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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27일 14시 05분 등록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에는 임진왜란이라는 격변의 시대를 온몸으로 부딪혀야 했던 충무공 이순신의 내적 심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온 사방이 적으로 둘러 싸인 고립무원의 처지가 충무공이 처한 현실이었다. 왜적뿐만 아니라 조선 조정도 그의 적이나 마찬가지였다. 무능한 조선 조정은 탁상 공론으로 결정된 오합지책들을 무지한 임금과 옥새의 권위를 빌어 전방에 내려보냈다. 

"압록강가의 피난 정권은 바다의 현실에 전적으로 무지했다. 임금은 어린아이처럼 보챘다. 꾸물거리지 말고 속히 함대를 몰고 나가 적을 격파하라는 교서가 연일 남쪽 바다로 내려왔다. 조정에 종이가 떨어졌으니 종이를 구해 보내라는 명령도 내려왔다. 바다에서 싸우는 해군이 어떻게 종이를 만들거나 구할 수가 있었을까. 이순신은 종이를 조정으로 보냈다 " - 김훈 , <칼의 노래> 中

충무공의 위대함은 임금과 조정의 권위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는 더 큰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승리가 아닌 모두의 승리를 위해, 충무공은 교지에 복종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일시적 안위를 추구하지 않았다. 그는 함부로 함대를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이 옳았기 때문이었다. 충무공에게 소통의 노력이 부재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끊임없이 조정에 장계를 올려서 현실을 토로하고 지원을 요청했지만, 피눈물이 담긴 요청내용에 대한 교감은 커녕 출전을 독촉하거나 종이나 식량을 구해 올려 보내라는 일방적인 하달만이 내려왔다. 현실은 열악했으나, 미래는 더 암담했다. 단지 못 몇 개가 없어서 함선의 수리를 하지 못하는 상황은 현실이었고, 몇 척 안되는 함대를 당장 움직여 수백척의 왜군 함대를 무찌르라는 아군의 압박은 힘겨운 미래였다.

수백년전의 역사가 여전히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이유는 아직도 도처에서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의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 하는 상부의 지시에 실무자들은 분노하고 좌절한다. '이전에 내가 다 해 봐서 알아'라는 전직 대통령의 전지전능함을 닮아가려는 경영진과 관리자, 그리고 실무자들 사이의 괴리만큼 프로젝트의 실패확률과 회사의 몰락가능성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똑같은 폐단이 반복되는 이유는 대체로 두 가지 중 하나다. 가장 흔한 이유는 자신(경영자와 관리자)들은 큰 그림을 보고 있으며, 실무 현장은 큰 그림속의 일부이므로 세부적인 것은 몰라도 된다는 근거없는 자만심이다. 또다른 이유는 실무 현장의 중요성을 알고 있지만 제대로 현장을 이해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실무 현장을 잘 알고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높은 자리에 올라 멀리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을지 모르겠지만, 바로 발 밑의 것들을 보지 못 하는 어리석음은 흔하다. 원래 인간은 자기 자신의 맥락 밖의 것들은 기본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특히 과거 성공을 경험했거나, 경험이 많은 이들은 고착화된 자신만의 맥락에 집착하게 된다. 그들은 그것을 신념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한다. 

교세라그룹의 창업자인 이나모리 가즈오는 혼다소이치로,마쓰시다 고노스케와 더불어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이다. 그는 확고한 자신만의 경영철학을 기반으로 교세라그룹을 일으켰고, 몰락해가던 일본항공(JAL)을 되살려냈다. 그의 경영철학은 요즘말로 하면 쌍팔년도 스타일이다.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주를 받아버리고, 연구원들을 몰아붙여서 99%의 절대다수가 비관했던 프로젝트를 성공시킨다. 그는 프로젝트의 성공가능성을 점치는 기획단계에서 똑똑하고 영리한 사람들을 배제시킨다. 대신 조금 덜 똑똑하더라도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직원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그는 영리한 사람들은 많은 것들을 따지기 때문에 가능성이 희박한 프로젝트를 시작하는데 똑똑한 사람들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위해 그가 필요로 하는 이들은 99가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 대신 단 1가지의 성공할 수 있는 이유를 대는 사람들이다. 대신 프로젝트 킥오프 이후, 본격적으로 일이 시작되면 영리한 직원들로 프로젝트 인력을 재배치한다. 이른바 이나모리 가즈오의 '영리한 사람론'이다. 프로젝트를 시작할때는 낙관적으로 시작하고, 실제 실행단계에서는 비관적이고 꼼꼼한 인력들로 하여금 실제 업무를 수행하게하고, 일이 마무리되면 다시 낙관적으로 결과를 기다리는 식이다. 

얼핏 보면 하면 된다는 식으로 말도 안되는 프로젝트들을 밀어붙이는 일단의 경영자들과 다를바 없어보인다. 하지만 그들과 이나모리 가즈오에게는 중요한 한가지 차이가 있다. 그것은 현장에 대한 이해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일본최초로 파인세라믹을 개발한 연구원 출신으로 현장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한가지 더 중요한 사실은 그 이해가 과거의 무용담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다. 거대 그룹의 회장임에도 연구개발현장에서 가끔 실무를 직접 해보기도 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오직 과거의 실무 경험만을 기반으로 현재와 미래를 판단하는 것은 오판의 가능성이 있다. 어리석은 경영자와 괸리자들은 그 오판의 가능성을 현저히 낮게 간주한다. 현명한 경영자와 관리자들은 자신들이 오판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항상 이를 보완할 대책을 마련하려고 한다. 진정으로 훌륭한 경영자와 관리자들은  현장으로 달려가 과거의 죽은 경험을 살아 있는 현재로 바꿈으로써 미래를 창출하고자 노력한다. 현장을 완벽하게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하면 된다'는 환상일뿐이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쌍팔년도 스타일이다. 욕먹어도 싸다. '하면 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오직 현장 속에 있다. 현장을 기반으로 '하면 될까'를 '하면 된다'로 바꾸는 것 - 그것이 프로젝트를 환상의 낭떠러지에서 구할수 있는 유일한 방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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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9 23:51:06 *.148.27.35
이나모리 가즈오, 멋진 형님이죠. 현장이 답입니다. (글씨 좀 키워주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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