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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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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10일 14시 50분 등록

내가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외국 땅에 발을 디딘 것이 언제였나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20여년 전이었다. 처음으로 부모님 곁을 떠나 혼자 시드니 땅으로 날아가고 있었는데, 그 때만해도 서울-시드니 직항편이 없어서 일본 항공인 JAL기를 타고 가야만 했다.

 

문제는 영어도 일어도 한 마디도 못하는 내가 동경에서 갈아타야 하는 그 때의 나로서는 일생일대의 모험을 강행해야 하는 난관이었다! 그랬었다. 지금 생각하면 부모님께서 걱정하실까봐 겉으로는 티를 안 내는 척 (지금 생각하면 나의 불안을 어찌 모르셨을까만은) 하면서도 속으로는 소위 말하는 국제미아가 되면 어쩔까 어찌나 불안했던지

 

그 후 시대가 바뀌어서 시드니 공항에서 영어연수나 조기 유학을 오는 초등학생들의 의젓하고 또랑또랑한 눈빛을 대할 때마다 그 옛날 다 큰 내가 겁에 질려 벌벌 떨던 모습이 떠올라 혼자 슬며시 웃음짓고는 한다.

 

그렇게 겁에 질려 외국으로 가는 첫 비행기를 타본 이후 수십 년 동안 때로는 관광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출장이란 이름으로 외국의 낯선 땅들을 밟아 보았지만 어쩐지 첫 출발에서 느꼈던 느낌 <두렵지만 미지의 세계에 대한 설레임>같은 것은 더 이상 느껴보지 못했던 것 같다.

 

궁금은 했던 것 같다. 이번에 가는 나라는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나 궁금증은 일었지만, 그 때 느꼈던 낯선 곳에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은 그 이후 두 번 다시 느껴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늘 여행에 목말라 했었다.

 

나를 단정짓고 나를 한정 지으며 나를 표현하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미지의 세계로 훌쩍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러지 못했다.

 

이유가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자신이 없지만 변명을 하라면 몇 장쯤은 단숨에 쓸 수 있을 것 같다. 홀로 여행을 떠날 용기가 없었던 나의 모습이 인생에서 진정한 홀로서기를 하지 못한 내 모습과 겹쳐지며 이제 변경영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스토리텔링의 형식이 아닌 라는 일인칭으로 글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이 낯설기도 하지만 한편 나름 반갑기도 하다. 스토리 텔링 형식은 나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나를 드러내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는 도피처가 될 수도 있기에 말이다.

 

이런 나였기에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에 홀로 여행을 가는 모든 여행자들은 늘 경외의 대상이었다. “우와…. 저 사람들 그 낯선 곳에서, 더군다나 말도 안 통하는 낯선 땅에서 어떻게 여행을 하는 거지? 무섭지 않나? 두렵지 않나?”

 

그랬다. 내가 떠나지 못했던 가장 큰 걸림돌은 다름 아닌 낯선 곳에의 두려움이었다. 나는 언제나 그 거대한 두려움 앞에 무릎 꿇고 여행이 아닌 관광으로 적당히 타협을 하고 있었다.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와 많이 닮아 있다.

 

하지만 아무리 곱씹어 생각해보아도 그건 적당한 타협일 뿐, 절대 여행의 자리를 메꾸어 줄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꽉 짜여진 일정, 짜증나리만치 밀어 부치는 쇼핑 투어, 현지인들과는 늘 차창 안에서 버스 창문이라는 경계를 두고 만나야 하는 안타까움. 아무리 낯선 곳을 다녀왔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려 해도 결코 채워질 수 없는, 오히려 갈증만 더해 갈 뿐인 타협이요 거래였다.

 

그런 내게 변경영 연구원 프로그램 속의 해외 연수 프로그램은 한 줄기 시원한 빗줄기와도 같았다. 아직도 혼자서는 선뜻 나설 용기가 없는 내게, 단체 관광이 아닌 여행. 사부님과 동료들과 함께 길을 따라 땅을 밝으며 낯선 곳에서 헤맬 생각을 하니 지금부터도 자꾸 무언가를 끄적이고 싶어진다. 

 

처음 나 혼자 미지의 세계를 찾아가던 여행 이후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의 두 번째 여행이긴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릴 적 나는 분명 그러한 용기를 지닌 아이였었다. 물론 그 때, 나의 시드니 행이 꼭 나의 꿈을 향해서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내 안에는 열정이 있었다고 믿고 싶다.

 

이제 나는 두 번째 여행을 통해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열정에 불을 지피고 싶다.

 

7월 말이면 우리 모두 <나의 히스토리>를 재정비하게 된다. 그리고 8월 초에 8 9일동안 낯선 곳으로 함께 여행을 떠난다.

 

어느 정도 형상을 갖춘 진정한 나를 데리고 낯선 곳으로 가서 그 녀석의 가슴이 뛰게 해주는 의식을 치루고 오고 싶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용한 기대감이 서서히 나를 감싸기 시작한다  

IP *.204.15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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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9.06.10 23:46:45 *.251.224.83
아~~  스토리텔링에 그런 비밀이 숨어 있었군요.^^
반대로 나는 늘 '나'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일인칭으로 시작하는 글을
실컷 쏟아냈더니, 이제  스토리도 있었으면 좋겠고,
조금 달라지고 싶던데요.

수희향님과 내가 서로 반대편에서 교차하는 것이 흥미롭네요.
글의 일차적 목적은 '나'와 '과거'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측면도 있을듯해서
앞으로 일인칭의 글을 많이 볼 수  있기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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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1 11:14:56 *.12.130.70
아... 내향성이 외향성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좀 약한건가요...?
사실 전 내향성이나 외향성 혹은 기질 등의 일들에 대해 작년에 꿈벗을 가면서 처음알게 되었다고 해도 될 것 같아요. 그 전에는 그야말로 일상 생활에서 아는 정도였고,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거든요.

다만 한 가지 신기하고 잼있는 발견은, 저라는 한 사람 속에도 내향성과 외향성이 공존한다는 사실이었어요.
즉, 저같은 경우 사적으로 사람들을 사귈 때는 엄청 내향적이어서 시간이 오래걸리는데 비해, 일적인 상황에 부딪히면 엄청 외향적인 성향을 드러내거든요. 나름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ㅎㅎㅎ

사실 이 댓글만 해도 저나 선배님이나 지금 굉장히 솔직하게 자신들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기실 우리 두 사람만이 아니라 이 곳을 방문하시는 많은 분들이 보실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저희들의 내향성은 용기있는 내향성이라 해야 할까요? ㅎㅎㅎ

정리하자면, 제가 이쪽 분야를 잘 모르긴 하지만 지난 두 달간 제 자신을 관찰한 결과
1. 저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누구나 내향성과 외향성 혹은 소극적과 적극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다만 한 개인의 상황이나 그 개인을 둘러 싼 외부 환경 내지는 시간 등등 여러 가지 요인들에 의해 어느 한가지가 더 굳어지는 것이 아닌가...?

2. 그랬을 때, 참다운 글쟁이가 되기 위해서는 내향적인 나이던 외향적인 나이던, 나를 "솔직히 만나는 것" 역시 중요한 첫 걸음 중의 하나가 아닐까...? 내가 감동하지 않는 글에는 아무도 감동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참으로 맞는 말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하간 이상은 초보 연구원의 고민이었습니다. ㅎㅎㅎ

선배님. 댓글을 통해서 이렇게 대화를 건네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래서 이번 주말이 더욱 기대됩니다. 앞으로도 계속 서로의 생각 주고 받으며 서로 기운을 불어 넣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배님, 아자아자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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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9.06.11 10:26:16 *.251.224.83
요즘 사람의 성격을 나누는 오래된 분류인 내향성과 외향성에 대해
생각할 일이 많았는데요.
기본적인 에너지를 외부와의 만남에서 받느냐,
내면의 탐구에서 받느냐의 문제는 정말 사람마다 다른 것 같아요.

그건 그냥 '다름'일 수도 있고,
한 개인에게 각기 다른 비율로 상존해 있기도 하고,
나이와 상황에 따라 수시로 달라지기도 하는 것인데,
은연 중에 내향성이 외향성보다 무언가 부족한 성향으로 인정받는 세태가 웃기구요.^^
같은 내향성 중에서도 스펙트럼이 넓다는 것이 흥미로워요.

가령 나도 확실한 내향성인데요,
내 것을 펼치는 데는 주저함이 없거든요?
무튼, 내향성을 뒤처진 인성으로 여기는 시선과 맞서 싸워야할 것 같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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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1 08:26:52 *.12.130.70
비밀까지는 아닌데요. 몇 분이 물어보시더라고요. 왜 맨날 스토리텔링이냐고.
얼릉 답이 떠오르지 않아 곰곰 생각해보니까 일단은 상상의 세계를 마음껏 펼칠 수 있어서가
더 우선인 것 같고요 (춘희가 저더러 4차원이래요 ㅎㅎㅎ) 그 다음으로 어쩌면 저의 내성적인 성격상 저를 그대로 들이대는 1인칭보다 그게 더 편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선배님께서 말씀하신 일차적 목적은 참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 두 달간 책을 읽고 리뷰정리하고 칼럼쓰면서 저는 과거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과거와 화해를 했다고나 할까? 여하간 참 좋은 시간 보내고 있거든요.

무튼 늘 생각거리를 주시거나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돔주셔서 감사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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