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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30일 20시 47분 등록

가을을 넘어 바로 겨울로 돌입하는지 기온이 갑자기 내려갔다. 그때도 그러하였다. 추운 날씨 였었지.

 

회사에 처음 입사하여 떨어진 업무 지시사항.

“승호씨. 다음주 산에 아줌마들 데리고 가서 놀아주고 와요.”

“네?”

 

버스에 사람들을 태우고 관광을 시키며 물건을 팔게하는 묻지마 관광이 유행 하던 때였다. 그래서 우리도 사람들을 증원 즉, 리쿠르팅 시키기 위해 이같은 방법을 응용 하였다.


아줌마들이 가득찬 버스가 출발 하노라니 온갖 수다와 잡담이 실내안에 가득하다. 엘리베이터에 타면서 한번쯤은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여자들 가운데 남자 한사람이 섞여 있는 경우와 남자들 가운데 여자 한사람이 섞여 있는 경우 어떤쪽이 더힘들까? 일반적으로 남자가 더힘들다는 통계가 나온다. 뻘쭘, 긴장, 초조, 빨리 이상황을 모면 하였으면 좋겠다는 느낌 등. 내가 그러하였다. 장미 꽃밭속에 바퀴벌레 한 마리가 섞여 있다는 이질감의 그런 느낌. 도착해서 가벼운 산행이 시작 되었고 잔디밭에서 점심식사와 함께 드디어 레크리에이션 시간이 되었다. 그렇다. 나의 오늘 임무는 레크리에이션 진행이었다. 레크리에이션 자격증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오늘 나에게 떨어진 지상과제인 것이다.

 

호흡을 가다듬고 사람들을 집중 시키고자 어설픈 몸짓이며 싱얼롱도 해보았지만 좀체 따라 하지도 않고 반응도 신통찮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신나는 음악을 틀어 보았다. 당시에는 들고 다니는 포터블 녹음기가 유행 하였었는데 마침 트롯트 메들리 테이프가 흘러 나왔다. 트롯트 음악. 20대 후반의 팔팔한 대한민국 청년의 한사람 이었던 나는 많고 많은 노래중에 트롯트를 중년의 분들이 좋아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왜 좋아할까? 하지만 마흔이 넘어가는 현실이 되니 그때의 그사람들이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요새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빠른 템포 거기다 랩까지 들어가는 노래를 이해하고 따라 하기에는 한계가 있던차에, 갑자기 그런 노래들이 이상하게 귀에 감기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징조가 가요무대와 송해 아저씨가 진행하는 전국 노래자랑이 좋아지게 되는 시기라고 하던데 그말이 나에게도 해당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허허참~ 웬지모를 씁쓸함이 밀려온다.

 

그들이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는데도 좀체 흥이 돋구어 지질 않았다. 진행자인 나로써는 똥줄이 타기 시작하였다. 강의도 그렇지만 모든 것에는 궁합 즉, 맞장구라는 것이 있는데 청중의 호응이 없으면 앞에 서있는 사람은 죽을 지경이 된다. 또한 무써운 아줌마들 속에서 딸랑 남자 하나 있는 내가 두렵기도 하였다. 지금이야 시간이 흘렀고 다년간의 경험(?)이 쌓여 아줌마들이 하는 야한 농담도 척적 받아넘기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때에는 순전히 순수 그자체였던 것이었다.

 

나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었다.

“자, 지금부터 댄스 경연대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상품에 환장(?) 하신분이나, 오늘 이 상품을 타지 못하면 한이 맺혀 밤에 잠을 자지 못한다 라고 하는 분들은 마음껏 도전해 주시길 바랍니다.”

쿵작쿵작 음악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와같은 멘트가 나오자, 풀밭에 패잔병처럼 너부러져 있던 그들의 눈초리와 움직임이 갑자기 달라지기 시작한다. 기를 쓰고 음악에 맞추어 손가락은 하늘을 찌르고 발바닥은 갈지자를 해대며, 육중한 허리는 훌라후프를 움직이듯 돌리고 돌리고를 외친다. 목표를 향한 그녀들의 집념은 이처럼 대단하다.

 

쇼핑센터에 장을 보러갈 때 이런 광경은 종종 목격이 된다. 편하게 장을 보는 와중에 갑자기 어디선가 메가폰의 큰소리가 들려왔다.

“자, 지금부터 반짝 세일을 시작 합니다. 불포화 지방산과 오메가 쓰리 성분이 가득하여 성인병과 수험생 자녀분들에게 최고인 등푸른 생선. 싱싱하고 펄떡펄떡 뛰는 고등어를 딱 10분간만 파격 가격 인하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뒤의 광경은 상상불허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느릿느릿 세월아 내월아 하던 아줌마들의 움직임은 갑자기 총알 탄 사나이 우샤인 볼트가 된다. 그녀들의 눈초리는 올빼미가 저리가라다. 쇼핑카를 팽개친채 야구에서 기습 번트를 하고 1루에 죽을동 살동 달려가는 주자처럼 목표점을 향해 힘차게 세이프를 시도한다. 나도 웬일인가 싶어 뒤늦게 대열에 합류를 해본다. 가격이 다운 되었다는데 이게웬 휑제람 쾌재를 부르며. 하지만 그 휑재는 재수가 나쁘면 악재가 되기도 한다.

“아줌마 비키세요. 제가 먼저 왔잖아요.”

“아니 이사람이? 무슨 말이예요. 내가 먼저 줄을 섰는데.”

“아까부터 저는 줄을 섰거든요.”

“웃기는 소리 하고있네.”

“새치기 하지 마세요.”

서로 삿대질이 오간다. 밀고 밀치는 몸싸움이 시작되며 언성이 높아진다. 목표물을 향해 손을 내민다. 빨리 달라고 서로 아우성이다. 어느새 쌓여있던 물품이 금새 동이났다. 그리고 목적 달성이 끝나면 거짓말같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마트는 평온을 회복하고, 각기 조신한 중년의 여인으로 변신하여 갈길을 가는 그녀들. 10년이 넘게 나도 한 여자랑 살고 있지만 아직도 좀체 그녀들의 이같은 행동들은 이해하기가 힘들다. 물론 이런 말을 하면 그녀들은 그녀들 나름대로 항변을 할 것이다.

“나도 처녀 때는 부끄럼 많고 그랬어. 하지만 아이 둘을 한번 낳아봐. 무서운게 없어.”

“나도 편하게 장보고 싶어. 누구처럼 비싼 유기농 매장가서 품위있게 쇼핑하고 싶다고. 하지만 쥐꼬리 같은 남편 월급을 쪼개서 장을 봐야하고, 치솓는 물가와 학원비는 감당을 못할 지경이야. 나도 그러고 싶어서 그런건 아니라고.”

 

그러했다. 반짝 세일처럼 상품이라는 목표물이 걸리자 거북이 같이 슬로우 비디오로 움직이던 그녀들은 갑자기 행동이 180도로 바뀌었다. 밤무대의 조명만 없다 뿐이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농염한 몸짓들. 진행자에게 어필하기 위해 서서히 그녀들이 다가온다. 이렇게 되면 시상을 하기 어려워진다. 누군 주고 누군 주질 않으면 오히려 더 사단이 나기 때문이다. 이럴때는 공정한 룰이 최고이다.

“너무 경쟁이 치열하여 뽑기가 힘드니 6명씩 소그룹을 만들어 보십시오. 호명되는 그룹에서 가장 섹시하게 춤을 추는 분에게 준비된 상품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분위기는 더욱 달아 오른다. 짝을 찾는 나비처럼 푸드득 거리며 날개짓이 어우러졌다. 그런 와중에 한 아줌마의 예상치 않았던 돌발 행동이 일어났다. 열심히 춤을 추던 그녀는 갑자기 겉옷의 블라우스 단추를 위에서부터 풀기 시작하는 것이다. 흥분해서 그런가 왜그러지? 그리고 허물 벗는 꽃뱀이란 영화 제목처럼 하나둘 옷을 벗어 제꼈다. 당황이 되었다. 뭘하는걸까. 급기야 브래지어 하나만을 남겨둔 그녀. 11월 하고도 쌀쌀한 가을 날씨속에 속옷 하나 달랑 걸친채 풀밭에서 한풀이를 하듯 춤을 추는 그녀.

금새 얼굴이 빨개진 나는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다.

싱싱한 총각의 가슴은 난타의 두드림이 몽실몽실 일어났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런 눈부신(?) 광경을 보다니.

그녀의 독무대 리싸이틀은 절정에 다다르고 있었다. 차차차. 흐늘거리는 스텝과 함께 이리 찌르고 저리 찌르고. 지루박의 움직임속에 아싸.

 

마침 테이프의 음악이 끈끈한 블루스로 바뀌자 목표점을 나에게로 바꾼 그녀는 맹수가 먹이감을 사냥하듯 한발자국씩 다가온다. 손을 어깨에 올리고 날씬한 나의 허리를 움켜 잡으며 포옹을 한 채 불륜의 어울림이 어우러 지는데, 그것이 아름답기 보다는 고목나무에 매달린 한 마리 매미같은 장면이 연출 되어졌다 나는 어쩔줄을 몰랐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채 음악이 끝나기 만을 기다려야 했다. (악몽에 시달리던 그이후로 나는 웬만하면 블루스를 추지 않는다.)

 

상품은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에 맡기겠다.

무얼까? 그녀를 그 추운 날씨에 그것도 벌건 대낮에 브래지어 하나 걸치고 춤을 추게한 근원은 무엇 이었을까?

단순한 상품 때문 이었을까?

아줌마의 호기였을까?

아니면...

 

세일즈를 하는 사람들은 내면의 끓어 오르는 피가 있다. 에너지가 넘친다. 아침 조회시 하이파이브의 마주침을 하면 오히려 내손이 얼얼해 지곤 한다. 영업은 기싸움. 그래서 자연적이든 혹은 인위적이든 넘치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 에너지를 고객에게 제품을 통하여 상담을 통하여 인간 관계를 통하여 전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상품인데도 고객은 선택하는 것은 하나이다. 에너지가 넘치는 상담원의 말을 신뢰를 하고 구입을 한다.

 

아름답게 춤추던 그녀가 이맘때가 되면 어김없이 떠올려진다. 잘살고 계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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