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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17일 12시 00분 등록
스승

석가모니가 죽기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다음과 같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아라"

죽기 전에 이 말을 남긴 석가모니조차도 구도의 길 초기에는 스승을 찾아 헤멨다. 그는 알라리 칼라마, 웃다카 라마풋다라는 두 명의 큰 스승을 섬겼다. 하지만 궁극의 경지를 위해 그는 결국 두 스승을 떠나게 되고, 마침내 보리수 아래에서 정각을 이룬다.  만약 석가모니가 두명의 큰 스승을 만나지 못하고 처음부터 혼자 고행을 했다면, 과연 정각에 이를수 있었을까? 스승의 역할은 크다. 영웅의 여정에 조력자가 없다면, 여정은 지속되기 어려운 법이다. 또한 스승은 큰 스승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작은 스승도 있고, 못된 스승도 있다. 친구도 스승이 되고, 길에서 만난 자원봉사자도 스승이 될 수 있다. 석가모니는 세명이서 길을 걸으면 분명 그중에 자신의 스승이 있다고 말했다. 외부의 모든 존재는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최후의 스승은 내부에 존재한다. 

헤르만헤세의 소설 <싯다르타>에서 주인공의 이름은 싯다르타다. 헤세는 묘사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석가모니의 복제판과도 같다. 소설의 주인공은 역사속의 석가모니가 아니지만, 곧 석가모니 그 자체이기도 하다. 주인공 싯다르타는 깨달음을 찾아 이곳저곳을 헤메고 다니며, 많은 외적, 내적 사건을 겪는다. 고타마(석가모니)를 맞아 주인공의 친구 고빈다는 고타마를 스승으로 삼고 주인공을 떠나지만, 주인공 싯다르타는 고타마에게 결국 귀속되지 않는다.  고타마를 떠나며 싯다르타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어떤 가르침, 더 나은 가르침을 찾기 위하여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다른 가르침, 더 나은 가르침이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외면은 내면과 일대일로 대응될 수 없다. 이것은 간디가 말한대로 세속적인 의미에서는 불완전한 스승은 용납될 수 있지만, 진리의 세계에서는 불완전한 스승은 용납될 수 없다는 것과 괘를 같이 한다. 완전한 스승은 결국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것이다. 고 법정스님 또한 외부세계에는 완전한 스승은 없다고 말했다.  법정스님이 <산에는 꽃이 피네>라는 책에서 말하길 사람들이 매번 찾아와서 좋은 말씀을 해달라고 조른다고 했다.  좋은 말씀만을 쫓는 그들이 사실 그동안 들었던 이야기만으로도 그들 모두 부처가 되고도 남았어야 한다며 스님은 탄식한다.

좋은 스승은 등불이 되지만, 스승의 행로를 그대로 따르도록 내버려둘만큼 우리네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우리앞에 놓여진 모든 각자의 인생은 전인미답이다. 아이의 인생을 부모가 살아줄 수 없고, 인생에는 교과서도 정답도 존재하지 않는다. 헤르만 헤세가 말한것처럼, 어떤 곳이든 말로 갈 수도, 차로 갈 수도, 둘이서 갈 수도, 셋이서 갈 수도 있다. 하지만 맨 마지막 한 걸음은 자기 혼자서 걷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인생은 말에서 내려서, 차에서 내려서 결국 자기의 걸음으로 완성시켜야 하는 숙명을 가진다.

오프수업은 지난달로 끝났고, 이제 2주후면 현역연구원 과정도 모두 끝이 난다. 칼럼과 북리뷰도 마지막 하나만을 남겨두고 있다. 이제 나는 나 자신의 스승이 될 수 있는가 - 여전히 한없이 어려운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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