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혜향
  • 조회 수 3679
  • 댓글 수 3
  • 추천 수 0
2009년 6월 8일 11시 43분 등록
나의 길, 나의 역사, 나의 소원


<백범일지>를 읽으면서 제 마음에 가장 깊이 닿은 부분은 바로 ‘나의 소원’편이었습니다. 백범이 품은 정치철학, 백범이 믿는 민족철학, 백범의 사상이 가장 잘 나타나 있고, 한 민족에게는 반드시 기초가 되는 철학이 있어야 함을 강조하며 사상과 정신의 독립을 유지하여 저 마다의 민족철학을 찾아 세우라는 백범의 당부가, 저에게는 역사와 역사 속의 인물, 그들의 삶과 사상을 살피는 일을 통해 나만의 자주적인 철학을 세우고 이를 행동으로 옮겨 나의 소원을 이루라는, 꿈을 실현하라는 희망의 메시지로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사부님께서 2차 오프수업 과제를 올려 주신 이후로 ‘역사적 장면과 형상화’에 대한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앞서 1차 오프수업을 경험한 이유로, 오프수업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에, 오프수업이 지난 시간(신화와 나)과 서로 연결되는 구조로 진행됨을 감지하고 있기에, 이번 오프수업의 주제인 ‘역사와 나’를 만들어가기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역사적 장면을 찾아 살피는 일에 신중을 기하고 싶었습니다.


동양과 서양, 역사의 길에 크게 족적을 남긴 왕후장상에서부터 이름조차 희미한 무수리에 이르기까지 여러 여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중국에서 유럽으로 간 최초의 귀한 물품인 비단의 탄생, 비단길의 역사를 바탕으로 하여 저의 걸어왔던 길, 현재 거니는 길, 앞으로 걸어야 할 길을 발견하고, 몇 주전 ‘영웅의 서재’라는 칼럼을 통해 잠시 소개했던 여인, 김금원의 삶이 제 삶에 비추어져 나의 길(나의 발견), 나의 역사(나의 발명), 나의 소원(나의 꿈)으로 이어지는 ‘역사와 나’를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역사적 장면. 1 - 나의 길(나의 발견)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 옷감을 짜는 기술, 즉 비단을 생산하는 방법은 선사시대부터 중국이 발명해낸 특별한 비법이었습니다. 중국은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 전부터 누에고치를 길러 비단을 짰는데,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오래전인 삼황오제 시절(설화적인 요소가 다분한 중국 고대의 전설적인 제왕들)에 이미 비단이 시작되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아득한 옛날, 삼황오제(삼황三皇:복희씨・여와씨・신농씨를 말하며, 오제五帝:황제・전욱・제공・요・순 임금을 말함) 가운데 한 명인 황제의 부인 서릉씨는 어느 날 차를 마시다 실수로 누에고치를 뜨거운 찻잔에 빠뜨렸습니다. 그런데 고치에서 가느다란 실이 계속 풀어져나오는게 아니겠습니까? 누에고치 속에서 오랫동안 비밀스레 간직되어 있던 비단실이 마침내 인간 앞에 그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 놀라운 순간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중국문명의 창시자라는 황제와 그 부인 서릉씨는 양잠업을 제창하고 이를 적극 권장했습니다.”


이렇게 중국인들은 서릉씨를 양잠업의 시조로 삼아 대대로 제사를 올리면서 그녀를 기리고 있고, ‘실로 짠 바람’이라고 부를 만큼 비단을 귀하게 여기며 몇세기 동안 그 비법이 다른 나라로 새나가지 못하도록 철저히 단속했습니다.


그런데 중국이 그토록 비밀로 해온 양잠술과 견직물, 비단이 어떻게 서방 각지로 전파되었을까요?


바로 허톈의 우기국(중국이 ‘서역’이라고 부르는 중앙아시아에 위치해 동쪽으로는 중국, 남쪽으로는 인도, 서쪽으로는 이란으로 통하는 요충지이면서 사막의 오아시스를 연결한 ‘비단길’에 존재했던 오아시스 도시국가 중 하나)으로 시집간 중국 공주의 이야기에서 견직술 전파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옛날 우기국에서는 누에고치나 뽕나무를 알지 못했습니다. 중국에 비단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사신을 보내 구하려 했으나 중국은 견직술이 밖으로 새나가지 못하게 철저히 막았습니다. 그래서 우기국 왕은 몸을 낮추어 중국의 공주와 결혼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결혼 승낙을 얻어내자 우기국 사신은 공주에게 ‘우리나라에서는 누에고치와 뽕나무가 없으니 왕비께서 씨앗을 몸소 가져오셔서 비단옷을 지어 입으소서’라고 말했습니다. 공주는 그의 말대로 모자 속에 누에고치와 뽕나무씨앗을 몰래 감추고 가서 허톈에 보급했습니다. 봄이 되어 뽕나무씨를 심자 마침내 허톈에서도 누에를 기를 수 있게 되었고 왕비는 누에고치를 죽이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까지 만들어 돌에 새기게 했습니다.”


중국이 그토록 비밀에 부쳤던 비단 제조법은 후한 시대, 즉 기원후 1-3세기경, 중국의 한 공주의 출가로 서역의 작은 나라 허톈에 전해졌고, 영국의 유명한 탐험가 스타인이 허톈강 근처의 단단오일리크 유적지에서 그 내용을 형상화한 목판화 ‘견왕녀도’를 발견하면서 견직물 전파의 역사적인 실체가 드러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첫 단추가 풀린 견직물은 오아시스 비단길(중앙 아시아와 서아시아에 있는 사막의 오아시스를 연결한 길)을 통해 유라시아 일대로 급속히 확산되면서 북쪽의 유라시아 초원을 연결하는 초원 비단길, 중국 앞바다와 인도양, 그리고 아라비아 해를 잇는 바다 비단길, 16세기 이후에는 태평양 비단길이 열리고, 신대륙이라고 부른 아메리카까지 연장되면서 인류는 이 길을 통해서 서로의 문명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역사와 문명을 꽃피웠습니다. 


저는 오랜시간 직물, 그리고 직물을 활용한 일과 함께 해왔습니다. 특히 견직물, 실크가 주는 섬세한 매력에 빠져 ‘바틱’이라는 염색 작업을 주로 해왔고, 지금도 실크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직물인 동시에, 현재 제가 진행하는 원단 작업과 데코레이션 작업에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는 소재입니다. 따라서 실크와 직물은 저와 땔래야 땔 수 없는 형편이고, 저는 실크를 비롯한 다양한 직물과 이를 활용한 디자인 작업, 그리고 이러한 나의 삶을 표현하는 글쓰기를 통해 저의 새로운 면을 지속적으로 발견하여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제 일의 지향점으로 삼고 있습니다. 때문에 저의 경험으로 얻어진 제대로 된 노하우를 알리고 공유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을 것과, 비단길을 개척하는 영웅의 모습으로 계속 전진할 것을 다짐하고 실천해 나가고자하는 제 삶의 방향이, 비단의 탄생과 비단길의 역사에서 만나 저의 역사적 장면으로 다가왔습니다.


역사적 장면. 2 - 나의 역사(나의 발명)

김금원(金錦園 1817 - ?)의 <호동서락기湖東西洛記>

그녀는 강원도 원주에서 한미한 가문의 딸로 태어났지만 열네 살 처녀의 몸으로 남장을 하고 호서의 4군에서 시작하여 관동팔경과 금강산을 거쳐 한양까지 유람한 후 이 여행의 기록과 인생관, 여성의식, 시작 활동에 대한 내용 등을 <호동서락기>라는 제목으로 남긴 호연지기의 여인입니다. 그녀는 스스로 호를 금원(錦園)이라 지을 만큼 자의식이 강했고, 수동적으로 규중에 갇혀 지내는 여성의 삶을 살기보다는 사대부 남성처럼 이치를 통달하고 견식을 넓히고자 하는 의지와 ‘세상을 보고 싶다‘는 열정을 품고, 당시 19세기 중반의 여성으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홀로 감행한 남다른 실천력을 지닌 여성이었습니다. 그리고 빼어난 학식과 생전에 자신의 문집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낼 만큼 자신의 문장에 대한 자부심도 남다른 여인이었습니다.


제가 김금원이라는 인물에 대해 집중하고 그녀의 삶에서 역사적 장면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보다 그녀가 평범함 속의 비범함을 지닌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녀에게는 자신의 현실에 대한 자각과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당찬 의지가 있었고, 여행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경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굳은 의지로 적극적으로 세상과 만나는 힘이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성장해가는 그녀의 모습이, 저의 기질과 행동에 닿기를 바라는 부분이 있고, 귀감이 되어 현재 저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불씨를 타오르게 하여 세상 밖으로 나아가게 하고, 새로운 세계를 보고 견문을 넓히는 적극적인 깨달음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세우고, 이것이 체험을 통한 기존 지식의 활용으로 이어져 창조적 발명을 이루어내는 데 있어 실천의 힘으로 작용할 것임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호동서락기>가 보여주는 글의 특징이 기교가 뛰어났다기보다는 정밀하면서 실경 앞에서 그녀가 느낀 순수한 감동이 그대로 문장으로 옮겨져 그 문체를 생기있게 만들었다는 점과, 그녀가 그동안 여행에서 배워 온 지식을 발휘하여 이를 활용하고 실증하며 비판하는 형식을 취하는 데 있어 고전 지식을 활용해 묘사하면서, 금원이 단순히 고전 속의 그들을 떠올리거나 비유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유추하고 이들을 심층적으로 사용하여 한층 더 깊은 맛을 이끌어내는 독특함을 보여주었다는 점입니다. 이는 전문지식을 시장에 제대로 실용화하여 살아있는 글쓰기를 추구하는 제게 있어, 전문분야에 인문학의 깊이를 더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글쓰기를 추구하는 제게 있어, 훌륭한 예가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입니다.


역사적 장면. 3 - 나의 소원(나의 꿈)
김금원의 '삼호정시사(三湖亭詩社)' 시절

집밖으로 나가 산수를 둘러보고 세상을 직접 본 경험을 통해 금원은 더 이상 여행을 떠나기 전의 금원이 아니었습니다. 천하의 장관을 둘러보고 세상을 바라본 경험은 가슴 속에 담겨 자부심의 근원이 되어 주어진 현실에 굴종하지 않고 끊임없이 삶에 도전하며 자신을 새롭게 발전시키고자 하는 노력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금원은 여행을 끝내고 귀환하는 일을 잊지 않았으며 여행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찾아낸 답이 다시 규방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그녀 자신이 중심이 된 새로운 문화공간인 ‘삼호정시사(三湖亭詩社)’를 만들어 규방 밖으로의 외출은 꿈도 못 꿀 시대에 재능을 지닌 벗을 모아 시작(詩作) 활동을 이끌었습니다.


삼호정시사의 동인들은 사대부 문인들로부터 그 재능을 인정받는 시인들이었고, 인생에 대한 뜻을 같이한 사람들끼리 함께 즐기며 자연을 감상하고 시를 읊으며 서로를 인정해주던 소통의 공간이요, 시인으로 인정받는 공간이었습니다. 이들은 서로가 세상에 쓰이지 못함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하며 모여서 서로를 적극적으로 인정해 주었고, 학문의 넓음과 시짓는 재주로 서로를 높이 평가하며, 서로에게서 군자나 선비의 풍모를 찾아내어 스스로 성인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삼호정이라는 공간과 모임을 역사적 장면으로 설정한 이유는 삼호정이라는 공간이 새로운 여성 문화 공간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를 했다는 점과 이것이 바로 영웅의 모험, 여정을 마치고 귀환하여 제 2의 인생을 살게 될, 제 미래의 꿈을 형상화한 이미지를 가장 가깝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첫 오프수업시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제가 동기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적절한 피드백을 제때 전달하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아쉬움이었습니다. 다가오는 오프 수업의 주제인 ‘역사와 나’ 수업에 있어서도 각자의 역사적 장면이 굉장히 다양하고 포괄적이 될것임을 예상해 봅니다. 사람에 따라 처음 접하는 생소한 인물, 역사적 장면이나 사건이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현장에서 그것을 바로 소화하고 의견을 전달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여러 동기분들도 저와 같은 고민을 하고 계실거라 생각하며, 이미 5기 카페를 통해 자신의 역사적 장면을 간단히 소개하고 서로의 의견을 듣는 과정을 통해 도움을 주고받고 있습니다만, 제가 참고로 한 인물과 역사적 장면은 세상에 널리 알려진 역사가 아니기에 본 수업에 앞서 이를 좀 더 자세히 알려 도움을 얻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물론 본 수업에서는 잘못된 부분의 보완과 함께 좀 더 자세한 내용과 제 삶의 역사, 미래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을 더하겠지만 지금까지 저의 역사적 장면에 대한 접근 방법이 맞는 것인지, 방향을 제대로 잡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견을 듣고 이를 충실히 반영하고자 하는 바램입니다.  


IP *.40.227.17

프로필 이미지
2009.06.08 19:46:36 *.17.70.4
ㅋㅋ 네가 말한 ㄱㄱㅇ이 김금원이었구먼ㅎ. 근데 김금원의 행적과 기질이 너와 무척 닮게 느껴진다. 연구원 수료 이후 우리 모임 장소를 '삼호정'이라고만 지어 부르면 그냥 판박이일쎄...ㅋㅋ.

호방한 기질로 넓게 보고, 변화된 모습으로 그 전과 다르게 자신의 길을 찾아 가는 것.... 우리 모두의 공통된 꿈이자 목표이겠지. 네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너무 쏙쏙 이해가 잘 되는 것 같아. 보다 디테일한 너의 비젼을 형상화 시켜서 꺼내어 보삼. 주제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많은 의견 주고 싶어.

오늘도 좋은 하루^^~~~
프로필 이미지
백산
2009.06.08 22:54:28 *.131.127.100
^ ^ 
그 소원이 담긴
그 역사의  길위의 여정에서
묻어나는 이야기를 듣고 싶군,
프로필 이미지
2009.06.09 11:15:13 *.204.150.138
삼호정. 딱 그대로 그대이다! ^^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52 <크로아티아 여행을 기다리며 1> [4] 수희향 2009.06.10 3155
1051 헬스장에서 배우는 삶의 원칙들 외전(外傳) - 훌라후프편 file [8] 양재우 2009.06.10 9476
1050 헬스장에서 배우는 삶의 원칙들 [3] 양재우 2009.06.10 3465
1049 삶은 점점 확장되는 것이다 file [8] 한명석 2009.06.09 3129
1048 [10] <백범일지>를 읽고 - [안두희의 검은 편지] [4] 수희향 2009.06.08 3110
» 나의 길, 나의 역사, 나의 소원 [3] 혜향 2009.06.08 3679
1046 '너는 어느 편이냐?' [4] 예원 2009.06.08 2863
1045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file [1] 숙인 2009.06.08 4471
1044 높은 문화의 힘 [1] 김홍영 2009.06.08 3414
1043 칼럼 9 - 관음죽 분을 갈다. [3] 범해 좌경숙 2009.06.08 4002
1042 나의 펜싱의 정체성 [4] 백산 2009.06.08 3357
1041 의리를 아는 자 [2] 희산 장성우 2009.06.07 2929
1040 독립운동가의 자손 [3] 書元 이승호 2009.06.07 4086
1039 디자인식스의 자주성 확립을 향하여 [3] 혁산 2009.06.07 3157
1038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 외모(外貌)로 인한 소심(小心) file [1] 양재우 2009.06.05 5749
1037 칼럼 8 - 이순신의 사람들 [11] 범해 좌경숙 2009.06.02 3619
1036 [8]이순신의 후원자 서애 류성룡 file [4] 정야 류춘희 2009.06.02 8919
1035 이순신과 노무현의 죽음 [4] 김홍영 2009.06.01 3829
1034 삶의 전쟁터, 동대문 원단시장 [2] 혜향 2009.06.01 7168
1033 남은 자의 대처법 [2] 예원 2009.06.01 3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