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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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17일 10시 11분 등록
6월 오프수업 기록


참석자 – 자문의원 6기 신진철, 교육팀 6기 박미옥, 4기 이한숙, 6기 이선형, 6기 박상현, 11기 정승훈, 12기 박혜홍, 12기 이경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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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홍
<발표전문>
< 역사 속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장면 3가지 선택하여 간단히 묘사 >

1. 백성을 사랑해서 세상에서 가장 과학적이고도 신비한 문자인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님과 정창손이라는 신하와의 대화
임금이 정창손에게 하교하기를,
"내가 만일 언문으로 삼강행실(三綱行實)을 번역하여 민간에 반포하면 어리석은 남녀가 모두 쉽게 깨달아서
충신·효자·열녀가 반드시 무리로 나올 것이다."

"전번에 김문(金汶)이 아뢰기를, ‘언문을 제작함에 불가할 것은 없습니다.’ 하였는데, 지금은 도리어 불가하다 하고, 또 정창손(鄭昌孫)은 말하기를, ‘삼강행실(三綱行實)을 반포한 후에 충신·효자·열녀의 무리가 나옴을 볼 수 없는 것은, 사람이 행하고 행하지 않는 것이 사람의 자질(資質) 여하(如何)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꼭 언문으로 번역한 후에야 사람이 모두 본받을 것입니까.’ 하였으니,
이따위 말이 어찌 선비의 이치를 아는 말이겠느냐. 아무짝에도 쓸데 없는 용속(庸俗)한 선비이다."
"내가 너희들을 부른 것은 처음부터 죄주려 한 것이 아니고, 다만 소(疏) 안에 한두 가지 말을 물으려 하였던 것인데, 너희들이 사리를 돌아보지 않고 말을 변하여 대답하니, 너희들의 죄는 벗기 어렵다."
000등을 의금부에 내렸다가 이튿날 석방하라 명하였는데, 오직 정창손만은 파직(罷職)시키고...
역사적 사실을 잘 묘사하지 못하겠다. 세종대왕 때 백성들은 행복했다.

2. 마지막 전쟁을 죽음으로 -이순신장군의 노량해전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임진왜란에 연이은 정유재란으로 한반도를 피바다로 만든 왜적에 분을 참지 못했던 이순신 장군은 철군하는 왜적들의 뒤를 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과 함께 왜적을 물리치려 대열을 정비하던 진린 장군의 잘못으로
1598년 11월 18일, 500백여 척의 적선이 노량 앞바다로 몰려왔다.
고요한 새벽, 북소리를 시작으로 함성과 불화살이 하늘을 뒤덮었다.
곧 적들의 배에서 검붉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고, 이순신이란 무섭고도 무거운 이름에 눌린 왜군들은 결국 퇴각하기 시작했다.
적의 패배가 확실시 되었을 때, 누군가 쏜 하나의 총탄이 이순신 장군의 왼쪽 가슴에 와 박혔다.
전투는 계속되었고, 북소리는 멈추지 않았고, 싸움은 이제 끝이 곧 보일 조짐의 순간, 이순신 장군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
-누군가 이렇게 묘사한 글을 필사하며 한 두군데 지우고 첨가도 해 보았다.

3. 박근혜 前대통령 탄핵사건 -선전, 선동, 조작, 음모의 일시적 승리
정치인들이여! 정책으로 승부하라

전 국민을 정치의 소용돌이에 불러들여 서로 분열시킨 사건.
이명박 정부 때 광우병 소동을 일으켰다 실패한 단체가 전열을 재정비하여 기어이 정권을 차지한 사건.
모함과 분노와 조작의 승리로 더더욱 도덕적 삶이 왜소해 보이는 결과를 낳았다.
수많은 학생들의 억울한 죽음을 초래한 교통사고를 대통령의 책임으로 돌리면서 보수는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지목되어 거의 궤멸했다.
김정은은 3대 세습 후 수많은 국민을 아사시키면서 만든 핵으로 미국을 건드려보았고
세계적으로 얼굴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문 정권에게 절 받는 수확을 거두었다.
이에 수많은 노년층 보수파들 중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안쓰러움과 문 정권에 대한 분노로 노년의 삶을 편히 살지 못하고 주말마다 길거리로 나가게 되었다.

< 2. 그 중 하나를 선택하여 자신에게 왜 그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는지 그 이유를
해석 -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동인 하나를 잡아 집중적으로 탐구 -1/2페이지>

3번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사건이 특히 인상적이다.
정치라는 것이 무엇이고 국민전체에 미치는 영향, 또 우리의 민족성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실제 내게 작은 신념이나마 행동으로 옮긴 계기가 되었다.
그 이유는 대통령을 탄핵하기 위한 시작 방법이 너무 저질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물감을 사러 인사동에 나갔다가 벽에 박대통령 사진을 합성해 놓고 머리에 꽃 꽂아 놓은 것을 발견했다. 격분한 나는 다 뜯어버렸다.
나라가 무슨 선데이잡지도 아니고 결혼안한 여 대통령을 그렇게 성적으로 비하하는 것을 보고 이것이
우리나라의 영적 수준, 소위 개돼지로 불리는 국민수준인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그렇게 국민을 선동한 자들은 누구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 표창원의 저질 그림합성 사건이 터졌다.
그 자는 전직 경찰관으로서 국회의원이 되었는데 하는 수준이 그것밖에 안 된다.
정책으로 말하라!!!!!!
그런 저질이 국회의원이 된 것에 더욱 더 놀랐는데 그 사건으로 인해 나는 난생 처음으로 국회 민원에
글을 올리게 되었다. 한 5차례 쓴 것 같다. 욕이 튀어 나왔다.
나는 표를 인간 말종이라고 불렀다. 더 과격하게 쓰려다 겨우 참았다.
그들과 똑같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나라와 국민의 수준을 떨어뜨린 사건이었다.
무엇보다 다수라고 생각하면 무엇이 진실인지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동조하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놀랐다. 지금도 그렇다.

< 3. 그 장면이 상징하는 것을 앞으로 어떻게 자신의 개인적 역사에 긍정적으로 반영하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라 >

나라와 나는 운명공동체이다. 나라의 흥망에 따라 나의 존재도 흥망의 물결을 탄다.
나라가 후진국이란 소리를 들을 때부터 이 땅에 살아왔다. 문둥병환자가 거리를 배회하며 구걸하는 것을 본 적도 있다. 밥 좀 주세요오~ 네에에~~ 하며 소리 지르던 거지들 모습도 생각난다.
그랬던 우리나라가 성장에만 눈이 팔린 나머지 한국병이 들기 시작했다.
 거짓말. 가짜, 사기가 판을 치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지금도 유효한 나라다.
공짜를 좋아하여 부자는 돈을 써야 마땅하고 가난한 이는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풍토가 만연하는 나라에 산다.
떼법도 나타났다. 떼로 떼쓰면 법도 무시하고 들어준다. 경찰도 무시한다.
119대원을 때리기도 한다. 감사함을 모른다. 그저 자신의 분노만 표출한다.
나는 때로 우리나라 경찰에게도 총이 있어 그런 무지막지한 사람들에게 총을 쏴버리는 상상을 할 정도로 분노를 느낄 때가 있다.

사람들은 어려움이 닥쳤을 때 자신이 한 짓은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만 원망한다.
신이 계시다면 나라가 세계가 이꼴이냐, 심지어 하나님 제게 왜 이러십니까고 묻는다.
하나님은 억울하시다. 나라도 하나님 편을 들어줘야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한국병’으로 일컬어지는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는 것은 중심축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 중심축은 바로 도덕적 울타리로서의 가이드라인이다.
敬天이 없으니 愛人도 사라지는 것이다.
내게 말한다. 남을 고치려고 하지 말고 너부터 고쳐라.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무조건 '문턱을 넘는' 일이 없도록 나부터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 성수대교 짝이 나는 것이다.

도덕은 삶의 뿌리다. 뿌리가 튼튼해야 나무가 건강히 잘 자랄 수 있다.
나는 한국병이란 병을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기로 했다.
철들자 망령나기 전에 말이다..
우리 민족의 DNA애 들어있는 모든 악한 비도덕적인 요소에서 나를 해방시키는 것이다.
툭하면 남 탓하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나는 남을 탓하는 것이 없는가 생각해보는 것이다.
한국병을 나의 반면교사를 삼는 것이겠다.
누구 한 사람이라도 고쳐지면 한국병은 조금씩 낫기 시작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모였느냐가 그 공동체의 성격이 된다.
유유상종이란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거짓말과 유언비어, 조작과 음모, 시기, 질투, 비방, 비난, 비웃음, 허영심 등 지나간 날이 족하도다.
품위있는 한국인이 되고 싶다.
겉으로만 번지르르한 말, 아첨, 아부, 비위맞추기...입으로 짓는 모든 허물을 버려야 한다.
사실 모든 말과 행동은 마음을 바로 잡아야 나온다.
'마음에 가득한 것이 입으로 나온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나는 쌩떽쥐베리처럼 비행기에서 붙 타는 마을을 향하여 물 한 컵이나마 붓는 심정으로 살아가겠다.  
내 자손들에게 성공을 향하여 무조건 문턱을 넘으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도덕적 울타리로서의 가이드라인이 되겠다.
왜냐하면 극한 미세먼지 속에서 마스크 쓰는 사람들이 없다고 나도 안 써도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 죽더라도 거짓이 없어라. (도산 안창호)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요. <어린 왕자>, 쌩 떽쥐베리
이런 훌륭한 분들의 말씀도 내 마음에 있지만 다음의 성경말씀이 무엇보다 내게는 두렵고도 기쁘고 떨린다.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에스겔서 33:11’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마 16:27) 

이런 敬天愛人이란 삶의 기록을 책으로 남겨 내 자손들에게 물려주고 싶다.

<코멘트 & 질의응답>
신진철 : 사부님이 그림의 한 장면처럼 그려보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이유는 머리에 영상으로 돌아가는 것들은 더 오래 기억이 되고, 의미로 남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개인이 선택한 역사의 장면에 심장이 뛰는 이유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왜 선택한 장면들이 감명깊었는지 미리 얘기하고 발표하는 것이 좋겠다.
박혜홍 :  한글 관련한 것을 선택한 이유는 세종대왕의 성군으로서의 모습 때문이다. 두번째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을 택한 이유는 어떤 자리에서든지 자기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 때문이다. 세번째 관련해서는 박대통령이 옳다 그르다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 비난과 비판의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신진철: 화나 분노가 많이 나시는 편인지
박혜홍: 도덕선생님을 했던 영향인듯 하다. 진짜 사실을 알지 못하면서 왜곡된 사실을 가지고 떠드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화가 난다. 지금은 많이 누그러졌다. 분노도 습관이 된다. 박대통령 사건 때문에 많이 분노했는데, 그 결과 혈압을 측정해보니 갑자기 많이 오른적도 있다.
이선형: 사부님께서는 변경연에서 정치를 거론하지 말자고 하셨다. 지금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놀라운 부분이 있다. 생각이 다른 부분이 크다. 정치적인 신념에 대해서는 깊게 얘기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본다. 끝을 낼 수 없는 얘기다.
박혜홍: 동의한다. 사실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과제의 뒷부분에 써놓은 것들이 하고 싶은 얘기다.
이선형: 월별 과제로 읽었던 역사 관련 책들에서 역사의 장면을 가져오는 편이 좋을 듯 하다
박혜홍: 본질은 도덕적 문제라고 생각한다.
신진철: 제 느낌을 조금 말씀드리면, 첫번째 장면에서 보면 한글이 좋아서라고 말씀은 하셨는데, 정창손이라는 사람에 대한 파직을 하는 것에 주목해본다. 그것은 정의감, 도덕적 판단에 대한 기준, 심판 이런 단어들이 연상된다. 또한 두번째 장면도 멸사봉공하는 영웅적 이미지가 그려진다. 세번째는 가장 최근의 일이고 직접 겪었기 때문에 다른 역사적인 사건들보다 더욱 강하게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생각해보아야 할 부분들이 있다. 그럼 혜홍샘이 왜 이런 장면들에 분노하는지 생각해보았다. 선생님 안의 도덕감과 정의감이 많다. 가치관은 변할 수도 있고, 개인의 철학은 발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은 역사의 발전과정과도 같다. 개인적인 사정(집안일로 조퇴)으로 많은 얘기를 더 나누지 못해 안타깝다. 선생님의 경우 묘사하는 것보다는 이유와 원인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박혜홍: 그런 말씀을 들어본적이 별로 없어서 신선한 부분이 있다. 과제를 내주기만 했지, 과제를 해보지 않았다. 유익한 말씀이다. 그래도 노인의 고집 때문인지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이선형: 품격 있는 보수와 진보는 공존해야 한다. 서로 다른 전제를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는 합의가 이루어질 수 없다.
박혜홍: 이 사회에 도덕을 확립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열망도 있다. 관련해서도 책을 한권 내는 것도 생각하기도 한다
신진철: 사실 헤홍샘과 이선형연구원은 유사한 부분이 많다. 사부님께서는 이선형 연구원에게 ‘다르다’와 ‘틀리다’를 왜 구분해서 쓰고 있지 않냐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정의감이 있는 캐릭터들은 항상 본인은 ‘맞다’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은 ‘틀리다’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대화가 성립할 수 없다. 연구원 수업의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의 하나는 ‘다르다’에 대해 깊이 공부해보는 것이다. 사부님이 ‘깊은 인생’에서 말씀하신 것 중에 하나는 어떤 역사가 나에게 필연이 되는 것은 본인이 준비되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뭔가를 담기 위해서는 본인의 잔이 먼저 비워져 있어야 한다. 내가 왜 어떤 애기들에 왜 그렇게 반응하는지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정승훈: 옳다 그르다의 기준으로 받아들이면 대화가 되지 않는다. 본인의 어머니도 그런 부분이 있다. 본인이 항상 옳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에 결국 대화 자체가 없어지게 된다. 혜홍샘은 옳음에 너무 천착되어 계시는 것은 아닌지
이선형: 내 경우 변한 부분도 옳다 그르다에 집착하는 것이 덜해진 것이다. 이전에는 그런 부분이 굉장히 심했고 당위론적인 삶을 살았으나(별명이 가드레일이었다고 함) 연구원 과정과 사부의 가르침 덕분에 자유로워 질 수 있다. 사부님의 낙타와 사자의 비유가 이 대목에서 적절한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박혜홍: 그렇게 하기 위한 목적은 뭘까요?
신진철: 맛을 묘사하기 어려워 직접 먹어보는 것과 같지 않을까요?
로이스: 여행에도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은 정도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잔이 얼마나 비워졌느냐 차이라고 생각한다. 혜홍샘은 분노가 많은만큼 유머도 많다. 유머가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강한 속에 부드러움이 있고, 부드러움 속에 강한 것이 있는 법이고, 장점인 유머를 글이나 주장에 활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고, 다른 사람의 주장에 대해서도 관심과 호기심의 차원으로 접근하면 좋을 것 같다. 꽁꽁 보따리를 싸놓지 말고, 열어주는 것이 좋다.
이경종: 종교적인 것도 그렇고, 정치적인 것도 그렇고 선생님의 표현에는 많은 분노가 느껴진다. 강한 흑백논리를 가지고 계신듯 하다. 선생님께서는 이제껏 생각없이 사셨다고 누누이 말씀하셨지만 이제까지 이야기를 들어본 바로는 너무나도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오신듯 하다. 과제글 중에 이런 대목이 있었는데 “나는 쌩떽쥐베리처럼 비행기에서 붙 타는 마을을 향하여 물 한 컵이나마 붓는 심정으로 살아가겠다. “ 꼿꼿함속에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박혜홍 : 잠깐 생각해보면 목사에 대해 개인적으로 속은 것 때문에 인간에 대해 너무 실망하고 관심이 없어진 사건이 있었다. 진철샘의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 인상 깊었다.

정승훈
정승훈: 내가 경험한 역사의 장면에 주목했다.
<발표전문>
역사 속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장면 3개를 선택하여 간단히 묘사할 것 (1페이지)
장면 #1
국민학교 5학년인 1979년 10월, 학교운동장에 전교생이 모였다. 연단에 교장선생님이 계셨고 학생들을 마주하고 각 담임선생님이 서있었다. 교장선생님은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셨다고 알려주었다. 선생님들이 우셨다. 학생들은 우는 선생님을 따라 같이 울었다. 나 역시 왜 우는지 모르고 울었다. 슬펐다기보다 울어야 하는가보다 했다. 내 생애 유일한 대통령이었고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했기에 그 죽음은 평범하지 않았다. 그 때는 당연한 모습이었다. 그저 눈물을 흘리는 정도가 아니었다. 모두들 마치 부모님이 돌아가시기라도 한 양 소리 내서 울었다. 전교생과 교사들까지 모두 운동장에 서서 울었다.
이후 교실로 돌아온 기억도, 마무리를 어떻게 했는지 기억에 없다. 딱 이 한 장면만이 생각난다.
장면 #2
대학교 1학년이었던 1987년 봄, 신입생으로 마냥 설레었다. 종로를 지나가면 최루탄 냄새에 코와 입을 가리고 다녀야 할 정도였다. 눈은 따갑고 눈물을 흘리면 눈물을 따라 얼굴까지 따가웠다.
그날은 왜 그곳에 갔는지 모르겠다. 지하철 한양대학교 내려 학교로 올라갔다. 학교는 오르막길이었다. 그 길 한쪽 벽에 대자보가 걸려있었다. 손으로 쓴 글씨와 흑백 사진들이었다. 대자보의 내용은 처음 보는 것이었고 무엇보다 끔찍했다. 5.18 광주사태를 알리는 대자보였다. 혼란스러웠다. 분명 뉴스에서는 폭도들을 진압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대자보의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대자보를 읽으며 오르막길을 올라갔다. 그날 그 길을 따라 어디를 갔는지 기억에 없다.
장면 #3
대학원 1학년인 2014년 4월 16일, 9시부터 첫 수업이 있었다. 수업이 끝난 건 12시. 이어서 선배와 동기가 같이 간단한 점심을 먹으며 2시 30분까지 세미나를 했다. 3시에 또 다른 수업이 있어 들어갔다. 수업 중 “전원 구출했다니 정말 다행이에요.”라는 말을 했다. 배사고가 있었다고 했다. 난 어디 외국에서 일어난 사고인 줄 알았다. 수업은 6시에 끝이 났다. 집으로 오며 그 배 사고는 한국이었으며 전원 구출은 오보였다는 것을 알았다. 집에 와서야 내가 수업 받고 있던 그 시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았다.
각 채널마다 뉴스 속보를 하고 있었고 배가 기울어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몇 시에 얼마만큼 기울었으며 원인이 무엇인지 추측이 난무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와서 설명을 하고 있었다. 저녁 시간 내내 뉴스를 했지만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내가 수업 중이었던 오전 내내 전국민이 생방송으로 배가 기울어 가는 것을 지켜봤다.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혼란과 슬픔, 분노가 뒤섞였다. 왜 구조를 하지 못했는지, 왜 3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죽게 뒀는지. 그 날의 일이 이후 그렇게 큰일이 될지는 더더욱 몰랐다.
* 이 중 가장 인상적인 역사적 사건 하나를 선택하여 자신에게 왜 그 장면 특히 인상적이었는지 그 이유를 해석하라. 잡다하게 풀지 말고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동인 하나를 잡아 집중적으로 탐구하라. (1/2 페이지)
<세월호 사건>
첫 번째 사건은 너무 어려 잘 몰랐다. 두 번째 사건은 알고 싶지 않았다는 게 맞을 거다. 혼란스럽고 궁금해 하고 알아볼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386세대 민주화운동 세대라고들 한다. 하지만 난 그저 대학생활만 열심히 했다. 고등학교 1년 선배가 대학을 가서는 노래 동아리 활동을 했다. 그리고 그 윗선배는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머리를 밀고 학생운동을 했다고 전해 들었다. 왠지 내가 알던 선배 같지 않았다. 두려웠다. 뉴스를 보며 “대학생들이 공부는 안하고 데모나 하고...” 하시던 아버지의 말씀도 생각났다. 난 그런 대학생이 되면 안 된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나보다. 이후에 부채감으로 밀려왔다.
세월호 사건 역시 난 또다시 모른 척 지나칠 수 있었다. 하지만 난 이제 한 아이의 엄마이고 여러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 결혼하고 직장생활에 가정생활을 하며 열심히 살았다. 왜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모른 체 열심히 살았다.
2008년 나이 마흔에 교육으로 삶의 방향을 바꾸고, 2010년 세월호 사건이 있기 4년 전에 생애 처음으로 시민단체회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나의 개인 삶에서 확장해서 사회를 보는 눈이 생겼다. 나만 열심히 산다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같은 뜻을 가진 사람이 힘을 합쳐 노력해야 그나마 조금 바뀔 수 있겠다 싶었다. 세월호 사건이 있고 나서 엄마들이 움직였다. 공부만을 강요하던 것을 후회하는 엄마들이 생겨나고, 옆에 있는 자식의 소중함을 세삼 느꼈다. 나의 역사적 순간에 행동하지 않은 부채감이 작용했을까? 세월호 집회에 참석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전시도 가고, 100일 추모제도 갔다. 단원고도 가고 안산 추모공간에도 갔다. 1주기 때는 도저히 수업을 듣고 있을 수 없어 수업 중간에 나와서 안산으로 갔다.
이제 난 엄마다. 또한 교육자다. 행동하는데 소극적이고 두려워했던 과거의 나는 없다.
* 그 장면이 상징하는 것을 앞으로 어떻게 자신의 개인적 역사에 긍정적으로 반영하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라. (1페이지)
행동하는 시민으로 살고자 한다. 모든 개인적 삶은 정치다. 그냥 저절로 주어지는 것은 없다. 정치인 알아서 해주길 바랄 수는 더더욱 없다. 깨어있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 깨어있으려면 무지하면 안 된다. 교육은 필수다.
교육으로 삶의 방향을 바꾸고 10년이 지났다. 물론 방향을 바꿀 땐 큰 이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단지 나의 노후를 위한 대비를 위해 선택했다. 그 길이 이렇게 이어질 지는 그때는 몰랐다. 다행인 것은 상담과 강의를 하는 일이 나에게 맞고 그 영역도 구체적으로 되어간다는 것이다. 다른 이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나처럼 몰라서 혹은 두려워서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도 있다. 약한 사람들이 모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하지만 어떤 이는 말한다. 그 계란으로 바위가 깨지진 않겠지만 더러움을 남길 수 있다고.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한다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이래봐야 뭐가 달라지겠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 안 좋은 쪽으로 가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겠냐고 나는 말한다.
나의 관심과 사회적인 행동이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내 안에 동인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으니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있으랴. 아마 교육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혹은 후대의 아이들을 위한 일임은 분명하리라 본다.

<코멘트 & 질의응답>
신진철: 세상이 바뀔까요?
정승훈: 회의가 많기도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더 안좋은 방향으로 가는 것을 막는데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박미옥: 지양해야 할 부분과 지향해야 할 부분에 대한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정승훈: 시민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확고한 신념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사교육 관련해서 공평성과 공정성의 문제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교육철학이 없다는 함석헌 선생의 말은 되새길만 하다. 홍익인간은 구호만이 남아있다. 10년째 활동을 하면서 내 아이만을 위하는 것이 결코 내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같이 활동은 하는 동료들도 마찬가지 생각을 하는 듯 하다.
이선형: 이렇게 오프수업 조가 짜지기도 쉽지 않은데, 재미있는 부분이다. 역사서에서 끌어오는 방식으로 한번 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오늘 발표한 부분은 미스토리로 연결하면 좋을 것 같다. 이전달에 신화를 하고 이번 달에 역사는 하는 것은 의미있는 커리큘럼이라고 생각하고 과거를 돌아보면 개인적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박미옥: 커리큘럼이 잘 짜여있다고 생각하는데,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좀 있는 것 같다.
신진철: 세상 밖으로 책을 낸다면 모두에게 공감을 얻을 포인트가 필요하다.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코드가 필요하다. 이전에 광주 망월동 묘지에 5.18 참배를 간적이 있다. 묘비명을 보다가 문득 이름 하나에 시선이 꽂혔는데, 확인해보니 과거 국민학교 시절 세례를 받을 때 함께 받았던  고등학생이였다. 총알은 내 옆을 스쳐, 그 사람의 가슴에 박힌 것과도 같다. 그때 깊은 생각을 했고 역사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로이스: 과제가 미래지향적으로 드러나야 할 듯 한데, 주장과 지금 있는 생각의 확장에만 불과한 것이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신진철: 장면 1,2,3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박미옥: 발표한 것이 7월 과제의 성격과 비슷하다(외적 사건 5개, 내적 사건 5개). 지난 달 신화수업의 경우에는 신화를 통해 자기안의 무엇인가 동력과 같은 것을 발견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고, 이번 달 수업의 경우는 역사와 사회적 맥락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달의 신화때 발표했던 것과 연결한다면, 역사적 사건과 맞물려 확장된 엄마라는 개념을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지?
정승훈: 많은 아이들에게 수혜를 주고 싶었고, 그 방법이 강의가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나의 달란트라고 생각한다.
박미옥: 개인의 의지만으로 활동하기는 쉽지 않을수 있다고 본다. 많은 딜레마에 부딪힐수 있다.
이선형: 확장된 엄마라는 개념이 본인이 이끌어낸 것인지, 그리고 본인에게 맞는 옷이 확장된 것은 아닌지
정승훈: 명명한 것은 미옥샘이고, 본인에게 맞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박미옥: 지금은 자기탐색을 할 수 있는 시간들이므로 열린 실험을 많이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해야 하는 것 말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책임 테마는 좀 놔두는 것이 어떨까?
이선형: 책임 테마는 개인적으로 잘 이해되는 부분이다. 놔두는 것보다는 테마대로 사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일적으로 사춘기의 청소년과 학부모를 만난다. 주위를 보면 관심사가 아이에 따라 흘러가는 사람들이 있다. 육아부터 입시나 교육으로 관심사가 옮아가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10년후에도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일인지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만약 아이가 없어도 이 일을 했을까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정승훈: 아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책임테마 뿐 아니라 내 강점 테마인 커뮤니케이션이나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싶은 성격 때문인 듯 하다.
이선형: 정말 즐거워서 하는 일이 있는지(즐거워서 하는 무엇인가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승훈: 일적으로 만나지만, 개인적인 관계와 만남을 좋아한다. 그것이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뜨개질이나 만드는 것도 좋아한다
이경종: 세월호를 통해 이 사회에 대한 부채의식과 함께 역사적 사명의식을 가지게 된 사람들을 보곤 했는데, 승훈 선배는 아이를 통해 발전한 것 같다. 발표했던 것에 ‘행동하는데 소극적이고 두려워했던 과거의 나’라는 부분 있는데, 잘 연상이 안 된다. 지금의 행동하는 성격과는 다른 것 같은데 변화의 계기가 있었는지
정승훈: 과거의 어린 시절 살았던 환경의 영향이었던 것 같다. 존재감 없고 막내였던 나는 소극적이었다. 계기가 되었던 것은 전기기사 자격증 시험 덕분인 것 같기도 하다.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있었다. 그러면서 존재감이 커진 것 같다. 20대 초반의 일이다.

이경종
<발표전문>
1. 역사 속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장면 3개를 선택하여 간단히 묘사*할 것 (1페이지)
 
<장면 1>
"안위야! 네가 정녕 군법에 죽고 싶은 게냐!  물러나 도망가면 살 것 같으냐?" 충무공은 적선에 돌진하지 못한 채 머뭇거리는 휘하 장수에게 일갈하며 본인이 승선중인 대장선 역시 돌격을 명했다. 올돌목의 회오리 치는 바다 한가운데로 왜군의 대함대가 휘몰아쳐오고 있다. 13대 133의 싸움이다. 거친 파도 앞에 놓인 종이배와도 같은 처지였음에도 충무공의 자세는 흐트러짐이 없다. 주저하는 마음으로 한발자국만 물러나도 조선수군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 할 것이다.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삶으로 나아갈 수 없는 명량의 바다는 이제 누구의 편도 아니다. "필생즉사! 사즉필생!" 바다는 더욱 간절하게 원하는 자에게 승리를 가져다 줄 것이다. 부릅뜬 두 눈을 적선에 고정한 채 충무공은 포효한다. "돌격하라!" 올돌목의 흐름이 썰물로 바뀌는 찰나 죽기를 각오한 13척의 전선이 물살을 가르며 왜군 대선단의 전면으로 돌진한다. 세계해전사에 길이 남을 명량해전이 바야흐로 시작되는 순간이다.
 
<장면 2>
1919년 3월 29일 개기 일식의 순간, 천문학자 프랭크 다이슨을 비롯한 영국의 과학자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일반 상대성 이론의 허구를 증명하기 위해 영국 왕립학회의 주관으로 브라질에 파견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태양의 중력장으로 인해 태양 근처에서 빛의 굴절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목격되었다. 그들의 실험에서 나온 수치는 아인슈타인이 예견했던 수치와 일치했다. 중력에 의한 적색 이동과 태양을 지나는 별빛이 1.7초 가량 휘어지는 현상을 예견했던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이 실험적으로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철학자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는 이 인류사의 길이 남을 명장면에 대한 소감을 이렇게 남겼다. “위대한 사색의 모험이 마침내 무사히 해안에 닻을 내렸다” 
 
크로노스의 절대시간만이 유일한 시간이 아니며, 카이로스의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인류가 언젠가는 영원의 시간에 도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 위대한 순간이 아니였을까?
 
<장면 3>
수많은 낮과 밤을 보리수 아래에서 고행하던 석가모니는 결국 대오각성의 문턱에 이른다. 보리수 아래 가부좌를 틀고 있는 석가모니의 몸은 은은한 황금빛으로 빛나기 시작했고, 그 광휘는 점차 하늘로 뻗어 나갔다. 그 눈부신 광휘에 놀란 제육천의 마신 마라는 석가모니의 각성을 방해하기 위해 지상에 강림한다. 마라는 속세의 다양한 모습으로 석가모니를 유혹한다. 하지만 아름다운 여인과 속세의 권력, 그리고 거대한 무력 앞에서도 석가모니는 흔들리지 않고 결국 정각에 이른다. 모든 것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부처는 자신의 전생을 거쳐, 만물의 고통과 그 인과관계를 헤아리는 혜안과 함께 완벽한 깨달음을 얻는다.   
 
 
2. 이 중 가장 인상적인 역사적 사건 하나를 선택하여 자신에게 왜 그 장면 특히 인상적이었는지 그 이유를 해석**하라. 잡다하게 풀지 말고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동인 하나를 잡아 집중적으로 탐구하라. (1/2 페이지)
 
석가모니가 열반에 드는 장면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장면만큼이나 동양사상에 있어 극적인 장면이다. 인간이 자신의 무의식과 완전히 화해하고, 자기 안에서 신을 찾아내는 결정적 장면이다. 이것은 인간이 그 자신의 내면에서 의미를 찾고, 자신에게 씌워진 세계와 존재의 굴레를 벗어버리는 것이다. 석가모니가 얻은 깨달음은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사성제(四聖諦)로 설명할 수 있다. 모든 고집苦集을 멸滅하는 것은 실천의 도道인 것이다.
 
속세의 삶은 다양한 고통을 가지고 있다. 생로병사의 번뇌와 세상일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데서 오는 고통은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히며 삶의 의미를 격하시키고 있다. 존재하는 모든 고통은 우리의 무지(無知)와 욕심과 분노로부터 비롯된다. 석가모니의 깨달음은 모든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조건 없는 완전한 긍정을 의미한다. 고통을 없애는 길은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내 안에 타오르고 있는 욕심과 분노를 없애는 것이다. 
 
석가모니의 해탈은 결코 우주 삼라만상을 아우르는 거대한 깨달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생각을 바꿈으로써, 그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보편성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인류가 이제껏 발견한 진리들 중에 가히 으뜸이 되는 진리라고 할 수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변한다. 하지만 그 변화는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변화를 애써 내 것으로 만들고자 할 때 모든 고통이 시작된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과 인간세상의 풍파 속에서 개인은 무력한 객체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기에 외부로부터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허황된 일이다. 세상을 긍정하고, 외부로 향해 있던 시선을 내 안으로 돌려야 한다. 변화는 결국 내 안에서 이룰 수 밖에 없다.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은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이 세상이 정해놓은 대답만을 가지고 살 수 밖에 없다.
 
 
3. 그 장면이 상징하는 것을 앞으로 어떻게 자신의 개인적 역사에 긍정적으로 반영하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라. (1페이지)
 
장면 1 - 고집苦集
지하철 4호선 평촌역에서 나와 회사로 걸어가는 길, 몇 걸음 걸어가다 왈칵 눈물이 흘렀다. 누가 볼새라 얼른 흐르는 눈물을 수습하고 다시 가던 길을 재촉한다. 가로수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이리도 따듯한데, 왜 내 삶은 이모양 이꼴이 된 것인지 알 수 없다. 화창한 날씨와 나 사이에는 건너갈 수 없는 커다란 괴리가 있다. 따듯한 햇살과 무심히 지나가는 행인들, 그 사이에 무너져 버린 현실에 적응하지 못 하고 세상 고난은 혼자 짊어진 듯 한 내 모습이 있다. 현실을 인정하기가 죽을 것만큼 힘들었다. 왜 내가 만들지도 않은 문제들로 불면과 고뇌에 시달려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처음부터 뭐가 잘못된 것 같은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도 알 수 없다. 혼란스러울 뿐이다.
 
장면 2 - 멸滅
허리 디스크가 두 달째 말썽이다.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의 첫 구절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念身不求無病)"는 글귀를 되새기며, 이 고통 또한 언젠가는 지나가리라 믿어본다. 책상에 앉아서 하는 모든 일들에 대한 좋은 핑계거리가 생긴 셈이다. 아직 내 영혼은 육체의 허약함을 버티기에는 너무 허약한 듯 하다. 그래도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고생하던 지난 몇 년에 비하면 요즘은 세상 살만하다. 여전히 나 자신과 내 현실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가여운 영혼이지만, 그것들 또한 내 일부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글쓰기는 내 안의 나를 발견하고 일으켜 세워주는 좋은 수행법이다. 아직 미숙하고 정심을 다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 조금씩 나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아직은 미미하지만 내 안의 변화가 세상과의 교감을 위해 조금씩 조금씩 움트고 있다.
 
장면 3 - 도道
자신의 본성(本性)대로 살지 못하던 한 사내가 결국 자신을 찾고, 그 본성에 따라 자신의 역사를 하루하루 담담히 써내려 가고 있다. 매일매일 최상의 컨디션으로 아침을 시작하는 것은 그에게 있어 일상의 최고 과제이다. 펄떡펄떡 뛰는 물고기와도 같이 살아있는 하루는 그가 가지고 싶은 모든 것이다. 그는 깨달은 것일까?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사실은 그가 더 이상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십년동안 그를 괴롭히던 인생이라는 물음은 이제 삶의 환희로 바뀌었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은 단지 현실에 순응하거나, 미래의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욕심과 분노를 버림으로써 나와 세상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벽을 허무는 것이다. 세상에 대한 조건 없는 긍정은 진정한 자신의 본성을 찾는 길을 광휘로 비추어 주었고, 덕분에 그는 진정한 삶을 더 늦기 전에 찾을 수 있었다. 지하철 4호선 평촌역에서 나와 이전에 다니던 회사로 가는 길을 그가 걸어간다. 회사는 이미 없어졌지만, 함께 고생했던 옛동료들과 오랫만에 한잔 하기로 약속한 날이다. 석양에 실려오는 햇살은 여전히 따사롭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6월의 울창한 가로수 숲 사이에 그가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 그리고 내면의 조화로움 그 사이에서 미소 지으며 걷고 있는 그가 있다.
 
 
역사는 흐른다. 유기체처럼 끊임없이 변하는 역사의 흐름에는 무수히 많은 조각들이 얽혀 있다. 패러다임, 혁명, 우연과 같은 많은 동인들이 복합적으로 역사의 인과관계를 형성한다. 개인의 역사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내면의 동인들에 의해 그 흐름이 달라진다. 비록 외부로부터 주어진 상황에서 출발하더라도 그 방향과 도착지는 스스로 선택해서 걸어가야 할 각자의 몫이다. 
 
깨달음은 내면의 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다. 깨달음이 비록 외부 세계와의 교감과 경험에서 촉발된다 할지라도, 마무리는 스스로의 내면에서 갈무리할 수 밖에 없다. 맨 마지막 한걸음은 결국 자기 혼자서 걷지 않으면 안 된다. 내면에서 갈무리된 그 힘을 원천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개인의 이루어내야 할 역사의 진정한 표본이다.
 
 
"영혼과 육체가 강할수록 투쟁은 그만큼 수확이 많고, 최후의 조화는 더욱 풍요하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코멘트 & 질의응답>
로이스 ; 내가 가장 바라던 글이네요.
진철 ; 자기소개서(미스토리)를 봤어요. 마흔앓이 공통점이 있어요, 주류가 아닐 때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할때 자유롭지 못할 수도 있고, 본인이 잘 모르기도 하고… 하기 시작하면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낼 수 있겠다 싶어요. 굉장히 노력과 시도에 공감하고 응원하고 싶어요. 왜 석가모니의 깨닭음에 꽂혔을까 싶어요. 공부를 잘했을 것 같아요. 신화를 보고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이 사람사는 이야기인데 동시대의 수많은 이야기들의 집합체인 것인데, 내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를 찾는 것이죠. 그걸 찾아가는 과정인데 그게 떨림이라고 생각해요. 그 장면이 3장면일 것 같아요.
상현 ; 어떤 사건이 있었어요?
경종 ; 사실 그동안 무난하게 살았는데 10년전 조인한 벤처회사부터 잘 안되기 시작했어요. 결과적으로 안좋았고 침몰하는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 했고 2014년부터 3년동안 불면증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지금 심적으로 나아졌어요. 20대 초반부터 구본형선생님의 책을 봤어요. 제가 성격이 부정적이었는데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나의 일부라고 인정하게 되었고 글을 써봐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구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변경연은 끝이다 생각했는데 10기가 활동하고 있고 안 망하고 있네 하긴 했지만 구심점이 없으니 탐틱하지가 않았어요. 11기도 뽑고 하는 걸 보고 변경연에 들어가야겠다고 마음 먹었죠. 개인적으로 빡쎈게 맘에 들었어요.
상현 ; 30대까지 지향하고 살아온 것이?
경종 ; 경제적인 성공이 가장 우선이었죠.
상현 ; 지금 만약 경제적인 성공이 실현된다면?
경종 ; 제가 비록 보리수나무에 앉아있지는 않았지만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 어느정도 깨달음이 있었죠. 세속적인 성공 자체를 부정하지도 않고, 가치없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다른 가치들이 더 커지고 있는 것 뿐이죠.
진철 ; 장관님이 저를 채용한 이유가 그 바닥에 있었던 사람을(맑시즘) 알아본 거죠. 제가 보니까 영혼의 목마름이 있는 분이니까 충분히 잘 소화해나갈 것이라고 봐요.
상현 ; 인문학이란 것이 인위적으로 나뉘어지면서 내 생각을 나의 관점으로 나눠지는데, 세상을 그린다면 그전에 어떻게 그려지는지? 나에게 맺힌 상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데,,, 쓴 내용을 보면서 공감하는데 나의 생각과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이 실체죠. 제가 두려운 게 나란 존재감 없이 사라지면 어떨까 하는 두려움이 있는 거죠. 나란 존재감 주변의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고 싶은 것 같아요.
미옥 ; 우울증과 불면증은 3년만에 빠져나올 수 없다고 알고 있는데… 가장 힘들었던 시간을 지났는데 결정적인 계기는?
경종 ; 결정적인 계기는 없었던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나아졌어요. 마흔앓이가 있다는 것은 변경연을 들어와서 더 확실히 알게된 부분이죠. 불면증을 겪는 동안 일상생활을 하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1년 약을 먹다 독한 마음 먹고 끊었는데, 더 힘들어지고 우울증도 같이 왔죠. 기댈 수 있는 것은 아침에 그동안 읽었던 좋은 책을 다시 읽는 거였어요. 읽으면 힐링이 되는 책들을 읽었어요. 
미옥 ; 주로 어떤 메시지가 힐링이 됐어요?
경종 ; 너무 많은데… 구본형 선생님뿐만 아니라 신영복선생님부터 너무 많았어요.
상현 ; 자기에 대한 의식이 분산되면서, 내가 누군지를 의식하면서 힘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경종 ; 불교에 심취하고, 20대부터 혼자 살면서 밤만 되면 인간에 대해 고뇌하는 모자란 영혼이었던 것 같아요. 결혼하면서 없어졌나 싶은데 마흔이 되면서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외부적인 사건들과 함께 다시 불거져 나온 것 같아요
상현 ; 생각도 그렇고 운동을 해야 해요. 40대 인데 몸도 마음도 조숙한 것 같아요. 주도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으로 끌고 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진리가 나에게 진리면 되는 거거든요. 내면의 계절은 불러올 수 있다는 거죠. 거기서 힘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선형 ; 궁금할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몸에 대한 것에 대해 저도 동감해요. 문요한 선배가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2010년에 구본형 선생님은 하루에 2시간을 나를 위해 투자하라고 했어요, 습관에 대해 고민을 했는데 기질적으로 달라요. 저는 그게 힘들었어요. 자기혐오, 비하까지 와요. 자기에게 주어지는 당위를 자기 스타일로 하는 것이 있겠구나. 욕심과 분노는 잘 버려지지 않아요. 서양식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피안의 세계를 위해 피 터지게 부딪혀야 하느냐 싶은 생각이 있죠. 불교 강의를 들었는데 결국 속세로 돌아오는 것이 최고 꺄달은 보살이라고 해요. 여기서 나오는 단어들 “매일 매일 치열한 삶” “조화로움”이라는 단어가 제가 키워드로 삼았던 것인데 당위와 역할 사이의 조화가 고민거리였거든요. 조금 더 자기 자신을 좋게 봐주면… 혼자 너무 생각하지 말고 사람 속에서 피드백을 받는 것도, 생각을 몸으로 받고… 피드백을 통해 이 과정이 좋지 않을까 해요.
상현 ; 책을 써야 되는데… 책은 부산물인데 책이 우상이 될 수 있는데 책이 안 나왔으니 미결이고…
미옥 ; 이 과정이 로드가 엄청 걸리는데 이 과정을 하면서 어떤 즐거움일까요?
경종 ; 껍질을 벗는다는 느낌,
미옥 ; 자신을 우울증에 빠뜨렸던 신념은 ?
경종 ; 내 신념이 문제가 되지는 않았던 것 같고, 가장 큰 것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다 될 것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 모든 것이 잘 안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상태라고나 할까요(김훈 선생이 얘기한 '내일도 새로울 것이 없으리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중년의 가을은 난감하다'라는 문장과도 비슷한 듯)
경종: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냥 생각하면 평범하게 성공하고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삶이 무너진 것 같은 것.
특히 가장으로서 (나만이 아니라, 가족을 위한) 성공의 길에서 멀어진다는 느낌.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까지 생각했을까, 그렇게까지 고민할 문제였을까 생각도 든다.
상현: 저는 그런 경험이 있다.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정확한 진단이 나오기 전 한 달 정도, 또 아들 때문에 얘가 앞으로 혼자 자립할 수 있을까. 김홍근선생이 진행한 자기정화 과정에 참가한 적이 있는데, 난 그때 잘 적응하지 못했다. 그런데 김홍근샘과 상담을 하면서 아들 (걱정)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김샘이 나를 혼냈다. 왜 먼저 아들에 대해 판단하고 미리 걱정을 하느냐고. 업무를 옮기게 됐는데 단기적 관점에서 보면 안 좋은 일이었는데, 나중에 생각하면 결국은 새옹지마라고 생각한다, 나의 해석, 나의 의미부여. 이런 것이 바로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진철 : 나이를 먹고 가장 힘든 게 뭘까, 나와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없는 외로움이 아닐까. 과거의 경험과 느낌을 함께 나누고 웃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일 것 같다.
정승훈 : 경종씨의 미스토리를 보면서 참 많이 공감했다. 본인은 자신이 부정적이라고 했지만 <강점혁명> 등의 과정을 거치면 그것이 장점으로 소화할 수 있다고 본다.
상현: 연구원 과정을 거치면서 단어를 자기만의 언어로 재정의한다는 것이 필요하다. 언어는 생각의 표현이자 한계가 된다.
선형 : 언어는 사상의 경계가 된다.
진철: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칼럼에 썼던 이런 표현과 일목상통한다는 생각이다.
상현 :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비유와 은유를 많이 사용하라.
한숙: 경종씨의 글을 보면 나를 보는 듯한 느낌이 많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무한히 자유롭게 창조적이 된다. 답답할 때 일기나 글을 쓰면 내 마음의 공간이 넓어지고 무언가 깨질 때 느껴지는 희열. 글이 나에게는 공간이자 자유다. 글을 쓸 때 생각이 많다는 것, 생각이 많다는 것은 좋은 거다. 내 세상 하나를 만들어가는 기쁨, 해방. 글을 보면서 참 좋다.
상현 : 일 할 때, 회사생활 할 때 힘들었을 것 같다.
경종 : 일 할 때는 이런 생각이 안 들고, 모드 전환이 된다.
상현: 혜홍샘 같은 경우는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는, 정해진 무언가가 있고, 그것을 찾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라는 느낌.
한숙 : 종교라는 이름...
상현: 하나님이 나에게 준 소명이 있을 것이라는 것, 그것을 찾는 것이 나의 미션이라는 생각...
미옥 : 우리는 모두 무언가 갈구하고 찾는 것이 있기 때문에 이곳에 왔다는 생각. 현재 그것이 표현되는 방법과 길이 다를 뿐
“그리하여, 마침내... 자유”
그것이 무엇인가는 각자 알아서.
각자 자기에게 편안하고 행복한 길을 찾아가는 것.
진철 : 동기 복. 6기는 동기 복이 많았는데 12기, 경종씨는 동기가 부족하지만 커뮤니티 안에서 그 복을 찾았으면 좋겠다. 다른 이들의 글을 보고 댓글을 달고 하는 과정들. 선생님은 선생님을 보고 모인 사람들에게 선생님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보게 해주셨다. 오병이어의 기적의 행간에 담긴 의미. 예수님 말씀을 들으러 모인 절박한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하셨을까, 내 말을 들으러 온 절박한 사람들에게 옆을 보라고 하셨을 것 같다. 먹을 걸로 하셨다. 배려와 나눔을 겪어보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소통과 나눔이라고 하는 기적을 보여주셨다. 선생님이 행하신 교육방침이 그런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각자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자신만의 아픔이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보게 해주신 것. 교육학 이론에도 이런 게 있다고 하더라. 서로에게 배우는 것.
상현: 정신과 의사가 줄 수 있는 것은 들어주는 것과 약을 주는 것. 그런데 자조모임을 통해 아픔을 치유할 수 있다. 여기가 자조모임이다.
진철 : 외로운 시간은 감수해야 할 것이고, 그런데 그 외로운 시간이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미옥 : 선생님 계실 때는 기수끼리 긴밀했다... 절실한 시기에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 간의 끈끈함. 횡적인 끈끈함. 12기가 동기가 없는 것을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종적인 연결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다른 사람(선후배)들로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 연차별 생각의 차이 등을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 기존 연구원들이 각자 자기 스타일대로 선생님의 가르침을 내재화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없는 것을 아쉬워하는 것은 슬픈 일, 가슴 아픈 일이다. B를 얻기 위해 A가 꼭 필요해, 라는 생각이 어쩌면 절망에 이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동기가 없어서 아쉽지만, 없는 것을 아쉬워만 하지 말고, 다른 방법을 통해서 찾을만한 내공은 있을 것이다. 손을 내밀면 다 잡아 줄 것이다.
정승훈 : 오래 살아보니, 나쁜 것이 다 나쁜 것이 아니더라. 좋다고 다 좋기만 하지도 않더라. 11기 수업을 할 때 생각해보면 이 정도 시간이 되면 머리가 참 아팠다. 8명 동기가 있었지만 많다고 다 좋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지 못했다. 숱한 역사적 사건이 많지만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개인의 준비다.
한숙 : 경종씨의 수업 소감은?
경종: 변경연을 글로 오래전부터 만났기 때문에, 이미 알고 있는 느낌이다. 글과 사람이 다른 경우도 많지만, 실제 이렇게 많이 얘기를 해보면 글과 일치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는 것이 좋다. 오프수업은 좋은 책과 같다. 좋은 책을 봤을 때 전율하는 느낌을 받은 것을 사람과 만나고 얘기를 들으면서 느끼는 것이 좋다., 변경연에 들어오기 전에는 거의 겪지 못하던 느낌이다.
미옥 : 늘 기대한 것을 얻는다면 그것도 재미없는 일일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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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7 18:06:19 *.148.27.35
와~
많은 선배님들이 참석해줬군요. 진철형님은 먼곳에서 와주셨는데, 특히 감사합니다. 좋은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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