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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15일 22시 06분 등록

7년 전.
그는 아내인 그녀와 대학생 시절에 만났다고 했다. 적지 않은 시간을 함께 하면서 사랑을 쌓았고 사랑은 더 깊고 넓어졌다. 남자가 군대를 갔을 때도 사랑의 끈은 끊기지 않았다. 남자가 제대를 하기 일주일 전에 여자는 부대 앞에 숙소를 잡고 남자를 기다렸다. 그렇게 사랑은 들불처럼 모닥불처럼 커다란 화염처럼 타올랐다. 간혹 다툼을 하고 돌아서기도 했지만 두 사람을 갈라놓을 정도로 심각한 경우는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로 취업을 하면서 사회인이 되었다. 당연하게 결혼을 하기로 했다. 결혼 생활은 행복했다. 그는 그녀와 함께 있어서 좋았다. 여자는 사업을 시작했고 성공적이었다.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무엇 하나 부러운 게 없었다. 나날이 인생 최고의 날인 것 같았다.

5년 전.
그는 괴롭다고 했다. 자신은 아이를 갖고 싶은데 아내는 아이를 낳지 말자고 하더란다. 아이들만 보면 어쩔줄 모를 정도로 좋아하는 그는 정작 자신의 아이가 없으니 가슴이 답답했다. 아내에게 몇 년에 걸쳐 이야기를 해보았지만 대답 없는 메아리일 뿐이었다. 이제는 아이를 갖자고 하기도 어려워졌다. 아내가 나이가 많아졌고 무엇보다 술과 담배를 심하게 많이 하는 아내의 몸으로 아이를 갖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었다. 이것도 저것도 막혀버린 시점이었다. 그 상황에서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지만 아이에 대한 욕심은 시들지 않았다. 그는 이혼을 요구했다. 밖에서도 이혼을 하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다. 사람들은 곧 이혼을 할 것으로 생각했다. 아내는 이혼을 원하지 않았다. 이혼에 동의하지 않았고 차디 찬 집안에서 두 사람은 몇 년을 함께 살았다. 이상한 형태의 동거였다.

3년 전.
어느 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그가 병원비 때문에 힘들다고 했다. 병원비가 너무 많이 든다는 것이었다. 무슨 소리냐고 물었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주변에서 수근 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아내가 많이 아프다는 것이었다. 아픈 것은 확실한데 누구도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몰랐다. 백혈병이라는 얘기가 떠돌았다. 아니라는 얘기도 들렸다. 병명을 아무도 정확히 몰랐다. 분명한 것은 병이 심각한 상황이고 목숨이 달린 정도라는 것이었다. 그는 아내 병간호를 하느라 병원비를 대느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직장에서도 자리 이동을 해야 했지만 아내 때문에 옮길 수가 없었다. 누구에게도 많은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모든 것을 아내의 병간호에 쏟아 부었다.

1년 전.
그의 아내가 퇴원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오랜 동안 이 병원 저 병원을 돌아다니다 병세가 호전 되었고 이제 몸을 추스르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몸은 추슬렀지만 긴 시간을 병에 시달린 몸 상태는 좋지 않았다. 아내는 교외의 한적한 곳에서 살고 싶어 했다. 그는 외곽지역으로 집을 구하러 다녔다. 조그만 마당이 딸려 있는 전원주택을 찾아다녔지만 마음에 드는 집은 쉽게 찾기 어려웠다. 자신이 직장에 다녀야 하는 것과 가지고 있는 돈도 문제였다. 그래도 여건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열심히 집을 찾아 다녔고 마음에 드는 집을 한두 채 보아두었다. 그렇지만 집을 옮기는 건 그렇게 쉽지 않았다. 어찌어찌 하다보니 이사는 자꾸 늦어졌고 도심 속의 생활은 계속됐다.

5일 전.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데 누군가 말했다. 그의 아내가 아침에 세상을 떴다는 것이었다. 너무 갑작스런 일이었다. 모두들 놀랐지만 전후사정은 알 수 없었다. 한쪽에서 백혈병이라더니 결국은 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쪽에서는 백혈병 아니라고 했는데 어찌된거야 하는 소리가 나왔다. 나중에 들어 본 이야기로는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의 아내가 저녁에 체한 것 같다고 몸이 안 좋다고 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같이 잠이 들고 밤이 지나 아침에 일어나 눈을 떠보니 아내의 상태가 이상했다. 급히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향했지만 그의 아내는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운명을 달리했다. 기가 막힐 일이었다.

4일 전.
장례식장에 들어서니 빈소 입구에 그의 아내 사진이 걸려있다. 처음으로 보는 얼굴이었다. 빈소는 그가 혼자서 지키고 있었다. 아이가 없으니 빈소를 지킬 사람은 그 혼자였다. 일하는 사람들과 인척들 몇 사람이 도와주고 있었다. 조문을 마치고 저녁밥상을 받았지만 숟가락이 나가지 않았다. 물 몇 모금을 마시고 자리를 일어섰다. 밖으로 나서니 어둠이 가득했다. 진한 어둠 속에서 불빛은 쉬지 않고 켜지고 꺼지기를 반복했다. 사람의 인생이 쇠락을 겪듯 항상 밝게 타오를 것 같은 불빛들도 쇠락을 거듭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은 발을 딛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가득했다. 얼굴 바로 옆에 다른 사람의 얼굴이 있었고, 코앞에는 다른 사람들의 체취가 몰려들었다. 싫든 좋든 사람은 그렇게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고 살아가는 중이었다. 빈소에서 그의 표정이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제 그와 그의 아내가 주인공인 연극은 끝났다. 또 다른 연극은 막을 올리겠지만 하나의 연극은 완전히 막을 내린 것이다. 우리 모두가 주인공일지도 모르는 그 연극에 제목이 있었다면 아마 이것이 아니었을까. 사랑과 전쟁 그리고…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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