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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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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8일 15시 32분 등록
한 마디로 더러운 영화이다.

제목같이 더럽고, 불결하고, 불쾌하다. 똥파리 같다. 이 더럽고 불결한 양익준 감독은 관객들에게 ‘똥파리’라는 소재로 음식을 만들어 먹인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서 끝내지 않는다. 그 아무도 먹지 못한 불결한 음식을 그냥 그릇도 아닌 ‘황금’으로 만든 그릇에 정성스레 담아 관객에게 내민다. “오늘의 메뉴는 똥파리로 만든 최고급 요리입니다.”라고 이야기 하면서.

영화는 제목 그대로 ‘똥파리’처럼 민첩하고, 무리 지어 다니며, 어디선가 파리채가 날아들면 잽싸게 몸을 피하고, 또 다른 곳에 재빠르게 들러붙는다. 한 곳에 오래 앉아 있다 싶으면 금새 다른 곳으로 영리하게 빠져나가 새로운 음식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이 영화의 미덕은 어느새 똥파리의 우글거림에 어떤 패턴이 있음을 보여주고, 그들이 내는 소리가 소음만이 아닌, 목소리로 들리게 하는 감독의 약삭빠름에 있다.

영화는 한마디로 폭력의, 폭력을 위한, 폭력에 의한 영화라 일면 신선한 면도 있지만, 폭력을 담아내는 그릇이 너무나 정형화 되어있고, ‘폭력의 대물림’이라는 주제는 궁색하기 그지 없다. 폭력을 통해 새로 창출되는 블루오션을 개척하는 데는 실패 한 듯 보인다. 이 감독은 폭력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과연 어느 곳에서 찾으려 했던 것일까? 그런 낯설음에도 불구하고 불행히 감독이 많이 고민 한 흔적들은 영화 구석구석에서 보인다. 그러나 정형화된 인물과 설정들 (예를 들면, 전쟁 후유증으로 폭력을 일삼는 아빠, 매맞는 엄마, 인간미 넘치는 조폭, 죽음으로 맺어진 또 하나의 사랑)로 인해 이를 극복하기에는 그 기본들에 너무 충실해 새로운 시도들은 보기 어렵게 만들어 버렸다. 감독은 각 캐릭터에만 집중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극에 몰입하도록 유도하는데는 성공한 듯이 보이지만, 필요이상의 과도한 집중은, 결정적인 반전을 위한 동기유발을 설명하는 데는 실패하는 우를 범한다. 폭력을 통한 상황과 상황의 나열로 동기를 부여하기에는 역부족인 탓이다.

감독이 언어적, 물리적 폭력이라는 영화의 소재만으로 신인의 패기를 드러내려 했다면 그것은 커다란 오산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는 신인감독이 흔히 저지르는 ‘친절한 설명’에 익숙해 있는 듯하다. 맨 마지막 장면을 신선한 패기로 은유로 처리하거나, 병원에서의 오열 장면들은 과감히 생략을 했다면 어땠을까? 때론 너무 친절한 설명들이 오히려 감흥을 반감시키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조장호 감독의 <피터팬의 공식>에서 보여준 놀라운 반전과 상상력, 그리고 그 내재된 잠재력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의 패기가 그리웠다. 잇단 해외 영화제에서의 낭보가 그에게는 어쩌면 독이 될 수도 있겠다. 기존의 영화문법을 착실히 밟은 교과서적인 영화 보다는 오히려 거칠지만, 신인다운 패기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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