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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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27일 16시 43분 등록
서문 수정안 1

"인간에게 가장 민감한 성감대는 어디일까요?"
이런 질문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략 난감이란 표정을 짓는다. 어찌 보자면 질문이 지나치게 신랄하니 순간 당황하며 뭔진 몰라도 즉시 표정관리에 들어가는 것이 보통이다. 달인은 상대의 얼굴 색은 전혀 관심 없는 듯 손가락을 들어 머리 쪽을 가리키며 “그건 바로 뇌이지요.” 눈치 보던 이들은 한숨 돌렸다는 안도의 표정이 역력하다.

달인은 상대의 허를 찌르는 질문이나 화제를 아무렇지도 않게 올리는 타입이다. 그리곤 이성적으로 추리할 시간을 주지 않고 몇 초 사이에 그 답까지 쏜살같이 내뱉어 상대의 혼을 빼는 게 주특기이다.
시간차를 두지 않고 자문자답 해 버리곤 깔깔대는 달인 앞에서 사람들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하다가 따라 웃는다. 그러나 또 다시 달인이 툭 하고 내뱉기 시작하면 다시 긴장모드와 유머모드로 들어가게 되버린다. 일단 그렇게 분위기가 흘러가면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재미 또한 쏠쏠한지라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화술의 제왕 자리는 그렇게 늘 만장일치로 달인에게로 돌아간다.

열광하는 자들은 자발적이다. 또한 그 열광 뒤로 이어지는 기대감이나 허탈감도 그들의 몫이다. 제왕은 절대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존재할 뿐이다.

나는 고양이에게 열광한다.
아니 사실 고양이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모든 생명체들에게 열광한다. 그들 중에는 한 십 억년 전 아프리카에서 걸어 나온 종족도 포함되며, 킬리만자로의 한 마리 외로운 늑대도 그렇고, 우리의 음식을 가볍게 무시하는 파리에게도 또 나의 젊은 피를 맛보고 싶어하는 모기도 포함된다.

2001년이 시작되는 어느 겨울, 내게 고양이 한 마리가 찾아왔다.
다른 세상과 달리 헝크러진 서식지는 그의 귀를 쫑긋 세우게 했고 이곳 저곳 구석들은 그의 눈과 코를 집중시켰다. 소리 없이 집안 한 바퀴를 돌아보고 온 그는 나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고요하며 아름다운 자태, 선한 눈망울은 기품으로 넘치고 있었다. 동시에 그 애틋한 눈빛은 잠자던 나의 신하본능을 일깨웠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그가 이미 제왕으로 등극하였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 후 8년이 지났다. 제국은 굳건해졌다. 인간의 그것이 때때로 쿠데타를 동반하기도 한다면 우리의 제국은 늘 평화로움 그 자체라는 것이 경이롭다. 제왕은 한결 같은 사랑과 믿음을 가르쳐 주었다. 동시에 나는 누구이며 너는 누구인가에 대한 존재의 철학을 온몸으로 강의해 주는 훌륭한 선생이기도 했다.

철학을 하시는 제왕 덕에 수랏간 전담 상궁은 이제 서기직도 겸임하고자 한다. 이 역시 충성도 높은 신하의 의지이다. 누구의 강요도 개입되지 않은 자발적 의지로 순전히 열광하는 자들이 가는 길, 그 길 위에서 신하는 깊은 숨을 들이쉬고 있다.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빽빽한 건물로 들어선 테헤란로를 걷다가 문득 들은 생각이다. 그런 순간에는 잠시 눈을 감고 이 땅에 살았을 생명체들과 그들이 마음껏 뛰어 놀았을 과거를 떠 올리며 그들의 행방이 버럭 궁금해진다. 그러다 어느 귀퉁이에서 인간의 모습이 아닌 생명체들을 발견하게 되면 가던 길을 멈추고 그들의 뒤를 쫓곤 한다. 어딘가에서 면면히 목숨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미 도시는 그들의 서식지가 되지 못하고 있다. 이 곳에 있었던 동물과 식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 책은 그간 내 곁에서 큰 맘 먹고 나를 봐 주고 있는 고양이 테리와의 이야기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수줍음 많은 그를 사람들에게 소개하려 한다. 그 녀석들이 얼마나 엉뚱한 지, 또 어떻게 사랑스러운지 지금까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들에 대한 인식을 조금은 바꾸어주는 그런 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오로지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나는 녀석을 빙자해 인간들의 삶을 기웃거릴 것이며, 대놓고 들이대는 면구스러움을 모면하고자 고양이를 전면에 내걸 뿐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타인과 “다름”에 대해 불일치를 겪고 그로 인해 상처 받기 일쑤이다. 인간은 포유류에 속하면서도 같은 과의 그것들과는 완전하게 구별되고 있다. 또 우리는 가끔 우리 자신이 동물이란 점을 잊고 산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가 동물이라 불리는 것들과의 공통점은 무엇이며 우리의 다른 점은 또 무엇인가? 우리는 과연 인간으로서 정말 행복할까? 나는 이 책을 통해 인간과 동물의 구별보다는 그 차이에 대한 인식을 통해 지구에 사는 생명들과 소통하는 행복한 우리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포유류라 불리는 종에서부터 기타 여러 생명체들의 외관은 분명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들 모두 이 지구상에서 숨쉬며 살아가는 생명체들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동일할 것이다. 그것은 나도 그렇고 고양이도 그렇고 지나간 옛 연인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또 가끔 발가락을 무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조금 일찍 저승 티켓을 쥐어 보낸 모기 또한 그 대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책에는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 옛날의 신화 이야기에서 문화가 다른 지역에서 구전되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도 있다. 또 늘 나를 설레이게 만드는 외모에 관한 묘사는 아주 자세하고도 엉뚱하게 그려질 것이다. 그것을 위해 기꺼이 해부학 책을 펼칠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또한 모든 생명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본능적인 즐거움도 빠질 수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천천히 자신의 내부로 들어가 창자가 뒤집히면 어떻게 되는 지를 연구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너와 나의 차이가 무엇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넘어서 어떻게 이해와 사랑으로 갈 수 있는지 보여주려 한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이 웃게 될 것이며 그들의 그녀, 그를 더욱 사랑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녀석들을 경원했던 분이라면 어느 날 맞닥뜨린 그들에게 찡긋 윙크를 보내는 엉뚱한 사람으로 변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당신의 변모가 두렵게 느껴진다면 이 책을 읽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만약 인생의 행복 경계선을 조금 더 확장 시킬 의향이 있다면 이 책이 어쩌면 그 영역을 약간은 넓혀주게 될런지도 모른다.
IP *.215.56.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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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주
2008.03.27 18:28:21 *.105.164.44
향인님! 참 오랫만이에요.

'테리'의 이야기에 늘 귀를 쫑긋하고 있는 팬입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에도 고봉으로 동의합니다.
인간과 뭇 생명들과의 친화적인 삶, 그리고 양극화된 인류의 간격을 좁혀나가는 데에 일조하는 삶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 판단되기 때문이죠.

저는 12년 된 어미 개를 사고사로 보냈고, 그의 새끼인 15년 짜리 '멜꼬'와 9년 된 '라데니'를 현재 기르고 있어요.
하고보니 유기된 강아지나 돌아다니는 고양이들을 보면 가슴 한켠이 찡해져요. 이태 전 마을 뒷산을 내려오는데 몹씨 초췌한 유기견 한 마리가 저를 마냥 따라오는거예요. 제가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되지 않아 무정하게 지나쳐오고 말았는데 집에 와서도 고 녀석의 애절한 눈빛이 계속 아른거려 마음이 편칠 않았어요.
한데 참 기적같은 일이 생겼지 뭐예요.
다음 날 멜꼬가 탈이 나서 동물병원에 갔는데 전 날 산길에서 본 그 녀석이 치료를 받고 있는 거였어요.
수의사한테 정황을 물었더니, 동네 어느 분이 데려다 기르시려고 예방접종과 치료를 의뢰했대요. 어찌나 고맙고 흐뭇하던지요.
얘기가 한참 옆길로 새버렸군요.

애완동물과 그를 기르시는 모든 분들 아주 좋아해요.
고양이 이야기 많이많이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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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8.03.28 19:54:31 *.215.56.193
어쩜 이렇게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콕 찝어서 잘 정리해주시는지요..

"인간과 뭇 생명들과의 친화적인 삶, 그리고 양극화된 인류의 간격을 좁혀나가는 데에 일조하는 삶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 판단되기 때문이죠."

격려 고맙습니다. 덕택에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우리 테리를 이뻐해주시니 너무 고맙고 멜꼬와 라데니, 고 두 녀석들에게도 안부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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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8.03.28 20:19:43 *.209.36.204
가끔 어떤 사람들이 내 글이 너무 함축적이라고 풀어 써 달라고 할 때가 있었거든요.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지금 은남씨의 글을 읽으며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답니다.

내가 관심있는 주제에 대해서는 늘 생각해오고, 많은 글을 토해내기도 했기 때문에, 풀어서 쓰는 것이 동어반복이나 낯간지럽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요~~

내 글을 처음 읽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친절하게' 글을 써 줘야 하겠다는거죠.

위 글은 평소의 테리 이야기보다 너무 힘이 들어간 느낌이네요.
성감대, 달인, 모기... 의 표현이 조금 느닷없고,
포유류, 동물사랑, 신화... 부분은 너무 거대해서,

평소의 은남씨 글에서 보이는
편안함과 진솔함, 유머와 애틋함이 많이 빠져있다는 생각이에요.

생태적인 접근의 거대담론과
한 독신녀와 눈먼 고양이의 깊은 소통수준을
어떻게 조화시킬지 궁금하네요.

잘 써야겠다는 의식을 내려놓고,
8년간의 테리와의 사랑을 편안하게 풀어놓는 것이
훨씬 은남씨 스러운 장점을 잘 드러낼 것 같아요.

2001년 그 단락부터 시작하면서
8년 세월을 압축하고,
거기에서 좀 더 관심이 확장되는 범위를 잡으면 될 것 같아요.

ㅎㅎ 하나 더,
평소의 은남씨 글의 수준 만큼도 안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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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8.03.29 12:52:10 *.215.56.193
우선 피드백 정말 고맙다는 말씀 드립니다.

제가 봐도 참 힘이 많이 들어갔었구나 하는 생각은 드네요.
저걸 다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는..ㅎㅎ

첫 단락에서는 뭔가 시선을 끌어야겠다는 생각에 다른 글에다 쓰던 것을 붙여 놓았는데 무리하게 보일 수도 있었네요.

힘좀 빼고 다시 한번 천천히 고민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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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8.03.29 20:46:26 *.43.81.23
에고, 2기로서 겨우 수료했을 뿐, 정식 졸업도 못한 상태이라
피드백을 자제하는 편인데 무슨 맘 먹고 긴 피드백을 했나 모르겠네요.

내가 은남씨를 많이 좋아하는 모양이네요. ^^

다시 읽어보니, 끝 문장이 오해의 여지가 있을듯 싶어 해명합니다.

평소 글은 좋고,
기획안은 그 글보다 더 좋아야 할텐데,
평소 글 만큼 안 나온 것같으니
'하던 대로' 편하게 쓰자는 요지인 것을 알아주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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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8.03.29 21:20:27 *.215.56.193
무신 말씀을 하시옵니까....
제가 오해같은 거 할 사람으로 보이시옵니까..전 충분히 너무나 가심깊이 충만된 애정어린 말씀으로 잘 알아듣고 있사옵니다. 또 다시 꾸벅에 또 꾸벅..
요즘 모든 것이 고양이로 통하나보이 되는거 안되는거 전부 고양이에 끼워넣고 있는 상태이죠.컴 자판을 쳐도 이게 고양이 갸르릉으로 들리기까지 하는 상황.ㅎㅎㅎ이러니 객관적인 시각은 정말 정말 오아시스이지요. 제발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 마시고 좋은 일한다 생각하시고 복좀 베풀어 주시옵소서.한 말씀 한 말씀이 전부 피가되고 살이되는 상황이랍니다. 니체가 느끼는 사람한테 말할 일 없고 느끼지 못하는 이에게는 더더욱 말할 필요없다고 하는 바람에 고백을 자제했습니다만, 이왕 이렇게 된거 앗쌀하게 말씀드리자면 처음부터 좋아했고 저 먼저 좋아했고 뵙고서도 좋아했음을 고백하옵니다.앞으로도 쭉 좋아할겁니다. 한번 하면 제대로 진하게 확실하게..이런 성격 아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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