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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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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24일 18시 48분 등록

2014년 한 해는 그전까지 가져보지 못한 독서와 글쓰기의 시간이었다. 10기 동기들과 나누었던 많은 시간들이 비록 출간으로 이어져 꽃을 피우진 못했지만 아직 내게 봄이 오지 않았거나 언젠가 늦가을에 가는 해의 마지막 아쉬움을 달래줄 것이라 마음속으로 늘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금번 매주 글쓰기에 참여하게 된 것은 책을 쓴다거나 칼럼을 써보겠다는 특별한 의도는 없었다. 평소에 잊고 있었는데 어니언의 제안이 있어 다시 해보자고 덥석 손들어 버린 결과이다. 대단한 주제는 없지만 금번 기회를 통해 사십대의 마지막 해를 보내는 직장인, 대한민국의 70년대 X 세대였던 시대적 낀 세대, 나이는 많이 먹었지만 아직 제대로 세상을 겪어보지 못한 것 같아 다시 돌아보는 사람, 그리고 앞으로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시 길을 찾는 사람의 입장으로 글을 적어보려고 한다.

 

나는 70년대 초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50년 가까이 살았는데, 이 기간이 참 좋은 시절이었다. 너무 여려서 제대로 모르고 지나온 70/80년대와 젊어서 멋모르고 지나쳐버린 90년대 발전하는 세상에 함께하며 보낸 2000년대, 새로운 세상을 정의하며 발전하는 현재까지 그 매 시점 그 나이에 그 시대를 살게 되었던 것이 좋았다. 어쩌면 편한 세대를 산지도 모르겠다.. 앞 세대의 투쟁도 제대로 못해봤고 후 세대의 격렬한 사회 진출 과정을 겪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사회적으로 내 나이 전후의 사람들은 사회적인 리더보다는 연예계에 많이 있다. 아마도 세월이 좋았던 탓도 있고 세상의 짐을 짊어질 시대에 다소 빗겨있었던 것도 작용했을 듯하다. 실제 내 나이 또래의 유명 정치인은 거의 없다. 이런 시대를 살아온 나로서는 사회적으로 세대적으로 리더의 역할을 맡아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내 세대도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이 없지 않은데 앞으로 10년간의 시간이 우리 세대에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다음 세대에 짐이 되지 말아야 하고 그 들이 성장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분들에게 좀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해 줄 수 있다면 좋은 시대를 물려 받아 무탈하게 살아온 삶의 빚을 조금이나마 갑을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누구를 가르쳐" 맞다. 난 누구를 가르칠 입장도 역량도 없다. 다만, 나의 시선으로 본 것을 본대로 적어볼까 한다.

 

나는 2020년 현재 여전히 처음 입사한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 한번쯤은 다른 회사에서 일해보고 싶었는데. 세월이 흘러가 보니 아직도 같은 회사에 있다. 해외 유명 회사에서 3년 전에 입사제의가 있었는데 옮기지는 않았다. 아마 마지막 이직 기회가 아니었던가 싶다. 이제 그 어느 회사도 나를 오라고 하지 않는다. 이미 경력이 차고 넘치지만 데려갈 자리가 없기도 하고 너무 나이가 들어 버렸다. 그러면 앞으로는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마무리 해야 한다. 가슴 아픈 일인지? 아니면 다행인 일인지? 판단이 그때그때 다르겠지만 변화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설계 Engineer로서 시작한 회사 생활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어느덧 부장 업무 경력이 10년이 되었다. 몇몇 부서를 맡아 일하였고 지금도 한 부서를 맡아서 일하고 있다.

 

요즘 시대에 부장으로 조직을 맡아 일한다는 것은 사실 권하고 싶지는 않다. 특히, 정년이 60세로 늘어났고 최근 더 늘리려는 시점에서 정말 피곤한 업무의 연속이다. 요즘, 회사의 임원은 임시 직원 혹은 계약 직원이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한다. 임원 승진하고 2 ~3년 후 퇴임하는 분들이 없지 않은 시점에서 이른 나이에 임원으로 덜컥 승진했다가 조기 퇴사하는 경우를 여러 번 보았다. 그래서 요즘은 예전처럼 임원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열심히 비위를 맞추며 필요한 일을 알아서 해주는 후배 직원은 찾아 보기 힘들다. 왜냐하면 임원 승진을 위한 노력을 인위적으로 애쓰지 않게 되었고 정년을 선택하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10년 전만해도 50세를 넘기면 곧 퇴사를 해야 했는데 예전보다 직장이 좀더 안전해진 부분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는 부분도 있기도 하고 특별한 업종이다 보니 경험 있는 인력 수급이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사정으로 임원들은 퇴임의 압박으로 더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실적을 책임지는 부서장들을 달달 볶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실무자들에게는 조직평가 때문에 큰소리를 못 친다. 직원들은 주어진 일을 기본으로 수행하되 좀더 도전적으로 업무를 하고자 하는 분들은 대부분 연봉을 좀더 높이기 위함이지 딱히 임원이 되겠다는 꿈은 예전처럼 잘 보이지 않는다. 경쟁보다는 자신의 업무에 충실하고 협업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면 최고이다. 나 또한 보통의 어느 누구처럼 회사 생활하는 직장인으로서 일하고 있다. 일은 언제나 그러했듯이 그저 이 시간을 지나갈 것이다. 오늘도 내일도 지나갈 것이다. 너무 애쓰지 말자. 이제 나이도 있고 스트레스 너무 받으면 오래 일할 수 없다.

 

이제 딸도 중학교 2학년으로 스스로 공부도 하고 필요한 것을 찾아서 하는 나이가 되었다. 엄마 아빠를 닮아서 다른 사람이 자기 일에 간섭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그래서, 공부했냐고 말했을 때 굉장히 싫어한다. 공부는 자기가 알아서 하는데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나마, 알아서 잘한다고 보여서 큰 걱정은하지 않지만 가끔은 이런 반응에 섭섭하기도 하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하기도 하고 앞으로 점점 이런 일이 많아 질 것인데 회사든 집이든 사회에서 내가 이야기를 한다고 했을 때 그저 꼰대가 한마디 하는 것으로 들릴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아직 한참 일할 나이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회사에서 제일 싫어하는 주간보고를 준비하고 업무 진척사항을 점검하고 보고하는 일과 부서원들 업무 방향 설정과 업무 우선 순위 조정 등이 주요 역할이지 담당 실무를 직접 하는 경우는 매우 적다. 그래서 이 꼰대라는 단어와 매 순간 싸워야 한다. 업무를 할당할 때, 업무 현황을 점검할 때, 업무 결과를 보고 받고 평가할 때, 타 부서와 업무를 조율할 때 그리고 코칭이 필요할 때 나는 꼰대의 유혹을 쉽게 받는다. 부서원들과 업무 얘기를 하면서 깜짝깜짝 놀라는데 내가 꼰대 짓을 하고 있을 때 그렇다. 왜냐하면 왠지 분위기가 스르르 변하면서 어색해지고 왠지 벽보고 이야기하고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실무자가 아닌데 방법과 과정을 꼬치꼬치 묻고 정리하고 있으면 듣는 사람은 자신이 해오던 방법이 아니니 이해가 안되고 자기 방법대로 일을 해결할 궁리만 묵묵히 머리속으로 그리고 있으니 서로 벽보고 이야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아무튼, 꼰대 짓을 하고 싶지는 않아서 오래 전부터 자체 알람 체계를 갖추려고 힘써온 경험 때문인지 요즘은 꼰대 짓을 하려고 하면 입을 다물게 되었다. 그리고 계속 듣고 질문하고 듣고 질문하기를 반복하면서 실무자들이 하는 방식을 내가 이해하려고 한다. 하지만 꼰대는 꼰대다.

 

COVID-19로 가끔 회사에 폭탄이 떨어져서 몇몇이 전사하곤 했다. 아직 내 주위에 양성 판정자는 없었지만 자가격리를 겪은 사람들은 일부 있었다. 의심자가 발생하면 주위 사람들도 곧 자가격리 혹은 자택 대기자가 되는 현장에서 부서 운영은 늘 지뢰밭이었다. 모두가 무사하기를 빌면서 하루하루 버틴 지난 3개월여의 시간을 지나고 다소나마 안정을 찾아가는 시점에 몇 가지 바래본다. 지금보다 더 재택근무를 늘리고 화상회의를 늘리고 보고서를 줄이고 시스템으로 업무가 파악되게 투자를 늘려서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게 돌아간다면 우리 꼰대들도 꼰대라는 소리 좀 덜 듣고 남은 회사생활을 좀더 보람차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꼰대들도 재택근무 좋아하고 회사에 자리잡고 싫은 사람 마주하며 최대한 웃는 얼굴로 혹은 덤덤하게 하루를 보내는데 지쳤다. 꼰대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 어쩌면 꼰대도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정보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process가 시스템과 잘 맞아 돌아간다면 서로 만나서 얼굴 붉힐 일도 없을 것이니 말이다. 어쩌면 열악한 근무 환경이 꼰대를 양산하는지도 모른다. 점검해볼 일이다.

 

나는 40대 후반이고 한 직장에서 계속 일해 왔고 부서장을 10년 정도 한 고참 부장으로 자칫 꼰대 소리듣기 딱 좋은 위치에 있다. 앞으로 매주 글을 쓰기로 했는데 주간보고 쓰기를 정말 싫어하는 나의 입장에서 보면 이 것은 미친 짓이다. 매주 글을 써야 한다니 내가 잠시 정신을 다른데 두고 왔던 모양이다. 아무튼 첫 번째 글을 자기 소개로 하기로 해서 두서 없이 적게 되었다. 그렇다고 앞으로의 주간 보고가 특별히 다르지는 않을 것 같아 양해를 바란다. 매주 회사 생활하면서 드는 생각들을 한 꼭지씩 적어 보려고 한다. 내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알기에 내가 적을 글들이 보편적이지 않을 수 있으므로 이점은 읽으시는 분들이 유념하셔야 할 것 같다. 그럼 다음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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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4 19:23:48 *.7.51.27

희동이님! 반가워요. 다시 자주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우리 같은 세대인데요. 

반백년을 살아온 시간속에서 경험삼아 배웠던 것을

반 백년을 살아갈 시간을 계획하고 꿈꾸고 성장하겠지요. 

제가 요새 배운것은 하고 싶다고 다 할 시간은 지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을 용기와 지혜가 필요한 시기라는 걸 알았답니다. 

희동이님은 꼰대가 아니라, 지켜봐주는 어른이 되어가는 거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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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4 22:52:06 *.105.8.109

네, 함께 글쓰는 시간을 갖게되어 기쁩니다.

언제나 힘이 되어주고 위로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아직 중학생 정도의 감성으로 살아가는 것같습니다.

딱히 더 늙지도 크지도 철들지도 않은 듯해요.

딱 잘라 말할 수 없고 드러낼 수 없지만 그정도로 느껴져요.

지금 하고 있는 것은 그저 세상이 씌워준 그 무엇일 뿐이겠죠?

이 것들도 이제 점점 수명이 다해가네요. 좀 편해질 때를 기다립니다.

다음 책 출간을 위해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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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4 23:35:36 *.187.144.242

아... 아닛... 희동님... 짧지 않은 글인데 몰입해서 봤어요.. 저도 직장인이라서 그런지 요즘의 회사 분위기를 담은 부분이 공감도 되고, 저와 같은 공간에 있는 다른 누군가의 시선으로 본 회사안의 생활 같은 느낌도 들었어요. 꼭 굳이 한 가지 주제로 엮이지 않더라도 평소 생각하고 있던 부분을 적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2014년 이후의 희동님은 잘 몰라 궁금하기도 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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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5 10:02:20 *.103.3.17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희동선배님. 같은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현재도 유사직종에 있는 사람으로서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저도 이제 마흔중반이 되다보니, 어디 오라는데가 없네요 ^^;; 개발자가 마치 전문직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SCV같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됩니다. 앞으로 회사와 조직, 개발 관련된 좋은 글들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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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5 20:48:39 *.62.175.42
동기이자 동갑인 희동의 스토리는 정말 남같지 않네. 어찌됐든 꼰대의 강을 무사히 건너 도인의 경지에 도달할 때까지, 버티는 게 이기는 거지 뭐. 이제 매주 업뎃된 생각으로 칼럼에서 만날 생각을 하니 기쁘다. 그럼 좋은 한 주 보내고 또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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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3 05:29:56 *.215.153.2

너무 늦게 댓글로 인사들 드립니다.

그동안 새벽시간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오늘 모처럼 일어나서,  1주1글챌린지 글 처음부터 읽고 있습니다.

함께 하시는 변경연 선배님들의 주옥 같은 글에 감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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