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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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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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5일 23시 31분 등록


1. 1년 동안 이룬 성취

책에 대한 편식이 대체로 적어진 것 같다. 전에는 비교적 경제서적이나, 자기계발서에 치중해서 나 자신을 ‘마취’시키는데 대부분의 책을 소화했던 나를 보면, 지금은 비교적 어렵다고 생각되는 인문학서적도 ‘이해’는 나중으로 미루더라도 비교적 ‘겁없이’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앞으로 ‘만화’나 ‘아동문학’과 같이 비교적 이제껏 등한시한 장르에도 연구원의 독서 범위가 넓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책 읽기에 대한 두려움은 오히려 더 생긴 것 같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아무 생각없이 ‘기계적’으로 책장을 넘기는 것에는 문제가 없으나 –진입장벽이 낮아졌다고나 할까- 내용을 이해하는 차원에서는 오히려 두려움이 더 많아졌다. 이제 책을 쓰는 입장에서 소위 ‘양서’라고 하는 책들을 보면, 엄청난 내공의 책들은 오히려 그런 사람들과 경쟁해서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1년간의 가장 커다란 성취는 바로 글쓰기에 대한 생각의 변화에 있을 것이다. 연구원으로 활동 하기 전에 나의 글쓰기에 대한 생각은 바로 ‘나의 생각을 글에 옮긴다’는 것이었다. 생각이 우선이고, 글이 나중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1주일에 한번씩 독후감과 칼럼을 쓰면서, 글을 쓴다는 것이, 생각해서 쓰는 게 아니라 쓰면서 생각한다는 것, 즉 내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글을 통해 내 생각을 다듬는 것이 글쓰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나의 글쓰기에 관한 생각의 변화는 책을 읽고 쓰는 행위가 내 삶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첫 단추를 메우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연구원이 된 후 4-5개월 정도 지난 후, 각 연구원들의 글쓰기가 느슨해지면서 나 또한 느슨해졌음을 감지했고, 급기야는 몇몇 연구원들이 자취를 감추면서 남아있는 연구원에 대한 회의도 잠시 느꼈다.

그러나 매달 과제물로 주어지는 책들이 내가 미쳐 알지 못하는 책들일 때, 아주 강한 지적 호기심을 느꼈다. 그리고 그 책을 ‘정복’하고 싶었다. 그러한 나의 호기심이 나를 연구원으로 있게 마련해준 것 같다. 결국, 그러한 지적 호기심으로 인해 연구원이라는 것이 1달, 2달, 1년 2년이 아닌 지속적으로 배우는 자의 입장에서 끝없는 변화의 바다를 헤엄쳐야 하는 등푸른 물고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우리 연구원들 간의 친화에 관한 부분이다. 연구원들이 한 달에 한번씩 서로 다른 분야에 따라 만나서 연구를 진행시키기는 현실적으로 좀 힘든 부분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에 관한 책을 쓰고 싶었기에 함께 연구할 만한 파트너를 구하기 더 힘들었다. 이러한 연구에 도움을 줄 만한 파트너 찾기와 정기적인 교류를 위해서는 반드시 하드웨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 3기 연구원들부터 재정적으로 좀 충만해지면, 연구원들이 저술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으면 하고, 때에 따라서는 그 연구소의 공간을 토대로 개인적으로 강의의 기회도 주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남을 가르치면서 오히려 본인이 배우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일이다. 스티븐 코비의 7가지 습관 워크샵은 이러한 ’강의’를 통한 배움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러한 강의행위는 자기가 저술할 책에 대한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매력적인 연구행위가 아닐까 싶다. 더불어 강의에 대한 수익의 일부분은 또 연구소에 기부하는 ‘기부’의 토대로 마련되었으면 한다.

2. 가장 인상적인 수업

자신의 기질과 강점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한 수업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나 자신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생각하게 된 계기를 마련한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자신에 대해서 알려고 하는 지 노력하는 그런 노력들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한가지 아쉬웠던 것은, 자신이 쓸 책에 대한 확고한 비젼을 가진 사람이 연구원 생활을 하면 더없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나는 처음에는 기업과 경제에 대한 책을 내고 싶었으나 (재미있는 실패이야기), 결국 중간에 전혀 다른 분야로 주제를 바꾸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쓰는 도중, 엄청난 저항을 받았고 그 투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변화는, 비록 그 수업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사전 과제로 내 준 ‘당신의 장례식을 치뤄라. 그리고 혼령이 되어 그곳에 모인 가족과 친지들에게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연설을 하라’ 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장례식에 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나의 가족들에게 떳떳하게 밝히고 싶다, 라는 생각이 그 과제를 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길을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노력은 했다는 점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나의 첫 번째 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마추어적 열정을 지닌 순수한 책으로 메워나가고 싶었던 것이다.

오히려 내가 그 수업에 참여했다면, 다른 연구원들의 저술 진행속도에 짓눌려 주제를 바꾸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 혼자만이 간직하고 있는 나 마음속의 장례식. 그 나만을 위해 성찬을 울렸던, 그 수업을 위한 과정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3. 1년간 읽은 책의 목록

정확히 독서 리스트에 올라와 있는 글을 보니 31개 이다. 그 중 3편은 삭제를 했으므로 (금빛 기쁨의 기억, 제1의 성, 부의 미래) 28개정도 된다. 그러나 그러한 숫자적인 리스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스스로 쓸 책에 대한 리스트를 혼자 스스로 작성해 보는 것이었다. 영화에 관한 책을 쓴다고 해서 영화에 관한 책만을 읽는 것은 아니요, 오히려 다른 분야의 책을 읽을 때 사고의 폭이 더 넓어진다는 구본형 소장님의 말씀을 기억한다.

아무래도 나에게 있어 가장 넘기 힘들었던 책은 ‘주역’ 이었다. 다른 연구원들이 두꺼운 주역을 하나씩 선택해 거침없이 읽어내려 갔을 때, 솔직히 선택한 주역책이 너무 어려워 몇 번에 걸쳐 바꾸었을 때, 나의 지적 능력을 의심해 보았다. 그러나 오히려 쉽게 설명되어있는 주역을 발견하고 그 책을 토대로 더 튼실한 책을 접했을 때의 그 기쁨은 지적 충족을 주었다.

주역은 앞으로 몇 번에 걸쳐 다른 필본으로 더 읽어야 할 목록으로 적어놓았다. 그리고 아직 쓰지 못한 11월의 책, ‘포스트 모던 마케팅’ 과 ‘열정과 기질’, 그리고 ‘칼리 피오리나’는 빠른 시간 내에 올려야 한다.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책은 고병권의 천 개의 눈- 이었다. 그의 문체는 적지 않게 낯설음을 주어 처음에 읽어 내려가기가 쉽지 않았지만, 이 책을 통해 결국 니체 전집 완독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니체 전집을 과감하게 도전하면서 니체에 대한 사상을 습득했다기 보다는 나 자신을 어느 정도 기계화 시키는 법을 알 수 있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지루한 독서의 과정을 통해 나 자신에게 지루함을 유지시키는 법을 생각할 여유를 주었다.

아직까지 가장 부끄러운 책 읽기의 기록은 로버트 프로스트의 책과 신동엽의 시집이다. 비교적 부피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만만하게 보고는 한번 쓱- 읽어보고는 무작정 서평을 써 내려간 것이다. 그러나 비교적 최근, 신동엽의 책을 다시 한번 읽을 기회가 생겨 입으로 읖조리다보니, 그의 시 세계는 내가 알았던 것보다 훨씬 깊고, 언어적인 유희도 훨씬 뛰어났다. 신동엽의 시를 읽으면서 아마도 개그맨 신동엽을 생각한 사람은 아마 나밖에 없을 것이다.

한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 독서 행위와 관련해서 각자가 현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담론의 최전선에서 사유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나를 비롯한 우리 연구원들의 참여가 너무나도 아쉽다는 것이다. 지적인 장을 마련해 주는 그러한 활발한 독서 문화가 부재한다는 것이다. 즉, 내가 무엇에 대해 알고 싶을 때, 그것에 대해서 친절하게 각자가 아는 범위 내에서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그러한 공유의 문화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한 공유를 통해 현재 우리가 느끼는 지식의 최첨단에 대해서 한번 고민할 여지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러한 공유는 온-오프라인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 그러한 연구원과 연구소의 길이 한 발짝 더 나아간 지적 즐거움을 마련해 주는 진정한 ‘변화’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IP *.218.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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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7.03.06 07:38:10 *.152.82.31
아직도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유일한 연구원이 정재엽님이네요.
평생의 기억에 남는 1년이 되었길 바랍니다.
또 누군가의 기억에 평생 남을
1년을 만들어 주길 기대합니다.
3월이 끝날 무렵 얼굴 함 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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