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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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15일 06시 33분 등록

나이 서른에 그려본,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날


오늘도 아침 5시에 눈이 떠졌습니다. 아직 자고 있는 아내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일어나 서재로 왔습니다. 노트북을 켜고 세수를 하고 오니 컴퓨터가 돌아가고 있네요.
밖은 아직 깜깜합니다. 조금 있으면 동이 틀 것입니다.

나의 하루를 변함없이 똑같이 시작했지만, 사실 오늘은 나에게 있어 특별한 날입니다.
나는 오늘부터 더 이상 직장에 나가지 않아도 됩니다. 아침을 급히 먹고 양복을 차려 입은 후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지하철에 몸을 싣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어제 직장을 그만 두었습니다.

나는 십 년 전에 책을 한 권 썼습니다. 사부님을 모시고 연구원 생활을 하고 나서 책 한권을 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내가 원하는 현장, 즉 회사의 인사업무를 맡게 되며 책을 몇 권 더 쓸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직원들이 직장을 살리고 또 직장이 직원들을 일으킬 수 있는 인사 시스템을 적용하였고, 이제는 어느 정도 정착되어 크고 작은 성과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이 성공했느냐 못했느냐는 직원들의 얼굴과 몸짓에서부터 나타납니다. 이들이 현재 자기 일을 하며 얼마나 행복해 하고 몰입하는지가 그들의 얼굴과 발걸음에서 나타납니다. 춤추듯 일하는 사람들 덕택에 회사는 항상 시끌시끌 합니다. 신명나는 일터가 되었습니다.

나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책을 몇 권 썼고 운이 좋게도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비슷한 규모의 기업체에서 자문을 구해왔고, 스카우트를 제의한 회사들도 있었습니다. 내가 쓰임새가 있다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입니다. 새로운 곳에서 또 다른 성공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생깁니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더 이상 나는 남의 직장에서 남의 시간을 위해 일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내 삶을 중심으로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할 일 많고 책임도 많았던 자리를 어제 그만두고 새로운 곳으로 몸을 던졌습니다.

나는 앞으로 10년 동안 우리나라에 맞는 인사시스템을 연구할 생각입니다. 지난 10년간 현업에 시도하며 실패하고 성공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하나의 모델을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공부를 하며 책을 쓸 것이고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조언도 해줄 것입니다.

사실 내 아내는 나보다 먼저 독립을 했습니다. 항상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고 손재주가 있던 그녀는 인터넷을 통해 목공예와 리폼을 해주는 일을 자그맣게 시작했습니다. 좋아하는 일이 취미가 되고 이제는 작은 직업이 되었으니 잘 해낼 것입니다. 집을 조금 크게 가지게 되면, 목공실을 하나 만들어 줄 것입니다.

이제 아침을 먹고 나면, 오늘부터 여행을 떠날 것입니다. 사부님이 직장을 그만두며 했었던 남도여행처럼 나도 내 삶을 찾은 의식을 보름간 행할 것입니다. 걸으며 생각하며 그렇게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을 가질 것입니다. 그리고 돌아 오는 대로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북미의 대자연을 보러 갈 것입니다. 그 동안 회사에 발이 묶여 먼 곳으로 떠나지 못했는데,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5대양 6대주 프로젝터를 해볼 생각입니다.

나는 마흔 살이 되는 해에 비로소 내 삶을 되찾았습니다. 어제와 같은 또 하루지만, 오늘 아침은 공기도 다르고 냄새도 다르네요. 이 아침은 내가 10년 전에 그렸던 그 모습입니다. 내가 그린 대로 살아올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이제부터의 하루하루는 모두 미지의 세계입니다. 삿갓 하나, 봇짐 하나, 지팡이 하나로 여행을 떠나듯 그렇게 하루하루를 유람하며 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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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뎀뵤
2006.11.15 06:50:07 *.91.54.146
가족과 함께 가는 여행길 걸음걸음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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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2006.11.21 01:50:52 *.253.83.164
의외로 담담한 글이지만 왠지 심훈의 '그날이 오면'이 생각난다.
늘 그날을 잊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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