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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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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15일 12시 15분 등록


사실 나는, 책 한 권을 냈다는 이유로 참석한 나의 비평과 해석 활동에 반대한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글쓴이의 재능과 스타일을 모른 채 가하는 비평에 반대한다.

'탁월한 실력'과 '그를 아는 지식'이 더해져야만 비평이 제대로 기능한다고 믿는다.

이런 믿음 때문에 나는 두 가지 질문에 '풍덩' 빠지곤 한다. (정말 풍덩이다.)

나는 탁월한가? 나는 (비평의 대상인) 그를 아는가?

두 가지 질문에 모두 제대로 답변할 수 없었다. 괴롭진 않지만, 생각은 하게 된다.


나는 두 명의 발표를 듣고 난 후, 얼른
나의 피드백 원칙을 세웠다.

첫째, 책의 주제나 전개 방식이 작가와 궁합이 맞는가?

둘째, 나의 피드백은 그의 강점과 성향을 반영한 것인가?

셋째, 말하려는 피드백이 그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가?

(모르는 것은 말하지 않기. 알고 있더라도 도움 안 되는 내용이면 말하지 않기)


세 가지 원칙 모두 '그를 아는 지식'이 있는가에 초점에 맞춰져 있다.

나의 실력이 탁월한지를 판단할 만한 좋은 기준이 내게 없기 때문이다.

(그저 자격 미달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자리를 피하게 된다.)

스스로 흡족할 만한 수준까지 기다린다면 영원히 그 자리에 참석할 수 없으리라.

당시의 지혜와 지식으로 최선의 판단을 내리고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조금도 움직일 수 없고, 한 마디의 말도 꺼낼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비평에 반대하는 한 가지의 이유는, 우리는 모두 자기 길을 가면 되기 때문이다.

구조가 진부해도 내용이 탁월하면 좋은 책이 되는 것이고, (알랭 드 보통의 경우)

내용이 뻔해도 기획과 표현력이 참신하면 한 권의 책이 되는 것이다. (공병호의 경우)

어떤 세계에 새롭게 진입하는 신참자는 아무리 탁월해도 비평가들의 해석은 나쁠 수 있다.

때로는 비평가들끼리의 해석이 서로 상충되기도 한다.

그러면 신참자는 어느 길로 들어서야 한단 말인가.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의 경우를 보자.

책의 목차는 썰렁할 정도로 단순하다. (사실, 그의 다른 책도 이런 식이다.)


원인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

해법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

옮기고 나서

색인


그는 뛰어난 글솜씨와 사고력으로 (목차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좋은 책을 써냈다.

이 목차에는 일관성은 보이지 않고, 무성의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데도 말이다.

(나는 알랭 드 보통의 대부분의 책을 높게 평가한다.)

우리가 알랭 드 보통의 글솜씨 수준은 아닐지라도,

알랭 드 보통과 같은 류의 길로 들어설 저자라면

구조가 엉성하다는 비평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비평자들은 여러 가지의 해석과 비평의 도구를 지녀야 한다.

하나의 도구로 다양한 사람에게 같은 비평의 잣대를 갖다 댄다면 그것은 위험한 일이다.

위험 중에는 감수할 만한 가치가 없는 위험도 있다.

(다양한 도구는 인간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로부터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누가 비평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비평의 무용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효과적인 비평에 대해 논하고 싶다.

실제로 비평은 비난과는 구분되어야 하며, 나는 비평의 순기능이 많다고 믿는다.

이 글은 비평의 순기능을 더욱 확대하기 위한 것이지, 비평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1) 나는 (비평을 받는)
그를 향한 애정을 가졌다면 비평을 해도 좋다고 믿는다.

신뢰와 애정 등의 감정은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니까.

우리는 퍽이나 감정적인 반응을 하기도 해서

좋은 감정이 담겼다고 믿으면 제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니까.

(실제로 연구원들 사이에는 이런 믿음이 있기에 그 날 수업이 무척 즐거웠다.)


2) 애정에다가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있다면 비평이 더욱 좋아진다고 믿는다.

시행착오를 줄여 줄 것이고, 영감과 노하우 전수를 통해 성장을 도울 것이기에.

3) 애정과 전문성에다 인간의 다양성에 대한 통찰이 있으면 훌륭한 비평이 될 것이다.

훌륭한 비평은 비평의 수준 자체도 높고, 비평을 받는 이와의 적합성까지 갖춘 것이다.

만약, 비평 자체가 옳아 보여 열심히 따랐는데, 왠지 자기다움과는 멀어지는 느낌이 든다면

궁극적으로 그 비평은 (내가 생각하는) 훌륭함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 것이다.


이런 생각을 지나치게 이어가면 실용성과 자신감을 잃는다.

적절한 수준에 다시 현실로 내려와 실용성을 획득해야 한다. 어느 선생의 말이다.

"최고의 지혜와 판단력을 지닐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아무 것도 행할 수 없지.

그 때까지의 경험과 생각으로 순간마다 최선의 선택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나는 주문을 외워야 한다.

"애정이 있고, 선생님이나 선배가 말해 보라고 하면 용기를 내라"고.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비평하는 자로서의 이런 저런 고민이었다.

이제, 선배들의 애정 어린 비평을 받는 신참자는

어느 길로 들어서야 하는가? 라는 문제를 살짝 다룸으로 글을 맺는다.

(계속해서 신참자라는 단어를 쓴 까닭은 군대 이미지가 풍기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비평을 받는 이들의 가슴 졸이는 상황은 전입 신병의 모습과 비슷하니.)


영화관에 들어서는 관객들은 평론가들의 비평에 굉장히 자유롭다.

'평론가들의 비평은 도움이 안 돼. 내가 그들의 의견까지 알 필요는 없지.'

이들에게서 배울 것은 자유로운 독립성이다. (배우지 못하는 것은 깊이 있는 사고력이다.)


그러나 깊이와 객관성을 경험하지 못한 독립성은 편협하고 얕다.

독립성 이전에 '깊이 있는 텍스트, 혹은 선생으로의 자발적 의존'이 필요하다.

선생과 좋은 텍스트에 의존함으로 우리는 세상을 배우고, 일반적인 지식을 배운다.

이 단계가 깊을수록 독립성을 갖추었을 때 더욱 빛날 수 있다.

(깊이와 소통 능력을 동시에 획득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참자들은

선배들의 비평을 한껏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으로 실험해 보는 것이 우선이다.

비평을 통해 미처 생각지 못한 문제들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고,

자신이 알고 있던 것보다 효과적인 프로세스와 노하우를 얻을 수 있으니까.

비평에 대한 공감과 실험 정신을 통해 끝내 자신의 성향과 맞지 않다고

결론내린 것들은 훗날 하나 둘 게워내면 된다.

최악의 상황은 모든 비평을 게워내야 하는 것일 텐데, 그래도 무의미하지 않으리라.

가만히 집 안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는 것과

지구를 한 바퀴 돌고 와서 집 안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는 것은 차원이 다르기에.


이것은 결국 자신을 아는 지식과 훌륭한 비평 사이의 적합성을 찾아가는 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처음에는 (비평을 참고하여) 일반적인 길을 따라 가다가

자신만의 '오타쿠'를 발견한 지점부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신나게 달려가자는 말이다.

다시 세상과의 소통이나 선배들의 비평이 필요할 때까지.


결국, 나의 글은 이렇게 또 연구원들의 판단과 생각을 요하며 맺게 된다.

해석에 반대했다가, 찬성했다가. ^^

[나의 혼잣말 : 완전무결한 비평은 없다. 뛰어난 해석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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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향
2010.01.15 12:38:55 *.140.110.148
애정과 전문성 그리고 통찰력.
참으로 중요한 요소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 역시도 연구원 활동을 하면서 가장 많이 제 자신에게 물어보았던
아주 중요한 포인트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난이 아닌 비평.
그리고 그 비평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 낼 수 있을 때
그 때 우린 또 한걸음의 도약을 할 수 있는 존재들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희석 선배는 겸손한 비평가이셨습니다.
적시적소에 예로 드는 저자들과 책들을 들으며
역시 내면이 단단한 선배라 생각했어요.

선배뿐아니라 그날 참석하신 모든 선배님들 사실 무척 힘드셨으리라 생각해요.
한 사람 한 사람을 깊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코멘트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거 잘 압니다.
그러나 역시 책을 써본 경험들이 있는 선배들의 위력은 짧은 발표 가운데서도 "틀"을 잡아내는 능력이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저희끼리 몇달 고민했던 것보다 훨씬 간결하고 명료하게 정리해주신 부분들이 많았으니까요.

무튼, 선배님들의 존재감이 어떤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고
그래서 더욱 든든했습니다.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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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
2010.01.15 12:47:10 *.67.223.154
히힛 재밌다. 희석 선배. 희석씨~

지난해 말 평창에서 호랑이 프로젝트 모임할 때
우호적인 분위기와 시처럼 내려오는 흰 눈으로 내가 좀 들떴나 봐요
그리고 와인도 한 몫 거들었고...비틀즈도 박자를 맞춰줬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회상해보니
내가 좀 '자뻑'을 한 것 같더라.
그래서 마음에 좀 걸리기에.... 선생님께 여쭤봤어.

"우리 떠나기 전에 혹시 최후진술(?) 하는 시간이 있는지요?"
"아무래도 지난 밤에 자뻑,  제가 좀 잘난 척 한 것 같아서. ...회개 하려구요...."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 하시더군요.
"으으응~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할텐데....."

의심이 조금 가기는 했지만
내게 힘을 무한히 실어주시는 선생님의 생각에 95% 동의를 하고
선생님을 따라 물위를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먼저 길을 간 사람들의 도움말은 사랑이 넘치는 나눔입니다. 고마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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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야
2010.01.15 14:43:19 *.12.20.246
선배가 있다는 게 이렇게 든든하지 새삼 느꼈으며 나도 그런 선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순간이었습니다. 

마지막 관문인 내 책쓰기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날들입니다. 쉽게 풀리지 않는 만큼 그날 선배들의 조언들을
떠올리곤 하죠. 그런 와중에 신참자로써 어찌 받아 들이고 행하면 되는지 일러주는 글을 이렇게 올려주시니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깊은 후배에 대한 애정....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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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10.01.28 00:48:48 *.21.31.79
1월 연구원 수업내용을 쭈욱 읽어보면서 나도 너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 우연한 공명이 놀랍구나.. 난 희석이 니가 점점 깊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다른 이들을 더 크게 품고 위무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구나.. 갑자기 니가 보고싶어졌다.. 내일 시간날때 전화 한번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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