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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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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8일 01시 50분 등록

우리 민족의 비운은 사대사상의  산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실질적인 국리민복을 되외시하고, 주희학설 같은 것은 원래 주희 이상으로 강고한 이론을 주장하여 사색당파가 생겨 수백년 동안 다투기만 하다 민족적 원기는 다 소진하고, 발달된 것은 오직 의뢰성뿐이니, 망하지 않고 어찌하라오.  (중략)    
나는 결코 정주학설의 신봉자가 이니고 마르크스 와 레닌 주의 배척자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특성과 백성들의 수준에 맞는 주의와 제도를 연구.실시하려고 머리를 쓰는 자 있는가?  없다면 이보다 더 슬픈 일이 어디 있으랴.  -  김구 백범일지 p352  -


세계 무대에 나가 경쟁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독자적인 펜싱체계를 갖고 싶어했다. 소위, ‘한국적인 펜싱’ 라는 것 말이다.  전통적으로 분류되는 세계의 5대 펜싱주류, 프랑스, 이태리, 헝가리, 독일 그리고 러시아의 펜싱체계를 보고 배우고 연구하면서 나도 우리만의 독자적인 체계를 세울 수는 없을까?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중국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파 나름의 사상이 있다.’ 라는  무예 사부님의 말씀을 들고 난 뒤에는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한국적인 검범의 체계를 만들고 그 바탕이 되는 철학이나 원리를 정립하고 싶었다.
‘ 운동하는 놈이 사상은 무슨…,  개똥철학이냐… 운동이나 열심히 하지.’ 그렇게 조롱 당하던 시절 즈음에 나는 새로운 방법으로 펜싱체계와 사상을 정립하려고 했었다.

현대 스포츠화 된 펜싱은 전통적인 사상이나 방법론에서 많이 멀어졌다. 간결성과 기동성 그리고 확률로 행동하는 전술적인 현대펜싱은 목숨을 걸고 엄격한 규칙과 규율아래 배우던 전통적인 펜싱과는 전혀 다르다. 

내가 정리하려고 했던 방식은 펜싱의 전통적인 기술이나 자세, 그리고 훈련방식에 근거한 체계가 아니라, 고도로 발달하고 있는 스포츠 과학적인 방법론을 통해서 펜싱의 훈련체계와 원리들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체력과 기술에 관한 생리역학적인 체계는 운동학습과 제어(Motor learning & control)의 원리와 이론들을 근거로 하고, 철학적 기조나 정신적인 훈련의 체계는 동양의 고전 사상과  심리학적 가설과 원리들 현대식으로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내가 가끔씩 글을 옮기던 ‘하나한 가설’과 ‘무형검법의 무상신검’ 시스템이다.
모방하는 것과 참고 하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 심리학적 용어 개념으로 보자면 모방과 모델링의 차이다. 그것은 보고 그대로 따라 하는 것과 보고 생각하고 느껴서 자기 만의 방식으로 수용하는 것과의 차이다.

나는 5 대 검술유파의 장점만을 모아서 틀을 만들고 싶어했는데 생각보다 간단하지가 않았다. 기술간의 차이나 원리적인 방식이 대립되는 경우가 많아서 장점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인 것이어서 수용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마치 화가가 세상에서 얼굴이 제일 예쁜 여자를 그리기 위해 최고로 예쁜 각 부위를 모아 논것 같은 …  그런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집합이 되었다.  해결방법이 뭘까...  
 유럽에서는 대부분 35살을 전후하면 은퇴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4-5 년동안 지도자과정을 배우고 초보코치 생활을 하면서, 자기 마음에 드는 선수를 찾아 가르치게 된다, 그러면서 그와 함께 늙어가는 것이다. 나는 이런 과정을 네 번을 되풀이 했다. 그 당시에는 정말로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정말로 많은 경험과 기회를 가졌고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온갖 부류의 사람들... 유치원 애에서 부터,, 그룹의 회장까지, 백인에서 부터 흑인까지.. 초보자에서 부터 세계컵에서 우승하는 선수들에 이르기까지 온갖 난이도와 펜싱 스타일을 경험했다. 

 종합과 통합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전통적인 펜싱체계를 무시하고 운동과학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아울러 동시에 생리 역학적인 기능과 심리적인 기능을 통합적으로 정리하는 것이었다. 방법은 찾은 셈이다.  스포츠과학의 ‘운동학습과 제어’(스포츠 심리학의 한 영역이다)의 방법론과 가설들을 이용하여 이론적인 근거와 접근방법들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의 뒷받침이 가능해졌다.

사상적인 것들은 고전적인 원리들에 대한 나의 경험과 체험을 통한 깨달음을 인문학적인 방식으로 기술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과학적인 관점에서 동기화와 유능감, 자아 존중감, 자기 결정성들에 매우 의미있는 것들이다.  심리물리 동형론이나  장이론 그리고 태극이론과 음양오행사상, 명상이나 기공 도인체조와 만련(慢練) 들을 통해서 정신훈련의 방식들을 정리했다.  그렇게 하다보니  그럴듯하게 틀이 잡힌 셈이다.

그리고 그 안에 30년을 하고도 질리지 않은 것들을 담아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내 세계 사람들로부터(좀 더 정확히 헤게모니를 가진 사람들로부터) 자주 조롱 당하고 비난 받고 고립되었다.
코치 초년 시절, 별 볼일 없을 때에는 엉뚱하고 영양가 없는 짓을 하는 놈으로 무시와 조롱 당하고,  성과를 거두던 시절에는 독불장군에  거만한 놈이라고 비난 받았다.  마지막에는 정말 어려운 상황을 극복했을 때, 나는 위험한 존재가 되었다. 

나는 그저 이길 수 있기 위해서 창조적으로 생각하고, 그리고 가치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노력한 것뿐이었었다. 외로움, 두려움, 그리고 가난함을 견디어 냈을 때, 나는 제물이 되었다.   한 때,  내게 남아 있는 것은 녹슨 훈장과 제자들의 입으로 전해지는 과장된 기억들과 분노에 찬  배신감과  사람에 대한 환멸이었다. 
세월이 흐른 뒤에 이기기 위해 사는 것과 살아가기 위해 이기려는 것이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온함을 얻게 된 뒤에야... 알게 되었다. 이길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의지와 노력이지만 보장 받는 것은 사람들의 배려와 관심이다.  

마침내.
 사람들이 실패아닌 실패라고 말하면 나는 성공 아닌 성공이라고 말 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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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선생님의 자서전을 읽다 보니 마치 무림의 강호열전을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사회정의, 신의, 의리, 믿음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가치가 거의 사라져 버린 ..,오늘날, 너무도 이율배반적인 삶들을 보면서 슬프다.

나를 충격적이게 했던 말,
‘선생님, 옳으신데요, 아무도 선생님처럼 살지 않아요…’ 라는 말 한마디에 나는 세상에 대한 기대를 접어버렸다. 모르고 행하지 않는다면 가르치면 되지만, 알고 행하지 않는 것은 그야말로 가치나 태도와 같은 정체성의 문제다. 그것은 사회적 계몽과 합의에 따른 꾸준한 교육이나 사건과 계기를 통해 혁명적인 전환을 가져오거나 절대적인 믿음 아래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느 것에도 기여할 수 없다.
왜냐면 ,,, … 창조적이어서… 관계를 무시하고 기본의 체제에 도전하는 놈이 되어서,,,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게임이란( 혹은 살아간다는 것) 항상 불확실한 것이다. 그러한 불확실한 상황에 임의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서 경험과 체험을 통해서 터득한다.  만약 그것들의 가치를 높이고 또 효율적으로 전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체계와 사상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철학적 사상을 통해서 객관화되면 일반으로부터 인정 되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67세의 나이로 백범 김구 선생께서 1949년 당시에 묻고 답하며 슬퍼하던 일들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도입글-  선진화, 세계화, 경제적 안정, 웰빙이라는 핑계와 모방으로 자신 아닌 자신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본다. 

창의적인 생각과 창조성의 차이를 이야기하던 연구원동료 정철의 칼럼이 생각난다.
나의 생각으로 우리에겐 공익과 사회적 가치인  사회정의가 사라져 버렸다. 한 편에서는 가족과 인권을 핑계로 외면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안정과 번영이라는 명분으로 악용하여 그 가치와 힘에 거부감을 일으키게 했다.  불행한 일이다.

나는 그래서 정치도 잘 모르고 가족의 소중함도 무시하고 삶을 즐길 줄도 모르며, 잘난척하는 한심한 놈이 된다.  결코 성공할 수 없으며, 이룰 수 없는 꿈을 가진 사람이 된다.
그러나 내게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그것은 옳은 일이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것은 잘못된 것 같지는 않다.
옳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사회정의다.

사회정의란 촛불을 들고 나가 시위하는 것이 아니며, 명분을 내 세워 규제와 법으로 강제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자신이 기대하는 사회와 자신의 행동이 일치하도록 자신에게 엄격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제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큰 지혜는 좀 어리석은 듯 해 보이고, 큰 용기는 좀 비겁해 보인다” 라고…
삶은 윤리와 규범으로부터 일탈하여 해방감을 통해 얻는 쾌락이 아니며 집단적 행동을 통한 몰개인적인 집단적 파행도 아니다,
정치적 술수로 얻은 권위와 힘으로 억눌러 찍어내는 상품 같은 질서정연함이 아니고, 경제와 안정이라는 명분을 위해 희생하는 헌신적인 생활 또한 아니다.

  ‘살아 있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지금-여기를 사랑할 줄 아는 삶이다.  

IP *.131.12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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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산
2009.06.08 08:36:11 *.246.146.19
‘선생님, 옳으신데요, 아무도 선생님처럼 살지 않아요…’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말이네요 성님.
40 넘은 저는 아직도 선후배에게 이런 말 자주 듣고 있습니다.

그래도 형님 잘 갈무리하시고 계시죠 요즘은. 의분도 잦으면 변덕으로 보인답디다.
잘 벼리고 잘 간수해서 크게 한번 무찔러 나서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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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산
2009.06.09 01:09:51 *.126.231.194
전 형님을 바위라고 생각합니다.
그 자리에서 조금 틀어졌을지 몰라도 아무도 모르게 그 모습 그대로를 지키는 것 같아요.
야간의 틀어짐은 흠이라기 보다는 이해라고 생각해요.
바람결에 잠시 몸을 맡겨 그 흐름따라 내버려 두는거죠.
나는 형님을 그렇게 기억합니다.
틀어져도 바위라는걸
바람이 왜 불어오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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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9 10:53:18 *.204.150.138
독자적인 펜싱체계. 오빠만의 무술 사상이 가미된 펜싱 체계... 멋진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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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5 20:54:22 *.47.115.61
언제나 멋지신 백산 코~우치님^^ㅋ
당신의 단단한 어깨와 야무진 입 매무새에도 참으로 다정한 배려가 옮아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전해 주신 말씀들 가슴에 묻어 두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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