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연구원

연구원

  • 한명석
  • 조회 수 2749
  • 댓글 수 4
  • 추천 수 0
2006년 11월 15일 19시 39분 등록

오늘은 새로 지은 내 집의 집들이를 하는 날이다. 나의 집은 시니어타운이 바라다보이는 조그만 저수지 옆에 있다. 아침이면 물안개가 환장하게 피어오르고, 저녁이면 나무그림자가 드리워 차분하게 가라앉는 곳이다.


10년동안 이미지로 그려온 집이었다. 소박하지만 이야기가 숨어있는 짙은 색깔의 나무집이다. 10년 전 비밀의 정원을 가꾸는 동화작가 타샤 튜더의 집을 보고 꿈을 키워왔다. 그녀는 19세기식 생활을 좋아해서 복고풍의 옷을 입고, 옛날식 집에서 장작스토브로 빵을 구워낸다. 그 아름다운 정원과 자기식대로 삶을 디자인하는 방식에 나는 매혹당했다. 그 때부터 단순하고 소박한 그녀의 나무집은 나의 꿈이 되었다. 언제든지 볼 수 있도록 그녀의 집 사진이 나온 페이지를 책꽂이 위에 활짝 펴놓았다.


창문이 커다랗고 굴뚝이 튀어나온, 새 집인데도 어딘지 오래된 기분이 드는 집. 입구에 나무데크를 넉넉하게 깔아 계절의 변화를 바라다보며 차를 마실 공간으로 꾸몄다.
내 방은 온전히 나를 위한 놀이터이다. 장시간 앉아있어야 하므로 큰맘먹고 투자한 편안한 의자와 좌식의 탁자가 있고, 안락한 소파까지 있다. 나는 마음내키는대로, 책상과 앉은뱅이 탁자와 소파를 골고루 돌아다니며 책을 읽는다. 시니어클럽 싸이트를 관리하고, 두어군데 잡지에 컬럼을 쓰며, 단행본을 준비하느라 늘 원고를 쓴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현역인 사람은, 아줌마나 할머니같은 두루뭉실한 호칭으로 불리지 않는다. 누가 박완서를 보고 할머니라고 하겠는가. 그녀는 언제까지나 작가일 뿐이다. 나는 시니어클럽을 운영하며, 작가이기도 하다. 나도 죽는 날까지 현역이고 싶다.
오늘을 위해 나는 지인들에게 초대장을 보냈다. 현경의 책에 나오는 루미의 시를 옮겨썼다.



봄의 과수원으로 오세요
꽃과 촛불과 술이 있어요
당신이 안 오신다면
이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
당신이 오신다면
또한 이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


과연 뜰에는 봄꽃이 만개하였다. 벚꽃잎이 흩날리고, 라일락향기가 미풍을 타고 날아들었으며, 붓꽃이 새침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우리는 편안하게 마시고 떠들었다. 노래소리가 커지기도 하였다.


친정어머니는 아직 정정하시다. 이제 내 집에서 함께 사실 것이다. 조그만 텃밭과 꽃밭을 가꾸시느라 신경쓰는 일외에는 아무 걱정이 없으시다. 늘 살얼음을 딛는 것같던 둘째딸이 이제라도 어머니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릴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아들과 딸애는 각자 친구를 데리고 와서 심부름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나는 그애들이 서로 속깊이 존중할 수 있는 배우자를 만날 것을 늘 기도해 왔다. 지금 데이트하는 상대와 결혼까지 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나는 아이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자기답게 살기를 바랄 뿐이다.



시니어타운을 함께 일구고 여생을 함께 보내기로 한 열 가정은 서로에게 특별한 의미이다. 오늘의 주빈들이다. 우리는 자식보다 더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동세대로서 긴 시간을 함께 지낸다. 서로 속속들이 알고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서로의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애인보다 더 끔찍한 친구들이다. 서로 만날 수 있었던 것을 늘 감사하며 우리는 일상의 황홀을 공유한다. 이제 서로의 스타일을 모두 파악하고 있으므로, 개인적인 영역과 공동의 영역을 조화시키는데 별 문제가 없다.



이 친구들보다는 덜하지만, 서로 일차적인 지원부대가 되어줄 수 있는 시니어클럽 마니아가 서른 명쯤 된다. 우리는 늘 싸이트를 통해 연결되어 있으며, 구체적인 일이 있으면 즉각 모여서 활동력을 과시한다. 이들은 별도로 시니어타운을 조직하여, 누가 더 재미있게 사나 선의의 경쟁을 해가며 알콩달콩 지내고 있다. 이들도 역시 오늘 파티의 주인공이다.



내 책의 고정독자층도 형성되어 있다. 그들은 앞장서서 내 책의 출간기념회를 꾸며주고, 시니어클럽의 외곽에 자리잡고 있다. 나는 그 중의 핵심인물도 몇 명 초대하였다.
이제 집도 지었겠다, 시니어타운도 제 궤도를 찾았겠다, 나는 또 새로운 일을 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하다. 오늘 여럿이 모인 김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꺼내봐야겠다.
나는 살아있는 한 현역이다.
IP *.81.17.159

프로필 이미지
소정
2006.11.17 18:44:35 *.244.218.8
참 . 좋아요. ^^
프로필 이미지
요한
2006.11.21 01:22:40 *.253.83.164
벚꽃잎 흩날리는 봄날밤에 한번 초대해주지 않으시렵니까?
프로필 이미지
써니
2006.11.22 17:00:02 *.70.72.121
선배님!, 동생인줄 알았는데 언니같고 언니같다가는 사나운(?) 동생같아요. 너무 열정적이라서 무섭다고 해야하나?...
근데 깜짝 놀랐어요. 글 첫머리에서 나와 같은 생각 이란 점에 또 조금 읽어 내려가다 보니까 오래전에 "야! 여기 참 좋다, 살고 싶어라" 했던 장소가 막 뭉글뭉글 떠올라서 그 기억에 소름이 돋듯 가슴이 마구 떨리네요, 이런 건 처음 경험해 보아요. 예전 그 장소 다시 찾아가봐야지...

인용된 시도 너무 좋아요.
제가 술은 준비할 수 있거든요. 전 나폴레온 꼰약 좋아해요, 요즘은 마신지 오래 되었지만 자연산 송이 버터에 살짝 구어 와사비 간장에 찍어먹으면 그만! - 저만의 방식. 암튼 안주는 선배님께서 준비해 주셔요.
언제 초대해 주실래요? 꿈을 꾼다는 것은 반은 시작이더라고요.
나도 빨리 집지어 초대해야 하는데...
꼼꼼 적어놨다가 "써니의 집"에도 아이디어 제공해 주셔요. ^^
프로필 이미지
도명수
2006.11.24 16:52:58 *.57.36.34
그 꿈이 빨리 이루어지기 빌께요.

그런데 그 집에 저도 초대되는 건가요?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