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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13일 10시 14분 등록
어떤 상황에서도 계속하는 것. 그것이 보통 사람의 인생을 특별하게 만든다 
- 폴포츠,못생긴 팝페라 가수

갈데도 없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술집은 문 닫았고, 커피숍도 갈 수 없다. 여행 갔다 코로나라도 걸리는 날에는 천고의 역적이 될 수 있기에 몸을 사릴수밖에 없다. 갈 곳이 없기에(Nowhere), 오직 집 구석에만 쳐 박혀 있을수밖에 없다(Now here).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면 초조해진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 책을 읽고 글을 써야겠다고 폼을 좀 잡다가 초조함이 극에 이른다.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어서다. 그래, 주말은 쉬어야지. 재충전의 시간이야. 집 구석에도 재미있는 것들은 널려 있다. 문명의 이기들은 이럴때 쓰라고 있는 것이지. 주말내내 유투브 보고 컴퓨터 게임하고 만화에 키득거리다 보면 하루가 가는 것은 금방이다. 너무 재미있다. 너무 재미있어서 구역질이 난다. 헛구역질을 되풀이하다가  더 화끈하고 더 재미있는 일이 없어서 끝내 일요일밤 우울증으로 잠을 설친다. 결국 재충전은 커녕 심하게 방전되고 부패된 채 한주의 시작을 맞는다. 아무리 코로나가 설쳐대도 월요일은 온다. 자연의 섭리는 아닌데 비슷한 거다. 다시 인내해야 하는 시간이다.

인내. 
아! 이 짜디 짠 단어를 보았나. 벌컥벌컥 물을 찾을 수 밖에 없다. 허나 마실 물도 말라 버린 뉴노멀(New Normal)의 시대, 사는 게 참 거시기 하다. 거시기라는 전인칭 대명사로 퉁쳐버렸지만, 요즘 다들 사는 게 말이 아니다. 해외여행 못 가서 남은 돈으로 주식시장은 동학개미들이 우글거린다. 이쪽은 인내를 논하기에 많이 들떠 있다. 한편 직장과 가게를 잃은 망연자실 앞에서 인내를 말한다는 것은 어쩐지 좀 거시기하다. 겪어보지 않은 자가 훈수를 두기 민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내를 논할 수 밖에 없다. 마이너스 통장을 긁어서 주식에 투자한 사람들이나, 일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나 모두 존버 정신을 가지는 수밖에 없다. 다른 방도가 있는가?

그런데 무엇을 버티라는 것인가?  주식의 상승과 하강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코로나 치료제 나올때까지 묵묵히 버티면 되는 것인가. 쌀 살 돈이 없는 사람들은 라면으로 버티면 되는 것인가. 버틴다는 것은 예외없이 슬프다. 버티고 버텨서 얻을수 있는 최선의 결과는 고작 살아남는 것이다. '고작 살아남는 것'뿐이라고 말해서 미안하다. 죽지 않고 살아있을수 있다는 것은 사실 얼마나 기쁜 일인가. '살아 있음'을 대체할 수 있는 지구상의 다른 가치가 거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단지 살아있다는 것은 또다시 버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버티고 버텨서 살아남은 끝에 우리가 도달하는 곳은 결국 죽음뿐이다. 허망하지 않은가? 어느 선사는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고요히 앉아,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봄은 오고, 풀잎은 저절로 자란다.

현실은 다르다. 단지 두 눈 부릅뜨고 버틴다고 해서, 내 안의 겨울은 끝나지 않는다. 들판의 풀잎은 저절로 자라지만, 베란다의 꽃들은 물을 주지 않으면 시들어 죽는다. 버틴다는 것은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다. 눈보라가 다 지나갈 때까지 웅크리고 있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버티면서 발가락 하나라도 내밀어야 한다. 두걸음은 커녕 한번에 한걸음씩 내딛으려는 것마저 오만일때가 있다. 한걸음 앞도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발을 내딛을수가 있는가. 한치 앞도 보지 못하면서 너무 먼 곳만을 보는 것은 아닌가. 이상은 먼 곳을 지향하더라도 시선은 내딛는 한걸음, 아니 발가락 앞을 보자.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려면 자기자신을 어린아이라고 생각하는게 좋다. 다 큰 어른이라도 대부분은 그리 강인하지 않다. 어르고 달래면서 같이 간다고 생각해야 한다. 버텨내야할 긴 시간 앞에서 셀수 없는 실망과 지루함을 맞이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실망과 지루함을 이제 때려치우고 포기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스스로를 어린아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들을 상투적인 칭얼거림으로 받아들이고 느린 레이스를 지속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거리보다는 방향이 중요한데, 존버의 레이스에서는 방향과 거리 둘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매일매일 조금씩이라도 나아가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조금씩 나아가 안개가 걷히고 시선을 좀 더 멀리 둘 수 있을 때 방향 역시 가늠되는 경우가 많다. 잘못된 길이라면 방향을 틀면 그만이다. 조금씩 나아가며 찍은 점들은 헛된 것이 아니다. 비록  점들이 경로를 벗어난 것들일지라도 말이다. 분명 점과 점이 연결되어 면을 이루게 될 것이다. 그게 당신 인생의 너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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