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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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25일 17시 10분 등록
저자: 김용규
숲 생태 전문가, 행복숲 공동체 대표, 농부

대학원까지 행정학을 통해 조직과 정책을 공부한 뒤 기업 몇 곳을 거쳐 일했고 작은 벤처기업의 대표직을 마지막으로 마흔에 기업을 떠났다. 조직을 떠나기 전 몇 해 동안 스스로 자신의 삶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진지하게 묻기 시작했고 돈벌이의 욕망에 치여 살고 있는 자신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는 답을 얻었다. 그때부터 대안을 모색하고 새로운 삶을 도모하며 준비하는데 몇 년의 시간을 보냈다.

자신을 늘 설레게 해온 숲에서 제2의 삶을 시작하겠다고 결심, 안거할 숲을 찾아 1년여 동안 강원도와 충청북도를 헤매 다녔다. 마침내 충북 괴산에 조그마한 산 하나를 마련하고 숲으로 들어가 자연과 교감하며 행복숲 공동체의 대표이자 숲 생태 안내자로써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텃밭을 가꾸고, 숲을 관찰하고, 글을 쓰며 나무를 심는 건달 농부의 삶이 그의 일상이다.
숲연구소의 숲 생태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역량개발연구소가 개최하는 자기계발 워크숍인 ‘씨앗에서 숲으로’와 ‘기업 창조성 개발 프로그램’의 자기계발 강사로 활동하고 있고,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에서 ‘자연생태포럼’을 조직하여 숲과 자연생태가 전하는 메시지를 나누는 일을 하고 있다.

행복숲 공동체를 통해 창의적이고 생태적인 삶의 확산에 기여하고, 숲의 생명들이 사는 자연스러운 방식의 가르침을 포착하여 자기계발론과 결합한 ‘대안적 인생경영론’의 개발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제목: 숲에게 길을 묻다 - 숲에게 배우는 생태적 인생경영론


길 위에 서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길을 잃은 모든 이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목차
• 추천의 글
• 프롤로그 – 숲에게 물어보았습니다

1장. 태어나다 - 선택할 수 없는 삶
• 숙명 – 숲에는 태어난 자리를 억울해 하는 생명이 없다
• 운명 – 종으로 살 것인가? 주인으로 살 것인가?
• 수용과 출발 – 벽 앞에 선 담쟁이덩굴
• 숲 풍경 – 수용(사진과 글)

2장. 자라다 – 내 모양을 만드는 삶
• 꿈 – 나무는 매일 빛으로 향한다
• 자기발견 – 뿌리깊은 나무 바람에 아니 흔들리네
• 관계 – 숲 속의 모든 식물은 세균과도 연대한다
• 경쟁 – 층층나무의 방식 대 눈주목의 방식, 돌려나기 대 마주나기
• 경계 – 경계로 가라! 경계에 길이 있다
• 상처 – 가시 돋은 사람을 만나거든
• 개척 - 바위를 뚫고 자라는 나무
• 혁명 – 질경이를 닮은 사람
• 숲 풍경 – 씨앗의 꿈(사진과 글)

3장. 나로서 살다 – 나를 실현하는 삶
• 일 – 식물의 방식으로 일할 수 없다면 참된 일이 아니다
• 소통 – 꽃에 담긴 배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유혹
• 사랑 - 연리목, 혼인목으로부터 배우는 사랑과 결혼
• 자식 - 식물이 가르치는 자녀교육법
• 휴식 – 자귀나무, 회화나무처럼 맞이하는 밤
• 저장 – 인간들이여! 숲의 축재 방식을 따르라!
• 공헌 – 그대 언제 숲을 덮는 낙엽 한 번 되어본 적 있는가
• 상생 – 홀로 숲을 이룰 수 있는 나무?
• 숲 풍경 – 간격(사진과 글)

4장. 돌아가다 – 다시 태어나는 삶
• 순환 – 죽음이 새로운 시작이라는 모순의 진실
• 예비 – 무엇을 남겨야 할까
• 정리 - 남겨 아름답지 못한 것들
• 놓음 - 썩어져라! 한 순간도 살지 않은 것처럼
• 부활 – 나 지워진 자리 어느 생명이 오시려나
• 숲 풍경 – 버섯(사진과 글)

• 에필로그 – 그대 마침내 숲을 이루십시오.



프롤로그 – 숲에게 물어보았습니다.

1.
이 숲에 봄이 오십니다.
엊그제 아랫마을 논두렁에는 산수유가 피었더니 이 숲에는 생강나무가 한창 그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둘 모두 잎을 피우지도 않은 채 노오란 꽃 송이들을 주저 없이 피웁니다. 나무는 잎을 통해 밥을 만드니 잎을 내지 않고 꽃을 피우는 일은 단식을 하며 길을 걷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들은 잎과 동시에 피거나, 잎보다 늦게 꽃을 피우는 대다수의 나무들과 사뭇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잔설이 가시지 않은 아주 이른 봄에 한 뼘도 되지 않는 키로 꽃을 피워내는 복수초나 바람꽃도 비슷합니다. 남들은 아직 겨울잠을 자는 계절에 동해(凍害)의 위험을 무릅쓰고 꽃을 피워내는 ‘길’을 걷습니다. 왜 이들은 굶주리면서도 꽃을 피우고 얼어 죽을 것을 각오하면서도 누구보다 먼저 꽃을 피우는 ‘길’을 택해서 걷고 있는 것일까요? 어딘가 닿고 싶은 곳이 있기 때문 아닐까요?

어딘가에 닿고자 하는 모든 존재는 ‘길’ 위에 서야 합니다. 그리고 걸어야 합니다.
‘길’이 필요한 이유는 지금 서있는 이곳에서 장차 서있고 싶은 저곳에 닿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서있고 싶은 곳을 품은 모든 생명은 길 위에 서게 됩니다. 욕망하는 모든 생명은 태어나면서 모두 길 위에 서게 되는 것이지요. 길은 결국 누군가의 욕망이며 희망입니다. 그리고 그가 걸은 길 모두를 우리는 그의 삶이요 역사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길은 지나간 모든 이들이 남긴 욕망의 기록에 다름 아닙니다. 그러니 인생은 어딘가 닿고 싶은 곳을 향해 길을 걷는 것입니다.


2.
길의 어딘가에 분명한 끝이 있다면, 혹은 길이 오직 하나만 존재한다면 인간은 분명 신을 죽였을 것입니다. 신에게 의탁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냥 걷기만 하면 되니까. 힘들면 쉬고, 다시 걷다 보면 닿고 싶은 곳에 닿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오만한 걸음걸이로 쿵쿵 걸어가도 욕망하는 곳에 당도할 수 있을 테니까. 갈림길에 서서 외로움과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될 테니까. 어느 길을 택해서 걸어야 할지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물어볼 이유도 없으니까.

길의 어딘가에 분명한 끝이 있고, 오직 그 길이 하나라면 어떨까요?
숲의 모든 꽃들이 같은 시기에 같은 색으로 일제히 만발한 숲을 상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그 순간 세상은 눈부시게 화려할까요? 그래요. 한 가지 색깔만으로도 화려할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다른 계절에 꽃을 보는 기쁨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할 겁니다. 같은 색깔로 계절을 나누어 핀다 해도 다양한 색끼리 섞여 아름다웠던 그 눈부신 풍경들은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찾았던 수많은 벌과 새와 나비와 나방도 점차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점점 생명은 줄고 모두의 영혼도 피폐해 질 테지요.
그러니 갈림길이 없는 땅에는 다양함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풍경도 없습니다. 그 곳은 더 이상 다양한 생명이 함께 살 수 있는 땅이 아닙니다. 그 곳은 사막입니다.
그러니 꿈꾸는 생명 앞에 수많은 갈림길이 놓여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다행인지요.


3.
소나무는 양지바른 땅을 좋아하지만 버드나무는 물이 많은 땅을 좋아합니다. 복수초는 이른 봄 잔 설 위에서 꽃을 피우지만 쑥부쟁이는 가을을 만나면서 꽃을 피우고 동백은 겨울을 나면서 꽃을 피웁니다. 대부분의 꽃들이 낮 동안 햇빛 아래에서 피어날 때 달개비(닭의장풀)는 신 새벽에 꽃을 열고 달맞이꽃은 어스름 달빛에 교교해집니다. 백일홍이 백일을 피는 꽃이라지만 무궁화는 하루를 피고 집니다. 회화나무가 깊은 뿌리를 뻗으며 자랄 때 아까시나무는 얕은 뿌리로 자라는 법을 익혔습니다. 물푸레나무가 물 없는 시간을 힘들어 할 때 사철나무는 타는 목마름을 견딜 수 있는 힘을 키웠습니다.
숲은 그렇습니다. 저마다 제 모양 아닌 것으로 피고 지고 열매 맺으며 살아가는 존재가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숲은 그대로 두어도 결코 사막이 되지 않습니다. 생명이 사는 ‘길’이 여러 갈래로 뻗어 있을 때 그곳은 더욱 풍요로워집니다.


4.
그대 재테크에 미쳐라!
그대 성공에 미쳐라!
영어에 몰입하라!
그대 강남에 사는 사람들을 따라잡아라!
그대 사는 집과 타는 차가 그대를 말하니 더 넓은 집에 살고 더 좋은 차를 가져라!

길거리에서 신문에서 텔레비전에서 눈뜨면 보게 되는 광고들의 대종입니다. 어느 것은 책에 대한 광고이고 어느 것은 이 나라의 교육정책이며 어느 것은 아파트와 차 광고입니다. 이 광고가 전달하는 내용이 은연중에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닿고 싶어하는 ‘길’의 유일한 목적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 길은 물어보라 권하지 않습니다.
그대가 어떤 뿌리를 지녔는지, 어떤 줄기와 가지의 모양으로 자라는 게 편안한지, 어떤 색깔의 꽃을 담고 있는 존재인지, 어느 계절에 만발하고 싶은지 어떤 존재와 짝을 이루어 열매를 맺으면 좋을지, 그대의 자녀에게 무엇을 전하고 무엇을 거두는 것이 제대로 된 부모일지, 그대 이 세상에 어떤 의미가 되고 싶은지 그리고 그대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 제대로 물어보고 들여다보며 가는 길이 아닙니다.
오로지 그 길의 끝에 안위와 영광과 행복이 있다고 믿게 만듭니다. 가로막는 존재를 젖히고 조금 더 빨리 전진하라 합니다. 그것이 능력이라 합니다. 그것이 효율이라 외칩니다. 산천을 둘러보고 이웃을 헤아리고 나를 돌아보며 가다가 조금 늦어지는 것은 무능력이라 합니다. 비효율이라며 면박을 줍니다.

알아차리고 걷건 알지 못하고 걷건 이 길을 걷는 것은 사막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본래의 나는 없고 세상이 입혀준 옷을 입은 나만 있는 길입니다. 곡선의 길은 부정되고 직선의 길만 유효한 길입니다. 순환(지속가능성)의 미덕은 없고 끝이 보이는 길입니다. 주변은 없고 나만 있는 길입니다. 경쟁을 해소하는 상생의 공간은 없고 경쟁만 있는 적자생존의 길입니다. 소통은 없고 단절만 있는 길입니다. 공동체는 없고 개별주의로만 가득한 길입니다. 가족이라는 자리에는 해체의 버섯이 피기 쉬운 길입니다. 마음이 흘러야 할 자리마저 물질로 대신되는 길입니다. 누군가가 이 길에 ‘발전의 길’, ‘성공의 길’ 혹은 ‘신자유주의의 길’이라는 이정표를 달아두었습니다. 그러나 이 길 위에서 생명과 영혼의 다양성은 상실되고 삶의 터전은 점점 사막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5.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씁니다.
지금이라도 다시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에 대해 물어볼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이 이 책을 쓰게 했습니다. 나지막이 솟은 숲의 옹달샘 옆에 앉아서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광풍을 봅니다. 물신주의가 만들고 있는 사막과도 같은 대로를 봅니다. 지금 그 길 위에 서서 본래의 자기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그대라는 이웃을 생각합니다. 몇 년 전 까지 나도 함께 걸었던 그 험한 길이 길의 전부가 아님을 알려주고 싶어서입니다. 새로운 길에 대한 힌트를 얻어보자고 제안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대에게 안내하고 싶은 새로운 길은 자연의 길입니다. 숲의 생명체들이 사는 방식의 길입니다. 수억 년 동안 그들이 걸으며 자신의 종을 지켰고 이 지구라는 공동체를 지켜온 길입니다.
그들의 길은 타자를 부러워하지 않고 걷는 길입니다. 오직 제 모습으로 살아가는 길입니다. 저다운 꽃을 피워 자기를 실현하면서도 다시 숲 공동체를 살찌우는 방식의 길입니다. 곡선이며 구불구불하고 언덕과 내리막이 공존하는 길이지만 크고 작은 아름다움이 가득한 길입니다. 그래서 늘 새로운 희망이 담긴 길입니다. 이 곳에서 저 곳으로 닿기 위한 길이면서도 영혼을 위한 길이요 생명 저마다의 성장을 위한 길입니다. 우주의 질서 안에 복종하는 길입니다. 모든 것이 흐르고 순환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공평함과 평형에 이르는 길입니다. 그것이 숲이 보여주는 길입니다.

이 책은 그렇게 숲이라는 위대한 유기체의 생태를 통해 ‘나고 살고 이루고 죽는 것’에 관한 지혜를 은유처럼 제시하고 싶은 책입니다. 이 책은 그 은유를 자연이 스스로를 지속하는 방식, 특히 숲 속 생명체들의 삶의 방식에서 찾고 있습니다. 나무와 들풀, 새와 곤충, 해와 달, 바람과 물 등 숲에 거(居)하고 거(去)하는 존재들이 보여주는 ‘나고 살고 이루고 죽는 것’의 지혜를 엿보려는 책입니다. 따라서 이 책은 나무와 들풀이 중심을 이루고 다른 존재들이 어울려 사는 숲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또한 이 시대를 사는 우리 자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삶과 숲 생명체의 삶에 대한 유비의 이야기 입니다.
그러니 이 책은 숲에게 길을 묻고 있는 책입니다. 숲을 통해 엿본 삶과 죽음의 지혜를 훔쳐 우리 인간의 지혜로 삼자고 제안하는 책입니다. 자기경영의 전략으로 삼아보자고 권하는 책입니다.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구성했습니다.
책의 1장에서는 생명으로 태어난다는 것에 대해 살핍니다. 나무와 들풀들이 보여주는 탄생의 모습과 처지를 통해 우리가 생명체로 태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깊은 우주의 뜻을 담고 있는 것인지 전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 우주의 뜻을 온전히 수용하는 데서 자기다운 삶이 시작된다는 것을 비교적 길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특히나 모질고 척박한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힘겨워하는 독자들에게 용기를 나누고 싶어서입니다. 불만스러운 자기 삶의 환경을 수용하고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2장은 나무와 들풀, 인간의 성장을 다룹니다. 성장기의 나무에게 빛이 가장 중요하다면 인간에게는 꿈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 성장과정에서 겪게 되는 혼돈과 방황, 경쟁과 상처, 변화와 개척 등의 문제에 대한 숲의 지혜를 살펴보는 장들로 구성했습니다. 자연주의 자기성장론 쯤으로 별칭을 달아도 좋을 것입니다.
3장에서는 성장을 넘어 자기를 실현하는 문제에 대한 숲의 가르침을 살펴봅니다. 일과 소통에 대해 숲은 어떤 은유를 보여주는지 살핍니다. 또한 사랑하고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대하는 숲 속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안내합니다. 식물들이 재산을 형성하는 방식, 쉬는 방식, 그리고 그들 공동체와 더불어 살기 위해 기울이는 상생과 공헌의 노력을 엿볼 것입니다.
4장에서는 죽음과 관계된 주제들을 읽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는 가르침을 들음으로써 우리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고 떠나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숲 속 생명체들의 은유를 제대로 전달한다면 그대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욕심 속에 살고 있는지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6.
숲이 보여주는 길을 걷게 된다면 그대는 아마 편안해 질 것입니다. 순간순간 흔들리다가도 이내 평온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대 삶이 최소 두어 뼘쯤 더 행복해 질 것입니다. 숲이 보여주는 삶의 길을 알아차리게 된다면 그대는 온전히 그대의 삶을 수용하게 될 것입니다. 그대라는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스스로 묻고 깨닫게 될 것입니다. 지친 마음을 다독이고 그대의 근원을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대가 삶의 여정에서 얻은 무수한 상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그것을 모두 품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이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롭게 인생을 경영해 보려 할 것입니다.
마음을 열고 숲의 가르침에 귀 기울인다면 그대는 그대답게 성장할 것입니다. 그대가 누구인지, 그대가 발 딛고 서있는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생각할 것입니다. 그대에게 주어진 시간의 의미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가 자랄 수 있는 이번 삶에서의 크기도 가늠하게 될 것입니다. 그대 삶의 모양이 어떤 모양이어야 할지도 알아차리게 될 것입니다. 그대 아닌 삶을 내려놓고 그대다운 삶을 향하려 할 것입니다.
그대에게로 나있는 숲의 오솔길들을 조용조용 걸어서 숲의 한 복판까지 오십시오. 그럴 수만 있다면 그대는 숲이 들려주는 마지막 속삭임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숲의 생명들이 삶을 다하고 떠나는 모습을 통해 그대 이 세상을 어떻게 살고 어떻게 떠나야 할지 스스로 묻게 될 것입니다. 마침내 그 답을 얻고 숲의 일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숲을 이루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대를 보고 싶습니다. 사막의 갈증을 씻어줄 옹달샘이 있는 이 숲에서 그대를 만나고 싶습니다.
짐승들의 오솔길과 나무와 들풀이 하늘에 닿으려는 길로 가득한 이 숲으로 오십시오. 세상이 그대에게 입혀놓은 모든 옷일랑 벗어놓고 오십시오. 부디 걸어서 오십시오. 가능하면 맨발로 오시면 좋겠습니다. 그리하면 그대는 숲이 보여주는 수많은 은유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를 통해 삶에 대한 가르침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대라는 생명과 그대 이웃 생명들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인간 본래의 모습으로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나는 조금 먼저 숲에 들었습니다. 조금씩 숲이 드러내는 길을 걸어보고 있는 서툰 숲 안내자로 살고 있습니다. 삶에 대한 새로운 길 안내자로 살고 있습니다. 그대 오신다면 꽃 향기 그윽한 이 길을 함께 걷고 싶습니다.


7.
기존 식물학자들의 방식이 아닌 그저 숲과 소통하는 사람의 눈으로 숲의 생활사와 인간의 생활상을 유비하여 새롭게 본다는 것이 큰 욕심임을 잘 압니다. 그래서 이 책은 한계를 안고 있는 책입니다.
먼저 책의 곳곳에 등장시키는 생명체들에 대해서는 사실에 근거하려 최대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엄밀한 과학적 잣대를 통과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특히 과학의 환원주의적인 지적 전통으로 바라보면 불편을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숲은 기계가 아닙니다. 결코 잘게 쪼개어 환원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내 믿음입니다. 이는 뇌 과학이 결코 생명의 영혼을 설명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다만 이미 확인된 사실을 잘못 기록한 부분이 있다면 가르침을 기다리겠습니다. 나는 그저 숲의 은유적 언어를 인문적으로 읽고자 했습니다. 내가 숲에서 듣고 느낀 바에 충실하고자 했음을 밝혀둡니다.

이 책은 빚지고 있는 책입니다. 빚을 내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종이를 내어준 나무에게 이 숲에 더 많은 나무를 심는 것으로 사죄하고 감사합니다. 아내와 딸은 사막이 아닌 생명의 길을 선택한 뒤 우리에게 다가온 내핍과 동거하고 있습니다. 노부모님께도 걱정을 끼치고 있습니다. 가고 싶은 길, 생명의 길을 가는 것이 끝내 행복한 길임을 증명하는 것으로 두고두고 고마움을 전하겠습니다. 변화경영연구소의 구본형 선생님은 제가 혼돈의 갈림길에 서서 외로움과 두려움에 떨 때마다 스스로 먼저 한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시는 모습으로, 마치 숲처럼 길을 일러주고 계십니다. 자연의 섭리를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철마다 함께 해주시는 초아 서대원선생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숲의 동지로 묵묵히 같은 길을 걸어주는 여해 선생의 지지가 없었다면 이 책은 완성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귀한 사진 흔쾌히 내어준 한국일보의 최흥수 사진기자는 나눔을 실천하는 고마운 벗입니다. 역량개발연구소의 최학수 정은실 대표가 없었다면 숲으로 떠나는 일이 더 늦어졌을 것입니다. 숲연구소의 남효창박사와 많은 선생님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숲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일이 크게 더뎠을 것입니다.

끝으로 내 삶의 가장 위대한 스승 숲에게 두 손 모아 감사합니다.



꼭지 1.
숙명 – 숲에는 태어난 자리를 억울해 하는 생명이 없다

모든 생명체의 삶은 숙명적으로 시작된다.
생명체에게 부여된 숙명은 태어나는 장소와 시간이다.
누군가는 비옥한 시대, 기름진 자리를 부여 받고
다른 누군가는 가뭄의 시대, 척박한 자리를 받고 태어난다.
그대 혹시 태어난 시대와 자리가 억울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여기 그 질문에 대한 숲의 대답을 들어보자.



탄생의 불가역성(不可逆性)

지구라는 별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존재합니다.
이 생명체들 중 많은 생명체는 무엇인가에 대해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삶은 아침에 일어나는 것으로부터 잠드는 것까지 매 순간이 선택의 연속입니다. 나무는 빛의 방향을 찾아 자신의 잎과 가지를 키우는 것을 선택하고 동물들은 자신이 먹이를 찾아, 혹은 쉴 곳을 찾아 움직일 방향을 선택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삶을 선택과 그 결과의 집합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모든 지구상의 생명체가 선택할 수 없는 단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잠시 생각해 보세요. 인간도, 짐승도, 나무도, 들풀도 모두 선택할 수 없는 것이 딱 한 가지 존재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강연이나 숲을 안내하는 자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내게 여러 가지 답을 합니다. 그 중에서 가끔 ‘죽음’을 그 답으로 제시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질게 마음 먹은 사람들의 자살 소식을 가끔씩 접하기도 합니다. 물론 죽음을 선택하는 예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이것을 한정적으로 옳다고 인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 하나의 예외도 허용되지 않는 정답은 오히려 죽음의 반대편에 있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것은 ‘태어나는 것’, 즉 ‘탄생’입니다.
태어나고 싶다고 태어날 수 있는 생명체가 있을까요? 없습니다.
또 자신이 나고 싶은 자리에서 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가진 생명체가 있을까요? 절대 없습니다. 나는 이것을 모든 생명체에게 부여된 ‘탄생의 불가역성(不可逆性)’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형성하게 되는 바꿀 수 없는 관계들을 포함하여 ‘숙명(宿命)’이라고 정의합니다.

삶을 읽는 Keyword 하나, 숙명

어느 곳이건 숲은 숙명의 증거들로 지천입니다. 숲에 서서 나무들의 삶을 들여다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머무는 이 숲에는 50년쯤 자란 버드나무가 살고 있습니다. 빛을 향해 튼실한 줄기를 키우고 부드러운 가지를 내며 키워온 수형(樹形)의 자태가 어느 인공의 조경수보다도 아름다운 나무입니다. 알다시피 버드나무는 물을 좋아합니다. 나무 옆에는 작고 예쁜 옹달샘이 하나 있는데, 이 버드나무는 아마도 그래서 이 곳에서 발아했을 것입니다. 옹달샘이 생성하는 풍부한 수분이 우연히 날아온 버드나무 씨앗의 발아를 도왔을 것이고 그 씨앗은 지금까지 그의 삶을 키웠을 것입니다. 저 작은 옹달샘의 도움과 함께 이만큼 컸을 것입니다.



나무는 온전히 서있는 채로 태어난 자리의 환경 및 주변과의 관계를 극복해야 하는 생명체입니다. 아마 이 버드나무는 자기를 타고 오르는 칡덩굴 잎보다 더 높이 자기 잎을 키워내야 할 것입니다. 하늘을 열지 못하면 안타깝게도 그는 머지않아 죽음을 맞을 것입니다. 그는 지금 햇빛의 차단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야만 삶을 계속할 수 있는 위기의 시절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가 스스로를 지켜내 삶을 지속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그를 ‘힘찬 버들’이라 부릅니다.

한편 이 숲 정상부분에는 아주 특별한 수형을 가진 소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그는 여느 소나무처럼 곧게 자라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가지를 좌우로 거의 180°를 꺾고 다시 전방으로 90°를 꺾어내며 자라고 있는 모습입니다. 대략 20여 년쯤 자란 것으로 추정하는 이 나무는 제 어미 나무 아래에서 발아했습니다.
이곳 숲의 정상부는 빛의 조건이 좋은 곳입니다. 거의 온종일 햇살을 받을 수 있지요. 따라서 유년 시절의 이 소나무가 자라는 데는 빛과 관련하여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점점 키를 키우면서 어미 나무의 가지가 드리우는 그림자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소나무는 음지를 견디는 성질(내음성, 耐陰性)이 약한 양수(陽樹)에 속합니다. 주목이나 서어나무 같은 음수성(陰樹性) 나무에 비해 빛이 부족한 환경을 견디는 능력이 떨어지는 편이지요. 그러니 어미 나무의 그림자는 이 어린 나무가 자라면 자랄수록 생장에 큰 제약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이 나무의 수형이 그토록 특별한 것은 빛을 찾아 이리저리 자신의 줄기를 꺾으며 삶을 계속한 고난과 투쟁의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뒤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식물 대부분은 자신의 종자를 자기로부터 멀리 보내기 위해 깊은 공을 들입니다. 어미 아래에서 발아해 양분과 빛을 놓고 어미와 다투며 살아야 하는 몹쓸 관계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어미 밑에서 발아한 이 나무도 얼마나 가혹한 숙명을 안고 태어난 것인가요!



식물들에게 숙명은 그런 것입니다. 성숙한 씨앗이 어머니로부터 자신을 분리하여 옮겨주는 매개체를 만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숙명은 예비되는 것이지요. 바람, 물, 혹은 동물 등의 움직임에 몸을 싣고 떠나 우연한 장소에 떨어졌을 때, 발아할 수 있는 물리적 조건을 만나면서 그의 숙명이 시작됩니다. 이 때부터 씨앗은 발아를 통해 나무의 삶을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도 그것은 숙명입니다. 인간 또한 나무처럼 부모의 몸을 빌어 어느 시간대에 태어나 그 곳에서부터 자신의 삶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 환경이 비옥하든 척박하든 태어난 자리에서 그의 삶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힘겨운 자리에 태어난 억울함이 있다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생명체는 누구도 태어나는 시간과 장소(혹은 여건)에 대해 선택할 권리를 부여 받지 못하는 법이니까요. 이것이야말로 세상을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게 하는 조물주의 근본적 장치입니다. 이것이 조물주가 모든 생명 있는 존재들에게 부여한 ‘본래(宿)의 명(命)’, 즉 숙명(宿命)입니다.

혹시 살면서 그대도 태어난 자리가 억울하다 생각한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탄생의 불가역성이 가혹하다 생각한 적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퍽 오랫동안 그런 분노를 안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숲의 생명체들이 걷는 길을 보면서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숲 속의 식물들이 각자 씨앗이 떨어진 자리에서 제 삶을 살아내는 모습을 수도 없이 보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숲은 그 생명체들이 숙명을 대하며 사는 방식을 내게 보여주면서 오랫동안 내 가슴을 차지했던 억울한 마음을 씻어주었습니다.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삶을 대할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아직 이 마음에 공감하지 못하는 그대라면 억울한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조금 더 숲의 가르침에 귀 기울여 보면 좋겠습니다. 숙명이 지천인 숲이라지만 생명 각자는 발아한 그 자리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들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나는 아직 숲에서 주어진 자리가 억울하다고 분노하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를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꼭지 2.
사랑 – 연리목, 혼인목으로부터 배우는 사랑과 결혼

나무들은 말한다. 사랑은 인연을 수용하는 것이라고.
그와 나의 만남을 우주의 섭리로 받아들이고,
나도 그도 제 각각 욕망의 덩어리임을 인정하며
불편한 공간을 극복해 가는 것이라고.


프레데릭 베그베데는 자신의 자전적 소설 ≪3년: 사랑의 유효기간, L'Amour dure trois ans≫에서 이성간에는 사랑의 유효기간이 3년을 넘지 않는다고 문제를 제기한 바 있습니다. 최근에는 뇌 과학적 접근을 통해 사랑의 유효기간이 실로 3년을 넘지 않는다는 연구와 주장도 펼쳐지고 있습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뇌에서 분비되는 도파민이라는 천연 마약 성분인데, 이 성분의 약효가 3년을 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3년쯤 지나면 가슴 뛰는 설렘은 사라지고 사랑도 곧 시들해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오늘날 우리 곁에 이별이 많다는 증거는 이미 충분한 것 같습니다. 2002년에는 전체 기혼 부부 중 그 해 결혼한 쌍의 절반에 가까운 숫자가 이혼을 했다는 통계 발표가 있었습니다. 비교적 엄밀한 통계에 따르면 2004년 1월 현재 결혼한 부부 열한 쌍 중 한 쌍이 이혼을 했습니다. 열 집의 가정 중 한 가정은 이별한다는 이야기인 셈입니다.

나무들은 어떨까요? 그들도 이별을 할까요?
숲에 사는 나무들은 옮겨 다닐 수가 없는 처지이니 별다른 사건이 없는 한 옆자리에 함께 자라는 나무와 평생을 살아야 합니다. 문제는 한 공간을 나누며 살아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빛이 쏟아지는 하늘을 나누고, 양분을 흡수할 땅의 공간을 나누고 서로의 가지와 가지가 만나는 수직의 공간도 나눠야 합니다. 그래서 이동할 수 없는 존재인 나무가 옆자리의 나무들과 다차원 공간을 나누며 해로하는 방법을 살펴보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대부분의 나무는 그 가지를 옆으로 벌리고 서서 햇빛을 쐬는 모양으로 살아갑니다. 아마 광합성을 하기에 가장 효율적인 공간 활용의 방법을 긴 시간 동안 터득해온 결과일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옆 나무의 가지를 가리기도 하고 옆 나무의 가지와 직접 부딪히기도 합니다. 특히 좁은 공간을 나눠 써야 하는 나무들은 그 처지가 더욱 곤궁할 수밖에 없겠지요.
오랜 징역살이를 하신 신영복 선생은 좁은 감방 안에서 동료 죄수와 살을 맞대고 보내는 여름에는 사람의 체온을 혐오하게 되는 일이 있다고 고백하신 바 있습니다. 감옥에서는 차라리 추운 겨울이 더 낫다고 하셨습니다. 서로의 체온으로 몸을 녹이며 잠드는 밤이 체온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는 살풍경을 겪는 것보다는 차라리 인간적이더라는 이야기입니다.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도 그러한데 평생 선 채로 부딪히며 사는 나무들은 얼마나 힘겨울까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숲에는 그 한계를 놀라운 관계로 승화하여 마치 우리 사람들을 꾸짖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나무들의 사랑법이 있습니다.
우선 연리목이라고 부르는 나무들의 사랑법을 볼까요? 연리목은 나무와 나무가 맞닿아 더 이상 비켜 설 곳이 없을 때 서로의 장벽인 껍질을 벗고 두 그루의 나무가 한 그루로 합일하여 살아가는 나무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단순히 붙어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나무 껍질을 벗고 세포와 세포를 합치고 새로운 껍질을 만들어 마치 하나의 나무처럼 살아갑니다. 세분하여 가지와 가지가 합일한 나무를 연리지(連理枝), 줄기와 줄기가 합일을 이룬 나무를 연리목(連理木)이라고 부릅니다.
연리목을 이루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연리지가 되는 것은 연리목에 비해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왜 그럴까요?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가지와 가지가 맞닿아 사랑을 이루려 할 때 거센 바람이 부는 날이 어찌 없겠습니까? 줄기에 비해 가지는 가늘고 가벼우니 속절없이 흔들릴 수 밖에 없는데도 그 야속한 바람을 넘어서서 끝내 합일을 이루어낸 것이 연리지입니다.



사랑을 완성한 이들은 이제 한쪽 나무의 아래가 잘려나가도 다른 쪽 나무가 공급하는 영양분으로 삶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얼마나 깊고 깊은 사랑인가요?
나는 연리목을 볼 때마다 아 이들이 생명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고결한 사랑을 하는 것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연리목은 우리에게 고결한 사랑은 자신들처럼 하나로 합치는 것이라 말하고 있는 듯 합니다. 합일을 통해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라 말합니다. 둘을 합쳐 하나의 새로운 삶을 살아내는 것. 그것이야 말로 사랑의 정수라 말하는 듯합니다.
이렇듯 사랑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때로 서로의 거죽을 벗어야 하는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벗겨진 자리에 생기는 서로의 상처를 기꺼이 감싸 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심지어 세포와 세포까지도 하나로 결합해 내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나의 살을 내어주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경지입니다. 우리가 연리목처럼 옆 사람을 참으로 사랑하고자 한다면 나의 몸과 마음을 열고 세포의 칸막이까지도 열 수 있어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그대 오래된 숲을 거닐어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걷다가 울창한 나뭇가지들로 뒤덮인 하늘로 고개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주의 깊게 나뭇가지의 배열을 살펴본 적이 있으신지요? 그런 경험이 있으시다면 그대는 숲이 전하는 또 다른 사랑법의 힌트를 읽으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숲에 존재하는 수많은 혼인목들로부터 그들이 가꾸고 이루어가는 예쁜 사랑을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혼인목이란 같거나 서로 다른 종류의 나무 두 그루가 서로 자라면서 서로에게로 뻗는 가지를 떨구기도 하고, 필요할 때는 뻗어나가기도 하면서 마치 한 그루의 나무처럼 조화를 찾아 살아가는 한 쌍의 나무를 말합니다. 연리목이 제 살을 내어주며 하나로 합일하는 사랑이라면, 혼인목은 서로의 가지를 떨구어 서로의 공간을 열어주는 사랑입니다. 혼인목의 사랑은 옆의 나무로 향하는 날 선 가지를 떨구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360도를 돌려가며 뻗는 나뭇가지 중에 그에게로 향한 모든 가지를 하나, 둘 떨구는 것으로 나 그에게 그늘이 되려 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그가 허용한 공간으로만 나의 가지를 뻗으며 마치 둘이 하나인 것처럼 나무의 모양을 완성하는 사랑입니다. 그것은 서로를 위해 각자의 욕망을 덜어내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혼인목의 사랑은 아름답습니다. 혼인목이 말하듯 사랑은 인연을 수용하는 것입니다. 그와 나의 만남을 우주의 섭리로 받아들이고, 나도 그도 제 각각 욕망의 덩어리임을 인정하며 불편한 공간을 극복해 가는 것입니다. 자라면서부터 획득한 가지의 일부를 떨궈내는 것입니다. 그녀 또는 그에게 그늘이 될 수 있는 나의 가지를 거두는 것입니다. 상대를 누르려는 내 가지의 영양분을 차단하고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하려는 성찰과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서로에게로 향하는 날카로운 주장을 거두고 평화의 공간을 쌓아가는 것입니다. 그 곳으로 바람과 새와 나비가 날 수 있도록 공간을 여는 것입니다. 마침내 두 그루의 나무가 한 그루의 수형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따로이면서 함께 자라는 꿈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오랜 시간 서로를 바라보는 과정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사랑입니다. 순간순간 불편함을 겪으며 긴 시간 함께 하지 않고는 이룰 수 없는 경지입니다.

숲에서 사랑을 생각할 때면 연리목과 혼인목이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 듯 합니다.
‘그를 향해 늘 새롭게 단장한 예쁜 모습을 보여주는 것 보다 더 소중한 것. 그녀를 위해 더 비싼 보석을 선물하는 것 보다 진정 중요한 것은 오랜 시간 한 공간에 머물며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닐지? 내가 뻗는 가지가 그에게 그늘을 만들지 않나 살피고 배려하는 것이 아닐지……?
부끄럽게도 나는 아직 이들처럼 사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IP *.116.4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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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놈
2008.03.25 17:54:00 *.116.42.67
안녕하세요? 김용규입니다.
연구원들의 잔치에 말석을 빌어서라도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쓰고싶었고 써야하니까요. 허락해주신 선생님과 연구원들께 감사드립니다.

책을써야 하는 이유나 제목 설명에 관해서는 따로 면을 할애하지 않았습니다. Preface에 모두 담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연구원 여러분의 애정을 담은 조언, 고대합니다.
거듭 감사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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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25 20:00:56 *.36.210.80
더 좋아졌군요. 상큼한 새소리와 꽃내음을 맡는 기분을 끝까지 유지하면 좋을 것 같군요. 훌륭해요.

목차가 좋고 주제도 돋보여서 관심 고조.

프롤로그가 약간만 더 정리되었으면 하는 기분이 들어요. 워낙에 출중하니까 가능할 것 같아서.

꼭지글도 매우 설득력있는데 자칫 설교가 되지 않도록 담담하게 펼쳤으면 좋겠어요.

여러 곳에서 출판하자고 제의 할 것 같은데요. 대박 예감! W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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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8.03.26 11:59:16 *.253.249.10
"마음을 비우고 글 여행을 떠난 모습"
그대의 글을 읽으면 너무 아름다움의 마지막 모습까지 만들어 낸다. 숲은 숲처럼, 돌을 돌이라 하였으면
그리고 향기를 더욱 없애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글속에서 보았으면 한다.
춘란은 향기가 없어도 그 자태속에서 모든이는 향기를 얻는다.

그대는 너무 훌륭한 글쟁이, 그리고 써야할 콘텐츠는 이미 정해졌고 미쳐서 미쳐서 직장도, 집도, 서울도 버린 그대의 모습이 글속에서 보인다.

정직한 이야기는 나무연구가와 학자가 할 터이니 이제 그대는 공상의 나래를 펴고 거짓말의 세계로 나아가야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될 것인데... 허 ㅎ ㅎ

"拘係之 乃從유之王用亨于西山"
< 처음에는 황야에 홀로 있으나, 뒤에는 많은 사람을 버리지 못해 서산에 오를 것이다.>

백오선생!
힘들드라도 의지를 잃지 마시게, 힘들어야 명작이 탄생하는 법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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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주
2008.03.27 17:44:15 *.105.164.44
백오님, 오랫만입니다.

가열한 '실용'에 멀미가 나는 이즈음, 백오님의 글은, 이 시대가 정신없이 치닫고 있는 성장과 속도에의 거침없는 질주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과 반성의 여유를 갖게하는 이정표라 여겨져 무척 고무적이고 반갑습니다.

생태에 대한 식견이나 체험이 일천한 저로선,백오님의 완벽한 기획안을 그저 받아들이고 따르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것의 전부라 여겨집니다.

굳이 한 말씀 드리자면, 초아 선생님의 말씀처럼 문체가 너무 부드럽고 아름답지않나 하는 느낌이 듭니다.
식물이 내포하고 있는 물성 자체가 유연하고 섬세한 여성성일진대, 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조금 견고하고 남성적인 표현이어도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생래적으로 저는, 자연 그대로의 모든 대상들을 아끼고 귀히 여기는 마음으로 살아왔고 또 살아갈 것입니다.
하기에 선구자적인 도반을 만나게 된 기쁨이 유별 큽니다.
좋은 성과있으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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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8.03.27 18:05:15 *.145.231.77
장절만으로도 글의 깊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아마도 요한님의 책보다 더 많은 독자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건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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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산
2008.03.27 19:33:22 *.221.152.177
백오. 지난 번 워크샵 이후 조용하다 싶더니 세상을 향한 소리를 가다듬고 있었군요. 좋습니다. 사진을 곁들이니 한결 감각에 호소하는 바가 큽니다. 간결해지고 힘을 뺀 글이 지난 번 보다 더 잘 읽힙니다.

숲에서 글을 쓸 수 없는 여건이 안타까웠는데, 주변이 어찌되었든 백오의 글은 천상 백오를 닮았어요. 자기다움대로 밀고 나가세요. 지금처럼. 벗으로서 그리고 파트너로서 응원합니다.

그리고 여주와 저도 함께 책 쓰기에 진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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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08.03.28 20:27:43 *.209.36.204
일시적인 유행과, 베스트셀러를 울거먹는 실용서의 범람 속에 정신이 번쩍 나는 청량한 책이 될 것 같군요.
용규님의 철학과 차원을 알아보는 출판인이 있어,
남들이 가지않는 길을 택한 발걸음에 조용한 박수갈채가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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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놈
2008.03.28 21:20:21 *.129.13.2
써니연구원님_고맙습니다. 어설픈 설교를 경계하도록 애쓰겠습니다^^
초아선생님_의지를 잃지 않겠습니다. 덜어내는 과정으로 삼으며 숲의 언어를 찾도록 애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희주선생님_부족한 글에 용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선생님의 댓글이야말로 담백하고 깊게 느껴집니다. 조만간 자연생태포럼에서 뵙겠습니다.^^
자로연구원님_먼저 산고를 겪고 출산하신 선배님이 용기를 주시니 큰 힘이 됩니다. 늘 성실하신 모습을 따라하며 노력하겠습니다. 2번째 책 서문과 목차가 명료하고 리얼해서 참 좋았습니다.
교산님_응원 고맙습니다. 자기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삼고 노력하겠습니다. 여주와 교산의 책에 큰 성과 있으시길 기원하겠습니다.
한명석연구원님_축원 감사합니다. 한명석님이야말로 독자를 사로잡는 훌륭한 책을 내실 분임을 알고 있습니다. 저도 깊이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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