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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18일 16시 00분 등록
 

『이상한 반 아이들』


서문


  자기개발 서적이 범람하는 세상이다. 너나 할 것 없이 꿈과 목표를 가져야 한다고 입이 마르도록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꿈과 목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다고 말 한다. 현실에 의해 주어진 지금 당장의 일을 처리하기에도 힘겨워 보인다. 이런 상황은 비단 사회생활을 하는 어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겪는 일상이 되었다.


  나에게 꿈과 목표라는 것이 언제부터 생기기 시작했을까?


  나는 1990년에 실업계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실업계고등학교에 입학할 당시 나는 대학에 대한 목표가 없었다. 물론 중학교 때 공부를 곧잘 했었다면 실업계고등학교를 가려는 마음을 먹지 않았을 것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우리 집은 참 가난했다. 시골에서 서울로 막 이사했을 무렵 단칸방에 아버지, 어머니, 누나, 동생 거기에 나까지 함께 살았다. 이런 생활이 내 중학교 시절이다. 상황이 그래서인지 나는 공부 보다는 돈을 먼저 벌어 가난을 탈피하고 싶다는 생각에 실업계고등학교를 지원 했다. 아무래도 돈을 빨리 벌려면 인문계를 가는 것 보다는 실업계로 가서 기술을 배우는 것이 괜찮아 보였다.


  내 부모님은 평생을 농사를 짓던 농사꾼이셨다. 아들 공부는 넓은 곳에서 시켜야한다는 일념으로 그냥 무작정 서울로 가족 모두가 올라왔다. 아버지는 생계에 대한 뾰족한 대책도 세우지 않으셨다. 그때 나는 중학교 2학년 이었다. 부모님은 학교에서 성적표를 집으로 보내는 지도 잘 모르셨던 분들이다. 다른 친구들은 귀가 따갑게 들었을  ‘공부 좀 해라’라는 말도 하지 않으셨다. 어머니가 가끔 “그냥 별 탈 없이 잘 자라줘서 고맙다.” 정도의 말씀만 내 기억 속에 있다.


  참 평범하게 지낸 내 학창시절은 그야말로 별 볼일이 없다. 그 공부 안한다는 실업계고등학교에서도 중간 정도의 성적이니 정말 공부하고는 거리가 먼 그런 놈이었다. 공부가 하기 싫었고, 나에겐 꿈과 목표도 없었다. 사실 공부를 왜 하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습관처럼 학교만 오갈뿐 이었다.


  “공부를 왜 해야 하지.” 라는 말을 생각해 볼 정도의 수준도 되지 못했던 것이 내 고등학교 시절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별 생각 없이 그 시절을 지내온 듯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첫 해에는 대학이란 것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온 나라가 학력고사로 시끌벅쩍 했을 무렵 나는 내 친구와 도면을 그리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는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대학은 생각하지 않는 대신 남들보다 빨리 돈을 벌 것이다.” 이 순진하고 순수한 생각에 밤낮없이 일에 미쳤다. 믿기지 않겠지만 한 달에 집에 한번 들어갔다. 사무실에서 친구이자 동료 단 둘이서 하루 네 시간도 채 자지 않고 2개월을 지냈고, 한명 이 더 합류해 6개월을 일하면서 버텼다. 정말 그건, 지낸 것이 아니고 버틴 것이다. 그 당시 컴퓨터를 이용한 도면을 그리는 일을 하는 회사였는데 우리는 컴퓨터를 그때 처음 봤을 만큼 문외한이었다. 사용법을 빨리 익히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르쳐 줄만한 사람도 없었고, 아는 사람도 없었다. 그냥 맨땅에 헤딩해가면서 하나하나 직접 해보는 수밖엔 다른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 흔한 학원도 그 당시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실습생으로 입사 후 3개월이 지나면서 작은 결실을 맺었다. 우리가 컴퓨터를 이용해서 그린 도면으로 영업이 가능하겠다고 사장님이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난 끝까지 버티지 못했다. 동거 동락한 친구들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나는 회사를 떠났다. 그건 친구를 잃기 싫은 현실적 선택이었다.


  난 1년 반 동안의 방황을 접고 대학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방황은 계속되었다. 대학시절에도 고등학교 때 만큼이나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았기 때문에 학점이 형편없었다. 공부를 열심히 했던 친구들은 그런 나를 불쌍한 눈으로 보기도 했다. 들리는 이야기로 나보다 학점이 좋지 않은 애가 딱 2명 있었다. 그런 결과 남들 다 써보는 대기업에는 원서조차 내보지 못했다. 자격 미달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대기업에 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원서조차 내보지 못하는 처지가 되고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그러나 나를 더 크게 낙심시켰던 건 대기업은 커녕 변변한 중소기업에 조차 원서를 낼 형편이 아니었던 나를 발견한 것이다.


  “아! 정말 내가 뭘 크게 착각하고 있었구나!”

  나는 그때서야 '내가 뭘 하려고 공부를 했지?'란 고민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했을 때의 내 나이는 30을 넘고 있었다.


  난 이런 상황에서 목표라는 것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건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너무나 막연했다. 누구에게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이런 나에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이기 싫었다. 난 나약해졌고, 자꾸만 자꾸만 움추러 들었다. 꿈과 목표에 대한 고민을 30이 다 된 나이에 하게 된 내가 너무나 한심하게 느껴졌다.

  한동안의 방황을 끝내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을 무렵 나는 '지금 나의 모습은 지난 내 과거의 결과물이다.'란 결론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순간 답이 보이는 듯 했다.

  “그래 내가 대기업에 원서조차 넣을 수 없게 된 것은 내가 그런 준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변변한 중소기업에 조차 손을 내밀지 못한 것은 여지 것 살아온 내 과거를 보면 되. 누구를 탓할 것도 사회를 비정하다 말할 필요도 없어. 그건 내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야.” 

  나는 이렇게 씁쓸한 독백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답을 알고 났을 때 더욱더 초라해지는 나를 나는 봐야했다. 그때의 내 모습은 씁쓸한 독백보다 훨씬 더 썼다. 공부를 못했던 내 모습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기업에 원서조차 낼 수 없이 살아온 것뿐만도 아니다. 그건....... 그건 ‘꿈을 꾸지 않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꿈이란 것이 있었는지 조차 느끼지 못하며 지나온 날들을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산송장이란 이럴 때 쓰는 것이란 생각이 치밀어 올랐다. 나는 살아있는 송장이었다. 젊은 놈이 꿈도 없이 30년을 살았으니 어찌 살아있다 할 수 있겠는가.


  인간의 자유를 그린 영화 ‘빠삐용’에서 감옥에 가친 빠삐용의 죄는 ‘시간을 허비한 것’이었다. 죄 값으로 그는 종신형을 언도받았다. 나는 빠삐용처럼 시간을 허비한 죄를 지은 느낌이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꿈을 꾸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다 할 목표도 없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나는 내 꿈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꿈은 꾸고 싶다고 꿔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건 34살이 되어서야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때 나는 세 가지 되고 싶은 직업을 그렸다.


  대학 졸업 후 10년의 기계 엔지니어로의 직장생활을 접고 나는 서른여덟의 나이에 내 꿈을 향해 그곳을 떠났다.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소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기술경영컨설턴트가 된 나를 그려보았다. 특히 실업계고등학교 후배들과 만나고 싶은 것이 현실로 다가왔다. 우리나라의 실업계고등학교 학생들의 현실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나 또한 실업계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난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 후배들과 꿈과 희망을 노래하고 싶다. 또한 입시지옥이라고 까지 불리는 우리나라 학생들의 현실이 안타까웠다. 대학합격을 목표로 오직 입시공부만이 살길이라는 안타까운 현실 속에 있는 후배들과 미래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싶다. 그리고 훗날 교육 연수원을 설립하여 평범한 사람들과 소기업에 더 큰 희망을 노래하고 싶다. 이것이 내가 꾼 꿈이다. 


  꿈을 꾸면 어떤 형태로 든 그것이 현실 속에 나타난다. 아래 글은 인터넷 이메일로 상담한 어느 학생의 글이다. 난 이 학생과 수차례의 글을 주고받았다. 이글은 그 학생이 남긴 마지막 답장이다.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랐다. 나 아닌 다른 이의 진솔한 감정을 본다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 난 끝내 '비를 함께 맞을 수 있으니 가끔이라도 이렇게 글을 보내줘요'라는 답장을 보냈다. 그러나 그 글은 지금까지 내가 보낸 마지막 답장이 되었다. 이 글은 비단 한 학생의 글이 아니기에 허락도 받지 않고 조심스레 올려본다.


옛날에는 어른들의 말을 듣고 그대로 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점점 커가면서 어른들의 말을 듣고 그대로 하는 것이 어려워지더라고요.......

반 안에서 공부, 친구관계, 상장...... 모든 것이 점점 더 지겨워지고 힘들어져요......

하지만 저희 반 안에 친구들 중 하나는 항상 즐거운 듯이 하더군요.......

항상 웃으면서 밝게.......

항상 저의 뒤에 있던 친구가 자기의 꿈이 생겼다면서 웃으면서 공부하더니

결국엔 제 앞에서 있게 됐어요.......

그때 전 정말 궁금했어요.......

항상 제 뒤에 있던 친구가 공부할때마다 짜증만 내던 애가

갑자기 웃으면서 저렇게 끈질기도록 공부하다니.......

무슨 생각을 하며 공부할까?

저애를 저렇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지금 전 어떻게 공부하든 그 애를 따라갈 수가 없어요........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왜 내가 그래야하는지도 모르겠고요.

요즘에는 뭐든지 하기 귀찮아요.......아니요 두려워요.....

그냥 하루 종일 잠만 자고 싶어요.

가끔가다 무엇을 취미로 하고 싶어도

나는 못할 꺼야 라는 기분이 들어요.......

누가 뭐라고 해도 그냥 하기가 싫어요......

생각하다보면 내가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 들고

지금 내가 왜 사나라는 기분도 들어요......

진짜 우울해요......


  나에 글이 끝나면 가장 먼저 이 학생을 찾고 싶다.  


IP *.37.24.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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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2009.02.18 21:13:40 *.67.52.209
좋은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아마 현웅님 뿐만 아니라 저도 그렇고 보통 사람들도 현웅님과 비슷한 경험을 했으리라 봅니다.

저의 짧은 생각으로 학생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사고력' 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다각도로 살펴 볼 수 있기만 하다면
시행 착오를 줄이며 성장 발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학생들이 '틀'에 갇히지 않고 살려면 '줏대'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 풍습은 억압 기재가 매우 발달 되어 성인도 자신의 인생을 어쩌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뚝심과 배고픔 감수하더라도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실행력 이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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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웅
2009.02.19 00:07:26 *.37.24.104
고맙습니다. 김지현님.^^
제 자신에 대한 어설픈 이야기를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뚝심과 실행력이 답이군요.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건승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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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9 21:42:45 *.212.21.111
글속에 저랑 오버랩 되는 내용이 많아서 제 자신을 많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도 꿈을 찾아주는 일을 하고 싶어하고 현재 그 일을 조금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되면 현웅님이 하는 일을 작게나마 도움이 되어드리고 싶군요.. 누군가 13-20살 사이에 올바르게 인도해줄 사람이 있다면 가장 적은 투자로 가장 큰 열매를 얻게 될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잃어버린 시간 빠삐용의 비유가 저에게도 해당이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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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웅
2009.02.20 01:37:25 *.37.24.104
박상배님 관심가져 주셔서 고맙습니다.
가장 적은 투자로 가장 큰 열매를 얻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 인상적이네요.
인연이 있길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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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9.02.20 09:18:05 *.247.80.52

홍스. [모래밭 아이들] 책 재미나게 보고 있어요.
고마워요.

지금 쓰려는 이 책으로 꼭 전환을 하리라 믿어요.
뭔가 하고 싶은 게 있는 사람은 밤에도 다음날 아침에 할 일을 생각하며 즐거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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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9.02.23 10:44:41 *.244.220.252

길을 잃어 방황하는 학생들에게,
비에 흠뻑 젖어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멘토, 길잡이, 셰르파가 되주실 거라 믿습니다.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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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부
2009.03.03 15:45:49 *.167.143.73
빠삐용은 자신이 지은죄가 뭐냐고 묻습니다.
누군가 인생을 낭비한 죄라고 말해 줍니다.
그는 단박에 수긍합니다.
따질일이 아니었나 봅니다.
멋졌습니다.
평생을 감옥에 살았고 그토록 자유를 갈망했으나
인생을 낭비했다던 자신의 죄값을 단박에 인정합니다.
적어도 그는 자신이 지은죄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으니
그래도 그는 멋진 사나이 입니다.
그가 기억납니다.
성성한 백발로 자유를 찾아 넘실대는 파도로 뛰어들던,
그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인생을 낭비했던 그 죄값을 단단히 치루고 그제서야 그는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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