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불씨
  • 조회 수 931
  • 댓글 수 1
  • 추천 수 0
2018년 8월 20일 16시 33분 등록
내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우리가 할일은 오늘이 좋은 날이며 오늘이 행복한 날이 되게 하는 것이다 
-시드니 스미스


 다행이었다. 지난달 수업에서의 나의 염원을 하늘이 들어주셨는지 날씨가 덥지 않고 선선했다. 지난밤 숙취로 머리는 무거웠지만, 어제의 잔재가 나의 오늘을 망치도록 놔둘수 없다는 결연한 의지를 다지며 오프수업 장소에 도착했다. 일정이 조정되는 바람에 원래 자문위원으로 참석 예정이었던 연대님이 오지 못했다. 아쉬우니 연대님은 9월에 꼭 모시는 걸로^^ 별도로 참석하는 선배도 없어서 우리 네 명은 오붓하게 수업을 시작했다. 당초 8월 수업은 간단할 거라고 했던 미옥 교육팀장의 얘기와 네명뿐인 단촐한 인원에 이른 귀가를 예상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역시 나의 생각이 짧았다. 결론적으로 오전 10시에 시작한 수업은 결국 저녁 6시를 넘겨 끝났고 집에 도착하니 저녁 8시였다. 나이 들면 공부하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한다. 다음부터는 절대 귀가예정시간을 아내에게 미리 말해서는 안 된다는 큰 교훈을 얻었다.

(각설하고...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을 담은 후기 시작합니다)

 혜홍웨버님의 첫 발표. 웨버님은 출제의도파악 오류로 전날 부랴부랴 다시 과제를 작성했다고 했다. 하지만 과제는 전혀 급하게 쓰여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공감했듯이 훌륭한 글이였다. 개인적으로 이제껏 보아온 웨버님의 글들중 단연 돋보였다. 미옥 교육팀장의 피드백이 굉장했다. 아주 작정하고 온 게 보였다. 신들린듯 이어지는 질문과 코멘트는 빈틈없이 조여드는 오케스트라 연주와도 같았다. 쉴새없이 이어지는 선율에 웨버님이 동조되는 모습이 어느정도 느껴졌다. 승훈선배의 경험을 담은 코멘트 역시 자연스럽게 수업에 녹아들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화를 제대로 기록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내 코멘트도 하지 못 했다. 타자 치느라고 급급해서 하지 못 했던 코멘트를 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번 글은 부자연스럽게 힘이 들어간 부분이 없이 세월의 관록이 묻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과제 발표하는 것을 듣다보니, 지난 4월 우리의 장례식에서 담담하게 낭독하셨던 유서가 떠올랐다. 그때도 많이 몰입하며 들었던 기억이 난다. 본연의 실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힘을 빼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흔한 예가 운동선수들이다. 잘 하려고 의식하다보면 무의식적으로 몸에 힘이 들어가게 된다. 본인이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서 힘이 들어가면 오히려 표현이 부자연스러워지고,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 어느 유명 작가가 젊은 시인에게 한 충고가 기억난다. “시는 강렬한 감정이 아니라 언어로 만드는 것이다.”  혼자만의 감정에 도취되어 우리는 그것을 그대로 텍스트화하지만 그것은 본인에게만 강렬할 뿐 다른 누구에게도 어필하지 못 한다. 내 경우 당초 가졌던 강렬한 감정을 정제해서 텍스트화해가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곤 한다. 그것은 내게 있어 일종의 수련과정이기도 하다. 정제된 텍스트가 독자와 접점을 찾을때 비로소 원본 텍스트 역시 생명력을 얻게 된다. 그것은 자기검열과는 관련이 없다. 자기검열은 타인을 의식해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숨기는 것이다. 감정과 사고를 가다듬는 것은 것은 오히려 그것들을 더 잘 드러나도록 명료하게 만들고자 함이다. 본인만이 이해가능한 투박스러움을 세상의 언어로 보편화시켜야 좋은 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점심식사 후 자리를 옮겨 승훈선배의 두번째 발표가 이어졌다. 담담하게 묘사된 선배의 하루는 본인을 닮았다.자연스럽다는 것은 자기답다는 것이다. 승훈선배의 테마인 배움과 성취가 하루라는 드라마의 배경음악으로 잔잔히 흐르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조금은 재미가 없어 보인다는 느낌도 들었다. 본인은 재미있을지 모르겠지만, 어리숙한 같은 반 급우들이 보기에는 큰 단점을 찾기 힘든 모범생 같다고나 할까, 아니면 교과과정을 이수한 졸업생이랑 함께 수업듣는 동급생의 기분이라고나 할까. 타인이 보기에 얼핏 재미없어 보이는 일상으로 보일수 있지만 소소한 행복과 평화, 만족으로 이루어진 하루는 자신이 가고 있는 그 길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내 발표. 평범한 일상의 순간순간을 더 나다운 것으로 바꾸어보고자 하는 것이 내 과제의 핵심 맥락이었고, 그 배경에는 직장이 떡 하고 자리잡고 있었다. 직장에서의 개인은 창조적인 주체로 살아가기 쉽지 않지만, 빅터 프랭클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주체성을 결코 놓지 않았던 것처럼 직장이라는 닫힌 공간속에서도 내가 선택하고 주도할 수 있는 것들은 여전히 많다. 수업 코멘트에서 많이 언급된 내용이지만, 머리로는 다 아는 것처럼 보이는데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 모자라다. 아직 진정으로 깨닫지 못했다는 증거다. 아직 가장 나다운 것을 찾지 못했거나 과거의 유물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 했기 때문일수도 있다. 미옥팀장의 얘기대로 실제로 해볼 수 있는 용기가 부족해서일지도 모르겠다. 피드백을 통해 나를 다시 들여다볼 수 있었고, 지금 시점에서 내가 시도해 볼 수 있는 실질적인 변화에 대한 단초 또한 잡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미옥팀장이 쏟아부은 열정만큼이나 길어진 수업이었다. 미옥선배는 최고의 자문위원이었다. 스스로 부지깽이가 되어 나의 불씨를 불어주고, 토닥거려주었다. 너무 작두를 오래 타서 에너지가 고갈되지는 않았을까 걱정되었다. 선배는 나의 가능성을 보았다 말했지만, 나또한 마주한 이의 가능성을 느낄 수 있었다.

 꽤 괜찮은 토요일이었다. 개선해야 하는 것들의 존재는 더 좋아질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하기에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안에서 차창으로 비치는 나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오늘 역시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중 하나일까? 때론 그 터닝포인트라는 것이 엄청나게 큰 반원이고, 내가 끝을 알수 없는 그 반원을 돌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전 같았으면 속도에 대한 조바심이 컸을 것이다. 가로질러 갈 수 있는 또다른 길에 대한 동경으로 스스로 내 발걸음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행의 참된 의미가 목적지가 아닌 길위에 있듯이, 내 인생의 참된 의미도 지금 이순간에 있다고 믿는다. 그 믿음이 내 안의 진리가 되는 날, 나는 진정한 나의 하루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이라는 한 점이 내 꿈으로 향하는 일직선상 위에 놓여있지 않다 한들 어떠랴, 전체를 유용함으로만 채울수 없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인 것을. 에크하르트 톨레가 말한대로 여행에서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바로 지금 내딛고 있는 한 걸음인것이다.





IP *.103.3.17

프로필 이미지
2018.08.23 20:51:42 *.48.44.227

참 표현력이 좋아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이런 생활을 할 수 있는지 슈퍼맨의 힘이 느껴져요~

직설적이고 자기 주장이 강한 내 성격은 글에도 나타나고 타인으로 하여금 힘을 주는걸로 인식하게 하겠지요.

작두타다는 표현 재미있네요. 근데 작두 타는거 본 적 있어요? ㅎㅎ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