때 책을 내는 게 맞다. 그 순간이 왔다는 것은 영웅이 된 것을 의미한다. 흘러넘치게 되면 꽃을 피우게 된다. 꽃을 피우면 그것을 벌과 나비에게 나누어준게 된다. 그것이 바로 영웅의 귀환이다. 신을 죽여야 신을 사랑할 수 있다. 온전치 않는 나를 채워야만 남을 사랑할 수 있다.

정승훈: 신앙, 도덕, 교사, 세가지가 너무 선하다. 그렇기에 그것들이 괴물로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것들이 오히려 억압과 테두리가 될 수 있다. 내 경험은 되짚으면 내가 괴물인지 몰랐던 것들을 변경연 1년과정을 통해 알 수가 있었다. 깨달음이 올 것이다.
이강전: (전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겠습니다) 에라잇!
정승훈: 깨셔야 한다. 아플수 있다.
김용규: 괴물을 죽이는데 고통이 따른다
박혜홍: 아프지 않다, 난 즐겁다.

정승훈 

발표 전문
가이아와 니오베 
‘어머니’ 또는 ‘산모’란 의미의 인도게르만어 단어에서 유래. ‘가이아’의 또 다른 명칭으로 ‘게(γῆ. Ge)’가 있는데, 어원적 의미는 ‘땅’, ‘대지’ 또는 ‘지구’이다. 기원전 7세기 경 그리스의 서사시인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에 따르면, “세계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흐르는 무한한 혼돈(카오스)밖에 없었다. 긴 시간이 지난 후 이 혼돈 속에서 '모든 것의 어머니'인 가이아가 탄생했다. 그녀는 자신의 힘으로 지상과 땅 밑에 두 신을 창조했다.” 가이아는 ‘카오스’와 더불어 혈연관계 없이 태초부터 존재한 신이다.
 “태초에 존재한 것은 카오스이고, 그 다음에 넓은 젖가슴을 가진 가이아가 태어난다. 가이아는 눈 덮인 올림포스 산과 넓은 길이 나 있는 대지의 가장 깊은 곳인 칠흑같이 어두운 타르타로스에 거처하는 영생불멸(永生不滅)의 신들의 영원토록 안전한 장소이다.”
가이아는 배가 불뚝 나오고, 짧은 구수머리와 왕관을 쓴 중년 부인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니오베는 테바이의 왕비다.
 니오베는 자랑거리가 많았다. 남편의 재능과 자신과 남편의 가문, 다스리는 나라의 영광도 자랑거리였다. 무엇보다 큰 자랑거리는 일곱 아들과 일곱 딸들이었다. 니오베는 교만했다.
 “내가 누리는 행복은 요컨대 보름달과 같아서 한 군데도 빈 데가 없다. 내게는 포르투나 여신(운명의 여신)도 해칠 수 없을 만큼 막강한 힘이 있다. 포르투나가 내게서 많은 것을 빼앗아간다고 하더라도 나에게 남은 것은 그 여신이 빼앗아갈 수 있는 것보다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니오베는 테바이의 여자들이 라토나 여신에게 올리는 제사를 멈추게 했다. 화가 난 라토나 여신은 아들인 아폴로(태양의 신)와 딸인 디아나(달의 신, 아르테미스)에게 자신이 당한만큼 니오베에게 벌을 내리게 했다. 아폴로의 화살이 일곱 아들 모두를 죽였다. 그 소식을 들은 남편 암피온은 칼로 자기 가슴을 찔러 죽었다. 아들들의 주검에도 겸손해지지 않고 자신에게 라토나의 자식보다 많은 수의 딸 일곱이 있다고 말하는 순간, 장례식에 참석한 딸들에게도 화살이 날아왔다. 여섯 딸이 죽자 그제야 막내딸을 옷자락으로 감추며 “죽은 아이들이야 죽었으니 그뿐, 이 어린 것 하나만 부탁합니다.” 며 신께 호소했다. 하지만 그 딸마저도 죽음으로 니오베는 혼자 남겨졌다. 참을 수 없는 슬픔은 니오베를 돌로 만들었다. 바람이 고향 산꼭대기로 데려가 돌이 된 니오베는 오늘날까지도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한다.
 
좋아하는 이유 세 가지
첫째, 가이아와 니오베 모두 여인이며 엄마다. 11기 7월 오프과제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경험 3가지였다. 그때 그 중 하나를 ‘아이를 낳고 키운 것’이라고 했다.
 ‘나의 까칠함과 이기적인 면,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웬만해선 굽히지 않는 성격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없어지고 있다. 아직 다 없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이를 키우며 어른이 되어가고 부모가 되어가고 있다. 또한 아이를 키우며 많이 깨지고 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안되는 게 없지만 자식만큼은 그렇지 않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겸손을 배우게 되었다. 사람 열 번 된다던 어른들의 말이 무슨 말인지 몸소 경험했다.’
둘째, 나의 사주 명리학은 ‘흙’이다.
모든 만물은 흙에서 만들어졌다. 인간도 흙으로 하느님의 형상으로 빚어 생명을 불어넣어 만들었다. 흙은 모든 것을 품는다. 그래서 흙은 어머니와 같다.
 
셋째, 재능이 많다는 공통점이 있다.
나는 손으로 하는 것을 좋아하고 잘한다. 니오베가 어떤 재능이 많은지 신화에서 나오진 않았다. 재능이 많다는 것이 한국에선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재주가 많으면 굶는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 하지만 요즘은 재능이 많은 것이 유리하다. 재능이 많아 교만해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다행히 나의 재능은 삶을 즐기는 용도로 쓰고 있어서 교만과는 거리가 있다.
 
나의 신화 ; 품는 어머니, 겸손하게 살자~
 
 테바이의 왕비 니오베가 교만하여 자식을 모두 잃고 남편까지 잃었다. 니오베는 자식이 일곱이나 되었단다. 그래서 그리 교만했을까. 나는 니오베를 벌한 라토나 여신처럼 둘도 아니고 자식이라곤 하나 밖에 없다. 그마저도 불임클리닉에 다니며 어렵게 얻었다. 둘째는 직장생활이 길어지면서 시기를 놓쳤다. 우리 집은 식구도 많고 집안의 종갓집이라 친척 왕래도 많았기에, 시댁에서 살면서 사촌들과 지내는 것이 아이에게도 좋다고 생각했다.
 
 귀하게 얻은 자식이지만 귀하게 키우지는 않았다. 옛 사람들은 귀한 자식일수록 얼굴에 검댕을 칠하거나 일부러 거지 옷을 구해서 입히고 개똥이 같은 천한 아명을 지어서 부르라고 했다. 이 정도는 아니지만 자연을 벗 삼아 뛰어놀고 오감으로 체험하게 했다. 겸손해서라기보다 내가 어렸을 때 그렇게 컸던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아이는 내가 바라던 것보다 잘 자라줬다. 공부도 운동도 잘했다. 머리가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내가 디자인을 전공했으나 미술을 가르치지 않았다. 악기도 늦게 시작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운동은 꾸준히 했다. 독서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책은 많이 샀다. 책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아이는 혼자 읽는 것보다 읽어주는 것을 더 좋아했다. 교육학에 편입하고 여기저기서 방법적인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주변 아이들 수업을 시작했다. 알게 된 방법들을 대부분 적용했다. 한자도 5급까지 자격증을 따고 무엇을 해도 별 무리 없이 잘 따라왔다. 공부를 많이 시키지 않아도 학교공부도 잘 했다. 매년 임원으로 활동하고 앞에 나서서 하는 걸 어려워하지 않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내가 하라는 것들을 하지 않기 시작했다.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었다. 난 늘 아이보다 한 발짝 앞서 있었다. 나는 재주가 많고 성실하다. 배우는 것도 좋아한다. 배워서 아이를 위해 가르쳤다. 잘하니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나보다. 중학교 진학을 하고 여러 일들을 겪으며 아이는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 구나를 알았다. 아마 계속 엄마가 시키는 대로 공부나 그 밖의 것들을 잘 했으면 교만했을 거다. “아이는 이렇게 키우는 거예요.” 장담하면서 말이다. 초창기 독서 강의할 때 너무도 자신 있게 이야기했던 것들이 별거 아닌 걸 이제는 안다. 그 때 수강생들을 다시 찾아가 AS하고 싶다. 그땐 책이면 다 될 줄 알았다.
 
 아이를 키우며 처음은 책이었다. 책으로 하는 교육을 받고 강사과정을 거쳐 엄마들을 만났다. 다른 엄마, 아이들의 고민을 듣게 되었다. 그러면서 교육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회문제를 보는 시각이 생겼다. 시민단체 회원으로 활동했다.
 한때 입양을 하려고도 했다. 내 아이와 입양아를 잘 키우는 것처럼 가족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꼭 가족이 아니어도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아들을 위해 배우고 참여했던 것이 이제는 삶이 되었다. 강의를 하고 상담을 하게 된 시작은 아들을 위한 배움에서였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란 시민단체에서 출발해서 이제는 청예단(청소년폭력예방센터)로, 비행청소년을 도와주는 만사소년의 2인3각 멘토까지. 내 아이에서 지역의 아이로, 다시 한국의 사교육문제로, 이제는 사각지대에 있는 비행청소년들까지 범위가 넓어졌다. 노후엔 청소년회복센터에서 봉사하는 삶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 내 아이는 아이의 삶을 살테고 그때쯤이면 부양할 부모님은 계시지 않을 거다. 자식에게 보러오지 않는다고 푸념할 필요도 없고 외롭고 심심하다고 할 필요도 없다. 흙의 사주인 내가 품어주는 어머니로, 니오베의 교만을 거울삼아 살고자 한다.
 

 일찌감치 교만에서 벗어나게 해준 아이가 감사하다. 아이가 스승이다. 아이가 없었다면 지금의 삶과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앞으로의 삶 역시.

코멘트 및 질문/답변
정승훈: 충만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변경연 연구원을 하면서 깨달음이 있었고, 그것은 나를 평온하게 했다

주시온: 신화선택이 어머니에 천착되어 있고, 안정적으로 느껴진다. 어렵게 얻은 아이에게 애정이 있을텐데, 아이를 잘 키우고자 하는 욕심은 괴물인것인지 순수한 사랑인 것인지, 책임감때문인 것인지?
정승훈: 아이만이 중심이 아니다. 그동안은 종갓집에서 살면서 아이가 뒷전인 적이 더 많았다. 어느날 아이가 퇴행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분가를 하면서 아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아이가 애기짓을 시작하더라. 아이와의 교감을 위해 노력했다. 피곤해도 잠자리 책읽기는 꼭 지켜주었다. 양쪽 집안에 대한 책임으로 아이를 힘들게 했던 것 같다.

김용규: 그래서 괴물은 다 죽였어요?
정승훈: 내 자신에게 인정의 욕구가 있는 것 같다.

이호철: 봉사활동도 그렇고 자식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도 그렇고, 궁금한 것은 본질적인 것이 자신을 위한 것은 아닌지?
정승훈: 봉사와 자식은 다른 것 같다. 난 일찌감치 우리 아이의 성향을 알았고 이를 인정한다. 아이와 충분히 소통한다고 생각한다. 아이와 솔직하게 얘기하고 교감한다. (...) 봉사에 관한해서는 내가 인정의 욕구를 채울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아직도 한다. 그것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그것은 어렸을때부터 인정을 받고 못 자랐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이 된다(집안이 경상도라, 표현이 없었다)

한정화: 자신에게 안 채워진 것을 타인에게 찾으려고 하면, 노력하기만 하다가 비참해지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누구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건지 궁금하다
정승훈: 집안 식구들? 하지만 가족이라는 것은 쉽지 않은 관계인 것 같다.

박중환: 인정이라는 것은 결국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인데
정승훈: 지금과 같은 경우는 거절을 못 하는 성향이 강한 내 안의 괴물과 좀 싸우는 중인 것 같다.

박미옥: 봉사활동이 아이들에게 중점을 맞추고 잇는 것 같은데, 아이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것 같은가?
정승훈: 달과 6펜스 책에 나오는 것처럼 나를 위해 떠나지 않았을까? 아이가 없었다면 정말 달라졌을 것 같다. 그래도 아이를 통해 난 많이 성장한 것 같다,

이호철: 아이에게 자유를 얘기하는 것이 외국사람과 결혼해도 된다, 외국에서 살아도 된다라고 예기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이 강요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정승훈: 아이가 외국생활도 경험해서 그런 것이지, 가능성을 자유스럽게 선택하라고 한 것이다

김용규: 나의 신화에서 AS를 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좀 궁금하다. 지금 이전의 오류를 반복하고 잇는것은 아닌지 두려움은 없는지?
정승훈: 물론 지금도 그런 마음이 있다.
김용규: 이 지점이 매우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다. 본인이 강하게 얘기를 하는 이유는 여러분이 듣고자 하고자 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듣고자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얘기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다. 지금 듣고자 온 것인가, 아니면 내 얘기를 하고자 온 것인가.
신이 끔찍하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잣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이라는 자리는 조심스럽고 조심스러운 자리이다.
딸아이(당시고3)를 데리고 고2들을 위한 인문학 강의를 다녀왔는데, 강의 끝나고 밥을 먹는데 딸아이가 나한테 개뻥쟁이라고 하더라.  몸으로 경험하는 아름다운 삶이 기억된다, 가족과 그런 삶을 만들어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얘기했는데, 딸아이가 "아빠는 그런 삶을 저랑 만들었어요?라고 물었다. 그때 아무말도 할 수 없고 눈물을 흘렸다. 그 후에 강의를 하기가 힘들었다. 그 경험은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영웅의 모험을 위해서는 이 부분을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강전: 간디의 삶은 어떤가요? 가정의 삶은 풍비박산인데
김용규: 보이는 것만이 다는 아닌 것 같다. 윤봏길 의사의 가정은? 그들의 삶은 무엇이 싫어서 무엇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다음은 자연스러운 삶 연구원들의 발표에 이은 연구원 질의/답변 후 코멘트를 간략하게 기록하였습니다..

주시언

김용규 코멘트: 모든 질문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질문해나가는 과정에서 그 질문들이 깊어져야 한다. 공부가 있어야 질문이 가능하다. 모든 질문이 의미가 있지만, 그 질문이 그 시점의 컨텍스트와 잘 맞아야 한다. 그게 바로 공부다. 예를 들어 켐벨의 텍스트를 체험하지 못하면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영웅이 겪는 난관들은 스승이 될 수 있다. 그것들은 보편성으로 변이한다. 보편성을 가지지 못하면 타인의 스승이 될 수 없다. 체득하여 보편성을 지닌 것을 가지고 돌아와 나눠줄 수 있는 영웅이어야지,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될 수 있다. 스승의 복제품은 보편성을 얻기 어렵다. 
박미옥: 오르페우스에게 에우리디케는 지켜야 할 신념을 의미한다. 만인의 연인이 될 수는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이호철

박미옥 : 본인의 봄을 열기 위한 공부인가?
이호철: 내 인생의 봄을 위해 이 과정을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
박미옥: 좋은 인생은 뭔지?
이호철: 하고 싶은 거 많이 하고 살았다. 하지만 유니크하지 않았다.
박미옥: 긁어 부스럼을 만든 것은 아닌지... 천을 얼굴을 가진 영웅의 332페이지에 보면 영웅의 목적은 삶의 순간순간에서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  표면적인 신화가 아닌 오늘 아침의 사건으로 본질적인 내면을 직시하게 된 순간인 듯 하다.

김용규: 호철은 오늘 극명하게 자기안의 괴물을 만났다. 호철이 언젠가 오늘 만난 것을 괴물로 인식하는 날이 와야, 가장 중요한 괴물중의 하나를 죽일텐데.... 호철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다 즐거운 거였다. 10대 풍광도 다 놀고 즐거운 그림들만 가득했다. 이 그림들만 계속 나오는 무의식이 뭔지 들여다보는 계기가 있어야 했다. 오늘이 그런 계기였던 것 같다. 그대의 괴물은 감정이다. 지혜에 이르지 못 한 감정이다. 누군가에게는 지식과 사고가 괴물일수도 있다. 오늘 아이에게 죄책감을 느꼈고, 강연때문에 아이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는데, 강연도 죄책감때문에 제대로 하지 못 했다. 이것은 결국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 한 것이다.
오늘 논의를 하면서 괴물을 3가지 정도 보는데, 하나는 익숙한 것이 그 하나다. 하지만 또 그 자신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호철에게 그것은 어린아이에 대한 감정이다.
아버지가 중환이다. 목구멍으로 음식물을 넘기지 못하는데, 음식물이 페로 들어가 죽을수도 있다. 의사들은 코로 튜브를 넣어 음식물을 넣으면 된다고 한다. 무엇이 최선인가? 아버지의 의견? 아버지는 치매라 판단하지 못 한다. 그럼 아무 답이 없는것인가? 감정과잉이 최선인가?
사랑은 좋은 겁니까? 끔찍한 겁니까? 찬란한 봄에도 어두운 모순의 그림자가 있다. 꽃에도 어두움이 있다. 꽃은 열매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고통이다. 내년에 피어야 할 목련의 꽃망울은 이제부터 만들어지고 있다.


이기훈

정승훈: 신화의 과정이나 이것을 스토리로 만드는 것이 필요할까?
박미옥: 살아온만큼의 세월만큼 신화가 필요한 것이다. 처음 수업이기 때문에 어떠한 포멧이 필요한 것이다. 신화의 골격을 바탕으로 해서, 자기화를 해가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향후 연구원 과정을 지탱하는 것에 있어 필요하다고 스승님은 생각하셨던 것 같다.
김용규: 장례식과 10대풍광과 신화를 넣어야겠다고 한 것은 박중환 연대 때문이다. 그 세가지는 다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짐작컨데, 구본형 선생님은 비지블한 것을 보여줘야 새로운 이들이 변화의 길을 볼 수 있겠구나 생각하신 것 같다. 마음에 끌리는 신화를 고르는 것은 무의식과의 화학적인 반응과도 같다.  시지포스의 신화를 보통사람들은 고통으로 인식한다. 본인이 집을 지을때 100일동안 비가 쉬지 않고 왔다., 하늘에 무릎꿇고 기도하며 집을 지었다. 시지포스가 형벌만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다. 부정을 긍정해야 깨달음이 온다.
현실적으로 글을 잘 못쓰는 이유중의 하나는 상상력의 부재다. 기존의 렌즈가 부실하다. 기존의 렌즈를 거스를수 있을때 상상력이 발휘된다. 기존의 렌즈를 벗는 것이 힘들다. 좋은 인생 못 살았으면 글이 제대로 나올리가 없다. 연구원 과정을 통해 화석화되어 있는 몸과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야 한다. 말랑말랑해지는 방법은 구본형 스승의 삶에서 보면 된다. 박박 기는 경험을 통해 그것들이 가능하다. 테크닉만으로 글을 쓴다면 전국의 수많은 기자들은 이미 책을 냈어야 한다. 나는 산림자원학 박사가 아니다. 구본형 스승은 경영학 박사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대해서 여러분들은 잘 생각해봐야 한다.

이강전

김용규: 귀환중의 신화를 읽는 느낌이다. 장자적 필치와 같다. 스토리가 스케일이 크다. 하지만 20%가 부족하다. 귀환중의 복병들과 드잡이질을 하다보면 계속 발전하지 않을까?
박미옥: 읽으면서, 오늘 발표했던 모든 내용을 책으로 엵는다면 프롤로그와 같은 느낌이지 않을까? 많은 신화가 투영되어 있는 것 같다. 이강전님의 글은 수업의 마무리로써 아주 좋은 글이였던 것 같다. 이곳은 우리가 수업을 할때부터 성소가 된  것 같고, 마무리가 잘 되어 모두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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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4 22:33:51 *.140.242.43

며칠 지나서 기록한 걸 올리려고 하다보니, 군데군데 빵꾸가 너무 많은 것 같네요 ㅡ..ㅡ.....제 파트는 제가 알아서 빵꾸를 좀 때웠습니다. 잘못 기록된 부분이 있거나 불충분한 부분이 있으면 말씀해주시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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