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2009년 6월 7일 21시 47분 등록
마눌님 : ‘승호씨, 나는 잠을 자고 일어나면 왜이렇게 팔이 아프지’

나 : ‘글쎄. 잠을 잘못자서 그런가?


  결혼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날 마눌님이 이런 얘기를 하였다. ‘팔이 아프다고. 왜그럴까?.’ 아직은 신혼의 단꿈에 젖어서인지 마눌님 말이라면 칼같이 이행해야 겠기에, 그냥 무심히 지나쳤던 잠버릇을 오늘은 눈을 부릎뜨고 지켜보게 되었다. 마눌님이 잠이들고 나서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는 서서히 팔을 올리더니 세상 모르게 만세를 하고 자는 것이었다. 나는 혀를 끌끌 대며 이렇게 속으로 되뇌었다. ‘그래서 팔이 아팠구나.’


마눌님 : ‘승호씨, 어제 저녁에 내가 자는것 봤어. 오늘도 팔이 아프네. 왜그럴까?’

나 : (혀를 차며) ‘마눌님 잠버릇이 조금 그렇더라.’

마눌님 : ‘어떤 잠버릇?’ (전혀 모른다는 표정으로)

나 : ‘세상 모르고 잘 때 밤새 만세 모션을 취하고 있으니 당연히 팔이 아프지.’

마눌님 : ‘내가 팔을 올리고 잔다고? 왜?’(이해가 되지 않는듯)

나 : (약올리는 표정으로) ‘난들 아나유~’


  마눌님은 안동 김씨의 후손이다. 처갓댁도 안동이고. 연애 기간을 거쳐 정식적인 만남을 위해 0월 0일 안동으로 어르신들게 인사를 드리러 갔었다. 나는 가기전 단단히 정신무장을 하였다. 안동 김씨가 보통 양반인가? 거기다 장차 장인 어른 되실분은 우리 민족의 아픔의 흔적인 월남 맹호부대 출신이기에 더욱 그러하였다.

  안동소주로써 정신이 오락가락한 가운데 장인 어르신의 화려한 무공담은 계속 되었다. 그와중에 당신 할아버님의 생전 행적도 버무려지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장인 어른 : ‘자네(안동에서는 손아래 사람을 자네라는 말로 호칭)! 안동댐에 가보았나.’

나 : ‘안가봤는데요(취기는 올라도 잔뜩 군기가 들어있는 억양으로). 근데 어른신 갑자기 왜 안동댐 얘기는 하시는지?’

장인 어른 : ‘시간이 되면 한번 가보게. 안동댐 탑에 나의 할아버님의 함자가 기록되어 있으니.’

나 : ‘우와. 유명하신 분인가 보죠.’

장인 어른 : ‘그렇지. 일제시대때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이니까.’

나 : '......'


  마눌님과의 대화 가운데 갑자기 이 얘기가 떠올려짐과 함께 의문거리가 해소가 되었다.

나 : ‘마눌님. 당신은 독립군 집안 자손 이라면서.’

마눌님 : ‘그래. 그런데 그것하고 나의 잠버릇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데?’

나 : ‘당연히 관계가 있지. 얼마나 당신 집안이 독립운동에 한이 맺혔으면 자손에게까지 그것이 계승되어 잠을 자는데 만세의 포즈로까지 나타나냐.’

마눌님 : ‘......’(할말이 없는듯)


  김구 선생님의 자서전 ‘백범일지’를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마눌님과 같은 독립 운동가들의 자손들에 대해 관심이 기울어져 여러 자료를 찾아보게 되었다. 정치인이나 연예인을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역시나 대개의 후손들의 삶은 그다지 넉넉지 못한 것이 현실 이었다. 그중 다음과 같은 익명의 기사는 나의 마음을 조금은 무겁게 하였다.   


<독립운동가의 자손은 거지꼴 나는데...>

나의 외할아버지는 독립운동가셨다. 독립운동하시다 만주에서 일본군에게 돌아가셨다. 그리고, 외할머니.. 외할머니댁은 엄청난 갑부였고, 독립운동 자금대고 독립군을 키우셨던 분들이다.

그런데...

독립이되고... 6.25가 터져 해주에서 3녀1남을 데리고 부산으로 피난오셨다. 일가 친척없는 부산에서 고달픈 세월 보내시고 고생만하시다가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전에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국가에서는 달랑 연금 몇푼준다. 그것도 1남에게만 그 1남인 삼촌에게만...

할머니가 돌아가시기전에 형과 나를 홀로 키우시는 울어머니께 몇년치 줘라고 유언하셨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혼자 다 처먹고 있다. 그리고 할머니께서 어렵게 모으신 재산... 집한채도 혼자서 먹어버렸다. 그 때의 법은 무조건 장남에게만 모든게 돌아가게 되어있던 지랄 같은 시대였다.

울어머니 힘들게 형과 나를 키우셨고, 외할머니께 받은 '독립의 집'이란 문패만 소중히 보관하셨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삼촌이 이것도 가져가버렸다. 참 삼촌이지만 나에게 있어 친일파 정도로 나쁜 인간이다.

요즘 친일파 뉴스를 접하고 나는 생각한다. 왜! 할머니댁은 나라를 위해서 그 많은 자금 지원했는지,  왜! 할아버지는 독립운동하시다 돌아가셔서 할머니, 딸 고생 시키셨는지...

그 많은 재산을 그냥 가지고 계시고 나몰라라 하셨으면 자자손손 잘 먹고 잘 살텐데...

친일파들은 잘먹고 잘살고 있는데, 독립운동 자손들은 거지 같은 생활하고 참 지랄 같은 세상이다.

나는 우리나라에 대한 애국심 접은지 오래됐다. 그리고,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셨으면 노발대발하고 피눈물을 흘리시겠지만... 나는 일본여자랑 결혼했고, 일본관련 일을 하고 있다.

지금 잘 살고 있다. 돈 걱정없이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우리나라가 다시한번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된다면,  친일을 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선조님들 처럼 나라를 위해 돈바치고 목숨받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친일파 처단을 위한 진정한 반민특위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던 집안은 3대가 망한다라는 망언까지 나오곤 한다. 다음과 같은 몇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1. 안중근 의사의 조카 민생씨는 중국 옌지에 있는 사촌 동생 경옥씨에게 보낸 편지에서 "과거 우리는 안중근 집안이라는 이유로 왜놈에게 죽어야 했는데, 광복 뒤에는 왜놈의 앞잡이 노릇을 한 주구들이 권력을 잡게 됨으로써 애국자의 피해는 여전하다"라고 한탄했다.

2.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자부심은 사치다"

안중근 의사의 조카 미생씨. 그녀는 김구 선생의 장남 인씨와 결혼하면서, 절친했던 두 집안은 혼맥으로 이어지지만 그의 마음은 이러하였다.

3. 상하이 임시정부 외무장관을 역임한 장병준 선생의 4형제는 모두 독립운동을 했다. 구한말 신안군 장산도 일대에 염전과 전답을 가지고 있던 천석꾼의 재산은 모두 독립운동 자금으로 들어갔다. 독립운동을 한다고 자식 교육은 뒷전이었다. 장병준 선생의 장남 경식씨는 제대로 배우지 못해 그럴싸한 직업도 가져본 적이 없다. 이 악순환의 고리는 손자 하정씨(65)에게 고스란히 이어졌다. 하정씨는 경기도 용인시 한 시골 마을에서 정부의 도움 없이 쓸쓸한 말년을 보낸다.

4.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자손들은 지금 중국의 북경에 살고있다. 신채호 선생의 아들은 박정희 군사 시절 인간아닌 삶을 살았다고 한다. 막노동에 탄압을 받았고 더욱 놀라운 것은 신채호 선생의 국적이 없는 무국적장인것이다. 조국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치신 분이 그 조국의 국적이 없다는 것이 말이되는가?

5. 유족 가운데 중병을 앓는 사람이 두 집에 한 집꼴이었고, 중졸 이하 학력이 55%를 넘었다. 가난은 의료와 교육의 공백을 낳고, 다시 가난으로 대물림됐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공식은 철저히 들어맞았다.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대한민국에서 친일파 후손은 선대의 부와 명예를 고스란히 이어받았고, 독립유공자 자손은 선대의 가난과 피해의식을 그대로 이어받아 사는 게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낑낑대며 금주의 과제인 ‘백범일지’에 대해 열심히 작성하고 있는 09년 6월 7일 현재.

마눌님 : (외출에서 돌아오며) ‘아직도 작성 덜했니?’

나 : (눈을 흘기며) ‘친구는 잘만났나요?’

마눌님 : ‘여러 이야기로 수다를 한참 떨었더니 스트레스가 다풀리네.’

나 : ‘우와! 그럼 기분 좋겠네.’

마눌님 : ‘그렇지. 그런데 그친구 집이 서울 홍제동쪽인데 좋더라.’

나 : ‘야! 우리 집도 좋지. 신혼살림 처음 할 때는 봉천동 여덟자 방에서 시작 했었잖아. 지금도 내나이에 집이 없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당당하다는 듯이)

마눌님 : ‘피~ 처음부터 아파트 가지고 시작하는 사람도 많던데.’

나 : ‘......’ (무슨 말을 할까 궁리중)

나 : ‘그래도 당신 집안과 우리 집안은 뼈대가 있잖아!’

마눌님 : ‘뼈대는 무슨 뼈대?’

나 : ‘당신은 독립군 집안 자손이고, 나는 교육자 집안(할아버님이 북한 선천에서 교장 선생님을 하셨다는 어머님의 이야기를 들먹이며)자손이니까 당연히 뼈대가 있지. 돈이 조금 없어서 그렇지.’

마눌님 : ‘......’


  뼈대있는 마눌님은 오늘도 여전히 ‘만세’를 외치며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힘겹게 과제를 마친 나는 눈이 쉽사리 감기지는 않지만, 백범 김구 선생님 생존의 말씀인 ‘견월망지(見月忘指)’를 떠올리며 잠을 청해본다.


IP *.147.132.74

프로필 이미지
부지깽이
2009.06.09 07:38:59 *.160.33.149

삶을 희극으로 보면 재미있지.   승호 이야기가 비오는 오늘 땡기네.  스며드네.
봄은 이미 지나갔지만 봄비같구나.     
당대의 고난을 즐겨 진 사람들,  침묵하지 않았던 댓가는 잔인하지만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다시 그 힘든 길을 간다.      사람은 그래서 기이하고 매혹적이다.   
 
프로필 이미지
이승호
2009.06.14 22:33:09 *.168.110.204
감사합니다. 꾸벅~
프로필 이미지
한정화
2009.06.09 09:17:03 *.72.153.57
승호씨 마눌님 잠버릇... 저도 같은 건데요. 저는 팔은 아프지는 않습니다. 자고나면 손이 빼낸지 하룻밤을 넘긴 가래떡처럼 꾸덕꾸덕해집니다.
아마 부인이 혈액순환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요? 잘 때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는 팔다리는 자고나면 아프답니다.
저는 저혈압이고 야근으로 몸이 약해져서 잘때 팔이 많이 저렸었어요. 그래서 대자로 뻗고 자는데 (야근할때 잠깐이라도 눈을 부칠때) 어깨폭만큼 좁은 공간에서 잘때 만세를 부르면서 잤습니다.  그나마 그게 손끝까지 피가 가게하는 유일한  방법이거든요.
어쩌면 저의 조상 중에도 혹시.... 독립운동하신 조상님이.

독립운동가의 자손 중에는 이런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누구누구가 독립운동을 한다하고 알려지면 순사나 일본놈 앞잡이가 늘상 집안을 들락거리며 못살게 굴고 풍비박산을 내곤 하니 집안 사람들 모르게 독립운동자금을 대주곤했답니다. 땅팔고 집팔아서 자금을 대주면서도 고향마을에는 계집질해서 혹은 놀음에 미쳐서 집안 재산 다 들어먹었네라고 알려져서... 아주 몹쓸사람으로 알려지기도 한다고.
독립운동한다고 알려지건, 가족이나 고향마을 사람들 모르게 거짓이유를 댔건,  모두 독립운동을한 사람뿐아니라 가족 전체가 아픔을 겪어야 했지요. 

우리집이 가난했던 것은 어쩌면... ????
아닐 겁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52 <크로아티아 여행을 기다리며 1> [4] 수희향 2009.06.10 3155
1051 헬스장에서 배우는 삶의 원칙들 외전(外傳) - 훌라후프편 file [8] 양재우 2009.06.10 9478
1050 헬스장에서 배우는 삶의 원칙들 [3] 양재우 2009.06.10 3466
1049 삶은 점점 확장되는 것이다 file [8] 한명석 2009.06.09 3131
1048 [10] <백범일지>를 읽고 - [안두희의 검은 편지] [4] 수희향 2009.06.08 3110
1047 나의 길, 나의 역사, 나의 소원 [3] 혜향 2009.06.08 3681
1046 '너는 어느 편이냐?' [4] 예원 2009.06.08 2863
1045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file [1] 숙인 2009.06.08 4472
1044 높은 문화의 힘 [1] 김홍영 2009.06.08 3415
1043 칼럼 9 - 관음죽 분을 갈다. [3] 범해 좌경숙 2009.06.08 4003
1042 나의 펜싱의 정체성 [4] 백산 2009.06.08 3357
1041 의리를 아는 자 [2] 희산 장성우 2009.06.07 2930
» 독립운동가의 자손 [3] 書元 이승호 2009.06.07 4086
1039 디자인식스의 자주성 확립을 향하여 [3] 혁산 2009.06.07 3157
1038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 외모(外貌)로 인한 소심(小心) file [1] 양재우 2009.06.05 5749
1037 칼럼 8 - 이순신의 사람들 [11] 범해 좌경숙 2009.06.02 3619
1036 [8]이순신의 후원자 서애 류성룡 file [4] 정야 류춘희 2009.06.02 8919
1035 이순신과 노무현의 죽음 [4] 김홍영 2009.06.01 3829
1034 삶의 전쟁터, 동대문 원단시장 [2] 혜향 2009.06.01 7170
1033 남은 자의 대처법 [2] 예원 2009.06.01 3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