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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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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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8일 00시 14분 등록
제목 : 혼자라서 빛나는 토요일


'혼자놀기'라는 주제로 글을 쓰다가 몇몇 분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토요일'이라는 내용을 급 추가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서문과 본문이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



저자소개

혼자 산책하고, 혼자 여행 가고, 혼자 영화 보고, 혼자 사진 찍고, 혼자 기차 타고, 혼자 밥 먹고, 혼자 서점 가고, 혼자 술 마시고, 혼자 요리해 먹고, 혼자 가방을 꾸리고. 이를 통해 자신의 진짜 속을 알고 싶어 하는 30대 직장인.


강미영 / 1979년 / 다음커뮤니케이션 마케팅센터 근무
구본형 변화경영 연구소 연구원 2기 / 명로진 인디라이터 3기

진실
그녀는 친구가 많다. 항상 명랑한 웃음을 짓고 다니는 그녀 주변에는 사람들이 와글거린다. 이런 그녀가 혼자놀기가 취미라니 조금은 의아하지만 사실이다.
그녀는 매주 토요일, 혼자 논다. 만나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약속을 잡을 수 있지만, 토요일은 그녀 자신을 만나기 위한 시간으로 정해 두었다. 혼자 여행을 다니고, 길을 걷고, 책을 보고, 집에 가만히 누워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이렇게 혼자인 시간을 통해 자신을 충전한다. 충전된 에너지는 밝음 에너지로, 돌봄 에너지로, 베품 에너지로 전환되어 친구들에게 전달된다.
그녀가 친구가 많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혼자 보내는 시간 덕분이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친구들과 어울리는 원동력이 되는 셈이다. ‘혼자’인 시간이 없었다면 그녀의 ‘관계’ 또한 온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주제 : 나는 왜 이 책을 쓰려 하는가?
아무리 좋은 친구와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혼자이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혼자인 시간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어디서 어떠한 모습으로 있어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엉거주춤한 상태로 있다가 그 시간들을 견뎌 내지 못하고 허둥대며 다시 관계 속으로 들어갑니다. 혼자이고 싶은 순간에 혼자이지 못한 사람은 그 욕구가‘관계’까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공연히 가족들에게 짜증을 부리고, 친구들에게는 가만히 좀 내버려 두라고 소리를 치게 됩니다. 이러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혼자인 시간을 잘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연습이 필요합니다. 의식적으로 혼자인 시간을 갖고, 마음의 소리에 몸이 따라 가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토요일마다 혼자 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있어 누군가의 무엇이 되어 역할 해 내기에 바빴던 나에게 나를 찾아주고 싶었습니다. 토요일은 혼자 해야 한다는 이유로 포기 했던 일들을 다시 끄집어 내어 실천 하는 날입니다. 토요일은 나 자신을 위한 충전의 시간이고, 자유로움의 상징이고, 관계 속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동굴이고, 일주일동안 지쳐있을 나를 위한 선물입니다.

이제, 혼자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싱글이나 독신, 혹은 은둔자, 고립형 인간들만의 이슈가 아닙니다. 누구나 혼자인 시간을 채울 꺼리들을 준비해 두고 있어야 합니다. ‘혼자’라는 것을 다른 사람과 함께 있지 않은 상태로 보지 않는,‘싱글들만의 생활’이나 ‘혼자 사는 은둔자’로 보지 않는, 그저 자기만의 왕국을 조용히 만들어 가는 시간으로 바라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을‘견뎌내야 하는 시간’이 아닌 ‘즐기는 시간’으로 보는 출발점에 독자들을 세우고 싶습니다.
혼자인 시간이 불안하고 엉거주춤 해 보여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혼자 보내는 토요일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좋은 토요일을 갖게 되는 것이 얼마나 삶의 질을 높이게 되는지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제목
혼자라서 빛나는 토요일 (부제 : 대한민국 직장인 혼자놀기)


목차

서문 / 나를 만나러 가는 날, 토요일

1. 자신감을 얻는 방법 연구하기
- 버스 : 혼자놀기는 사람으로 가득 찬 무인도다 / 낯선 사람에게 말걸기
- 식당 : 혼자놀기는 달콤한 맨밥이다 / 혼자 밥 먹기
- 호텔 : 혼자놀기는 곰처럼 생긴 남자의 프러포즈다 / 혼자서 호텔키를 받아 들고서

2. 한가지 성과를 내는 토요일
- 산 : 혼자놀기는 힘쎈 봄이다 / 매월의 마지막 토요일
- 도서관 : / 토요일 오전에 읽기 좋은 책
- 우리동네 : 혼자놀기는 마술장이의 피리소리다 / 야경순례

3. 같이 있지만 다들 혼자인거야
- 목욕탕 : 혼자놀기는 스물 다섯 살의 옹알이다 / 거울 속의 나에게
- 서점 : 혼자놀기는 인어의 걸음이다 / 책 속에서 나 찾기
- 길 : 혼자놀기는 꼭 맞는 신발이다 / 내 페이스 꿋꿋하게
- 미용실 : /

4. 혼자서 광장 속으로
- 동물원 : 혼자놀기는 그림 속을 걷는 것이다 / 겨울 동물원에 대하여
- 꽃구경 : 혼자놀기는 아날로그의 시간이다 / 꽃잎엽서 보내기
- 카페 : 혼자놀기는 말없는 라디오다 / 지나가는 사람 말풍선 만들기

5.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아
- 내 방 : 혼자놀기는 긴 한숨 사이에 작은 숨돌림이다 / 나를 즐겁게 하는 것들
- 민박집 : 혼자놀기는 새로운 리듬이다 / 낯선 곳에서의 일상
- 아지트 : 혼자놀기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보약이다 / 나에게만 의미 있는 곳

6. 마음의 키는 혼자일 때 자란다.
- 미술관 : 혼자놀기는 마음성형이다 / 책보고 그림보고
- 부동산 : 혼자놀기는 / 집 구경 다니기
- 극장 : 혼자놀기는 유쾌한 기억상실증이다 /
- 섬 : 혼자놀기는 낯선 고마움이다. /




서문

나를 만나러 가는 날, 토요일

당신에게 토요일은 어떤 의미 입니까? 미처 처리하지 못한 일을 해야 하는 추가 근무일 일수도 있고, 친구와 한편의 영화를 보고 한잔의 커피를 나누는 약속의 날일수도 있습니다. 주말 부부라면 설레는 만남의 날이겠고, 특별한 약속이 없다면 한주간의 피곤을 달래느라 꼼짝없이 이불 속에 누워 보내는 시간일수도 있겠네요. 아아, 뭘 하고 보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구요?

지금까지 어떠했든 상관 없습니다. 이제, 그 하루를 나를 만나러 가는 날로 정합시다. 시간과 장소 모두 마음대로 정하세요. 하고 싶은 일도 마음대로 정하세요.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머물고 싶은 곳에 머무르면 됩니다. 마음대로 하세요. 그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어디서든 자신을 혼자 두세요. 이 규칙 하나면 충분합니다.

일주일 중 하루는 내가 둘이 되어 나를 안아 줍시다. 누군가의 무엇이 아닌, 내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몸이 함께 가 주고, 몸이 있는 곳을 마음이 좋아해 주는 하루를 만듭시다. 당신이 존재하지 않는 월화수목금을 지나 왔다면 토요일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시간으로 비워 두세요.
그리고, 이 책의 제안 중 한가지만 실천해 보세요. 너무 많은 말을 하느라 다 쏟아버린 에너지를 독서로 충전해도 좋고, 아무것도 이뤄낸 게 없어 허무한 일주일이라면 산을 올라도 좋고,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으로 혼자만의 여행도 좋고, 방에 가만히 앉아 생각 속으로 들어가도 좋습니다.

나만을 위한 토요일을 찾으세요. 그렇게 마음대로 하루를 보내고 나면, 나를 되찾은 것 같은 안도감,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남겨진 가족들에게는 미안함이 들 테니까요. 당신만의 왕국을 만들어 냈다는 뿌듯함을 느끼게 될 테니까요. 이 마음들이 모여 더욱 단단한 관계로 당신을 이끌어 줄 테니까요.

본문

민박집 : 혼자놀기는 새로운 리듬이다 / 낯선 곳에서의 일상

일상이 진짜 일상으로만 느껴질 때,
내 삶이 고장 난 브레이크를 장착한 것처럼 멈춤 없이 흘러가기만 할 때,
그저 해가 뜨고 진다는 이유만으로 나의 하루가 끝나갈 때,
하루에 두 명 이상의 사람이 다섯 번 이상 눈에 걸리적 거릴 때,
도저히 혼자서는 이것들을 바꿔나갈 힘을 찾지 못할 때,
새로운 리듬 위에 너를 세워봐.
너를 제외한 모든 것들을 바꿔 놓는 거지.

쉽지 않다고? 아냐. 쉬워. 그냥 너 혼자 떠나면 돼.
그리고 아무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곳에 가서 있고 싶은 만큼 있다가 오면 돼.
이것저것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는 마.
무조건 몸을 실어. 어디로든 흘러가게 될 테니까.

---

일단 서울 남부터미널로 가. 우리는 이제 섬진강의 쌍계사, 그 바로 옆에 쌍계별장으로 가는 거야.
화개 가는 버스표를 한 장 끊어. 23,200원이야. 버스는 아침 7시 반부터 저녁 7시 반까지 두 시간에 한대씩 하루에 7번 정직하게 운행이 돼지. 근데 늦어도 오후 1시 반에는 버스를 타야 해. 화개까지는 4시간이 걸리는데 너무 늦으면 어두워져서 헤매게 되거든.
탔어? 자리는 왼쪽으로 앉는 게 좋겠다. 하행선 버스라 오후에는 오른쪽으로 햇볕이 들어오거든. 우등 버스의 두 자리가 있는 쪽인데, 두 자리라도 괜찮아. 사람이 많지 않아서 자리가 조금 남거든.
4시간동안 지루해지지 않을 준비는 미리 챙겨 둬야 해. 음악을 듣는다면, *****가 괜찮겠다. 버스에서 책을 읽어도 멀미가 나지 않는다면, 알랭 드 보통의 ‘동물원 가기’를 읽는 것도 좋아. 150페이지가 조금 안 되는데, 아주 천천히 읽으면 도착할 때쯤 딱 다 읽게 되거든.
세시간 반쯤 지났을 때부터는 강이 보일거야. 그러다가 구례서부터 섬진강을 끼고 달리기 시작하면 이제 더 이상 책을 읽지는 않아도 되니깐 책을 집어 넣어도 돼. 자리가 남았다면 오른쪽자리로 옮겨 앉아서 강을 보는 것도 좋아. 이 강이 어디까지 이어질까 생각이 들 때쯤 화개에 도착해. 거기서 내려.

동서남북이 헷갈릴거야. 긴장하지는 마. 촌스럽게 두리번거려도 괜찮아. 다들 그러니까. 쌍계사 가는 방향만 확인 해 두고, 밥을 먹어.
터미널 근처라 추천해 줄만한 음식점은 많지 않네. 그래도 ‘청림식당’의 재첩국은 먹을만 해. 혼자 처음 밥 먹는 거라 떨리지? 그래도 재첩국은 먹는 재미가 있다. 작은 알알이들을 빙빙 돌려가면서 적당한 양만큼 떠서 먹는 재미 말야. 그렇게 적응하다 보면 혼자 먹는 밥도 곧 익숙해 질거야.
재첩국을 다 먹고 배가 따뜻해졌으면, 터미널로 들어가서 쌍계사로 올라가는 버스 시간표를 확인해봐. 주변의 아저씨들한테 물으면 걸어서 올라 갈 수 있는 거리라고 하는데, 어둑해지는데다가 초행길이라 걸어가는 건 너무 힘들어. 쌍계사까지 걸어 올라가는 건 내일을 위해 남겨두자고. 아니면 터미널 바로 옆에 쌍계사로 올라가는 택시가 있긴 하거든. 근데 아저씨가 칠천원을 달라고 할거야. 너무 비싸잖아. 버스는 50분에 한대씩 있으니까 그냥 기다렸다 버스 타는 게 좋아. 버스 타면 바로 쌍계별장 할아버지께 전화를 드려. 버스 탔다고, 곧 도착한다고.
버스로 10분이 안 걸려. 쌍계사 입구에서 내리면 다리를 하나 건너고 빙빙빙 구부러진 길을 따라 5분정도 걸어 올라가야 해. 쌍계사에 들어서기 전에 관리인 아저씨가 입장료를 내라고 할거야. 당황하지 말고 “쌍계별장에 왔어요”라고 얘기하면 돼. 그리고 딱 127보를 걷고, 쌍계사로 들어가기 직전에 보면 왼쪽으로 나 있는 작은 길이 있거든. '길이 없습니다. 막힌길' 이라는 표지판이 보이면 정상적으로 가고 있는거야. 그게 쌍계별장으로 가는 길이 거든. 할아버지가 바쁘지 않으시면 여기까지 마중 나와 계실 테니까 걱정하지는 마.

쌍계별장에 들어가면, 나무 많은 정원이 있고 그 곳을 둘러가며 한옥집이 있어. 이틀을 묵을꺼니깐 6계단 아래로 내려간 별채에 방을 잡는 게 좋겠어. 방문을 열기도 전에 할아버지께서는 가방만 두고 와서 차 한잔을 하라고 하실거야.
방 옆에는 할아버지가 차를 마시기 위해 만들어 놓은 다실 같은 게 있어. 허술해 보이지만 나름 운치 있고 좋아. 할아버지는 전라도와 경상도의 사투리를 섞어 쓰시는데 가만히 듣고 있으면 피식 웃음이 날거야.
녹차를 다섯 번쯤 우려 마시고 방으로 들어가면, 아무것도 한 일 없이 피곤 할꺼야. 그럼 그냥 자. 아아, 세수는 꼭 하고자. ^-^

아침 일곱 시 쯤 되면 할아버지가 방문을 두드리며 깨우실거야. 더 자고 싶으면 못 들은 척 계속 자. 할아버지께서 이 좋은 공기 속에서 잠이 오냐고 큰 소리로 말씀하실 때까지. 계속 깨우시는 할아버지에 대한 미안함이 나의 피곤함을 이길 때까지 계속 자는거야. 그리곤 마음 내킬 때 일어나.
그럼 할아버지는 어김없이 또 다실로 부르실거야. 오늘은 뭐 할껀지. 왜 혼자 왔는지. 물으시겠지. 정직하게 대답하고, 고개 끄덕이면서 그냥 들으면 돼.
아무런 계획이 없기에 해야 할 일도, 가야 할 곳도 없는 여행지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사람들의 일상이 굴러가는 광경을 잠시 지켜보다가 맘에 들면 그 속으로 잠시 들어갔다 오는 것 아니겠어? 하루에 두 시간씩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냥 맘대로 빈둥거리면서 놀면 돼.
오늘은 화개 장터에 다녀오면 좋겠다. 운이 좋으면 할아버지께서 화개장 근처에 볼 일이 있으니깐 차로 태워다 주실거야. 아니면, 쌍계사 입구까지 나가면 버스가 많아. 아무거나 타도 모두 화개장터까지 가거든. 화개의 시내버스에서는 산 냄새가 난다. 사람들이 소박하고 커다란 무언가를 가슴에 품고 있는 얼굴을 하고 있어. 시골 시내버스 풍경이지만 촌스럽거나 쾌쾌한 느낌은 아니야.
사실 화개장은 좀 실망할거야. 조영남이 노래했던 그런 큰 장이 아니고, 약초시장처럼 몸에 좋다는 여러 가지 열매들을 놓고 좌판처럼 널려져 있어. 그치만 새로운 것들을 많이 볼 수 있으니 하나하나 관심 갖고 아주머니랑 얘기하다 보면 점점 더 궁금해지는 게 많아져서 시간이 아주 금방 간다. 구운 옥수수랑 뻥튀기 하나 정도를 입에 물고 천천히 구경하면 돼. 아무리 천천히 해도 1시간이면 두 바퀴를 돌 수 있어. 화개장터 구경은 이걸로 끝.
이제 주변을 빈둥거리면서 다녀보자고. 여행객처럼 호기심 가득한 발걸음으로 움직여도 좋고, 현지인이라 할 만큼 별 볼일 없다는 듯한 가벼운 발걸음도 좋다. 화개장에서 나와서 작은 다리를 건너오면 다시 어제 잠시 방황했던 터미널이거든. 그 터미널 옆쪽으로 나 있는 하천으로 내려가. 오른쪽 끝으로는 섬진강과 이어지고, 왼쪽 끝으로는 어디서 출발하는지 모르는 산길과 연결되어 있어. 오른쪽으로 쭉쭉 걸어가봐. 섬진강하고 만날 때쯤 두루미인지 고닌지 모를 흰 새들이 몰려 날아다니는 것이 보여. 가만히 앉아서 그걸 구경해. 무슨 생각이든 네 맘대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하는 거지. 아무도 널 발견하지 못할 테니까.
그러다가 3시쯤 되면 다시 쌍계사로 출발해야 해. 산길이라 여섯 시만 돼도 많이 어두워지거든. 오늘은 걸어서 가는 거야. 봄이었으면 쌍계사 10리길 벚꽃터널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으로 북적댔을 그 거리를, 아무도 없는 그 거리를 10월에 걷는 느낌을 하나하나 밟으며 천천히 걸어. 학교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초등학생이 반갑게 인사를 할테고, 산에 사는 사람들은 옆집 사람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잠시 엿들을 수 있을 꺼야. 6km정도 되는 거리니깐 아주아주 천천히 걸으면 3시간, 다리가 길다면 두 시간정도면 충분히 쌍계별장까지 도착할 수 있어.

쌍계별장으로 돌아가면 네 방은 따뜻하게 데워져 있을거고, 후끈한 온기에 눈물이 핑 돌지도 몰라. 이 온기가 보일러의 온기가 아니라 하나하나 손으로 주워 모은 나뭇가지로 데워진 방바닥이라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지.
할아버지께서는 무얼 보았는지, 어땠는지를 물을 꺼야. 그리곤 차를 세번쯤 우려낼 때까지 같이 이야기를 해 주시겠지. 하지만 그냥 아무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으면 방에 앉아서 조용히 책을 보거나 눈을 감고 누워있으면 돼.
아무것도 한 일 없이 하루가 지나갔지만, 어제 네가 출발한 서울에서의 하루처럼 미끈하지는 않을거야. 온통 새로운 풍경과 낯선 경험들로 울퉁불퉁한 하루를 보면서 조금은 새로워졌음을 느끼겠지. 낯선 바람에 적응하느라 모든 감각들이 민감해져 있다는 걸 느낄거야.

그렇게 그 곳에서 다시 아침을 맞고, 저녁을 맞고. 마음이 움직이는 날에는 주변을 둘러 보기도 하고, 걷고 싶은 날에는 쌍계사를 돌거나 좀 멀리 불일폭포까지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 관광객처럼 굴고 싶다면 토지 촬영장인 최첨판댁에 다녀오거나 칠불암을 다녀와도 좋아. 쌍계사 입구까지 늘어져 있는 더덕을 파는 할머니 옆에 앉아서 할머니의 아들의 딸 이야기도 들어주고, 모든 게 귀찮으면 그냥 쌍계별장에 앉아 책을 보거나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하고. 그냥 그렇게 보내는 거야. 서울에서 했던거랑 똑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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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 집이 아닌 다시 여행지로 돌아오는 경험,
낯선 사람들의 일상에 나의 하루를 실려 보내는 느낌,
일주일이상 나를 안 적이 없는 사람들 틈에서 내 생각들을 이야기하는 시간들.
아무런 힌트가 주어지지 않고 마구잡이로 행진곡이 울려 퍼질 때,
그 곳의 낯선 리듬에 발을 맞추기 위해 몸을 가볍게 흔들어대는 나를 발견 할 때의 느낌이 참 좋아.
그런 새로운 리듬에서 2박3일정도 지내고 나면 기분이 37%정도는 up! 될꺼야.
최소한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을 때 똑같이 반복되던 일상이 다시 낯설어지는 이상한 느낌을 맛보게 될거야.
진짜야. 한번 해봐.

---

혼자놀기 제안 _ 낯선 곳에서의 일상
가끔은 떠나기 위한 여행이 아닌 머물기 위한 여행을 해 떠나보자. 빡빡한 일정 따라 비행기와 기차에 번갈아 가며 몸을 실어야 하는 여행 말고, 내 집 같은 곳에서 2박3일정도 머무는 여행. 아무도 내가 원하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내가 없어지더라도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을 사람들이 있는 곳, 내가 서기 위해서는 온전히 내 힘으로 버텨내야 하는 곳. 그 곳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대본과 새로운 역할을 받아 들고, 어떠한 첫 대사를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곳에서 가장 익숙한 일상 속의 일들을 벌여 놔 보자. 그저 하루하루가 저절로 펼쳐지게 내버려주자.
잠시 다른 곳으로 이사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것이고, 30년 후에 내가 살고 싶은 동네의 모습을 마음 속으로 헤아려 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 잠시 내가 아닌 모든 것들이 통째로 바뀐 곳에서 하루를 보내고 나면, 나의 일상이 새삼 낯설게 느껴 질 것이다. 어쩌면 다시 돌아온 서울에서의 일상이 여행인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아줌마가 좋은 민박집
쌍계별장 (055-883-1665) 전남 구례. 쌍계사 바로 옆의 암자와 같은 곳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고 계신다. 방이 많진 않지만, 여름에는 회사의 워크샵 장소로 쓰이기도 한다. 그러니 가기 전에 방이 있는지 꼭 확인하고 갈 것.
펜션과 같은 편한 시설을 갖추고 있는 곳은 아니다. 진짜 내가 살던 집 같은 곳이다. 곳곳에 이끼가 끼거나 먼지가 쌓인 것도 그대로 놓여있는 곳이다. 샴푸와 같은 기본 도구들은 모두 챙겨가야 한다.
하루 종일 분주해도 좋고, 조용히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곳.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말벗이 되어주는 할아버지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순간에는 혼자 있을 수 있는 곳.
하루 숙박료는 3만원. 이틀 머물면 5만원. 그 이상은 할아버지 맘대로 계산.

들꽃민박 (061-432-9080) 강진. 다산초당 바로 아래 있는 민박집. 서각을 하시는 아저씨와 차를 만드시는 아주머니가 살고 계신다. 모든 방이 황토로 지어져 있다.
아주머니는 민박집 옆에 조그마한 자리를 마련해 분위기 좋은 찻집을 운영하신다. 여행객들과 얘기하는걸 좋아해서, 내가 원하는 만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근데, 이야기 하면서 마신 찻값은 내야 한다. 국화차, 녹차 등등. 모든 차가 한잔에 오천원. 찻집에서는 녹차 수제비도 파는데 무쟈게 맛있다. 수제비도 오천원.
하루 정도는 다산초당에 올라갔다가 백련사까지 걸어 다녀오는 코스도 좋다. 민박집에서 다산초당까지 올라가는 길은 혼자 걷기 딱 좋다. 소심한 사람은 무섭다고 느낄 수도 있을만큼 한적하다. 다산초당-백련사까지는 산길이다. 슬리퍼 신고는 갈 수 없으니 운동화를 신은 사람만 갈 것.
하루 숙박료는 3만원. 성수기엔 5만원.
IP *.133.220.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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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동
2008.02.18 01:19:33 *.142.152.25
쌍계별장... 섬진강.. 쌍계사 얘기..
책으로 읽는 재미는 어떨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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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
2008.02.18 08:17:27 *.244.218.9
또 재미있는 책을 구상했네 ^^ 언니 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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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08.02.18 08:56:19 *.128.229.163

한 쪽의 길이가 이 정도면 책의 양이 조금 모자라 보인다.

chapter를 3 개 쯤 더 넣으면 9 꼭지가 생길 텐데. 아직 가 보거나 해보지는 않있지만 나머지 집필 시간 동안 하고 싶은 것들을 목차에 더해 보는 것이 좋겠다.

예를들면 chapter 7 추억
* 어릴 때 살던 집을 찾아가 보기 (그때의 이야기와 더불어)
* 10년 전 헤어져 만나지 못한 친구에게 편지 보내기 진짜 우체통에
넣어 보는 거지 ( 주소도 지어내서)

chapter 8 미래
* 나의 장례식 세레모니
* 나의 결혼식장 미리 가보기
* 첫 책이 나왔을 때 인터뷰를 하기 위해 방송국에서
* 살고 싶은 동네의 아무 복덕방이나 들어가 예산에 구애 받지 않고
여러가지 집을 구경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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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뎀뵤
2008.02.19 07:28:50 *.133.220.186
넵... 챕터를 늘리기보다 하나의 챕터에 들어가는 항목을 늘리려고 했었습니다... ;;; 이쪽이나 저쪽이나 좀 고민해서 목차를 늘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실제로는 사진 자료 등이 들어갈 예정이므로, 이보다는 훨씬 길어질 것이라 생각 됩니다. ^^
살고 싶은 집 구경하기는 '일상의 황홀'에서 보고서 꼭 따라하고 싶었었는데, 몇번 시도하려다가 잘 못하겠어서 ^^;;;;; 뺐는데. 다시 해 봐야겠습니다. ㅎ

재동오빠, 엉 잘 기억이 나지 않아. ㅋㅋㅋ 다시 또 가 볼 생각이야. ^^

소정아, 그래? ㅋㅋㅋ 이번엔 끝을 봐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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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곤
2008.02.20 08:20:19 *.92.16.25
뎀뵤야~ 초치는 게 아니고, 난 예전에 너가 보여준 게 더 좋아보이네. 끝이 보이는 듯하여 감개무량하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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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8.02.20 20:33:25 *.72.153.12
다뎀뵤님, 전체의 톤이 서문이나 상계사 여행을 소개하는 것과 같나요?

상계별장과 화개장터는 새소리 들으며 여행한 것 같아요.

지난 토요일 인왕산에 올랐는데, 소리가 어찌나 맑고 이쁜 지, 그 새 소리를 따라 가보니 작은 박새 한마리 울다가 날아가겠죠. 꼭 그 새와 함께 길을 걸은 기분이네요. 상쾌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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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곤
2008.02.20 23:14:01 *.34.156.43
지금 다시 보니 전반적으로 괜찮다. 제목은 좀 더 고민해봐라. 토요일이 들어가니까 좀 밋밋하다. 사진까지 같이 보면 맛이 좀 더 진득하게 느껴질텐데...설마 사진 들어가는 데 일년은 안걸리겠지?ㅋㅋ
에필로그를 추가하는 건 어떨까? 뒷문이 열려 허전한 느낌이 든다.

나도 다 해보고 싶은데 혼자 밥먹기는 영, 처량할 거 같아서...혼자서 호텔키는 왜 받아 들어? 따로 따로 들어가나?ㅋㅋ
아~ 뎀뵤한테는 왜케 장난스러워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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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뎀뵤
2008.02.21 09:42:33 *.151.244.28
뱅곤오빠 그래보여요? ;;; 흐음... 이번주말에 좀 더 고민해 봐야겠네여... 샘플원고 수정하고 목차 수정하고... 전면 개편되버릴런지도... 아 놔...ㅎㅎㅎㅎㅎ

정화언니... ㅇㅇ 혼자 놀기 인지라 혼자 중얼거리듯이 이야기하듯이 써 보려고 했는데... 쉽진 않네요. ^^; 하지만 잼있어요~ 상쾌한 느낌으로 봐 주니 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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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2.28 12:46:13 *.70.72.121
책이 겨울에 나와서 봄을 준비하면 좋겠다는 기분이 드네요. 일단 전반적으로 상큼해요. 아장아장 아지랑이 숲속을 걸어가는 듯한.

나는 다 좋고 본문은 위의 다른 글들보다 덜 다가와요. 너무 솔직하지?
본문은 나중에 다시 읽어볼께. 열심히 하기실. 참, 전면 수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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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ve~*
2008.06.07 15:36:33 *.121.90.48
구본형 작가님의 책을 서점에서 읽고 홈페이지에 찾아왔다 우연히
강미영님의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도 직장에 다니면서부터는 언제부턴가 모르게 토요일을 저만의 시간으로 보내고 있는데요~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사는 분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되니 너무 반갑습니다.

만약 강미영님의 책이 출간되면 제가 제일먼저 서점으로 갈게요!!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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