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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4일 09시 48분 등록
#6-1 본문 한 꼭지 - 두 개의 전봇대


이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인 지난달 18일 인수위 간사단 회의에 처음으로 참석해 기업들의 원성에도 불구하고 지난 5년간 방치된 목포 대불공단의 전봇대를 예로 들며 탁상 행정식 업무처리를 강도 높게 질타했다. 문제의 전봇대는 이 대통령의 발언 후 곧바로 뽑혔다.(조선일보 2008.2.25)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간담회 때 당선자의 입에서 나온 전봇대가 규제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다. 5년 동안 탁상공론만 하다가, 당선자의 말이 나오기 무섭게 다음날 전봇대를 뽑았다. 전봇대 하나 뽑는데 이틀이면 되었다. 공단 조성계획을 논의할 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대불공단 조성계획이 막바지로 갈수록 점점 더 바빠진다. 김계장은 이번 프로젝트의 책임자이다. 오늘 대책회의에서 갑자기 전봇대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앞으로 대형 선박에 쓰이는 블록을 운반할 때 전봇대가 방해될 수도 있으니, 전봇대 대신, 전선을 지하로 매설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난감한 문제였다. 중앙정부 지원 사업으로 예산도 한정되어 있고,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할 경우 계획 자체가 무산될 위험이 있었다. 전봇대를 지하로 매설할 경우 설계변경이 필요하고, 공사비와 공사기간도 더 늘어나게 된다. 아직 입주업체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디어만 믿고 예산과 공사시기를 늦추기 어려웠다. 공사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전봇대가 흉물스럽게 보였지만, 공단은 완공되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어느 날, 당선자의 말 한마디로 전봇대가 다시 수면위로 올라왔다. 대통령 당사자의 전봇대 이야기가 방송에 나온 직후, 여기저기서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전봇대 설 예산을 달라고 그렇게 통사정 하던 예산 담당자가 제 발로 이곳으로 왔고, 감사원, 산자부 등 높으신 분들이 현장으로 급히 내려왔다. 회의실이 마련되었고, 공단은 호떡집에 불이라도 나듯이 여기 저기 사람들로 붐볐다. 공단 개통일 이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방문하기는 처음이었다. 문제의 전봇대를 찾기 위해 우리 부서 직원들이 모두 동원이 되었다. 꼬박 하루를 뒤져서야 지적한 전봇대를 찾을 수 있었다. 철거기간을 걱정하였으나, 그렇게 불러도 오지 않던 한전이 다음날 바로 왔다. 비가 와서 정상적인 작업이 위험한 날임에도 이전 공사를 강행하였다. 다음날, 더 기가 찰 일이 벌어졌다. 어제 뽑은 전봇대가 대통령이 말한 전봇대가 아니라고 한다. 당장 내일 그놈의 우라질 전봇대를 찾아야 한다. 지하증설이 무산되는 마지막 회의 때 국장이 한 말이 생각났다.“지하 매설하는 것 당신이 책임질 수 있어?” 그렇게 말한 국장은 물론 지금 퇴직하고 없다.


이 공단에 입주한 입주공단의 사정을 어떠하였을까?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수도 없이 민원을 제기하였을 것이다. 5년 동안 수고가 대통령 당선자의 한 마디로 모든 기관이 총동원되었고, 단 이틀 만에 전봇대가 뽑혔다.


김사장은 대불공단 초창기부터 선박구조물 공장의 대표이다. 그놈의 전봇대 이야기는 듣기도 싫다. 입주 직후부터 전봇대를 없애달라고 했다. 예산을 핑계대고, 뭐 수익자 부담이라 입주업체들이 이설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규정을 들이밀며 안 된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전선을 자르고 선적작업을 하였고, 시 연결하였다. 돈도 들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 공단에 입주업체가 하나둘씩 생기면서 집단으로 민원도 내보고 아는 사람을 통하여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였다. 돌아오는 대답은 검토 중이라는 대답과 예산이 없다는 대답이었다. 그렇게 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대통령선거가 끝이 난지 얼마 되지 않아, 당선자가 갑자기 우리 공단의 전봇대 이야기를 하였고, 다음날 공단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코빼기도 비치지 않던 공무원들 여기 저기 분주히 오갔고, 취재진들이 북새통을 이루었다. 당선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전봇대 두 개가 뽑혔다. 5년 동안 되지 않던 일이 단 이틀 만에 이루어졌다는 것도 놀라웠다. 그렇게 빨리 없어질 전봇대를 5년 동안 박아놓은 공무원들의 행동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전봇대 두개를 뽑았다고 끝난 일이 아니었다. 공단 전체에 거미줄처럼 여기 저기 막고 있는 전봇대를 다 없애야 하는데, 두개 뽑는데 5년이 걸렸다면 공단에 있는 전봇대를 전부 뽑는데 얼마나 걸릴까? 답이 나오질 않는다.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일이 이미 끝난 일이 문제가 되어 다시 해결하는 일이었다. 또 상위 기관과 협의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중 하나였다. 이미 끝난 일로 나타난 문제는 계획단계에서 누락되어 곧바로 감사나 책임소재가 가려지게 된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 계획단계에서부터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고, 추진하는 중간에도 계속 예상되는 문제점을 파악해야 한다. 특히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사업은 담당자도 교체되고, 예산도 신경을 써야 한다. 이미 완공된 시설에 대한 문제는 하자보수로 가능하지만, 대불공단의 전봇대와 같은 문제는 공단 전체에 걸친 문제로 초기 조성단계에서 검토되었다면 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제기된 민원에 대하여 기관 자체에서 해결이 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으나, 다른 부처와 얽힌 문제는 풀기가 정말 어렵다. 같은 공무원끼리 왜 그렇게 일을 하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같은 공무원이 아니다. 각 부처의 위상에 따라 등급이 나뉘게 되고, 예산이 부족하다고 하여 당연히 받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 딱딱한 관료주의의 단점일지는 몰라도 확정된 업무가 아닐 경우에는 좋은 소리를 듣기도 어렵고, 예산을 따내기란 더더욱 힘든 일이다. 결국 대불공단 지자체는 관련 기관에 공문을 보냈고, 관련기관은 시간과 예산 부족을 내세워 질질 끌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담당자가 바뀌면 모르는 일이 되고, 다시 찾아가서 문제점을 얘기하고, 공문을 다시 반복해서 보낸다. 한 가지 업무를 하면 계속 찾아다니고 할 수 있다. 급한 업무가 새로 생기면 한 달이 금방 가고 두 달이 금방 지난다. 높으신 분의 한마디가 문제해결에는 최고의 방법이다.

새 정부가 실용을 중요시 한다고 한다. 실용노선으로 가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현장의 애로사항, 문제점을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하면 초점을 맞추기 어렵다. 엉뚱한 답만 찾고, 타 부처로 미루기나 예산타령만 늘어놓게 된다. 바로 탁상공론은 현장이 아닌 곳에서 발생한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전봇대와 같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다. 정권이 바뀌면 보는 관점도 달라질 것이고, 처리하는 방식도 바뀔 것이다. 대불공단의 전봇대를 없애는 속도처럼, 우리들 주변에 있는 마음속의 전봇대도 모두 뽑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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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04 17:43:18 *.70.72.121
새로운 영훈의 모습과 시도도 좋아보인다. 그런데 쓰다가 그친 느낌이 조금 들었어. 재미있고 좋았는데 마무리에서 모색에 대해 조금 더 나와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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