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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8일 11시 42분 등록


 흥미롭던 백범일지가 개인적 경험을 넘어 임시정부 활동과 해방 후 정부 수립에 관련한 내용으로 치달을수록 점점 집중이 어려워졌다. 정치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 내 의식보다 먼저 작동했다. 그 내용은 우리나라 정부 수립 초반 정치의 이야기와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고, 역사 중에서도 한국 근현대사에 대해서는 더욱 잘 모르는 내가 한쪽의 이야기에 너무 휩쓸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방어심리도 고개를 쳐들었다. 결국 군정통치와 전쟁을 거쳐 50년 넘게 분단하게 된 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기에 그 시대의 과정을 보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한때 어린 나는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뭐 더 말할 것도 없이 그렇게 사는 삶은 너무도 피곤하고 힘들었는데, 몇 년이 지나서야 그것이 말도 안 되는 욕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공자님의 말씀이었던가, 좋은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악평을 듣는 사람이 되는 것도 무방할 것이라 생각도 했다. 그 말씀에 나오는 좋은 사람이란 또 누구일까? 내 기준에 ‘좋은 사람’이니 그것 역시 끼리끼리 편들고 무리 짓는 위험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흔히들 농담으로 ‘건달에게도 의리가 있다’고 한다.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들만 내편이며, 의리 있다고 칭하는 것은 편협하다. 동네 건달 수준에서 좀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도 인정할 줄 아는 큰 그릇이 필요할 텐데 우리나라에서는 통 그런 일을 보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아니, 있는데 ‘회색분자다’, ‘색이 불분명하다’며 오해 받고 쫓겨나 찾기 힘든 것은 아닐까.

 자주 가서 열심히 구경만 하던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요새 아주 흥미로운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촛불시위 정국에서 이름을 더욱 알리며 유명해져서인지 정국에 무슨 일이 있을 때 일상적인 이야기를 올리면 ‘지금이 그런 한가한 얘기를 할 때냐’라는 공격이 줄줄이 달린다. 급한 질문을 올리고 답변을 구하는 사람들도 ‘시국이 뒤숭숭한데 죄송하다’는 말을 빼놓으면 큰일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에는 더욱 분열이 극심해 ‘나는 이런 편협하고 일방적인 시각만 득세하는 곳에서 떠난다’며 글을 남겨놓는 사람도 종종 있는데 거기엔 ‘떠나려면 조용히 가지, 애초에 왜 이곳에 왔었냐’는 가시돋힌 말들이 남는다. 심지어 사이트 주인에게도 ‘왜 이 시점에 침묵하느냐. 침묵이 더 나쁜 것 모르냐’는 황당한 공격이 들어갔다. 결국 그 주인은 그 시간에 봉하마을에 다녀와서 그런 것이었음을 증명해 보였다. 분명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을 터인데, 그런 험악한 말들이 오가는 것을 보면 그들과 공분하던 나도 저런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움추러들고 만다.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세설집이 있다. 자극적이기에 개정되면서 바뀐 책 제목이 되었을 것이다. 나도 ‘너는 어느 편이냐’는 곤란한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 ‘이 편이냐 저 편이냐’, ‘너는 이 곳에 줄을 서지 않으니 저 편인 모양이구나’……. 그런 것쯤은 초월했을 거라 생각했던 변경연에서도 누군가에게 ‘이쪽 아닌 것 같은데 왜 왔느냐’는 질문을 대놓고 받았으니 참 지독하게도 오래 따라다니는 질문이다. 아니, 평생 갈지도 모른다. 사람 모인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정체’를 밝히고 ‘우리’ 편인지를 확인해야 하니까.

 그러나 어쩌랴. 기왕 이렇게 살아온 것을. 이제 와서 여기 저기 다 줄 서면서 ‘나 여기 사람이니 잘 봐주쇼’ 하며 다닐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아님 뭐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들의 ‘우리’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삶을 살던가 해야지. 선택했을지라도, 어쨌거나 비주류라는 이름은 참 서글프다. 그러나, 이 외로움이 사람을 키울 지는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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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09.06.08 14:53:06 *.251.224.83
신념과 줄서기, 의기투합과 패거리를 구분하는 방법은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입장을 적어도 경청할 수 있느냐는데 있을 것 같군요.
비주류 중에서도  비주류로 남을 소질이 다분한 나는,
요즘에는 조금 반성을 하기도 하는데요~~

독자적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을 고수하는 내 태도가 사실은,
모든 것을 전지적 시점에서 판단하고,
호불호가 지나친 자기중심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거지요.

시류에 영합하는 파리떼는 거론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것이 아니고
자신과 다른 사람도 포용할 줄 아는 자세를 갖춘 사람이 노력으로 일구어내는 팀에조차
내가 분석의 칼날을 대고 있지는 않은가 돌아봐지네요.
그냥 위 글을 읽다가 내 문제와 연결되는 것을 적어 본 거구요,

ㅎㅎ 글 속에 나오는 사람은 나 아니지요?
연수에서 내가 예원님에게  '조금 다른 것 같다'고 한 것은 호감이 살짝 섞이긴 했어도
순전히 가치중립적인 느낌이었습니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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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09.06.08 18:41:22 *.131.127.100

나는 이말에 들을 때마다 광분하곤 했었는데...
제목에 가슴 깊은 곳에서 꿈틀하는 거... 있제...
나는 그렇게 대답했제, "나는 옳은 사람의 편이요"
그라고...
어느 편이든 상관없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을 때는
독립군으로 살아도 별 지장없다는 생각...

그러나 분명히 말하는데.. .
 " 절대로 중간치기는 아니요..."  

와?  옳은 것은 옳은 것인께...  그건 니편내편의 문제가 아니 당께로...

근데 진짜 문제는... 
" 누가 옳은지 알 수가 없을 때지...  "
나는 이말을 깨닫는데 너무 많은 세월과 대가를 치뤘어... 
인간사의 정(正)과 사(邪)가 분명치 않다는 걸 겨우 알'게 됐은께.....

내가 좀 느리거덩,,.  . 
 
옛날엔 이 말을 하면 뒤지게 패주고 싶었어...

 근데 요즈음엔,
허!   아무도 안 물어보네? ....^^
 비주류, 비일반, 독립군이라는 거 아직 좋은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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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8 19:55:37 *.17.70.4
정치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 저 역시 동일하게 가지고 있어서 비슷한 부분을 읽는데  많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좌샘께서 언급하신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너무 억울해서 지금처럼 방관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렇다고 갑자기 정치판에 뛰어드는 것은 아니겠지만 최소한의 활동, 즉, 알레르기 반응의 기본 행동 양식인 '원인 물질에 가까이 가지 마라'를 버리고 좀 더 가까이 가서 살펴 보고 또 그 중에서 가장 좋은 동량을 골라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지원을 해 주는 것... 이것만은 관심과 의지를 가지고 행해야겠다 하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다른 이의 행동에 그대 너무 상심말고 우리가 정한 마음 속의 원칙을 지켜 나가 보아요.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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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9 11:06:46 *.204.150.138
그 외로움이 사람을 키우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먼 발치에서라도 응원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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