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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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0일 16시 17분 등록

3월 오프수업/졸업여행

(@강화도 루치아 펜션)

 

김대수

김대수 수업

 

변경연 한 해가 인생에 한 템포 쉬어간 것 같다.

그래서 쉬어 가기 라는 제목을 생각다.

내 인생의 쉼표 같다.

 

 

- 주어진 일을 하지만 맴도는 것 같다.

나 같은 고민하는 사람들의 설득보다는 공감. 으로 생각합니다.

 

산문인지, 소설인지 모르는 정체성 모호한 글을 써보면 어떨가? 싶습니다.

명확한 컨셉, 명확한 글을 출판사가 좋아한다고 하지만,

저는 모호한 경계의 글을, 제 생각을 써보려 한다.

 

-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은 저 같은 사람이 글을 쓴다면 이것이 차별성이 아닐까 싶다.

 

- 쉽게, 공감가게 쓰고 싶다. 글을 쓰면서 나를 알아 가고 싶다.

 

- 명령조 없다.

 

- 주제가 좀... 걱정인데, 주제나 컨셉이 아직 안잡혀 있다. 목차도 안잡혀 있다.

나라는 평범한 사람이 지금까지 살던 방식과 조금 다르게 살면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면서, 독자도 공감하고, 그렇게 글을 쓰고 싶다.

 

- 빠른 템포로만 살 필요는 없겠구나. 나라는 존재를 찾아가는 사람의 이야기. 그 이야기를 들으며 다른 사람들도 나도 나라는 사람을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

 

- 서문. 어제 써보았습니다. 좀 선언같기고 합니다. 서문 읽어 보겠습니다.

 

한참을 달렸다. 달리다 지치면 조금 걷기도 했지만 그래도 정해진 길, 지도에 나와 있는 길을 따라 꾸준히 달렸다. 달리다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디까지 가야하는 걸까. 저기 보이는 저 골인지점일까 나는 왜 달리고 있을까. 몸을 휘감은 꽉찬 공허함. 잠깐 멈추고 뒤를 돌아다 보았다. 내가 지나온 길. 얼마나 달렸는지도 모를 그 길. 나는 이 길을 달리고 싶은 것일까. 이 길에 내 발자국을 가볍게, 때론 꾹꾹 눌러가며 남겨야 하는 것일까.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옆을 돌아보았다. 우거진 나무들로 푸릇푸룻 상쾌해 보였지만 조금 더 먼 곳으로 시선을 돌리면 그 푸르름은 더욱 더 짙어졌다. 그리고 가장 먼 지점은 검인 빛깔을 띠고 있었다. 끝 모를 물 속 깊은 곳 같았다. 이 답답함을 벗어나고 싶었다. 더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었다.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것 같기도 했다. 문득 그를 만나고 싶어졌다. 그렇게 나는 샛길로 발을 옮겼다.

수풀을 밟고 불규칙적으로 내 눈앞을 막고 있는 나뭇가지들을 치우며 숲으로 들어갔다. 지난 밤 내린 비가 아직 마르지 않아 질퍽거리는 덕에 깨끗한 운동화가 진흙과 물로 더렵혀졌다. 양말도 축축해진 느낌이다. 에이 새 건데…… 이리로 오지 말걸…… 하지만 돌아가기에는 꽤나 들어온 느낌이다. 들어온게 아까워서라도 더 들어가야 되겠다 싶었다. 나뭇가지가 내 몸에 흔적을 남겼다. 여기저기 긁혀 있는 나의 팔과 다리. 살아 있는 풀들을 밟아 신발에선 풀냄새가 진동했다. 그들의 피냄새가 내 코를 자극하고 이내 온몸으로 퍼졌다. 생명은 그렇게 죽으면서도 흔적을 남긴다.

숲의 한 가운데 들어왔다. 머리 정중앙 우에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작은 공간은 숲 밖에서는 발견하지 못하는 다양한 풀과 나무들이 우거져 있었다. 아름다운 아생화들도 풀쑥 풀쑥 튀어나와 있다. 수즙은 듯 수풀사이사이에 자신의 아름다움을 숨긴 꽃들도 있었다. 자세히 보지 못하면 보이지 않은 그것들은 은밀한 매력을 풍기고 있다. 보이는 것보다 그렇게 보일 듯 말 듯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매력있으며 사람을 흥분하게 만들다. 수줍지만 교태롭게 숨어 있는 꽃을 발견하고 그 향을 맞는다. 달콤하지만은 않다. 향기롭지만도 않다. 하지만 뭔지 모를 아생의 생생함을 지닌 듯 기개가 예사롭지 않다. 잠시 잠깐 아생을 느끼고 숨을 고른 나는 또 다른 길 아닌 길로 나아갔다. 쉬며 걸으며 때론 뛰며, 빗물을 마시기도 하고 더덕이나 산딸기 같은 조그마한 과일들을 먹기도 했다. 잠시 잠깐 눈을 감도 선잠을 자기고 했다. 하지만 이내 내리는 비로 다시금 발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해도 지고 날은 어둑어둑해졌다. 나란 존재를 감싸도 있는 나무들은 순간 순간 어둠의 형상으로 변하기도 했다. 하지만 착각일 뿐이다. 내 마음이 그렇게 바라봤을 뿐 나무는 그저 나무였다. 움직이는 듯 했지만 언제나 그 자리에, 대지에 몸을 박고 묵묵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그렇게 한 참을 헤맨 뒤에야 나는 내가 출발한 그 곳, 옆을 바라보고 어두운 푸름을 향해 발을 옮긴 그 곳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다리는 힘이 풀려 더 이상 걷기 힘들어 보인다. 온몽은 자잘한 상처 투성이이다. 운동화와 운동복은 흙과 자연의 피로 얼룩져 있었다. 힘이 들어 잠시 잠깐 길가에 앉았다. 달리기가 싫어서 샛길로 빠졌는데 또 정신없이 달렸구나…… 사람들은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 저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걸까. 왜 달리는 걸까.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 나는 달린 것도 고생을 자처한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잠시 잠깐 쉬었을 뿐이다. 단조로운 코스를 벗어나 자연이 그 순리대로 자리잡은 그 안으로 직접 들어간 것이다. 풀 냄새를 맞고 바람을 느끼고 수 많은 야생의 생명들을 만나고 온 것이다. 나는 달린 것이 아니라 잠시 잠깐 쉬었을 뿐이다. 쉬어야 할 때 쉬었을 뿐이다. 자연스러운 내면의 흐름에 내 몸을 맡긴 것 뿐이다. 진정 휴식이었구나.

곧 몸을 펴고 일어났다. 사람들은 여전히 달리고 있다. 나와 함께 달렸던 친구는 보이지도 않는다. 아마도 내가 쉰 만큼 더 달려가 있겠지. 숨을 들이마셨다. 자연의 냄새를 맡았다. 어깨와 발목을 돌리고 목을 이리저리 풀어주었다. 다시 한번 숨을 들이마셨다. ~ 내뱉고 다리에 힘을 꽉 주었다. 그리고 다시금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조금은 달라질까?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지난 1년간의 시간은 내 인생의 쉼표와 같은 시간이었다는 것. 인생을 돌아보고 숨을 가다듬을 수 있었던 그런 쉼표.

다시 달릴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더 가볍게. 조금 더 자유롭게.

 

김대수: 이런 류의 책들이 너무 많다. 그러나 지금의 방향에서 전혀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이런 책들은 목차가 없다. 그래서 제 글도 목차가 없습니다 

- 왜 첫책을 산문으로 쓰려고 하는지 그 물음의 답을 아직 못구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하면 제가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아직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만 합니다.

한정화: 자기 객관화 이야기 할 때  대수씨가 자기 자신에게 점수를 짜게 준다. 자신감 있게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지난번 수업 때 이런 책 쓰고 싶다고 샘플 글 가져왔는데, 그 책 읽었고 대수씨와 참 잘 맞았다. 그러나 굉장히 넓어서 어떤 실을 꿸 수 있을까 싶었다.

글과 사진을 함께 보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박미옥: 형선과 대수가 같은 책을 쓰고 싶은 것 같다. 그런데 형선은 선언적 용어쪽에서 일상 용어를 가져오면 좋다. 대수는 질문을 좀더 명확하게 하면 좋을 것 같다. 그러면 목차가 나오고 글 한 꼭지가 나온다. 건강검진 글을 보았다. 나를 위한 시간들이 가족을 위한 명목을 대고 있지만, 사실은 최종수혜자가 나 이지 가족은 아니지 않나 하는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그 질문을 좀더 명료하게 명쾌하게 빼면 좋을 것 같다. 노후 브랜드가 차별점이 되려면 SNS나 게이트 키퍼가 없으면 이미 공감대가 되면 차별성이 된다. 타겟 독자라고 하는데 이것이 내 책을 사려하는가 생각하지 말고.. 같은 하늘 아래 사는 사람이 누구인지 찾는 질문이다. 명료한 질문을 표현하는 연습을 한 일년정도 반복하면 책이 안나와도 엄청난 도움이 될 것 같다.

김준영: 대수형은 피드백을 받아도 그냥 이 방향 쓰고 싶은 것 같다. 그냥 쪼금씩 해서 이 주제로 잘 쓰면 잘 될 것 같다. 미영 선배 혼자 놀기 남자 버전 같은 것 같다

 

박미옥: 질문을 명쾌하게 본인이 인식만 하면 엄청나게 호소력 있는 글이 될 것 같다 

한명석: 많은 초고 저자들이 가지고 있는 자기 이야기에 머물러 있다. 내 경험만 가지고 나도 초고를 발표했는데, 박종원 대표가 내 경험 몇개로 책이 되는 것 아니라는 피드백을 해주었다. 절대 다수의 초고 저자들이 지나가는 단계를 정확히 밟고 있다. 초고를 찍어 봐야 한다. 내 수강생들도 자기 이야기 자기 읽은 책 자기 본 영화가 다이다.

문요한: 우리 모두 조직형 인간 아니다. 그 돌파구를 찾는 방식이 각자 다르다. 형선이는 인문학에 빠져들고,,, 대수는 좀더 일상의 체험에 깊이있게 해 나가는 것이 조직에서 해결 못하는 것을 해결해 가는 것 같다. 그 주제를 살려 나가는게 좋은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일상이 반복이어서 지루해 하는데, 대수는 그 반복에서 지루해 지지 않는다. 그게 나는 깊이 라고 생각한다. 대수는 깊이를 보는 눈이 있다. 문제는 그게 아직은 약하다. 좀더 깊게 체험하고 보는 것이 글에 보이면 좀더 공감과 공명을 가지는 것 같다. 책이 될 것이다. 그 부분에서 좀더 깊이가 담겨야 한다. 현실 외면이 아니라 현실을 좀더 깊이 보아야 한다.

연구소 게시판은 한계가 있다. 좀더 블로그와 SNS에 더 활용을 해서 일상을 보여주어라. 하재욱 글을 보라.

박미옥: 도저히 점프할 수는 없다. 그대로 가보아라.

 

김준영: 첫 책 컨셉

장르:

-스토리텔링

제목:

-잡스와 피터드러거 광팬 A, 창업을 꿈꾸다.

키워드:

-잡스, 피터드러거, 매니지먼트, 감동, 성공

타겟 독자층:

-취업을 꿈꾸는 사람

-평범한 IT직군의 사람들(개발자, 디자이너, 영업사원, 기타 관련된 직업군)

-잡스와 피터드러거를 좋아하는 사람

-관리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

차별성:

-IT관련 책중 소설이 별로 없다는 점

-IT관련 책중 감동적인 책이 별로 없다는 점

출간의도:

-한 젊은이의 창업 도전기와 위기를 대응하는 방식을 통해 우리나라 IT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진단

스토리:

A는 뚜렷한 방향성 없이 돈에만 정신팔린 회사를 그만둔다. 뜻이 맞는 B A와 합류하였고, Z는 거절한다.

A가 만들고 싶었던 것은 모든 전자기기에 들어갈 수 있는 운영체제이다. 핸드폰, 자동차, TV, 의료기기, 시계등 모든 기기에서 동작하는 운영체제. 6명이서 안드로이드를 만들었듯, A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돈이 턱없이 부족했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투자가들은 취지는 동의하지만 성공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모두 도움을 거절하고 이때 C라는 투자가가 선뜻 도움을 주겠다고 한다. 단 조건은 자신을 팀장으로 채용하라는 것이였다. 알고보니 C는 피터드러거의 마니아였고, 그의 경영사상을 이 새로운 팀에 한번 적용해보려고 한다.

이렇게 뭉친 세명은 사업을 시작하게 되는데, 애플의 광팬이면서 아주 자존심 강한 천재 디자이너 D와 하드웨어 덕후 E의 합류, 그리고 새로운 아이디어에 관심이 많은 F가 합류하여 완전한 팀을 이루게 된다.

여러운 일이 생길때마다 A는 잡스와 피터드러거를 떠올리면서 난관을 헤쳐나간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IT문제, 외주관리, 프로젝트 관리, 개발의 노하우등을 조금은 심오있게 다룬다)

결국 여러 어려운 일들을 이겨내고 팀이 만든 운영체제는 큰 히트를 치게 된다.운영체제가 한국의 모기업에 퇴짜를 맞고, 구글에 팔리게 된다.

목차:

프롤로그

1. A회사를 그만두다.

2. 창업에 도전하다. (우리나라 창업의 어려움)

3. C를 만나다. (피터드러거 팬인 C)

4. D를 만나다. (디자이너 D)

5. E를 만나다. (하드웨어 덕후 E)

6. F를 만나다. (아이디어맨 F)

7~12. 이슈들. (경쟁사의 역습, 회사를 그만두려는 D, 첩자 Z의 활약등)

13. 마침내 성공하다

에필로그

참조할 책:

-고교야구 여자 매너지가 피터드러거를 읽는다면

-잡스관련 모든 책

-우리나라 IT관련 현황을 보여주는책

-미래 아이디어 제시하는 책

-디자인 관련 모든 책

-하드웨어 디자인 관련 모든 책

-운영체제 기술서

한정화 : 여기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본인의 애환을 잡으려하는건가요?

김준영: 아니요. 소설의 형식을 통해 창업의 애환, 우리나라 IT 기업 환경의 문제점 등을 이야기하고 싶은거지요. 그런데 형식이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드러거를 읽는다면'과 너무 비슷해서.

양재우: 나도 예전에 '애덤스미스 야구장에 가다'란 책을 쓰고 싶었는데, 야구와 경제를 연결해서 스토리텔링을 이야기하려 했었는데, 지금 이 책에는 한 가지 약점에 있어요.  사업과 피터드러커의 연결고리가 약해요. 그리고 IT와 스티브잡스는  너무 보편적이고요. 그래서 지금 컨셉 자체로는 다소 평범한게 아닌가.

하지만 이 책의 오마주라는 말은 빼야 할 것 같아요.

한명석: 경험이 없는데 이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을 수 있을까요?

양재우: 저는 가능할 것 같아요. 사례를 많이 참조하고 이야기를 잘 풀어나가고 엮으면 될 것 같아요. 

박미옥: 이 책이 잘 되면 창업을 할꺼에요 ?

한명석: 미옥씨 얘기를 들어보니, 창업을 꿈꾸는 사람에 대한 시뮬레이션 이야기라면 될 것 같아요.

박미옥: 책쓰기는 굉장히 몸이 상하는 것 같아요. 그런 힘든 과정인데, 책을 쓰면서 자신에게 도움이 안된다면 굳이 왜 쓰려고 하는껄까라 생각이 들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했던거에요. 책을 위한 책이 아니라, 본인을 위한 책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뜨문 뜨문 온 사람의  코멘트 입니다.

김준영: 쓰는게 재미 있잖아요. 그런데 계속 쓰다 보니까 소설을 쓰고 싶어지더라고요.

양재우: IT 전문성을 살리면 좋은 이유가, '트레이더'란 책이 있는데 자신의 실무경험을 잘 버무려서 이야기 한거에요. 결국 그 사람은 선물거래와 같은 DEALING 이야기를 쉽게 전달하려고 했던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준영이의 IT 업무 경험을 잘 녹이면 좋을 것 같아요.

김준영; 차별화 포인트가 있는데요, IT 관련 책이 많아요. IT 사람들이 매말랐어요. 전 그 사람들을 울려보고 싶어요.

한정화: 예전에 준영씨가 영화감독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이 부분과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유형선

제목: 나를 찾아 나서는 길, 인문 중독

키워드: 인문학, 직장인

키센텐스: 인문학의 고전을 읽으며 나를 일으켜 세울 힘을 얻는다.

 

 

샘플글 1.

 

나를 찾아 나서는 길

 

새벽 일찍 산길을 올라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안개 낀 새벽, 산길을 걸으면 나무도 꽃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하늘도 땅도 구분이 모호합니다. 다만 누군가 먼저 걸었던 길의 흔적을 따라 걸을 뿐입니다. 돌뿌리에 걸려 넘어 질 수도 있고, 얼굴을 할퀴는 나뭇가지나 돌연 튀어오르는 산짐승의 기척에 놀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동녘에서 해가 떠 오르면 안개는 어느 새 걷히기 시작합니다. 이제 시야도 점점 넓어지고, 저만치 아래로 마을도 보이고,

산허리를 감싸 도는 구름이 바람을 타고 흘러가는 모양새에 취해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나뭇잎의 푸르름에 취하고 한들거리는 꽃들에 반합니다. 얼굴과 전신이 땀으로 덮히지만 기분이 정말 좋습니다. 땀을 흘리는 만큼 바람을 잘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흔히 등산에 비유합니다. 지리산 종주처럼 며칠 동안 걷고 또 걸어야 하는 큰 산행을 처음 떠나는 사람에게 산을 가본 사람은 누구나 말 합니다. “먼저 산을 가본 사람을 따라 가라. 따라가면서 산을 배워라. 그러면 언젠가 너도 다른 사람에게 산을 알려줄 수 있단다”. 인생이라는 산길을 가면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시점이 꼭 있습니다. 지금 가는 길이 맞는 길인지 그리고 여기가 어딘인지 돌연 방향감각이 사라지고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순간 우리는 당황합니다. 다시 길을 찾을 때까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그 순간, 정말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이 주저앉아 버린 그 순간! 그러나 누구도 대신 해 줄 수 없는 길이 바로 나의 인생 길입니다.

 

잃어버린 내 인생의 길! 잠시 자리에 앉아 먼저 길을 귀 기울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을 검색하기 시작합니다. 오늘 점심 먹을 장소를 찾거나 주말에 보고 싶은 영화를 검색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나의 내면 속 심연의 중심을 향해 밧줄 하나 허리에 묶고 낭떠러지로 몸을 던지는 심정으로 뛰어 듭니다.

 

일하는 목적과 하루 세끼 밥을 먹는 목적부터 다시 묻습니다. 목적을 잃어버릴 때 우리는 인생의 길을 잃어버립니다. 도대체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 매일 매일의 일상에서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을 때 주저 앉아버립니다. 때론 분노로, 때론 무기력으로, 때론 일상을 망각하기 위해 알코올이나 혹은 의미 없는 사랑에 목을 매는 이런저런 중독으로 채워보려고도 합니다. 다 부질 없습니다. 그럴듯하게 화려해 보이면 꽃잎이고 그렇지 않으면 어디론가 쓸려 가는 낙엽 같은 인생이지만 바람에 흩날리기는 결국 똑같습니다.

 

거목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눈에 띄지 않는 잡초여도 좋습니다. 내 땅에 뿌리를 내고 스스로 뿌리를 내고 싹을 틔우고 잎을 내어 그늘을 만들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바람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는 거목으로 성장하면 좋겠지만, 바람에도 흔들려도 다시 몸을 곧추 세울 수 있는 풀이어도 좋습니다.

 

뿌리를 내리기 위해 땅에 떨어져야 합니다. 땅에 내려가 스스로 썩어야 비로소 씨앗이 되어 발아할 수 있습니다. 어느 땅에 떨어져 어떤 씨앗을 틔울 지는 잘 모릅니다. 내 속의 가치는 사실 나도 잘 모릅니다. 다만 진실로 썩어야 하는 게 우선입니다. 이제 나는 나를 애정 어리게 보살펴 주어야 합니다. 잘 썩어 잘 싹 틔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애정을 가지고 지켜 봐주어야 합니다. 정기적으로 물을 주고 잡초를 제거해 주고 햇볕을 쬐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놀랍게도 그 어떤 무엇인가가 발아되기 시작합니다.

 

내가 몰랐던 또 다른 나를 찾게 됩니다. 일그러지고 못생긴 괴물 같은 모습이 나와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놀랄 수도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모르는 사람이 저 문을 열고 집에 들어온 모양새이니 놀라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 또한 내 모습이니 그대로 받아 주십시오. 상처받고 외로워 떨고 있는 나를 발견 하셨나요? 가까이 다가가 손을 잡아주고 담요를 덮어주고 불을 피워 불 옆에 앉히고 살포시 끌어 안아 주십시오. 나도 몰랐던 내 속의 나를 세상에 끌어내어 공원에 데려가 꽃구경도 시켜주고 이어폰을 통해 아름다운 음악도 들려주십시오. 또 책을 골라 손에 들려 주십시오. 은하계의 법칙을 다루는 물리학 책이 좋겠습니다. 아니면 존재와 존재 사이에 흐르는 파장을 글자로 담아 낸 시집이어도 좋습니다. 내 자신에게 에게 선물하십시오. 궁극적이며 무한한 저 너머 바로 존재의 근원을 묻는 이야기일수록 더욱 좋습니다. 무엇보다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땀을 흘려주고 근육을 키워주는 헬스트레이너가 되십시오. 이 모든 대상이자 고객은 바로 내 자신입니다.

 

진정 내 안에 아직 살아 있는 꿈을 찾아 보십시오. 욕망이라고 표현해도 좋습니다.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았던 어린 시절 혹은 청춘의 시절에 몸을 불살랐던 꿈과 열정을 다시 기억해 내십시오.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시간과 자원이 무한정 공급될 때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봐도 좋습니다. 이렇게 묻고 또 물어도 내 안의 욕망이나 꿈이 잘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그 동안 절제하고 억제하는 훈련만 수십 년을 해 왔는데 모습을 잘 드러내 보이는 것이 이상한 것 입니다. 당연합니다. 내 안에 어딘가 살아있는 꿈이라는 짐승을 찾으러 떠나야 합니다.

 

목표는 내 안의 ‘꿈’ 혹은 ‘욕망’으로 불리는 그것을 찾으러 가는 겁니다. 저는 내 안의 ‘짐승’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혹은 ‘녀석’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느낌이 살아 있는 것 같아 좋습니다.

 

짐승의 발자국을 찾아 보십시오. 이제 녀석의 발자국을 따라가 보십시오. 자주 드나드는 길목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제는 매복하십시오. 몽둥이 혹은 올가미도 필요하지만 녀석이 군침을 흘릴만한 먹이감도 함께 준비하십시오. 그래야 이 ‘짐승 녀석’을 사로 잡을 수 있습니다. 먹이감을 놓고 유인하여 기회를 놓치지 말고 올가미를 씌우고 몽둥이를 내리쳐서 잡으셔야 합니다. 한 두 번 실패했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결국 잡히게 되어 있습니다. 녀석은 바로 ‘나’이기 때문입니다. 짐승을 잡으셨다면 울거나 말거나 코뚜레를 꿰야 합니다. 우리가 그 동안 삶에서 의미를 찾지 못했던 이유는 남의 내 코뚜레를 꿰었기 때문입니다. 남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내 코에 코뚜레를 꿸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올라 타십시오. 이제 코뚜레를 꿰고 내 말을 듣는 ‘나’라는 짐승을 몰고 가십시오. 산으로 갈수도 있고 물가로 데려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짐승이 진정 좋아하는 곳으로 가십시오. 녀석이 좋아하는 곳, 녀석이 진정 좋아하는 곳으로 가보십시오. 녀석이 가는 곳으로 녀석에게 몸을 맡기고 따라 가 보십시오. 두려우실 수도 있습니다. 낯선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녀석은 내가 몰랐던 놀라운 세계를 나에게 보여 줄 것입니다.

 

풀고 싶어도 풀리지 않는 인생. 그러나 풀어야만 하는 나의 인생. 누구나 당면한 숙제입니다. 이 숙제를 하지 않고 방치해 놓으면 물론 잠시나마 해방감이나 자유로움을 맛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이 아름다워 지지는 않습니다. 내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주변을 살피고 나를 살피는 작업을 하면 할수록 내 인생은 아름다워 집니다.

 

 

샘플 글 2

 

‘나는 별이다’

 

인문학 독서를 하는 이유는 결국 이 한 문장으로 압축됩니다. 나는 별이었고, 지금도 내 안에는 별이 존재합니다. 내 안의 별이 빛과 열기를 잃지 않게 하려면 꾸준하게 땔감을 넣어 주고 녹과 이끼를 닦아내야 합니다. 그게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입니다.

 

누구나 맑고 투명한 물을 통해 물 속을 들여다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 맑고 투명한 햇살이 거실 창으로 들어 오는 풍경도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맑은 물처럼, 투명한 햇살처럼, 내 마음이 닦여 있을 때 비로소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글을 읽다 보면 글을 읽는 내가 보이고, 나를 둘러싼 주변이 보입니다. 맑은 물 속에 보이는 이끼처럼, 창을 통해 들어오는 봄볕에 먼지 알갱이가 보이는 것처럼, 독서를 통해 나와 주변이 맑고 투명하게 보이기 시작하면 내 안과 내 주변의 이끼와 먼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시작합니다. 결국, 글을 읽으면서 내 마음을 다시 맑고 투명하게 닦을 수 있습니다. 내가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사이 책이 나를 읽고 있습니다. 행복하면 웃는 것처럼, 웃다보면 행복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답 보다 중요한 것이 질문입니다. 질문은 나를 움직입니다. 인문학의 역사는 곧 질문의 역사였습니다. 수 많은 질문의 한가운데는 늘 ‘나’가 등장합니다. 요컨대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질문의 역사가 바로 인문학의 역사였습니다. 인문학의 역사에서 질문을 하는 수 많은 ‘나’들은 결국 별이 되었습니다. 이 별들을 하나하나 어루만지며 눈을 닦고 마음을 닦아 드려다 보면 신비롭게도 ‘나’가 보입니다. 한 두 번 보는 게 아닙니다. 수천 수만 번 어루만져 보고 또 보아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별들의 질문에서 나를 움직이고 있는 괘도를 볼 수 있고 내가 위치한 좌표를 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새로운 시공간을 찾아 나를 움직여줄 ‘질문’을 만날 수 있습니다. 결국 인문학 독서를 통해 나를 확인하고 나를 움직이는 수 많은 ‘질문’을 만납니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이런 질문을 하다 보면 연이어 이런 질문이 따라 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런 질문 앞에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용기를 내십시오. 질문을 구하고 답을 찾으며 좋은 스승이나 동지를 찾아보십시오. 인문학은 진정한 힘을 발휘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내가 있는 곳은 어디인지를 묻고 대답했던 ‘별’들의 역사가 곧 인문학의 역사입니다. 그 별들을 만나다 보면 어느 사이 ‘내 안의 별’이 보이고 그 별이 내뿜는 빛과 열기가 손톱만큼 자란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 맛에 취해 인문 고전을 다시 찾습니다.

 

빛과 열을 뿜어내는 ‘별’, 이것이 본연의 ‘나’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묻는 ‘질문’ 앞에 나를 온전히 드러내는 ‘연습’, 이것이 인문학 독서입니다.

 

 

샘플 글 3

 

네 목을 쳐라

 

시인 박노해. 1957년 전라도에서 태어나 16세에 상경하여 현장 노동자로 일하던 중 1989년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출간하면서 80년대 민주화와 노동혁명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1989년 사노맹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을 결성하였고 기나긴 수배생활 끝에 1991년 체포되어 사형이 구형 되었고 무기징역에 처해졌습니다. 옥중에서 자신의 형 박기호 신부님의 도움을 받아가며 1993년 두번째 시집 <참된 시작>, 1997년 옥중에세이집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출간하였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7 6개월의 감옥 생활 끝에 1998 8·15 특사로 석방되었습니다.

 

새 생명을 얻은 시인은 결코 자신의 과거 속에 묻혀 살지 않으려 합니다. 2000년부터 스스로 사회적 발언을 금한 채 사회운동단체 ‘나눔문화’를 설립합니다. 그리고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전쟁터에서 평화운동을 전개하며 ‘생명/평화/나눔’을 내건 새로운 운동을 시작합니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시인은 12년 만에 세상에 시뻘건 표지의 새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을 내놓습니다. 여기서 시인은 일곱 살 때 서당 훈장선생님에게 배운 첫 가르침의 떨림을 선명히 기억하며 진심으로 실천하고 살았노라 고백합니다.

 

그럼 길이 뭔 줄 아느냐?

길은 , 보아라

 

선생은 먹을 갈고 붓을 들어

비료 포대를 잘라 실로 꿴 공책 위에

글씨를 쓰셨다.

 

길 道는 머리 를 베어

으로 꿰들고 열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길은 무섭고도 잔인한 것이란다.

 

(중략)

 

너는 네 이름대로 평화의 터를 이루는 길을

어떻게 열어 가야 하느냐?

평화를 해치는 나쁜 사람들 목을 쳐야 하나요?

 

기평아

 

 

내가 먼저 평화를 이루지 못한 사람은

평화의 세상을 이루어 갈 수 없단다

길을 잃거든 네 빳빳한 목을 쳐라!

그러면 평화다

 

어린 나는 온몸을 떨었다

 

내 나이 일곱 살 때 석달 배운 천자문

그보다 천배는 소중한 첫날의 가르침은

내가 길을 잃을 때마다 길이 되었으니

 

감옥에서 한 시대의 종언을 들으며

나는 침묵 삭발 절필로 내 굳은 목을 쳤고

자유의 몸이 되어 길을 잃고 길을 찾아 분투하면서

긴 침묵 정진으로 유명해진 내 이름 석 자의 목을 쳤고

국경 너머 전쟁터와 기아분쟁 현장으로 떠날 때마다

조용히 유서를 쓰면서 내 목을 쳐 왔으니

 

수 많은 세월이 지났어도 서당 입문 첫날

길을 잃거든 빳빳해진 네 목을 쳐라!

생생한 그 전율은 아직까지 내 안에 살아 있으니[1][1]

 

고대인들이 문자에 숨겨놓은 가르침은 수 천 년을 흘러 한 어린 아이의 가슴에서 내려 앉아 싹을 틔웠습니다. 그리고 혁명가의 삶으로 꽃을 피웠습니다. 이처럼 고대인들의 가르침을 찾아내어 배우고 실천한다는 것은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 실로 위험천만한 선동임에 분명합니다.

 

일본 메이지대학 문학부 교수 사이토 다카시는 저서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가지 힘>에서 라는 글자의 의미를 해설하고 있습니다.

 

道라는 글자는 ‘길을 가다’라는 의미의 과 인간의 머리를 의미하는 ‘首’가 더해져 ‘잘린 목을 들고 길을 가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왜 그런 무서운 행위가 道일까요?

 

다른 씨족이 있는 토지나 외계로 통하는 길은 사악한 영靈에 접촉하는 매우 위험한 곳이었는데, 그 ‘道’를 갈 때 다른 종족의 목을 베어 그것을 손에 들어서 그 주술의 힘으로 사악한 영을 쫓아냈다. 그 부정을 씻어내는 것을 ‘導’라 하며 부정이 씻긴 곳을 ‘道’라고 하고 ‘길’이라는 의미로 쓰였던 것이다.[2][2]

 

 

 

동양의 에 담긴 의미를 서양의 고전적 조각상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에는 메두사의 머리를 들고 있는 페르세우스의 청동상이 있는데, 첼리니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보면 메두사가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에 여인의 나신으로 페르세우스의 발밑에 죽어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페르세우스와 메두사의 얼굴이 대단히 흡사합니다.

 

조각가 첼리니는 페르세우스와 메두사의 얼굴을 정말 쌍둥이처럼 똑같이 표현하였습니다. 페르세우스가 목을 자른 메두사는 결국 자기 자신이었을까요? 목이 잘린 메두사의 미음을 그려봅니다. 자신의 저주받은 운명을 단칼에 쳐 잘라낸 페르세우스가 고마웠을 것 같습니다. 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가 시원했을 것 같습니다.

 

구본형 작가는 <그리스 이야기>에서 신화속 메두사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화 속의 메두사는 두 개의 대극적 가치를 모두 붙들어 품은 이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메두사는 괴물이면서 동시에 매혹적인 여인이다. 죽음이면서 또한 부활이다. 희생된 자이면서 죽인 자와 결코 다르지 않은 동질성을 함께 가지고 있다. [3][3]

 

신들마다 탐할 정도로 아름다운 미녀 메두사는 운명의 굴레에서 가장 끔찍한 괴물로 변하였습니다. 그리고 영웅 페르세우스의 보검 앞에 목이 잘리고 맙니다. 그러나 메두사를 사랑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그녀를 그냥 죽게 놔두지 않습니다. 메두사의 잘린 목에서 뿜어져 나온 피는 천마 페가소스가 되었고 메두사의 영혼은 죽는 순간 하늘의 별이 되어 되살아 났습니다.

 

분노에 의해 괴물도 될 수 있고, 사랑에 의해 하늘의 별도 될 수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조각가 첼리니가 포착한 것처럼, 페르세우스가 벤 메두사의 머리는 괴물로 변했던 자기 자신의 모습입니다. 길이 막힐 때마다 스스로 자신의 머리를 베십시오. 사회주의 혁명가에서 평화운동가로 변화한 시인 박노해가 그렇습니다. 천마 페가수스의 탄생과 별이 된 메두사의 머리가 그러했습니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샘플 글 4

자유 - 깨어있는 정신

 

인문학 책을 읽다 보면 ‘나’와 ‘우리’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나’에 대한 질문이 곧 인문학이라고 결론 짓다가도, ‘우리’라는 관계 안에 존재일 수 밖에 없는 ‘나’를 되돌아 보게 됩니다. 제 아무리 ‘나’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보아도 대체 ‘우리’라는 관계 안에서 내가 존재하는 이상, 그 어떤 인문학도 결국 공염불로 느껴지곤 합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인문학의 시작은 ‘나’ 맞습니다. 인문학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기존의 ‘나’를 속박시켰던 ‘우리’라는 틀을 벗어 던지는 연습입니다. ‘나’를 재구성하여 얽매이지 않은, 투명한 빛과 타오르는 열기를 간직한 ‘나’를 발견하여 키워 나가야 합니다. 요건대 내가 곧 자유이며 우주임을 절감해야 합니다.

 

과거의 ‘우리’ 안에 얽매인 ‘나’를 부정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과 행동을 바꾸어 나가다 보면, 이제 나는 껍데기를 벗고 온몸으로 세상과 마주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을 온몸으로 마주대하는 연습, 이것이 인문학입니다. 수많은 ‘우리’ 안에서 얽매인 ‘나’를 스스로 깨어나게 하는 연습, 이것은 인문학이라고 표현하면서 동시에 ‘기도’라고 표현해도 괜찮을 것입니다. 인문학 연습을 통해 물처럼 맑고 햇살처럼 투명하게 ‘나’를 비추어 보면, 나의 허물과 나를 얽매는 일체의 관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더 나아가 ‘너’ 역시 ‘나’처럼 빛나는 별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너’를 보기 시작하면 ‘우리’의 관계도 재설정됩니다.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슬픔이 너를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지 말라

쓸데없는 근심이 너의 날들을

뒤흔들게 내버려두지 말라.

책과 사랑하는 이의 입술을

풀밭의 향기를 저버리지 말라.

대지가 너를 그의 품에 안기 전에

어리석은 슬픔으로

너 자신을 너무 낭비하지 말라.

그 대신 축제를 열라.

불공정한 길 안에

정의의 예를 제공하라.

왜냐하면 이 세계의 끝은 무이니까.

네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라.

그리고 자유롭다고.

 

- <중세기 회교도의 충고>[4][4] 오마르 카이얌[5][5]

 

슬픔과 근심의 무거운 납덩이를 잘라내고 자유로운 너의 영혼을 지켜내며 나아가 정의의 축제를 열라는 페르시아의 현자 ‘오마르 카이얌’의 잠언을 기억해 봅니다.

 

그러나 자유로운 ‘나’를 위해 그 동안 나를 둘러싸고 있던 ‘너’와 ‘우리’의 관계가 그렇게 쉽게 끊어지지는 않기 마련입니다. 좀더 단호하고 강렬한 일갈이 필요합니다. 이번에는 중국 불교의 세계입니다. 중국 불교의 큰 스승 임제선사(?~867)는 자유인이 되기 위해 현재의 ‘나’를 규정짓는 일체의 것을 부정하라고 외친다. <임제어록>을 통해 전해오는 임제의 가르침을 들어보자.

 

안이건 밖이건 만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바로 죽여버려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척을 만나면 친척을 죽여라. 그렇게 한다면 비로소 해탈할 수 있을 것이다.[6][6]

 

인문학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를 뛰어 넘어 자연과 우주를 바라보는 관점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요컨대 드넓은 자유의 세계로 한발한발 성숙하게 나아가는 자세. 이것이 진정한 인문학을 공부하는 자세입니다. 내속에 잠들어 있는 ‘나’를 깨웁니다. 그러면 ‘나’와 같이 소중한 ‘너’를 새롭게 받아들이게 되어 ‘우리’의 관계를 새롭게 관계 지을 수 있습니다. 누구나 가능하다고 용기를 내어 봅니다. ‘내가 만드는 나의 인생’ ‘내가 만드는 너와의 관계’, 결국 새롭게 바라보는 ‘나’를 통해 ‘우리’의 관계 역시 새로워 질 수 있습니다. 이를 두고 옛 현자들은 ‘기도’를 통해 ‘나’를 바꾸고 ‘세계’를 정의롭게 변혁할 수 있다고 하셨나 봅니다.

 

기도란 곧 깨어있는 정신입니다. 깨어있는 정신이란 곧 현재의 일체의 나를 둘러싼 관계를 말 그대로 깨뜨리고 내 속의 ‘나’를 투명하게 바라보는 일입니다. 요건대 ‘자유’야 말로 진정 ‘깨어있는 정신’입니다.

 

상상해십시오. 한 명 한 명 깨어있는 정신을 가진 ‘나’로 이루어진 사회. ‘너’와 ‘내’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손을 잡고 서로 이끌어주는 사회. ‘너는 너’로서 성장하고, ‘나는 나’로서 성장하는 ‘우리’의 모습. 이러한 ‘우리’의 모습에서 진정한 사랑과 평화의 문화가 싹틀 수 있을 것입니다.

 

 [1] 길을 잃거든 네 목을 쳐라, 박노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2012.

 [2] 사이토 다카시,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2010.

 [3] 구본형, <그리스인 이야기>, 생각정원, 2013.

 [4]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시야, 너는 참 아름답구나!>, 뮤진트리, 2009.

 [5] 오마르 카이얌 (1048-1123): 페르시아의 수학자, 천문학자, 철학자, 시인. 16세기에 나온 그레고리 달력보다 더 정확한 달력을 만들어 내었고, 3차방정식의 기하학적 해결을 연구하였다. 4행시집 <루바이야트>가 전해지는데, 후에 에드워드 피츠제럴드가 영어로 번역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해 졌다.

 [6] 강신주, <철학이 필요한 시간>, 2012. 재인용

 

유형선발표, 김준영

유형선:

제글에는 직장인 코드가 아직 없지만, 더 풀어낼 계획임. 오늘 가져온 것은 지금까지 적었던 것 몇개 적어왔음

박미옥: 이 책의 주제가 무엇인가?

유형선: 나는 왜 책을 읽는지에 대한 대답을 해보고 싶다

박미옥: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인문고전을 읽으면서 찾아보고 싶다.

유형선: 책을 쓰지 않는 이상 모르겠음. 한명의 독자가 정해져있음. 일과 여과와 나와 독서. 4가지 관계가 적절히 어울렸으면 좋겠음

서은경: 방금 읽은 내용은 형선이 책의 서문의 역활을 하는 내용 같음.

한정화: 형선씨 글은 오디오가 지원되는 글인 것 같음. 읽다보면 형선씨가 말을 하는 것 같음. 톤이 계속 똑같다고 생각함. 글에서 강력하게 주장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궁금함. 굉장히 잔잔하고 조용하게 느껴짐, 과연 책으로 나오면 굴곡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음.

서은경: 계속 드는 생각이 실제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듬

김대수: 대중이 별로 안좋아할 것 같음. 너무 어려움. 형의 주관이 너무 들어가는 것 같음. 수사도 너무 화려하게 들어가는 것 같음.

양재우: 형선은 자기개발서 같은 글을 쓰고 싶어하는 것 같지는 않음. 또하나의 책은 현상 분석하는 책은 철저하게 지식전달 위주로 가야함. 뭔가를 깨닫게 가야 함. 형선이가, 현상을 분석하고, 이것을 통해 ‘나’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생각함. 피드백도 현상을 좀 더 책으로 연결해서 깊이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지 피드백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함. 샘플글들을 하나로 묶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볼 것

유형선: 대중서에 관심이 없음. 출간에 관심이 없음. 내가 원하는 글을 프린트되서, 아이들과 와이프가 보면 된다고 생각함. 내 얘기를 한번 다 끄집어내고 싶음. 인문고전의 인물들을 끄집어 냈을 때, 그런 이야기톤이 괜찮은지 궁금함. 일년 연구원 과정을 하면서 마음이 편해짐. 사람은 어짜피 죽게 됨. 이 삶에서 어떻게 재밌고, 즐겁게 살 수 있을까? 고민이 됨. 그런 것이 책에서 나왔으면 함

한정화: 박노해씨 이야기 좋았음. 덜 관념적이라고 생각이 듬. 굉장히 대중적이 될 것이라고 생각이 듬.

서은경: 형선이 글은 좋음. 철학자를 컨셉으로 잡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떤지?

유형선: 철학자에 한정하고 싶지는 않음.

서은경: ‘내가 닮고 싶은 철학자’라는 이야기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컨셉으로 한번 풀어가는 것이 어떤지?

유형선: 모든 만나는 것이 ‘나’라고 생각함. 내가 뱉어내야 하는 이야기는 모든 것들이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함. 가장 막혀져 있는 것은 ‘일’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함. 내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일’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함. ‘나’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아직도 고민중. 출간안되면 저 혼자 프린트 해서 볼 계획

박미옥: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본인이라고 생각함. 다중역활을 맡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함. ‘나는 누구인가?’ 하나의 질문을 해결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함.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인수분해하고 수많은 고민들을 나눠보고, 그것에 대해 하나하나씩 해결하면 좋은 책이 될 것 같음. 오늘 가져온 것은 그냥 ‘개론’ 수준이라고 생각이 듬. 첫번째 책으로는 적절하지 않는 톤이라고 생각함. 단계적으로 잘 풀어내야 된다고 생각이 듬

한명석: 글이 단순이 선언에 가깝다. 첫 책은 편지나 지도에 가까워야 한다고 생각함. 본인이 계속 인문중독자라고 하는데, 난 명확히 다가오지 않음. 인문중독된 과정을 조분조분 해야함. 책을 안내도 좋겠다는 말은 이제 그만들어왔으면 좋겠음.

한명석: 글이 너무 넓으면 안됨. 독자에게 주는 것이 정확해야 한다고 생각함.

유형선: 일단 출간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함.

문요한: 인문학이 현실의 문제를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이야기가 전혀 없음. 글과 현실이 자꾸 괴리가 된다고 생각함. 난 책 안으로만 파고 들어간다는 생각이 듬. 그리고 심리적인 저항감이 있는 것 같음.

내가 왜 인문학 책을 쓰려고 하는지 생각해봐야함

유형선: 나를 좀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음. 인문, 고전을 읽다보면, 가끔 좋은 ‘언어’들을 만나는데, 이런 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음.

박미옥: 중간지점을 잘 찾아봐야 한다고 생각함. 일단 프로세스를 잘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함.

한명석: 인문서로 가되, 공감을 더 해보고, 말로 하지 말고, 글로 보여줄 것

최재용: 오프수업 책 쓰기 컨셉

책 제목 : 가제- <오십에 찾은 자유>

목차

서문

1 장 중년의 혹독한 통과의례

결혼생활위기와 헤어짐

실직, 삶의 중심을 잃다

우울증, 불안, 두려움

자녀와의 관계

흔들리는 정체성

자아 존중 상실

2장 치유 – 절망에서 희망으로

과거의 ‘나’와 이별

명상과 산책

달리기 – ‘나’를 찾기 위한 마라톤

실천적 독서

글쓰기

클래식 음악

3장 행동의 삶

장보기

요리 배우기

걷기 –오일간의 제주 올레길

자연과 함께하는 삶

4장 오십, 새로운 시작 – 자유를 찾아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

가장 활동적인 중년의 뇌

평생 학습- 30년 만에 다시 학생으로

새로운 인간관계 – 친밀감 습득

사랑의 기쁨

목적 있는 후반부 인생

배려와 봉사의 삶을 위해

맺음말

2.독자층 – 오십 이후 과거와 단절하고 자신의 잠재력을 개발하여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려는 중년의 남성

3. KEY SENTENCE : 오십, 부끄러울 것도 없고 남의 눈치를 보고 살 필요도 없다. 이제는 행동의 삶을 살자.

다시 찾은 자유를 즐기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자.

4. 차별화 포인트 – 40대에 이혼, 실직 등 혹독한 중년의 통과의례를 극복한 후 오십에 이르러 다시 후반기 인생을 찾아

떠나는 저자의 체험을 중심으로 예기한다.

 

 

5. 샘플 글

 

<마라톤 - 나의 한계를 넘어서며 >

 

춘천 댐까지 이르는 25km/30km 구간을 달리고 있다. 오르막 길이다. 언덕 훈련을 병행하지 못한 내겐 부담스럽고 힘겨운 구간이다. 고통의 전조가 시작된다. 마라톤 참가자들이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지며 대열에서 뒤처지기 시작했다. 오른 발을 내디딜 때마다 "후후"하고 숨을 거칠게 내뱉으며 달렸다. 그 소리가 컸는지 앞에서 달리던 사람이 뒤를 힐끗 돌아 나를 쳐다 보았다. "그 자식 되게 유난을 떨며 달리네"하는 표정이다. 저 멀리 춘천 댐이 아득히 보인다. 땅을 보며 달린다. 단풍으로 치장한 주변의 그림 같은 풍광도 이제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벌써3시간을 넘게 쉼 없이 달리는 중이다. 춘천 댐을 지나니30km 이정표와 급수대가 눈앞에 들어왔다. 급수대에 마련된 물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바나나 한 조각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지옥의 레이스가 시작된다. 두렵다. 앞으로 1시간 30여분 동안 파도처럼 밀려오는 고통을 어떻게 견뎌내야 할지. 두 다리가 뻐근해 지기 시작했다. 어깨와 허리도 쑤셔온다. 길옆에 떡하니 서있는 구급차가 나를 유혹한다. ", 뭐 그렇게 허벌나게 달리니? 4시간 넘는 기록을 누가 알아 주기라도 한다니 ? 얼굴을 보니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것 같은데 빨리 차에 타라 " 하고 내게 포기를 종용하는 듯 하다. 그 차를 타는 순간 지금까지 달려온 것이 물거품이 된다. 정신을 가다듬었다. 이번 만큼은 후반에 급격히 떨어지는 체력을 극복해 4시간 40분 초반 대에 완주하리라고 다짐해 본다. 재수하고 있는 아들에게 약속을 했다. "아빠는 4시간 40분을 목표로 할 테니 너도 목표를 세워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거라".

 

앞발과 뒷발과의 거리를 좁히면서 지면에 닿는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달리며 힘을 비축했다. 좁은 도로를 지나 어느새 넓은 평탄대로로 접어 들었다. 저 멀리 춘천 시내가 보인다. 탁 트인 넓은 도로는 나를 더욱 쉽게 지치게 했다. 달려도 달려도 거리는 줄어들지 않고 계속 제자리에서 달리는 기분이다. 그래도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다 보니 어느새 35km 마의 지점에 다다랐다.급수대에서 자원 봉사하는 여학생들이 물 한잔을 건네면서 생기 발랄하게 " 힘 내세요, 화이팅 " 하는 목소리도 이제는 더 이상 귀에 들어 오지 않았다. 에너지 드링크로 갈증을 해소하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중년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나를 추월하여 달렸다. 바람을 타고 오는 여자의 분 냄새도 고통이 심해지면서 후각은 더 이상 반응을 하지 않는다. 주변에는 지쳐 걸어가는 사람, 다리에 쥐가 나 구급대원의 도움을 받는 사람, 길가에 앉아 쉬는 사람 등 낙오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사지가 녹지근한 것이 그냥 지금 이 자리에서 푹 주저앉고 싶다. 아니 눕고 싶다. 발걸음도 어느덧 무거워 지면서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때 페이스 메이커가 내 앞을 지나쳐 갔다. 등 뒤에는 4시간 40분이 쓰여 있다. 그 뒤에는 10여명의 참가자들이 일정한 주폭(走幅)유지하며 뒤 따르고 있었다. 저 마지막 대열에 합류해야만 목표를 이룰 수 있고 아들과의 약속도 지키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뒤처질 것 같았다. 남아있는 모든 힘을 소진하기로 하고 페이스 메이커를 따라 가기로 했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페이스 메이커의 달리는 모습은 너무 멋있다.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자세로 전방을 주시한 채 달린다. 발로 지면을 가볍게 차고 나아가고 팔과 어깨의 움직임을 최소화하면서 달리는 모습이 아름답다. 그의 자세를 한번 따라 해본다. 체력이 거의 고갈되었다. 너무 고통스러워 두 눈을 감았다. 고통과 친해져야 하고 이 고통을 넘어서야 한다고 스스로 주문을 걸어본다. 강렬한 햇볕이 정면으로 내 얼굴에 사정없이 쏟아진다.

 

40km 이정표를 지났다. 남은 거리는 2km 남짓. 군데군데 시민들이 달리는 사람들을 무표정하게 쳐다본다. 장시간 도로 통제에 대한 불편 때문일까, 아니면 4시간을 넘게 달리는 나를 포함한 다른 참가자들이 한심해 보였을까. 페이스 메이커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려본다. 나 스스로 놀란다. 어디서 막판에 이런 힘이 나오고 있는지. 나의 한계치를 넘어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그러나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몸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서야 한다. 나는 내 몸의 회복 탄력성을 믿는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완주 후 내 몸은 고통으로부터 점차 제 기능을 찾으며 회복 될 수 있다는 것을.

 

고통을 이기기 위해 큰소리로 외쳐본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사랑하는 두 아들의 이름을 목청껏 불러본다.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린다. 남한테 베풀지 못하고 이기적인 '' 중심으로 살아온 삶, 부모님에 대한 불효, 죽을 때까지 두 아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나는 절규하듯이 울부짖었다. 아치형 피니쉬 라인이 저 멀리 보인다. 갑자기 다리에 경련이 일어나며 몸이 뒤뚱거렸다. 눈 깜짝 할 사이에 페이스 메이커와 간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 ! 안돼. 거의 다 왔는데.., , 제발 다리야 조금만 참아다오. 너무 너를 혹사시켜 미안한데 오늘 완주 후 네게 1주일간 휴식을 줄 테니 경련 없이 잘 마무리 하자꾸나 "하고 간절하게 부탁했다. 다시 심호흡을 한 후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달려왔던가. 출발 전 설렘이 고통으로 바뀌고 그 고통이 승화되어 이제 환희와 기쁨, 행복으로 질적인 변화가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숨막히게 더웠던 지난 여름부터 시작한 4개월의 대장정이 끝나는 순간이다. 때론 비를 흠뻑 맞으며 때론 새벽의 기운을 받으며, 때로는 밤 공기의 눅눅한 기운을 받으며 홀로 달리기에 몰입했던 순간 들. 즐겁고 행복했다. 고통과 맞서고 친해지니 고통은 내 삶을 한 차원 높게 끌어 올려 주었다.피니쉬 라인을 통과한 후 나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흘러내리는 눈물이 땀과 뒤범벅이 되었다. 그 눈물은 나를 환영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나온 슬픔의 눈물이 아닌 자신의 한계를 극복한 기쁨의 눈물이자 또 다른 ''를 발견한 환희의 눈물이었다 4시간 41 45 ,별볼일 없는 기록이지만 내게는 나의 땀과 정신, 마음과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 들어간 내 삶의 결정체이다. (2012 10월 춘천 마라톤을 완주하며)

 

사십대 중반에 이혼을 하고,

제가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는 이야기는 바로 이런 나의 이야기가 아닌가.

 

수동적인 독서에서 머물지 않고, 실천적 독서를 실행한 이야기. 

클래식 음악도 많이 좋아한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

 

3월부터 학교에서  다시 공부를 하고 있다.

  

< 발표 자료 카피 붙이기 >

  

오늘날 우리는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한명석: 표현이 다르고 분위기가 다르지만 일정부분 대수씨의 목차와 크게 다르지 않다. 초보 저자가 겪는 통과의례인데, 이런 경우 비슷한 사람과의 목차와 바꿔서 읽어보는 것도 좋다. 마음 산책 정은숙 대표 왈 '자기를 위해 쓴 글은 읽히지 않는다. 내가 이런 경험을 해서 실패를 보았으니, 너희들은 이렇게 하면 안돼. 라는 톤으로 이야기 해야 읽힌다고 하더라.

일단, 이 목차댈 글을 써보세요. 자기 안의 것을 토해내야 시선이 남에게로 향할 수 있어요.

서은경: 전 글을 보면 웨버님 책이 가장 빨리 나올 것 같아요. 글쓰는 체도 좋고....

양재우: 1장에서 '파경'이란 글 목차를 잡았으니, 4장에서는 이에 대한 정의, 중년의 사랑에 대한 정의가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박미옥: 1장에 파경이란 이야기가 나왔는데, 2, 3장에서는 이를 치유하는 과정이 나오는 것 같은데, 2,3장이 먼저 있었더라면 파경이 없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란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이 책을 쓰러면 자신이 이 모든 아픔에서 자유로워져야 독자들에게 자유로워지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상황을 봤을 때 천천히 써서는 안될 것 같고요. 쉬지 않고 전력질주를 해야하지  않을까요. 그리스 인 조르바가 결국 춤을 추게 된 것처럼요.

 

최재용: 처음에 책을 쓸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은 책을 한 번 써보고 싶어졌어요.

문요한: 일단 목차에 있는 내용들을 써보는게 좋고, 그 목차들을 다 써내려가려하지 말고 그 중 한 둘의 key word를 잡아서 책 한 권으로도 써보는게 좋을 것 같아요. 원래 첫 책은  쓰고 싶은게 워낙 많아서. 한 권 분량을 넘어가기도 하거든요. 목차를 조금 더 정리해서 흐름을 찾으면 목차가 조금 더 정리가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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