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김연주
  • 조회 수 2597
  • 댓글 수 9
  • 추천 수 0
2010년 11월 7일 09시 36분 등록

칼럼. 꿈이 없던, 꿈이 없는 영덕이

“매번 성공하지 못한다 해도 매사를 올바른 원칙에 따라 행하는 데 싫증내거나 낙담하거나 포기하지 마라. 실패하면 다시 그 원칙들로 돌아가고, 네 행동이 대부분 인간의 본성에 맞는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네가 무엇을 지향하든 그것을 사랑하라.”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중

 

중학교 3학년들이 고등학교 입학원서를 쓰기 시작해서 중3 담임들이 바빠졌다. 게다가 지난 해 고등학교에 떨어진 애들과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자퇴한 아이들이 원서를 쓰러오니 더욱 바빠진다. 요즘 세상에 고등학교 못가는 애가 있을까 싶지만, 우리 지역에서는 원하는 곳을 못가는 애들이 그래도 꽤 있다. 중학교 내내 꿈이 없이 공부를 하지 않고 지내다 원서를 낼 때가 되면 집과 가까운 곳의 괜찮은 학교에는 붙기 힘들고 집과 가까운 전문계도 완전히 바닥인 성적으로는 힘들어서 다른 지역의 미달인 학교로 가야한다. 고등학교 인데 왕복 3시간정도의 거리를 다녀야 하니 자연스레 학교 다니기 싫어하는 애들도 생겨 자퇴를 하곤 한다. 다행이 오늘 만난 영덕이는 낮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중3 담임의 노력으로 올해 초 전문계에 입학했었다. 그런데 다시 원서를 쓴다고 바가지 모양의 긴 머리를 하고 복도에 서있다. 올해 정보고에 입학했는데 자퇴를 하고 학교를 다니지 않다가 방송고에 진학해서 마음잡고 학교 다니려고 원서를 쓰려고 왔는데 거기는 성적이 미달이라 떨어진다고 했다며 다시 자퇴했던 같은 학교에 원서를 쓰는 중이라고 하는 영덕이의 얼굴에 쑥스러운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영덕이가 2학년 때 담임을 했었으니 2년 전의 일이다. 내가 기억하는 영덕이의 대부분은 매일 계속되는 지각과 모든 수업시간을 불문하고 잠을 청하던 게슴츠레 생기없는 눈빛이다. 영덕이는 흔히 말하는 노는 아이는 아니었다. 영덕이는 전혀 나쁜짓을 할 수 없을 것같은 선한 눈빛을 지녔다. 어찌 보면 순하디 순한 래브라도 레트리버의 눈빛을 닮기도 했었다. 영덕이는 학기초부터 지각을 했고 학교에서의 대부분 시간을 엎드려지냈다. 자연스레 나는 영덕이가 밤에 뭔가를 한다고 생각했고 상담을 했지만 밤새 게임에 열정을 쏟는 것도 TV를 보는 것도 친구랑 노는 곳도 아닌 돌아오는 대답은 진심 어리게 ‘너무 졸려서 잤어요’였다. ‘무엇을 좋아하느냐, 무엇을 하고 싶느냐’고 물었지만 항상 돌아오는 대답은 ‘몰라요’였다. 그렇게 영덕이의 중학교 2학년 생활은 지나갔고, 3학년이 된 영덕이는 급기야 잠을 자느라 학교에 나오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학교수업 시간에 수업을 듣지 않고 잠을 자니 성적은 꼴지를 맴돌았고 늦잠을 자서 학교에 지각하거나 안 오는 날이 많아지니 출석 점수도 좋지 않았던 영덕이는 내신성적이 200점 만점에 98점이었다. 고입원서를 쓰는 시간이 다가오자 자연스레 공부에 뜻이 없던 영덕이는 점수 맞춰 전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했었다.

지각을 해서 벌청소를 해도 군말 한마디 없던 영덕이를 떠 올려볼 때 학교샘과 마찰이 있던 것은 아닐 터였다. 중3때 담임을 하지 않아서 그간의 영덕이의 소식을 듣는 것이 쉽지 않았다. 영덕이에게 조심스럽게 자퇴한 이유를 물어보았다. 영덕이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2년전 영덕이 스타일대로 ‘그냥요. 다니기 싫어져서요.’였다. 난 그래도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달랬다. 내 집요한 물음에 정말 별 이유가 없다며 그냥 다니기 싫어졌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고등학교 입학 후 3일 등교를 하고 1달뒤에 자퇴를 했다고 한다. 자퇴 후에 무엇을 하며 지냈냐고 물었더니 ‘PC방에서 게임하며 놀았어요.’라고 한다. PC방 게임비는 알바해서 벌었냐고 했더니 용돈으로 다녔다고 한다. 부모님이 자퇴한 것에 대해 뭐라고 하셨냐고 물으니 ‘네 인생이니 알아서 해라.’라고 하셨단다. 그런데 어떻게 다시 학교 갈 생각을 했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아서요.’라고 대답을 해주었다. 그 말을 들으니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부모님이 다시 학교 다니겠다고 하니까 좋아하시지?’라는 내 물음에 ‘엄마랑 화해했어요’라고 대답한다. 아! 맞다! 잊고 있었는데 영덕이는 엄마밖에 없는 아이였다. 어렸을 적 1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엄마 혼자서 가정을 책임지시며 영덕이 위로 6살과 7살 차이나는 누나까지 키워내셨다.

영덕이는 여전히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제는 볼링장에서 아르바이트는 하기로 했다는 말을 해준다. 그 틈에 영덕이에게 ‘꿈이 무엇이냐’는 2학년 때 했던 질문을 그대로 해보았다. 영덕이는 여전히 ‘아직 모르겠어요’라는 말을 당연하게 한다. 이제는 학교 열심히 다닐 것이라며 엄마 속 썩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 아직 꿈이 없다는 것이 어쩌면 하루 온종일을 잠을 자고 게임을 하느라 시간을 보냈던 어려서부터 ‘삶의 철학’을 배우지 못했던 영덕이에게 당연한 결과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본인의 의지로 학교를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엄마에게 당당한 아들이 되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만으로도 대견하다. 누구나 자신만의 호흡에 맞는 깨달음의 때가 있기 마련이며 부모와 학교가 하지 못했다면 세상이 그에게 ‘삶의 철학’을 가르쳐줄 것이라 믿는다. 꿈이 없었고 지금도 여전히 꿈이 없다고 해도 영덕이가 자신의 인생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자신만의 인생을 사랑하게 되기를 바란다.

원서를 다 쓰고 집으로 돌아가는 영덕이에게 바뀐 전화번호를 물어서 저장을 해두었다. 다시 입학한 고등학교를 잘 다니고 있는지 학교생활은 어떤지 따스한 봄날 안부나 물어야겠다.

 

IP *.68.24.228

프로필 이미지
2010.11.07 20:56:10 *.160.33.180
 영덕이가 한 걸음씩 제 길을 찾아 가면 좋겠구나.  연주야.
프로필 이미지
6기막내 연주
2010.11.09 10:51:25 *.203.200.146
아이들이 제 갈 길을 찾아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큼 가슴벅찬 일도 없는 듯합니다.
엊그제 또 다른 올해 졸업생이 찾아왔어요. 그녀석들도 영덕이 못지 않은 아이들이었는데 중학교때 말썽꾸러기의 모습이 채 1년도 안 된 사이에 싹~~ 사라졌더라구요.  "야~ 너희들 정말 의젓해졌다. 어떻게 이렇게 상태가 좋아진게야?"하는 저의 물음에 한 녀석이 "철이 든거요"라고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더라구요.
아이들이 철이 들듯이 저도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이제야 철이 들고 있습니다.
정말 깊이 감사합니다~ 사부님~emoticon
프로필 이미지
우성
2010.11.07 23:13:58 *.34.224.87
되돌아보면,
누군가가 해주는 나에 대한 작은 관심의 말이, 
내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그래...봄날에 영덕이에게 안부를 꼭 물어주면 좋겠다.

프로필 이미지
연주
2010.11.09 10:53:55 *.203.200.146
그죠...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그 느낌의 작은 관심이 살아갈 큰 힘이 되기도 하더라구요~
프로필 이미지
상현
2010.11.08 18:04:53 *.236.3.241
이럴 때는 우성이 형이 쓰는 멘트가 영덕이에게 도움이 될랑가 ㅎㅎㅎ

'너의 눈에 우주가 담겨 있다'

언뜻 든 생각인데, 군인들 하듯이 연주 결혼식 때 제자들이 축복의 터널을
만들어주는 것도 괜찮겠다.^^
프로필 이미지
범해
2010.11.09 13:08:41 *.67.223.154
'너의 눈에 우주가 담겨있다.'
누구에게 말해주려구?  부지깨이 께?  우히힛~

연주야, 어제 밤 철이 들려는 아들과 파닭에  생맥주 배달시켜 놀다가 그만 자정을 넘겨버렸다.
북리뷰는 중간에 헤롱헤롱,,,
 이제야 일어났는데... 찬란한 가을 햇살은
부지런한 사람들이 다 챙겨가고....
난 또 남은 빛을 챙기러 미술관으로 떠나야 한단다.

잘지내자. 미래의 철들과 함께....우히힛~
프로필 이미지
연주
2010.11.09 10:55:04 *.203.200.146
'너의 눈에 우주가 담겨 있다'!!! 좋군요~ 담에 만나면 말해줘야겠어요~
축복의 터널이라...좋군요 ㅎㅎ
프로필 이미지
미옥
2010.11.09 15:21:48 *.10.44.47
연주야.
오늘은 영덕이가, 아니 영덕이를 보듬는 연주의 따듯한 품이 나를 울린다.
나도 누군가에겐 연주샘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프로필 이미지
진철
2010.11.09 15:51:40 *.154.57.140
꿈보다 해몽....

1. 나이를 43개나 먹었다. 나는 누가 나에게 꿈이 뭐냐고 묻는 것이 두렵다. 왜냐면.. 잘 모르기 때문이다.
2. 나이를 먹으면 사람들이 잠이 없어진다고 한다. 나는 꿈이 없어지기 때문에, 꿈꿀 일이 없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3. 서른이 코앞인 녀석이 있다. 그 놈은 아직도 대책없이 산다. 시민단체 언저리에서 행사 때 좋은 일 한번 할래? 하고 물으면, '고기 사줘요?'라고 되묻는다. 그럼 하고 말하면, 그 녀석은 약속시간보다 두 세시간 쯤 먼저와서 사무실에서 어슬렁거리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도대체 그놈아의 대책이 있는지를 묻지만, 그놈은 신세 편하다.. 놀구 먹는다..아직도 틈만 나면 잔다.
4. 학교는 사각형 같다. 사각형 교과서에 나와 있는 삶을 가르친다. 사각형 답안에 맞는 답을 적으라고 한다. 틀안에 맞는 답을 적으면 좋은 점수를 받는다. 그렇게 포인트를 얻으면, 학교 입학하고 바꿔준다. 그렇게 거래를 한 사람만이 그 학교에 갈 수 있다. 다시 사각형의 교실에서, 사각형의 칠판에서 정답을 외우다가.. 사각모를 쓰고, 사각형 졸업장을 받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각형 틀에 인증샷을 담는다. 그렇게 살다가.. 맨 마지막엔 사각형 틀에 몸을 맞춰 눕고, 사각형 비석을 하나 세워둔다. 열심히 인생을 틀에 맞춘다. 그렇지만 내 기억에 엄마 뱃속의 머물던 시절 자궁의 모양은 하트였고, 내가 세상에 나올 적에 거쳐왔던 동굴은 원형에 가까웠다.
5. 삐닥한 대안학교라는 것이 바람을 탄다. 얼핏 학교부적응자들을 모아서 해보겠다지만, 세상의 눈으로는 무슨 문제아들이나 지진아들을 위한 특수학교 쯤으로 보인다.
6. 사회에 부적응한 사람들은 아직도 많은 가보다. 무엇이 부족하다고, 학교 선생님을 하는 이쁜 처녀가 (꿈도 이룬것 같아 보이는데....) 바득바득 기를 쓰고 연구소 생활을 한다. 남들 눈에 남부러울 것 없는 처녀가 시집이나 가지...
7.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면 너나 할 것 없이 급해진다. 너는 무슨 책을 쓸 건데? 너는 어디 학교를 갈 건데? 너는 꿈이 뭔데?
8. 내 학창시절.. 법관이 되겠다고 당당히 꿈을 말하던 친구가 부러웠다. 누구는 연구원이 되겠다고 당당히 말하고, 누구는 의사가 되고, 학교 선생님이 꿈이라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매번 망설였다. 글쓰고 그림그리고 싶어요라고 말은 정답이 아니었고,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원하는 답이 아니었다. 나는 그들의 바람대로 돈되고, 취직 잘되는 학교를 가기로 했다. ... 그 때는 그들에게 그것이 정답이었다. 잘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꿈을 찾고 있다.
9. 영덕이가 꿈이 없을까? 아니면...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992 하계연수 단상23 - 인연은 운명과 같이 일어난다 file [8] 書元 2010.11.07 2852
» 칼럼. 꿈이 없던, 꿈이 없는 영덕이 [9] 김연주 2010.11.07 2597
1990 [칼럼] 서호납줄갱이의 비밀 file [12] 신진철 2010.11.06 7996
1989 여인혈전-그것이 사랑이었을까 [4] 신진철 2010.11.03 2481
1988 [먼별2] <단군의 후예: 사색하는 나무 디자이너 최성우님 인터뷰> [9] 수희향 2010.11.01 2698
1987 응애 39 - 문상을 다녀와서 [2] 범해 좌경숙 2010.11.01 2656
1986 세계의 기원 [5] 박상현 2010.11.01 2911
1985 칼럼. '가가호호 아이둘셋' file [6] 이선형 2010.11.01 3847
1984 감성플러스(+) 27호 - 내일을 향해 써라 file [5] 자산 오병곤 2010.11.01 2444
1983 [컬럼] 리더의 철학! [7] 최우성 2010.11.01 2327
1982 [칼럼] 동청冬靑이라는 나무가 있다 [10] 신진철 2010.11.01 2764
1981 넌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7] 맑은 김인건 2010.10.31 2586
1980 '놓아버림'이 전환을 줄수 있을까? [5] 박경숙 2010.10.31 2974
1979 미션 개 파서블 [11] 은주 2010.10.31 2767
1978 칼럼. 4차원 성철이 [4] 연주 2010.10.31 2321
1977 라뽀(rapport) 29 - 나는 그녀가 그해 가을에 한 일을 알고있다. 書元 2010.10.30 2882
1976 하계연수 단상22 - 돈키호테가 풍차로 간 까닭은? file [2] 書元 2010.10.30 3206
1975 하계연수 단상21 - This is the moment. file [1] 書元 2010.10.30 2363
1974 영동고속도로 덕평휴게소내 주유소 충전소 오픈 [1] 덕평주유소 2010.10.30 2423
1973 중국및해외 홈페이지제작 및 홍보대행 서비스 [3] 박광우 2010.10.29 3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