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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7일 23시 52분 등록

 

선생은 주로 의리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말씀하셨다. 아무리 발군의 뛰어난 재주와 능력 있는 자라도 의리에서 벗어나면 재능이 도리어 화근이 된다는 것과. 사람의 처세는 마땅히 의리에 근본을 두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일을 할 때에는 판단, 실행, 계속의 세 단께로 사업을 성취해야 한다는 것 등, 여러 가지 좋은 말씀을 들려주셨다.

-          <백범일지>, 김구 저, 도진순 주해, 돌베게, 63쪽

 

조선시대 가장 ‘신하다운 신하’였다는 다산은 유배지에서 “어느 정도 현실에 타협하면서 사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아들의 편지를 받고 다음과 같이 썼다. “천하에는 두 가지 큰 기준이 있는데, 옳고 그름의 기준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이롭고 해로움에 관한 기준이다. 이 두 가지에서 네 단계의 큰 등급이 나온다. 옮음을 고수하고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높은 단계이고, 둘째는 옮음을 고수하고도 해를 입는 경우이고, 세 번째는 그름을 추종하고도 이익을 얻음이요, 마지막 가장 낮은 단계는 그름을 추종하고 해를 보는 경우이다.”

-          <백범 김구 평전>, 김삼웅 지음, 시대의 창, 16쪽

 

우리는 주위에서 많은 유형의 사람들과 관계하며 살아간다. 사람을 나누어 살펴보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겠지만 나는 언제인가부터 의리를 아는 사람들을 알아내고 그들과 친교를 유지하는 것에 관심을 집중하게 되었다. 그들과는 의기에 대하여 논할 수 있으니 마음을 편히 터 놓을 수 있어 교류가 즐겁고, 또한 의를 앞세우며 사소한 불이익에 눈 감을 줄 아니 나 또한 내가 중요시 하는 동일한 삶의 자세인 견리사의(見利思義)를 견지할 수 있어 사소한 이익을 내세우는 치졸함 없이 맘 편히 손해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사람들과는 시간 차이를 둔 물물교환이 가능하다. 우리는 돈의 거래에만 익숙해져서 내가 뭔가를 주면 반드시 그 때 등가의 가치를 가지는 돈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하며 산다. 이는 그 사람을 전적으로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믿으면 또는 좋아하면 언젠가는 그도 나에게 나와 비슷한 생각이나 마음 씀으로 비슷하게 호응하리라는 것을 믿고 대가 없이 물건이나 값어치 있는 서비스를 주거나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혹여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내가 믿고 좋아하는 사람이니 후회는 없다. 내가 좋아할 수 있는 대상으로 존재해 주어 나의 마음을 후덕하게 해 주었으니 그 자체로 고마움이다.

 

회사에서 친하게 지내는 동료가 있다. 그녀는 호방하고 털털하면서도 깔끔하다. 무엇보다 이익을 쫓지 않고 어느 남자보다도 호기롭고 의리를 알고 행한다. 그녀와 대화를 하면 몹시 편한데, 세상 불의에 함께 흥분하고, 사람됨됨이를 바라보는 시각이 비슷하여 서로의 의견에 함께 호응할 수 있기 때문이며, 사내에서 이루어지는 껄끄러운 이야기들을 서로 속시원히 터놓고 상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최근 꿈에 계속 회사의 어떤 사람이 나왔다. 사람을 잘 미워하지 않는 편인데 그 사람만큼은 이상하게도 평소에 지나가다 보기만 해도 마음의 심연에서부터 미움이 솟구쳐 나오는 사람이다. 왜 그럴까? 나의 부덕의 소치이지만 이제사 다시 생각해 보니 그 사람은 단언컨데 이기주의의 화신이었다. 모든 판단의 기준이 자신의 이익이고 안위인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은 만남을 계속할수록 불편한데 무엇보다 그로 인해 계속 손해보지 않음에 신경 쓰게 되어 그런 내가 유치해지고 싫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와는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게 느껴진다.

 

최근 몇 주간 의리와 원칙으로 살다간 역사적인 혹은 이젠 역사가 되어버린 스승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 앞에 드리워진 거대한 벽에 맞서 치열하게 살았으며, 자신의 죽음으로서 역사 속에 ‘곧은 삶’의 중요성을 그 교훈으로 꽃피웠다.

 

이순신 장군, 늦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였지만 승진을 위해 모두가 뇌물을 바치는 상황에서도 상관의 부도덕함을 꾸짖고 공과 사를 분명히 하였으며, 왕이 자신을 돕기는커녕 죽이려고까지 했던 기막힌 상황에서도 한 번 세운 충을 굽히지 않았고, 높은 지위에 있을 때에도 마음에 위세를 부림 없이 자신의 부하를 아끼고 격려했으며, 백의종군 신세가 되어서도 원망과 타락 없이 본분에 충실했으며, 전쟁에 나아가 두려움 없이 적과 맞섰다. 

 

김구 선생님, 언제나 머리 보다는 발이 되고자 하는 낮은 자세를 견지했으며, 일본 장교와의 맨몸의 싸움에서도 물러남 없는 용맹함을 보였으며, 치하포 사건의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호기를 만방에 드러내었으며, 나라의 미래와 독립을 위해 교육사업과 임시정부활동에 자신의 전부를 걸었다. 귀국 후 미국/소련 강대국 주도의 신탁 통치라는 거대한 쓰나미에 맞서서도 도망감 없이 민족자주 국가의 성립의 중요성을 자신의 죽음으로 강조하였다.

 

노무현 대통령, 촉망 받는 변호사가 되었음에도 돈 보다는 핍박 받는 어려운 사람들의 편에 서서 변론하였으며, 민주화 운동에 직접 뛰어들어 군사 정권의 불의에 대해 저항하였으며, 일신의 안위를 노린 정치적 야합에 동참하지 않았으며,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무모한 도전과 실패하기를 여러 번 하였고, 넘어졌지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면서 숱한 역경을 거치고 결국 우리 대한민국의 16대 대통령이 되었지만 모든 권력을 놓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고, 기득권의 치졸한 보복으로 고생하는 주변 모든 사람들의 아픔을 홀로 짊어지고 운명적인 자신의 삶을 마감하였다.

 

이 분들을 만나면서 다시금 느끼게 되는 것은 ‘원칙의 힘’이다. 의리의 원천은 원칙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일 것일 터인데, 그래야 사적인 이익에 좌우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의리 있는 자와 교분하기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의리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나에게 묻는다. ‘과연 너는 의리 있는 사람인가?’ 내 대답이 곤궁하기 짝이 없다. 약속은 지키려고 노력하는 편인 것 같지만 아직 미흡하기 짝이 없다. ‘옳고 그름을 정확히 따져 이익에 구애됨 없이 옳은 일을 끝까지 추구하는 원칙의 힘이 나에게 있는가?’ 더욱 더 수행이 필요한 대목이다.

 

“가지 잡고 나무를 오르는 것은 기이한 일이 아니나

벼랑에 매달려 잡은 손을 놓는 것이 가히 장부로다.”

 

김구 선생님의 스승 고능선 선생이 김구 선생께 해 주신 말씀이자 치하포에서 국모살해의 죄를 물어 일본 장교를 처단하기 전에 김구 선생이 속으로 계속 되뇌었던 문장이다.

 

나는 곧 자문자답해 보았다.

. “네가 보기에 저 왜인을 죽여 설욕하는 것이 옳다고 확신하는가?”

. “그렇다.”

. “네가 어릴 때부터 ‘마음 좋은 사람’ 되기가 소원 아니었더냐?”

. “그렇다. 그러나 지금은 원수 왜놈을 죽이려다가 성공하지 못하고 도리어 죽임을 당하면 한낱 도적의 시체로 남겨질까 미리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때까지 ‘마음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했던 것은 다 거짓이고, 사실은 ‘몸에 이롭고 이름 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려는 소원만 가졌던 것이 아닌가.”

자문자답 끝에 비로소 죽을 작정을 하고 나니, 가슴 속에서 일렁이던 파도는 어느덧 잔잔해지고 백 가지 계책이 줄지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에게 다시 묻는다. ‘나는 장부인가?’ 의리를 행할 마음이 있는가?’ 앞으로 나의 화두가 될 것 같다.

 

“사람이 자기를 알기도 쉽지 않거든 하물며 남을 어찌 밝히 알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성현을 목표로 하여 발자취를 밟아가도록 하게. 자네가 마음 좋은 사람이 되려는 생각을 가졌다면 몇 번 길을 잘못 들어서서 실패나 곤란을 경험하였더라도, 그 마음 변치 말고 끊임없이 고치어 나가게. 목적지에 도달하는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이네. 지금은 마음에 고통을 가지는 것보다 행하기에 힘써야 할 것이 아닌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요 고민은 즐거움의 뿌리이니, 자네, 상심 말게.”

 

자그마한 일에 상심함 없이 의리를 쫓아 마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힘써 고치어 나가며 정진하기를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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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09.06.08 05:42:02 *.160.33.149

의리의 원천이 원칙이 아니라면 끼리끼리가 된다.   그래서 혈연 학연 지연 종교연이 되는 것이다.   추하다. 
오늘 묻는다.   너의 원칙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이냐 ?    원칙을 만들어 내는 샘은 어디 있는 것이냐 ?   
오래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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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산 장성우
2009.06.08 06:54:48 *.17.70.7
네, 선생님. 주신 화두 깊이 있게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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